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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166화 (166/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166화

“아, 아자토스 님이 돌아오셨다!”

연구실의 문을 박차고 나오자 누군가 소리친 말이었다.

전장의 모든 시선은 나를 향해 쏟아졌고,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자세를 낮추며 고개를 숙였다.

‘…….’

단 한 명, 칠흑의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

꼿꼿이 서 있는 데스 나이트만이 붉은 두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이야,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길 잘했어.’

그녀와 마주친 시선을 거두며 일제히 고개를 숙인 지옥의 군단과 하수인들을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그들은 지금의 나를 아자토스라 완전히 믿는 듯했다.

단순히 그의 외모나 분위기, 기운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입고 있는 복장과 이 무기 덕분일 터.

[아자토스의 지팡이]

[아자토스가 오랜 시간 사용한 오래된 지팡이, 그의 힘이 농축되어 있다.]

[아자토스의 로브]

[아자토스가 오랜 시간 사용한 오래된 로브, 그의 힘이 농축되어 있다.]

아자토스의 군단과 전투가 끝난 뒤, 심현섭이 챙겨주었던 그것들이었다.

당시 ‘사용 불가’로 어쩌지도 못한 채 가지고만 다녔던 그 장비들을 착용한 것이었다.

도깨비방망이를 이용해 리치의 육체, 즉 아자토스의 모습으로 변한 뒤, 이것들을 확인하자 사용 불가의 제약은 사라져 있었다.

아자토스의 로브를 앙상한 뼈 위에 걸친 채로 아자토스의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지옥의 군주 아자토스였다.

도깨비방망이의 효과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 그리고 아자토스 지팡이와 로브는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마저도 그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였던 것이다.

뚜벅. 뚜벅.

아자토스의 모습을 이용해 나타남과 동시에 정신없이 펼쳐지던 전쟁은 그대로 멈췄다.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하수인들과 도깨비들을 쳐다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전장의 중심을 향해 걸어갔고, 이내 멈춘 곳은 주현의 앞이었다.

리치 아크와 융합체, 그리고 그녀는 한창이던 전투를 멈춘 채 그곳에 멈춰 있었다.

“구, 군주시여.”

그들에게 다가가자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리치 아크.

한쪽 무릎을 꿇은 그는 고개를 들며 마치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달란 듯이 쳐다보았다.

[…….]

하지만 그에겐 설명해 줄 것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들에게 들킬지 아무도 몰랐기에, 말을 아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개를 틀어 그를 슬며시 바라본 뒤,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이미 몇 번이나 마주한 적 있는 아자토스의 행동을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한 것이었고, 그것은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가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반문하지 않은 채 다시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따라와라.]

그 후, 짧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시선을 옮기며 명령했다.

“…….”

그 대상은 칠흑의 다크 나이트.

멀뚱멀뚱 서 있는 주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선뜻 행동하지 않는 그녀였다.

모두 그녀의 행동을 기다리는 듯. 어색한 침묵만이 성채 안을 가득 채웠고.

길어진 침묵 중에 그녀의 손이 움찔하며 검을 움켜쥐는 순간.

“……! 알겠습니다. 군주여.”

그녀가 반쯤 들어 올린 검을 멈추며 고개를 숙였다.

예상대로 행동을 보인 주현에게서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공격하려는 낌새가 보이는 순간, 로브를 살짝 열어 보여준 것이었다.

하얗고 앙상한 해골의 뼈를 보여주려던 것이 아닌, 그 위에 걸치고 있던 원격제어 장치.

그것을 보여주며 내가 누구인지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그 누구도 확인할 수 없게 살짝 열린 로브를 그녀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눈치챈 주현이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터벅. 터벅. 터벅.

2층을 향해 걸어가자 빽빽하게 모여 있던 하수인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홍해를 가르듯 순식간에 길이 열렸고, 천천히 그곳을 지나갔다.

주현 역시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 * *

“…….”

“…….”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도록 명령한 뒤, 올라온 것은 성채의 2층.

이미 수십 번이나 오간 적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2층에 올라가 지옥의 군단과 도깨비들이 들을 수도 볼 수 없이 자리했고, 주현과 마주했다.

“……게 된거냐 깨비.”

“지금 상황이…….”

모습이 보이지 않자 수십의 머릿수를 가진 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당황했을 터.

갑자기 나타난 아자토스의 모습에 혼란스러울 것은 분명했다.

잠시나마 치열했던 전투는 그대로 멈추었고, 그들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하는 것이었다.

“……민혁 씨 맞죠?”

주현과 마주하게 되자, 그녀 역시 주변에 누군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원격제어 장치를 보았음에도 완벽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확신이 들지 않는듯한 모습이었다.

“예, 맞습니다.”

연기하고 있던 아자토스의 목소리를 푼 채, 자연스럽게 대답하자 그녀 역시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계획은 어떻게 하고…… 모습은 또 어째서…….”

항상 과묵한 그녀였지만 지금의 상황과 아자토스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모습을 이해하긴 어려운 모양이었다.

혹여나 1층의 그들에게 들릴까 봐 목소리를 낮추며 묻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망설이던 잠깐의 시간에 그녀가 다시 물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거군요.”

“네, 맞습니다.”

“설마…… 그곳에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 따위는 없었던 건가요?”

조심스럽게 건네온 질문.

하지만 그녀는 대답을 원하는 듯 붉은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방법은 찾았습니다. 이 책에 적힌 스킬을 이용해 돌아갈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아자토스의 연구소에선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로브의 안쪽에서 꺼내는 낡고 오래된 책.

연구소에서 찾은 바로 그 책이었다.

아자토스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유추되는 책의 내용은 분명 인간 세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자토스 그가 발견한 스킬과 사용방법이 함께 기록된 것이었다.

일종의 마법서라고도 볼 수 있는 책이었으며, 그 방법 역시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었기에 따라는 것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나 볼 수 없도록 제약이 걸려 있는 듯했으나, 아자토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그것 역시 통하지 않았다.

“그럼, 지금이라도 당장…….”

“문제가 있습니다.”

주현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책에 적힌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방법.

선행조건이 붙어 있는 스킬의 방법이 문제였던 것이다.

“……어떤 겁니까?”

“천 마리 이상의 하수인의 영혼을 바쳐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

질문에 대답하자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지옥의 군단의 연구소, 아자토스 외에 어떤 이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는 그곳에 있다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은 이 책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이 그림 같은 건…… 문자인가요? 이걸 어떻게 읽을 수…….”

책을 주현에게 넘겨주자,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펼쳐 든 책의 문자를 그녀가 읽을 수 있을 리는 없었고, 빠르게 종이를 넘길 뿐이었다.

온통 읽을 수 없는 문자로 가득 차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고개를 들며 물어온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것보다 책의 마지막 장에 적혀 있는 이 주문. 스킬로 보이는 이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선행조건이 필요하다 적혀 있습니다.”

“그것이 천 마리 이상의 영혼이군요.”

“맞습니다.”

“천 마리 이상의 영혼이라…… 직접 처치해야 하는 겁니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곳에 적힌 내용을 보면…….”

그녀가 본다고 해서 읽을 수는 없겠지만, 해당 내용을 펼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희생될 제물들을 한곳에 모아 주문을 외우면 마법진이 펼쳐진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곳에서 23분의 시간이 지나면 주문이 발동되고 영혼으로 이루어진 통로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자토스가 베슬을 완성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식과 같군요…….”

“…….”

그녀가 말하는 것을 나 역시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책에 적힌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의 선행조건.

그것은 아자토스가 영생을 얻으려 라이프 포스 베슬을 완성하기 위한 방법과 매우 유사했던 것이다.

당시의 그가 주문을 외우자 마법진이 생겨났고, 그 위에 있던 이들의 영혼을 희생해 베슬을 완성시키려 했다.

결과적으로 아자토스는 실패했으나, 그 방식이 같았던 것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우리의 목적을 위해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자토스와 같은 짓을 벌이는 것은 아닐지…….”

“…….”

“이미 수십, 수백의 몬스터를 죽였지만…….”

망설이는 듯한 그녀의 반응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죄책감이나 미안함 그런 감정은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찝찝한 기분.

아자토스는 자신의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려 했다.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 싸웠고, 이겨냈으며 결국 그를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하려는 행위는 그와 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옥의 몬스터들을 희생시켜 그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것이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몬스터들을 쏘고 베어냈음에도 그것은 우리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자토스와 같은 짓을 벌이지 않는다면 마음은 편할 수 있겠으나, 이곳에서 떠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했기에 그녀를 보며 물었다.

“……저는 민혁 씨의 선택에 맡기겠어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주현은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했고, 모든 결정권을 나에게 맡겼다.

그것은 내 선택에 그녀 또한 함께 하겠다는 의미였다.

촤아아악.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주현을 힐끔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 또한 파악한 것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나의 선택은 돌아가는 것.

책을 펼쳐지며 그곳에 적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차원 이동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아자토스의 지팡이를 높게 들어 올리며 외친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책에서 검은 기운이 터지듯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뿜어져 나오는 그 기운은 공중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이게 뭐냐? 깨비!”

“무슨 일이야?”

“이게 대체?”

성채의 1층에 가득 찬 이들은 갑작스러운 그것에 당황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 밑을 확인해보았다.

성채의 바닥에 가득한 검은 선.

책에서 뿜어나온 기운은 성채를 둘러쌀 만큼 거대한 마법진으로 변해 있었다.

[선행조건이 완료되는 순간 스킬이 발동됩니다.]

[남은 시간-23분, 필요한 영혼의 수-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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