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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167화 (167/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167화

남은 시간은 23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시간이 무사히 지나간다면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이게 뭐냐? 깨비?”

“아자토스 님께서 무언가 시작했다. 깨비.”

“군주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거다.”

전장을 향해 책에 적힌 주문을 시전하자, 자연스럽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성채를 가득 메운 주문진은 엄습한 기운을 내뿜었지만,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이미 모든 이들이 지옥의 하수인이자, 도깨비 그리고 언데드였기 때문일 터.

쏟아지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시간을 체크하며 무사히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제, 아무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가길 기도하면 됩니다.”

“…….”

뒤를 돌아 다크나이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

아무리 몬스터라고 한들, 죄가 없는 이들을 희생시키는 지금의 행동을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생각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만약 그녀가 거부한다고 하여도 나는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대답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어색해진 상황에 다시 먼저 말을 걸었다.

지옥에 들어오게 된 순간부터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에 모든 초점을 쏟았지만, 그것은 당장의 목표에 지나지 않았다.

지옥을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녀 역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후…… 신우. 그리고 화이트까지.’

당장 지옥을 빠져나가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신우였다.

정확히는 신우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무언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신우가 안정을 취했기를 바랐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아 보였다.

신우의 육체 속에 있는 그와 상대를 해야 할 것은 분명해 보였고, 신우를 구해내야 했다.

‘구해내지 못한다면…….’

만약 신우의 육체를 지배하는 그를 빼내지 못한다면.

신우의 모습을 한 그가 계속해서 위협이 되고 우리를 방해한다면.

피치 못할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젠장…….”

“…….”

앞으로 있을 상황들을 떠올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런 모습을 힐끔 쳐다본 주현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남은 시간은 20분 정도예요.”

잠깐 동안 생각하는 사이 3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주현에게 시간을 알리며 하수인들의 동태를 살피려는 순간.

“……!”

“이건……!”

주현이 무언가 느낀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차가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저 차기만 한 것이 아닌 엄청난 냉기와 살기가 가득한 공기.

그것은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상황이었다.

“이리시…….”

“군주시여…… 돌아오셨군요.”

반투명한 몸으로 한쪽의 벽을 통과하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밴시.

그녀는 지옥의 군단의 제2 군단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 밴시였다.

그 누구보다 군단을 위하며, 군단을 생각하는 하수인.

지금까지 경험해 본 밴시는 그런 하수인이었다.

군주의 역할을 중요시하며, 지옥의 군단을 위해서 군주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자토스의 복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일 터.

하지만 그녀가 내뿜고 있는 냉기와 살기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누구도 이곳에 들이지 말라 명령했을 터인데?]

그 순간 밴시가 내뿜는 살기를 잠시 뒤로 하고 나에게 공손히 대했다.

도깨비 방망이를 이용한 변신을 눈치는 못 챘다는 의미였다.

갑자기 나타난 밴시에 속으로 내심 놀랐지만,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아자토스의 음성을 흉내 내어 소리쳤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군주시여.”

근엄한 말투였으나 신경질이 난 듯 소리치자, 밴시가 공중에 떠 있던 몸을 땅으로 안착시키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냐.]

“도깨비들에게 반격을 준비하다가 군주님의 소식을 듣고 오게 되었습니다.”

낮게 몸을 숙인 밴시를 내려보며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도깨비들에게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보이지 않는 밴시였기에 신경이 쓰였는데, 역시 무언가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도깨비들이었다.

무엇을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밴시가 나타나며 반격을 했다면 아마 전쟁은 그대로 끝이 났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주현, 다크나이트의 존재가 있었기에 장담할 순 없겠으나 최소 도깨비들의 병력 대부분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을 테니까 말이다.

“군주시여, 어찌하여 저자와 함께 계신 겁니까.”

그때 자세를 낮춘 밴시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다크나이트.

어째서 주현과 함께 있는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크나이트인 그녀는 도깨비들의 군주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지옥의 군단에서 보기에는 그녀는 분명 배신자들의 리더였다.

자신들은 배신자 무리와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리더와 함께 있는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일 리는 없었다.

그랬기에 해온 질문으로 보았고,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네가 알 필요는 없다.]

“…….”

단호하기 그지없는 대답.

하지만 밴시는 반문조차 하지 못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자토스의 절대적인 권력과 밴시의 충성심을 알고 있었기에 내지를 수 있는 태도였다.

어떤 설명도, 변명도 할 필요가 없었다.

군단장이라고 한들, 아자토스의 입장에서는 그저 여타 다름없는 하수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돌아가라.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

예상했던 그대로의 낮은 태도를 보이는 밴시를 향해 다시 한번 소리쳤다.

당연하게 순순히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다크나이트를 힐끔 바라본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요지부동의 자세로 떠나지 않는 밴시를 보며 왠지 모를 쎄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무얼 하는 것이냐!]

반항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저도 모르게 화를 버럭 질렀다.

아자토스에게 빙의라도 한 듯 소리치자 움찔하는 밴시였으나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군주시여…….”

“……?”

남은 시간은 14분 정도.

초조하게 기다리던 상황에 밴시의 부름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무엇이냐!]

“저희를 또다시 저버리는 것입니까.”

밴시는 고개를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자토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어온 질문.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또다시?’

그녀의 입장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아자토스였다.

지옥의 군단과 더불어 자신을 저버렸다고 생각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또’라는 단어가 붙은 것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고, 정체를 들킬 수는 없었기에 함부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모습을 바꾸며 정체를 밝힌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 보이지는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하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밴시였다.

“군주께서 시전한 주문, 그리고 저 마법진까지……. 그게 무엇인지 압니다.”

‘……젠장.’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고, 그녀가 내뱉은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밴시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희 군단을 어째서……!”

울부짖듯 소리치는 밴시.

어째서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인지.

밴시는 지금 내가 지옥의 군단과 도깨비를 제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밴시의 주위에는 눈보라가 이르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적대감.

아자토스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밴시가 반기를 든 것이었다.

[감히 대항하려는 것이냐!]

“더 이상 군주님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미 새로운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몸. 지옥의 군단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몰아치는 폭풍에 소리치자, 이제는 그녀 역시 지지 않았다.

새로운 군주.

그것 역시 나였지만 그녀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더 이상 군주와 하수인이 아닌, 완전한 적으로 못을 박았고 순식간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아카카칵!!!!”

밴시가 소리를 내지르자 성채 안은 그녀의 고통스러운 비명으로 가득 찼고 공기에 닿는 모든 것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을 생각인지 밴시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내 그녀가 자신의 양손을 하늘 높이 뻗었고, 그곳에선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생성되었다.

눈보다가 휘몰아치는 얼음 덩어리는 공중에서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끝입니다!!!”

밴시는 소리치며 양손을 휘둘렀고, 공중에 떠 있던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

지팡이를 땅에 내려찍으려는 순간.

쿠구구구구궁!!!! 파바바바바박!!!!

쑤우우우욱!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새 이루어졌다.

눈앞에 거대한 얼음덩어리는 산산조각이 나며 땅을 나뒹굴었다.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곤 검은 실루엣과 붉은 두 점이 움직이는 잔상뿐.

“컥!”

그리고 저 앞엔 목이 날아간 밴시가 쓰러져 있었다.

“…….”

눈을 깜박이자 밴시는 먼지가 되어 사라졌고, 그 앞엔 다크나이트가 자신의 검을 든 채 자리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위험할 뻔했습니다.”

공격을 막아내고 순식간에 밴시를 베어버린 그녀는 상황이 종료되자 천천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찰나의 순간 벌어진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그녀는 시간을 확인할 뿐이었다.

“시간이 됐어요.”

주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채를 둘러싼 마법진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선행조건이 완료되었습니다.]

[차원 이동 스킬이 발동됩니다.]

끝을 알리는 홀로그램이 펼쳐진 순간.

일대는 비명으로 가득 찼다.

“끄아아아아악!!!!”

“구, 군주시여!!!저희를……!!”

“깨비……!!!!”

모든 지옥의 하수인들과 도깨비들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러댔고, 생명력을 빼앗기듯 말라 갔다.

발동된 마법진에선 알 수 없는 수십의 손이 뻗어 나왔고, 그들을 그 속으로 끌고 갔다.

“……아아악!!!”

“……비!”

“…….”

[보스 몬스터 – 리치 이리크를 처치하였습니다.]

[보스 몬스터 – 융합체를 처치하였습니다.]

[도깨비를 처치하였습니다.]

[둠 나이트를 처치했습니다.]

[……처치했습니다.]

[……처치했습니다.]

[103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905코인을 획득했습니다.]

[35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획득했습니다.]

[……획득했습니다.]

[……획득했습니다.]

비명으로 가득 찼던 일대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남아 있는 이는 없었다.

눈앞엔 끝도 없이 홀로그램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주현과 나를 제외한 그 어떤 하수인도 살아남지 못한 채 희생된 것이다.

“……이것인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일대를 살펴본 후,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둥근 형태의 게이트.

우리가 이곳으로 이동할 때에 보았던 그것과 매우 유사한 게이트였다.

영혼으로 가득 찬 그 게이트가 나타난 것이었다.

“……바로 가시죠.”

“…….”

어느새 옆에 따라온 주현을 보며 제안했고,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할 것 없이 곧바로 게이트를 향해 몸을 던졌고, 그녀 역시 함께 들어왔다.

“으아아아아악!!”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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