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59화
“깨, 깨비?”
어린 도깨비 역시 당황한 듯 그대로 얼어버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착용하고 있는 원격제어장치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비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익숙한 장비들.
루핀의 반지부터 펜던트까지, 도깨비들에게 빼앗긴 내 물건들이 어린 도깨비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이다.
“……그, 그거 내 건데. 돌려줄래?”
잠시 공격을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어린 도깨비의 표정은 순수했다.
공격의 의사는 보이지 않았기에 조심스레 손을 뻗으며 물었다.
“……내 거다. 깨비!”
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랭한 반응.
마치 소중한 물건이라도 대하듯 자신의 품속에 움켜쥐며 몸을 돌아세웠다.
“…….”
내 장비들을 자신의 것이라 우기는 어린 도깨비의 행태에 황당함이 몰려들었으나 한편으론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깨비의 특징이나 강한 정도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힘을 발휘할 수 없는 지금 도깨비를 상대하는 것이 꺼려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조그만 도깨비는 영락없는 어린애에 불과했다.
살살 달래준다면 전투를 하지 않고 어렵지 않게 장비를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꼬마야. 그거 돌려줄래? 사정이 있어서 빼앗긴 거야. 원래 내가 주인이란다.”
눈치를 보는 어린 도깨비에게 다가가 자세를 낮추며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다시 말을 걸었다.
효과가 있는 것인지 고민하는 녀석.
그때 어린 도깨비가 냄새를 맡는 듯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킁, 킁. 어! 언데드 냄새!”
“으, 응?”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며 내 몸의 냄새를 맡아봤지만 어떤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번에도 그랬지. 지옥의 군단의 냄새가 난다고. 도깨비들은 그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의 반응은 다른 도깨비들도 보인 적이 있었다.
주현에게 당하고 끌려가던 그때 그들 역시 나에게 지옥의 군단의 냄새가 난다고 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지금 전쟁이 일어난 것이기도 했기에 잊을 수 없었다.
어린 도깨비가 불쑥 꺼낸 말에 대답하기도 전.
뿅.
아무것도 없던 도깨비의 손에 방망이가 생겨났다.
“네가 지옥의 군단에서 보냈다는 멍청한 스파이구나? 깨비.”
“……스파이?”
“그래, 우리 도깨비 군주님에게 바로 걸렸다지? 깨비.”
“…….”
“이곳에 있다는 건 감옥을 탈출한 거구나? 깨비. 군주님께서 아량을 베풀었는데 은혜도 모르다니 깨비. 얌전히 죽을 날이나 기다리고 있었어야지 깨비.”
“……너 어린아이가?”
“어린아이? 깨비. 내 나이는 천 살이 넘었다. 깨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그만 도깨비는 들고 있던 방망이로 스스로를 있는 힘껏 내려쳤다.
“무…… 무슨!”
“도깨비 성이 비었을 때 한탕하려 했더니, 더 큰 복이 제 발로 굴러들어왔구나! 깨비. 깨비.”
그 순간 도깨비의 몸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몸집의 도깨비.
나보다도 두 배는 거대한 파란 도깨비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하하하. 깨비. 놀란 모양이구나. 지옥의 하수인!! 깨비!”
거칠게 웃으며 내려다보는 도깨비의 말 그대로였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
조그맣던 도깨비는 거대한 모습과 더불어 얼굴마저 흉악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성격마저도 완전히 바뀌어버린 듯한 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스파이가 도깨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오다니. 깨비. 우리 도깨비들은 이 도깨비방망이가 있다면 모습 따위 얼마든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깨비!”
“이게 진짜 모습이란 말이냐!”
“맞다. 깨비! 공물을 훔칠까 해서 들키지 않도록 잠시 모습을 바꿨던 것뿐이다. 깨비!”
자신만만하게 자랑이라도 하듯 외쳐대는 도깨비의 말을 믿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 저번의 도깨비들도 거대한 새의 모습으로 변했었지…….’
이전에 몰래 확인했던 도깨비들 역시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도깨비.
그는 다른 도깨비들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군주의 공물을 훔치려 했던 도둑 도깨비였다.
공물을 훔치기 위해 이곳에 몰래 숨어들었고, 들키지 않기 위해 작고 어린 도깨비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런 상태에서 나와 마주쳤고, 지금의 상황이 된 것으로 보였다.
“젠장. 운도 지지리도 없군.”
“그래, 네 말이 맞다. 깨비. 지금 이곳에서 너를 죽여 데려가면, 나는 오히려 더 큰 이득을 얻을 거다. 깨비. 깨비.”
“이봐, 어차피 너는 공물을 훔쳐가는 게 목적 아니냐? 네가 가지고 있는 그것들만 돌려줘. 그럼 나도 조용히 사라질게.”
당장에라도 전투가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눈앞의 도깨비를 떠보았다.
“하하하, 어림 없는 소리. 네가 한번 이곳을 둘러봐. 쓸모없는 것들뿐이라고. 하지만 네놈을 데려간다면 더 큰 보상, 군단의 자리까지 얻을 수 있을 테지. 깨비, 깨비.”
하지만 녀석도 바보는 아닌 듯했다.
지금의 나는 도깨비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을 몰래 습격했다 잡힌 스파이였다.
감옥에 붙잡혀 있던 내가 그곳을 탈출했고, 전쟁이 일어남과 동시에 도깨비의 영역은 빈집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도깨비가 나를 잡고 이 소식을 알린다면, 그는 큰공을 세운 게 될 것임은 자명했다.
도깨비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고, 보내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어 보였다.
철컥.
‘어쩔 수 없구만.’
어차피 이곳은 도깨비들의 영역이었기에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다른 뾰족한 수도 보이지 않았기에 총기를 장전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도깨비의 눈빛 역시 달라졌고, 매섭게 노려보며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크랴랴랴!!”
총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 먼저 행동한 것은 도깨비였다.
도깨비가 들고 있던 방망이를 양손으로 있는 힘껏 움켜쥐고 나를 향해 휘두른 것이었다.
“이 정도쯤이야!”
분명 파괴력 있는 공격으로 보였지만, 그 동작은 너무나도 컸다.
수많은 전투 경험이 쌓인 나에게 그 정도 공격을 피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고, 순식간에 뒤로 물러서며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순간.
“으, 으아악!! 이…… 무슨?”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분명 도깨비가 내려친 방망이를 피했고, 그의 공격은 땅을 때렸다.
하지만 무언가 나의 머리를 내려쳤고, 그 고통이 확실히 느껴진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격을 피했음에도 공격을 맞았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도깨비의 공격은 이어졌다.
“크캬캬캬캬, 당황스러운가?”
다시 한번 이어진 공격에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려 회피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상황은 같았다.
도깨비방망이를 피했지만 충격이 온 것이었다.
‘방금 뭐였지? 그건…….’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피하는 순간에도 방망이를 휘두르는 도깨비에게서 시선을 놓치지 않았고, 그 순간 무언가 발견한 것이다.
분명 그의 공격을 회피했고 방망이는 다른 곳을 내리찍었으나, 그 주위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보였다.
“귀……신? 영혼?”
무어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방망이에서 뿜어져 나온 불투명한 실루엣.
도깨비의 방망이가 내려친 다음 그 실루엣의 공격이 더 크고 넓은 범위로 이어진 것이었다.
“크캬캬캬캬. 발견한 모양이군. 깨비.”
“무슨 장난을 치는 것이냐!”
“장난? 깨비. 깨비. 웃기지도 않는군. 네놈이 감히 비트레이 형님과 혈육인 나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깨비.”
“……? 비트레이와 혈육이라고?”
그때 눈앞에 있는 도깨비가 꺼낸 말은 의외였다.
아자토스와 마찬가지로 지옥에서 사라진 자이자, 도깨비들의 군주였던 자.
그와 혈육이라는 도깨비의 말은 관심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비트레이는 연구실에 가기도 전에 사라졌다고 했지. 아자토스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변하며 사라진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한번 떠볼까?’
모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다.
혹시 같은 혈육이라면 그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고, 그렇지 않더라도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손해 될 건 없었기에 넌지시 물었다.
“아, 자네가 비트레이 님의 혈육이었군. 나 역시 비트레이 님의 밑에 있었네.”
“……?”
들고 있던 총기의 총구를 내리며 반갑다는 듯 말을 걸어보았다.
도깨비는 잠시 움찔하며 눈을 깜빡거렸고, 이내 고함쳤다.
“웃기지 마라! 깨비! 지난 천 년 동안 나는 비트레이 형님의 곁에 있었다. 네놈 따위 본 적도 없어! 깨비!”
“그야 그렇겠지. 나는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하지 않았으니까. 보다시피 나는 스파이거든.”
“……스파이?”
흥분하는 도깨비를 보며 당황하지 않고 바로 말을 받아쳤다.
그러자 다시 한번 움찔하는 녀석.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자세를 고쳐잡으며 물었다.
“저, 정말, 네가 비트레이 형님의 부하란 말이냐? 깨비?”
‘역시 생각보다 멍청하군.’
돌아온 질문에 속으로 웃음이 피어났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 혈육이 있다는 말이 진짜였군. 나는 도깨비의 영역에 쳐들어온게 아니야. 너를 찾기 위해 온 거지. 생각해 봐. 내가 와서 도깨비들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는가. 나는 너를 찾고 있었을 뿐이야. 비트레이 님의 명령으로.”
“뭐, 뭣!! 비트레이 형님의 명령? 그럼 비트레이 형님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냐?? 깨비!”
생각하는 대로 지껄인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완전히 속아넘어간 녀석은 방망이도 내려놓으며 놀랬고, 가까이 다가왔다.
“어디, 어디에 계시냐? 깨비. 우리를 내버려 둔 채 비트레이 형님은 어디로 간 것이냐. 깨비!”
“그, 그건. 말해줄 수 없다.”
“말해라! 깨비! 내가 직접 형님과 만나야겠다. 깨비!”
단숨에 다가온 녀석은 거대한 양손으로 내 몸을 붙잡고 흔들었다.
엄청난 완력에 놀라기도 잠시, 흥분한 그에게 소리쳤다.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다. 지금은 사정상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주, 중요한 일?”
도깨비는 그제야 행동을 멈추며 나를 내려주었다.
“무, 물론, 무슨 일인지도 말해줄 수 없다. 너에게 말을 해서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원하진 않겠지?”
“이해한다. 깨비.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깨비.”
다시 온순해진 녀석을 바라보며 작전이 완전히 먹혀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완전히 속아넘어간 녀석은 정말로 내가 비트레이의 부하인 것으로 믿는 듯했다.
이쯤 되면 괜찮다는 생각에 넌지시 진짜 목적을 물었다.
“비트레이 님이 사라진 그때를 기억하나?”
“사라진 날? 깨비? 당연히 기억한다. 깨비. 나는 그저 영혼을 부린 것이라 생각했다. 깨비.”
“영혼을 부려?”
“비트레이 님의 능력말이다. 귀신과 영혼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그 능력. 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