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64화
주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며 지금의 모습을 살펴보자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몸에 둘려 있는 탄띠와 항상 메고 다니는 배낭과 장비들.
그것을 보고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습은 도깨비였으나, 항상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은 그대로였다.
탄띠의 형태를 하고 있는 원격제어장치부터 피노의 껍질로 만든 목걸이, 배낭을 따로 보관할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항상 착용하고 다녔다.
주현은 그런 모습을 보고 이전에 마주친 순간부터 나의 모습이 바뀐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 하지만. 도깨비한테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
“그럴 분은 아니란 거 알아요.”
“…….”
“이전에도 그렇고 모습이 자주 바뀌니 그러려니 생각했어요.”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는 아자토스와의 전쟁 때 언데드의 모습을 하고 있던 당시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어찌 됐든 눈치 빠른 그녀 덕분에 안전할 수 있었기에 감사를 전했다.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성채를 바라보았다.
“도깨비들이 성채로 진입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이에요. 먼저 들어가세요.”
주현의 시선을 따라 바라본 지옥의 군단의 성채.
그곳을 지키고 있던 버닝 파이크와 골렘 아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지키는 이 없이 뚫려 버린 문을 통해 도깨비들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주현 씨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저는 상황을 보다 알아서 들어갈게요. 같이 행동한다면 들킬 가능성이 높아요.”
넌지시 물어본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몸을 보란 듯이 팔을 펼치며 대답했다.
칠흑의 갑옷을 걸친 다크 나이트.
확실히 그 모습은 너무나도 눈에 띄었기에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어느 순간 쌀쌀해지기 시작한 날씨는 지옥에 밤이 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것은 곧 루핀의 반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기에 연구실에 침입하기에는 최적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연구실로 이동해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를 걱정해 주시는거에요?”
살짝 웃으며 장난치는 그녀.
이제는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걱정은요. 당연히 잘해내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어냈다.
따로 행동하기로한 주현을 뒤로한 채 성채로 향하는 도깨비들의 무리로 뛰어들었다.
물밀 듯 성채로 들어가는 도깨비들에 섞여들여 그렇게 성채의 안으로 이동했다.
* * *
‘역시, 거침없구나.’
성채 안으로 이동하자 역시 이곳에서도 전투가 한창이었다.
이미 수차례 오고 간 지옥의 군단의 성채였기에 이동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그것은 도깨비들 역시 마찬가지.
원래 그들의 군주.
비스트리는 지옥의 군단의 제1군단장이었고, 이들 역시 대부분이 그의 밑에 있던 하수인들었다.
비스트리를 따라 군단을 빠져나와 도깨비 영역을 만들고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었지만, 이곳은 원래 그들의 집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깨비! 이쪽이다!”
단순히 성채를 파악하고 있는 것뿐이 아니라 그들은 이곳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도깨비들은 헤매지 않았고 오랜만에 들어온 지옥의 군단의 성채에 곧바로 적응하며 전투에 임했다.
“잘 왔다. 이곳이 너희의 무덤이 되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전쟁에서의 큰 우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옥의 군단의 하수인.
그것도 성채 안에 자리한 그들의 수준은 밖에 있는 이들과 큰 차이가 있었다.
성채 밖에 있던 하수인들은 대부분 해골 병사, 스켈레톤 높아봐야 데스나이트와 본버닝 정도였으나, 이곳에 있는 군단은 기본적으로 둠 나이트 수준의 하수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쾅!! 쾅! 콰광!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
분명 강해진 상대였지만 도깨비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 역시 지옥의 군단에 속해 있을 당시에는 성채 안에 있을 만큼 강한 하수인에 속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도깨비들의 패배로 돌아갈 것이 분명해.’
도깨비들이 상대하는 적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숫자는 적어졌다.
얼핏 보면 비슷한 상대와 비슷한 조건에서 비등비등하게 싸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차이는 명확히 들어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수준이 같다고 하여도, 도깨비들은 지금껏 꽤 오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약하다고 한들 성채 밖의 하수인들은 수많은 개체수를 이용해 압박했고, 파이크와 아크라는 군단장과의 전투 역시 피해가 막심했다.
전투로 인한 피로와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도깨비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것이고, 비교적 쌩쌩한 지옥의 군단에 유리하게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최대한 빨리 연구실에 진입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지하실로 이동하는 하수인과 도깨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출입이 금지된 장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서인지, 본능적인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누구도 지하에 있는 연구실 쪽으로 이동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출입하긴 어려워 보여.’
그 누구도 지하로 이동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장 연구실로 이동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성채의 문을 통과한 1층에서는 수많은 하수인과 도깨비들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지하로 이동하는 문은 버젓이 있었지만 굳게 닫혀 있었고,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 문을 연다면 누군가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어 보였다.
루핀의 반지를 이용해 은신을 사용한다 해도,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곳으로 가면 될 거야.’
하지만 역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옥의 군단에서 잠시나마 머물던 시절, 지하실 즉 아자토스의 연구실 출입이 불가했다.
군주의 증표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곳을 막고 있던 하수인들은 길을 막아섰던 것이다.
지옥의 군단 모두에게 인정을 받은 진정한 군주가 되지 않는 이상 그곳의 출입은 불가능했고, 그 장소는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곳 역시 막아섰지.’
1층 뒤편에 있는 작은 틈새, 그곳 역시 하수인들이 지키고 서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곳 역시 연구실로 연결된 장소일 거야.’
당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그곳이 정확히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그 틈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결정적으로 그곳을 지키고 있던 하수인들은 그저 지나가던 나를 막아서려 했던 적이 생각났다.
아자토스의 연구실이 아닌 이상 그들이 나를 막을 이유가 없었기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어딜 보고 있는 게냐! 도깨비!!!”
“흡!”
그 순간 가까이 다가온 둠 나이트가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깡-!
반사적으로 도깨비 방망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둠 나이트의 검을 막아냈다.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이곳은 전장이었다.
잠시라도 안심할 수 없는 공간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둠 나이트의 공격이 날아온 것이었다.
단숨에 그의 검을 쳐올리며 반격에 나섰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도깨비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오른손에 들고 있는 도깨비 방망이와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자연스러웠다.
“으랴랴아아앗!!”
기합을 넣으며 연신 방망이를 휘두르자 당황하는 둠 나이트.
빠르게 방망이를 휘두를수록 영혼을 다루는 능력은 더욱 큰 효과를 발휘했다.
방망이를 휘두른 후 뒤이어 연계되는 공격은 변칙적이고 빠르게 둠 나이트를 강타했다.
아무리 둠 나이트라 할지라도 연속되는 공격엔 맥을 못 추렸다.
공격을 막아내는 것조차 버거운 듯 그의 검은 허둥대기 시작했고, 빈틈을 발견한 순간,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며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크아아악!!! 원통하다!”
연속되는 공격에 머리를 얻어맞은 둠 나이트는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비명을 내지르며 없어진 둠 나이트를 확인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정신없이 이어지는 전투들.
‘바로 이동해야 해. 이곳에 있다간 끝이 없어.’
도깨비들은 계속해서 성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지옥의 하수인들 역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는 지금 이곳에서 전투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간다!”
도깨비 방망이를 움켜쥐고 바로 전장을 뚫고 나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방망이를 휘두르며 지옥의 하수인들을 쳐내며 점점 외진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후우,후우, 이곳을 막고 있는 녀석은 없는 모양이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작은 틈을 확인했다.
성채의 외진 곳.
가까운 곳에서 계속되는 전투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직 깊게 침투하지 못한 도깨비들로 인해 이곳은 비교적 한산했다.
하지만 전투가 계속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역시 하수인들로 가득 메워질 것이 분명했다.
지금이 둘도 없는 기회였다.
‘구멍이 생각보다 작아. 지금의 몸으론 들어가기 어려워 보여.’
눈대중으로 확인해도 생각보다 작은 구멍.
아자토스의 실험실로 연결된 것이라 유추되는 구멍은 지금의 도깨비의 모습으로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변신 해제!”
펑!
언제 이곳에 하수인이나 도깨비가 나타날지 몰랐기에 빠르게 행동했다.
도깨비의 모습을 해제하며 곧바로 루핀의 반지를 착용한 것이었다.
지옥의 밤이 된 지는 오래였기에 반지를 착용함과 동시에 몸이 투명해지며 기척을 감췄다.
주위를 다시 한번 빠르게 훑어보며 조심스럽게 그 틈새의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윽 무슨 화학품 같은 냄새가.’
생각보다 더 적은 틈새의 안.
좁디좁은 통로로 인해 겨우 몸이 끼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안은 알 수 없는 화학품의 냄새로 가득했다.
‘아자토스가 실험이라도 한 걸까?’
일단 그곳이 불리고 있는 장소부터가 연구실이었기에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는 생각이었다.
‘아자토스의 실험에 의한 폭발로 인해 생긴 통로’ 정도로 생각하며 그곳을 포복으로 기어갔다.
* * *
“후…… 콜록, 콜록.”
얼마나 포복했을까.
빛조차 들지 않는 좁은 틈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기침이 터져 나왔다.
“일단, 반지부터 빼고…….”
누군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기에 루핀의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며 은신을 해제했다.
“이곳이 연구실이 맞나……?”
그리고 숨을 고르며 천천히 그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단출한 장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방안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언어들로 가득한 수십, 수백 권의 책들이 책장 속에 가득했다.
실험실이라 부르기엔 서재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위치를 생각해 봤을 땐 이곳이 지하의 연구실이라 부르는 장소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인간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이 여기 어딘가에 있단 말이지…….”
조심스럽게 방안을 둘러보던 중 펼쳐진 책이 눈길을 끌었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