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63화
다크 나이트와 파이크가 맞붙은 사이, 골렘 역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신자 녀석들.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테다.”
특유의 느리고 거대한 소리가 전장 전체를 가득 채웠다.
골렘 아크의 거대한 팔이 땅을 내리칠 때마다 도깨비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져 나갔다.
‘젠장. 하필 지금.’
얼마 남지 않은 연구실과의 거리.
성채의 문만 통과하게 된다면 수월하게 연구실까지 이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겄만.
좋지 않은 타이밍에 나타난 그들이었다.
더욱더 난잡해진 전장은 어지럽게 흘러갔다.
다크 나이트 주현과 싸우고 있는 파이크와 성채를 굳건히 막고 있는 골렘 아크.
단지 두 마리에 불과했지만, 군단장의 등장은 지옥의 군단에게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도깨비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던 흐름은 급속도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크캬캬캬캬!! 제법이구나! 네 상대는 나다!”
“…….”
캉! 캉!
파이크는 자신을 상대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가 마음에 든 듯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주현 역시 이에 질세라 파이크의 모든 공격을 받아치며 열을 올렸다.
막상막하의 대결.
그 누구도 유리하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못 지나간다!”
골렘 아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거대하고 딴딴한 몸집을 이용해 성채 앞을 가로막아 버린 그는 연신 도깨비들을 향해 거대한 주먹을 날려댔다.
비단 그것은 도깨비들뿐만 아니라 지옥의 하수인들에게도 피해를 주었지만, 그것을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도깨비들은 반격하기는커녕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피하기에 급급했다.
‘나서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도깨비들 중 그 누구도 나서는 이 없었다.
파이크야 주현이 막고 있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리 그녀라고 한들 파이크와 상대하며 다른 도깨비들까지 신경을 쓰기는 어려워 보였다.
문제는 골렘 아크.
속절없이 당하는 도깨비들을 보며 이대로 뒤에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주현이 승리한다고 하여도 남아 있는 도깨비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지옥의 군단과 도깨비의 전쟁.
그중 도깨비가 승리하길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승패가 난다면 곤란해질 것은 분명했다.
지금 전장이 혼란할 때 아자토스의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도깨비들이 성채에 진입하지도 못한 채 전쟁의 승리가 지옥의 군단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앞으로 계획을 실행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냐. 깨비.”
“후, 후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깨비.”
더군다나 겁을 먹은 도깨비들.
온 힘을 쥐어짜 방망이를 휘둘러도 흠집을 내는 게 고작인 골렘 아크에게 겁을 먹은 듯 보였다.
그들은 내게 다가와 어떻게 할지를 물었고, 이미 전의를 상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퇴각한다면, 다시는 이런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도깨비들의 피해가 컸기에, 퇴각해 다시 정비를 한다 하여도 가망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전쟁의 승리는 지옥의 군단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했고,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입지는 더욱 거대해질 터.
운이 좋아 내가 그들의 군주가 될 수 있다고 하여도.
지금 내가 모습을 하고 있는 비스트리처럼, 나에게 반기를 가진 이들은 분명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른 시일 안에 이들처럼 반기를 들며 역모를 꿈꿀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상황은 꼬여만 갈 것이 분명했기에 지금, 오늘 모든 상황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내가 상대하겠다. 깨비.”
“저, 정말이냐? 깨비?”
날뛰고 있는 골렘을 보며 위축된 도깨비들을 쭉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깨비방망이를 손에 움켜쥐며 한 발자국 나서자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지는 도깨비들.
아무리 생각해도 대적할 방법이 없는 골렘을 상대하겠다며 나서자 나온 반응이었다.
“나만 믿어라. 깨비!!”
지금 돌아간다면 더 이상의 기회를 장담할 순 없다.
결심과 동시에 성채의 앞을 굳건히 막고 있는 골렘을 향해 뛰쳐나갔다.
“으아아아아얏!!!”
쾅! 쿠궁쿵!!
골렘 아크가 도깨비들을 향해 다시 한번 주먹을 내뻗은 순간.
높게 뛰어올라 그의 바위 같은 손 위로 올라탔다.
타다다다닷.
그리고 그대로 그의 팔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감히! 도깨비 놈이!!”
그제야 자신의 팔에 올라탄 나를 발견한 듯 소리치는 녀석.
하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골렘의 거대한 몸집은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크나큰 약점 또한 존재했다.
강력하고 방어력이 높은 특징과는 반대로 모든 동작이 느리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팔에 올라탄 나를 떨어뜨리려는 듯 몸과 팔을 흔들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그 위에 올라탄 이상 중심을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더 빠르게 속도를 내며 그 위로 올라갔고, 그의 머리까지 도착한 순간.
“이거나 먹어라!!”
쿵!!! 쿠쿵!!
도깨비방망이를 크게 휘두르며 골렘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거대한 그의 머리가 흔들리고 자잘한 돌멩이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야얏!!”
끝이 아니었다.
영혼을 다루는 능력으로 인해 방망이가 휘두른 직후 더욱더 큰 공격이 이어진 것이었다.
골렘 아크는 어찌 손쓰지도 못한 채, 바둥거릴 뿐.
속절없이 모든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도깨비들아 모두 공격을 시작해라!!! 깨비”
쉬지 않고 골렘의 머리에 도깨비방망이를 내리쳤다.
하지만 흔들리는 바위처럼 움직일 뿐.
거대한 골렘은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골렘의 위에 올라서 내려다보자 꽤나 높은 위치.
전장의 상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쳐다보자 꽤 많은 수의 도깨비들이 그곳에 모여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 깨비! 공격을 시작해라!!!”
“와아아아아아!! 깨비! 깨비!!”
그들을 보며 소리치자, 그들은 그제야 자신감을 되찾은 듯 포효했고, 일제히 골렘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감히! 감히!! 도깨비 따위가!!!”
자신감을 되찾은 도깨비들은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때려도 꿈쩍하지 않는 골렘이었지만, 한 번 때려서 안 되면 두 번.
두 번 때려서 안 되면 세 번.
연속적으로 도깨비 특유의 막강한 힘으로 방망이를 내리친 것이었다.
나 역시 골렘의 머리를 쉬지 않고 내리쳤고, 이쯤 되자 골렘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아무리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골렘이 무적의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속되는 도깨비들의 공격에 골렘의 입에선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더욱더 달려드려 공격을 이어갔고, 아크는 도깨비들을 털어내려는 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쿵!! 콰광!! 쿵!!! 쿵!!
“피해! 떨어지는 돌을 피해라!! 깨비!”
쉴 새 없이 머리를 얻어맞아서일까.
더 이상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듯.
골렘이 자신의 거대한 몸을 흔들기 시작하자 주위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
성채와 부딪혀 일부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지옥의 하수인과 도깨비 모두 그에게 부딪혀 날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쩌저저저적.
그 순간에도 흔들리는 골렘의 머리 옆에 착 달라붙어 중심을 잡았고.
또다시 방망이를 내리찍는 순간 그의 머리에 금이 생겨났다.
‘됐다!’
조그만 틈새였지만, 골렘의 머리에 금이 생기는 순간, 모든 공격을 그곳에 집중시켰다.
쾅! 쿠쿵!!!
쾅! 쿠쿠쿠쿵!!!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완력을 쏟아부으며 연속적으로 골렘의 머리에 생겨난 틈새를 공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과는 나타났다.
펑!!!
[보스 몬스터-골렘 아크를 처치했습니다.]
[퍼스트 킬 보상으로 스킬-골렘 소환을 배웠습니다.]
골렘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거대한 바위가 폭발하듯 돌덩이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홀로그램.
지옥의 군단에서 제4군단장인 골렘 아크를 쓰러뜨렸다는 소식과 함께, 퍼스트 킬의 보상을 받게 된 것이었다.
골렘 소환.
그것은 분명 낯설지 않은 스킬이었다.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 몬스터 중, 네크로맨서 본 버닝이 사용한 적이 있는 소환 스킬이었던 것이다.
주변의 거대한 돌덩이들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공격하던 그를 떠올렸다.
‘당장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도깨비.
당장 사용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였다.
골렘 소환 역시 네크로맨서의 스킬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을 풀지 않으면 당장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지금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태였다.
도깨비는 물론이고, 지옥의 군단 하수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기에 자칫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낭패를 볼 것이 분명했다.
당장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보다…… 어…… 어!!’
쿠쿠쿵…… 쿵! 쿵! 쿵!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은 지금의 상황이었다.
머리를 터뜨리며 골렘 아크를 처치했지만, 지금의 위치는 그의 어깨 부분에 있었다.
머리를 잃은 골렘의 육체는 그저 커다란 돌덩이에 불과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커다란 것이 아닌, 건물 수준의 돌덩이.
지배력을 잃은 돌덩이를 하나둘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전부 이곳에서 피해라!! 깨비!”
승리를 기뻐하는 도깨비들을 보며 심각하게 소리치자 그들 역시 상황을 파악한 듯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거대한 돌덩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었고, 그것은 나에도 마찬가지였다.
골렘의 어깨에 올라탄 나의 몸도 속절없이 돌덩이들과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악!!! 깨비!!!”
어쩔 줄 모르게 떨어지는 순간, 저 앞에서 검은 실루엣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슉- 슉- 슉.
익숙한 모습의 실루엣.
공중의 돌덩이를 디딤돌로 삼아가며 다가온 실루엣은 나를 붙잡았다.
* * *
“고, 고맙다. 깨비.”
“민혁 씨, 지금 바로 연구실로 이동하세요. 저도 뒤따라 가겠습니다.”
돌의 비가 내리는 그곳을 피해 검은 실루엣은 나를 안전하게 땅으로 내려줬다.
검은 실루엣의 정체는 주현, 데스 나이트였다.
골렘 아크를 상대하는 동안 파이크를 제압한 그녀는 곤경에 빠진 나를 구해준 것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만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나였다.
지금의 모습을 빠르게 살펴봤지만, 의심의 여지 없는 도깨비.
그 누구에게도 정체를 말한 적이 없었기에 그녀가 어떻게 나를 파악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깨비들조차 완벽히 속아 넘어간 변신이었건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어떻게 정체를 파악했는지 묻자, 그녀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훗, 그거야 간단하죠. 그것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