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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165화 (165/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165화

아자토스의 연구실에 놓인 각종 문서와 책, 연구의 기록.

여기 어딘가에 적혀 있을 인간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순간.

“도대체 이게 뭔 말이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책이며 문서에 적힌 꼬부랑 글씨들이 전혀 그 뜻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괴팍했던 것이다.

“……이게, 무슨.”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

이곳으로 오기만 한다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연구실의 모든 문서를 뒤져보았지만, 그곳에 쓰여 있는 글씨의 의미는 유추조차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읽을 수 없는 낯선 문자만이 가득했던 것이다.

쿵! 콰광! 쾅!

더군다나 얇은 문을 경계로 밖에선 도깨비들과 언데드들의 전투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출입이 금지되었던 연구실에 본능적으로 발을 들이지 않는 그들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다.

말 그대로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기에 실수로라도 그들이 이곳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구실에 몰래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지금이라도 당장 연구실의 저 얇은 문이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젠장, 주현 씨를 볼 낯이 없어.’

무엇보다 이곳으로 오기로 했던 주현이 걱정이었다.

그녀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이곳으로 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연구실에 도착한다 하여도 그 무엇 하나 발견한 것이 없었다.

“하…….”

나오는 것은 한숨뿐.

지옥의 문자가 따로 있으리란 생각조차 하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바보, 멍청이, 한심한 놈.”

툭.

“뭐야……!”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자책하고 있던 그때.

좁은 틈을 통과하기 위해 엉성하게 묶어났던 방망이가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도깨비방망이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순간,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호…… 혹시?’

순간 떠오른 생각에 도깨비방망이를 들어 올렸다.

도깨비방망이의 변신 효과.

그것은 비단 모습의 변화만을 의미하진 않았다.

도깨비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 나는 분명 그와 동일한 힘과 스피드, 점프력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인간의 신체로는 불가능할 정도의 신체 능력을 이용했던 것이다.

시너지 효과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변신한 대상의 특징 역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새로 변한 도깨비들. 그들도 마찬가지였어.”

몰래 숨어서 지켜봤던 도깨비들 역시 도깨비방망이를 이용해 새로 모습을 변신했고,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이거라면…… 분명히…….”

왠지 모르게 두근대는 마음.

하지 말아야 할 것,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이 방법 말고 떠오르지 않았다.

결심과 동시에 들고 있던 도깨비방망이로 있는 힘껏 머리를 내리쳤다.

펑!!!

변신을 알리는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좁은 연구실 가득 피어오른 연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익숙하지만 낯선 육체, 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양손을 펼쳐 보였다.

‘…….’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하얀 뼈마디.

낡고 오래된 가늘고 긴 언데드의 뼈마디가 적나라하게 보여졌다.

[그립지 않은 모습이군.]

혼잣말을 내뱉자, 들려오는 낮고 어두운 음색.

익숙하지만 거부감이 드는 그의 음색이었다.

피부와 살이 썩고 녹아들어 촉감조차 느낄 수 없는 육체.

뼈밖에 남지 않은 해골의 육체를 천천히 삐걱거리며 방안의 거울을 쳐다보았다.

[아자토스…….]

거울 속에 비춘 해골의 머리.

낯설지 않은 그 모습은 분명 리치 아자토스였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자토스 그 모습을 생각하며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렀고, 모습을 변신시킨 것이었다.

아자토스의 저주로 인해 변했던 해골의 육체.

다시는 그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건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육체를 움직이며 천천히 연구실의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역시.’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아자토스의 육체로 변한다면 그가 사용했던 문자 또한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유추했다.

생각은 들어맞았고, 연구실에 있는 문서와 책, 연구일지에 적혀 있는 문자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생각이 맞았다는 기쁨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물론 피부가 없었기에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이것이구나!]

빠르게, 하지만 정확하게 하나둘 문자들을 읽어나가던 중 하나의 책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책장에 꽂혀 있는 그 책을 꺼내 들었다.

‘차원 이동’

짤막하게 적힌 책의 제목은 관심을 갖기엔 충분했다.

먼지가 가득 쌓인 책의 먼지를 털어내며 책을 펼쳐 들었다.

‘과연!’

천천히 책에 적힌 내용을 읽어내렸다.

아자토스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자들은 균일하진 않았지만 읽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모습이 아자토스였기 때문일까.

내용 역시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책의 중반까지 읽어간 결과.

[찾았다! 확실해! 이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야,]

원했던 목표.

연구실에 와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이 방법을 알기 위해서였다.

속수무책으로 이동‘당해’ 버린 지옥.

땅은 불타오르는 불꽃으로 가득하며 생명이라곤 몬스터밖에 살지 않는 세계.

도깨비와 지옥의 군단이 대립하는 이 지옥을 드디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주현이 도착한다면 곧바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다.

그러기 위해 남아 있는 책의 분량을 더욱 빠른 속도로 읽어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막바지에 이르러 책을 덮어냈을 때.

[……젠장.]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 * *

“깨비. 군주님. 시간이 갈수록 저희가 불리합니다. 깨비.”

“…….”

대답하지 않는 다크 나이트.

주현 역시 지금의 상황은 곤란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도깨비들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고, 그 차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빨리 가야 하는데…….’

하지만 곤란한 이유는 도깨비들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기다리고 있을 민혁 때문.

오도 가도 못하는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그녀는 함부로 이동할 수 없었다.

모든 하수인과 도깨비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고 있었고, 그녀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약속했던 민혁과 만나기 위해서는 연구실로 이동해야 했지만, 이들의 시선을 피해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미 한번 집중된 시선은 그녀가 어떤 수를 쓰더라도 거두어 내기가 불가능했다.

“크랴랴!! 죽어라!! 배신자!!”

캉!! 촤아아아악!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투에 집중하는 것뿐.

자신의 눈앞의 도깨비들의 군주.

다크 나이트를 베기 위해 달려든 둠 나이트의 검을 흘려보낸 그녀는 순식간에 반격했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생명력을 다하는 지옥의 하수인들.

이러한 상황이 전투 내내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었다.

‘이래선 끝이 없어. 어서 빨리 방법을 찾아야…….’

주현 역시 마음은 조급해져갔고, 방법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중.

또각. 또각.

지옥의 군단의 성채 2층에서 누군가 내려오고 있었다.

뼈밖에 없는 육체와 지팡이를 든 해골.

그리고 수많은 하수인을 섞어놓은 듯 역겹기 그지없는 생김새의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깨…… 깨비. 저들은…… 군단장입니다. 깨비!”

“…….”

그들의 정체를 알려준 것은 근처에 있던 도깨비.

홀리기라도 한 듯 그들이 나타나자 일제히 그 기운을 느낀 도깨비들이 그들을 발견했다.

“제5군단장과 제6군단장입니다. 깨비! 융합체와 이리크입니다! 깨비.”

평소 그녀의 성격대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도깨비들 역시 벌써 그런 그녀에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2층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오고 있는 것은 바로 군단장.

지옥의 군단에서 각각 제5군단과 제6군단을 맡고 있는 고위 하수인이였다.

“조, 조심하십쇼 깨비.”

“…….”

“융합체란 놈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리크는 정말 위험합니다. 깨비.”

“……?”

다크 나이트는 주의를 경고하는 도깨비를 보며 모르겠다는 듯 쳐다보았다.

“제6군단 이리크는 아자토스 님이 소환한 그분의 분신입니다! 깨비!”

그 순간 바라본 리치 이리크와 융합체 그리고 주현의 시선이 마주쳤다.

슈우우익.

그리고 그곳에 서 있던 융합체의 모습이 사라졌다.

퉁!

이리크 또한 행동을 시작했다.

자신의 지팡이를 땅에 내리친 것이었다.

“일어나라. 하수인들이여!”

그의 외침과 동시에 성채 안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미 본적이 있는 스킬.

그것은 아자토스의 언데드를 소환하는 그것과 같았다.

‘…….’

신경이 쓰이는 듯 연구실로 이어지는 지하를 살짝 바라본 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언데드 하수인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다시 살아난 언데드들.

이미 목숨을 잃고 사라졌던 둠 나이트들을 포함한 상위 언데드들이 리치 이리크의 명령과 함께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쉬이이익 쾅!!!!!!

“익. 크…….”

그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그녀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올려 막아냈다.

어느 순간 이동한 것인지 순식간에 나타난 융합체.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리크와 함께 있던 그가 주현의 뒤에서 공격을 시도했다.

기습 공격을 막아낸 그녀였지만, 쉽지는 않았다.

융합체의 그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톱을 이용해 내리친 그의 공격을 검으로 막아섰지만, 힘이 부치는 듯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퉁! 퉁!

“전부 죽여라!”

눈앞의 융합체를 막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었으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리치 이리크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하수인들의 몸엔 검은 오오라가 피어올랐고, 난폭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외적인 변화뿐만이 아닌 그들의 힘은 더욱 강하고 거세졌다.

모든 지옥의 하수인들은 이리크의 명령에 따라 도깨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압도했다.

챙!!

주현은 융합체의 손톱을 튕겨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끄아아악!! 깨비!!!”

“깨비!!! 으아아악!!!”

속절없이 당하는 도깨비들.

전장의 승패는 이미 기울어진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그녀라 할지라도 두 명의 군단장을 한 번에 상대하기엔 무리.

어쩔 줄 몰라 하며 방황하던 그녀의 시선이 연구실 쪽에서 멈춘 순간.

쾅!! 쿠쿵 쾅!!!

“……어?!”

그녀의 입에서 외마디가 터져 나왔다.

“구, 군주님이여!!!”

“구…… 군주님이 돌아오셨다!! 깨비!”

연구실의 문이 완전히 폭발하며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아자토스.

지옥의 군단의 군주 아자토스였다.

전장에 있던 모든 하수인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여졌다.

지옥의 군단의 하수인부터 도깨비까지.

군단장들 역시 예외는 없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그를 맞이했다.

[내가 돌아왔다.]

아자토스의 목소리는 성채 안을 가득 메웠다.

낮고 굵으며 음침한 목소리며, 썩어빠진 해골의 외모.

아무리 봐도 주현의 눈에도 그는 틀림없는 아자토스였다.

그녀는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아자토스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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