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58화
“전쟁을 선포했다구요?”
“네. 도깨비들이 지옥의 군단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어요.”
“……혹시. 저 때문에?”
“…….”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기도 잠시, 주현을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시선을 피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긍정의 의미.
“제가 지옥의 군단에서 온 것을 눈치챈 거군요.”
“네. 저는 막을 힘이 없었어요. 분노한 도깨비 참모들이 순식간에 도깨비들을 모집해 떠나 버렸어요.”
“……제가 빌미를 제공한 모양이군요.”
“…….”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갑작스러운 공격임에는 분명했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명분을 준 꼴이야.’
도깨비들에게는 지금이야말로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도깨비들에게 지옥의 군단은 적이 확실했다.
서로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언제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터.
비트레이 또한 사라지기 전까지 지옥의 군단의 연구실에 들어가기 위해 지옥의 군단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이후, 도깨비들은 모든 목표가 사라졌다.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비트레이의 소식은 지옥의 군단에게까지 알려지진 않은 모양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도깨비들에게 위기라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 나타난 것이 군주의 증표를 가진 주현이었을 것이고, 마침 지옥의 군단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내가 그들에게 들통났다.
그로 인해 도깨비들이 기회를 살려 바로 전쟁을 시작한 것이었다.
‘주현 역시 완전한 군주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야.’
그녀 역시 도깨비 참모들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상황을 모르지는 않아 보였다.
내가 누군지 알았기에 그녀는 도깨비들을 막으려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도깨비 참모들이 그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상황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표면상으로 군주의 증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군단의 인정을 완전히 받지는 못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네, 동의해요.”
전쟁이 일어날 정도의 사이였기에, 주현과 내가 함께 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녀와 내가 합의를 하며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을 때, 도깨비와 지옥의 군단의 하수인들이 따라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 진정한 군주로 대접받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더 큰 반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 것이다.
주현 역시 내 생각과 일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주현 씨는 도깨비들 편에 서 있으세요. 저는 지옥의 군단 내에 있는 연구실로 바로 향하겠습니다.”
“어쩌실 생각이에요?”
“차라리 잘된 상황일지 몰라요. 혼란을 틈타, 연구실에 잠입해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내야죠.”
“……알겠어요.”
잠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졌지만, 결국 바뀐 것은 없었다.
주현과 나는 결국 이곳, 즉 지옥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도깨비들과 하수인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며 어느 쪽이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연구실에 있다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만 찾게 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당 주현과 함께 행동할 수 없었기에, 그녀에게는 도깨비들과 함께 전쟁에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그녀가 도깨비들과 함께 지옥의 군단의 성채로 들어온다면 혼란을 틈타 연구실에 들어오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지금의 전쟁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바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 끌어서 좋은 건 없으니.”
“네, 민혁 씨가 빼앗긴 장비들은 2층 오른쪽 끝방으로 가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가져다 주면 좋겠지만…….”
“아니요. 그랬다간 오히려 의심을 받을지 몰라요.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네. 저도 최대한 그곳으로 지나다니는 도깨비들을 모아볼게요.”
“좋습니다. 그럼 다음은 지옥의 군단 내에 있는 성채에서 보도록 하죠.”
“네!”
계획이 정해지자, 우리는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현은 자신의 머리에 칠흑 같은 다크 나이트의 헬맷을 집어넣었다.
영락없는 언데드 기사의 모습을 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감옥을 빠져나갔다.
* * *
“후…… 그럼 나도 시작해 볼까?”
앞으로 해야 할 상황들을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네모난 무언가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보 확인!”
[도깨비 영약]
[도깨비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든 것으로 지옥의 재료를 가지고 제작한 것이다. 먹는 순간 모든 상처가 회복된다.]
“상처를 회복하는 물약과 일맥상통한 건가…….”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도깨비 영약은 네모난 모양으로 빗어져 꽤나 먹음직스러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지옥에 들어온 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지에 그렇게 느낀것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도깨비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것을 알고 있던 주현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도깨비들과 꽤나 잘 지내고 있던 것 같기는 하던데…….’
도깨비 영약 역시 군주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도깨비들이 자발적으로 건넨 것이라 했다.
주현은 살갑거나 다정한 표현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따랐다.
무뚝뚝해서 겉으포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그녀였으나 사람을 이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비단 사람뿐만이 아닌 도깨비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자세하게 살펴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없는 곳에서도 도깨비들은 그녀를 칭찬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에 그들이 칭하는 군주가 주현인 것은 몰랐으나, 분명 도깨비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군주를 좋아했다.
“……빨리 지옥을 나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
그녀가 도깨비들에게 인정받는 상황이 마냥 좋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결국 떠나야 했고, 그들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했다.
자칫 도깨비들과 주현이 정이라도 들어버린다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상황도 없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지옥을 빠져나가야 했고, 돌아가서 해결해야 할 일도 산더미처럼 밀려 있었다.
“먹어볼까? 우걱, 우걱. 으윽. 우욱. 흡”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도깨비 영약을 입안으로 한입에 털어넣었다.
네모난 떡 같은 모양과는 반대로 씹을수록 입안 가득 퍼지는 쓰고 역한 맛에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무슨 맛이…… 어?”
억지로 도깨비 영약을 밀어넣으며 불평을 쏟아내려 하던 그때.
온몸에 있던 자잘한 상처들이 순식간에 회복되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보이는 것뿐만이 아닌 고통들이 사라지며 온몸이 편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효과는…… 확실하네.”
그 맛은 최악이었으나 확실히 회복되는 효과만큼은 앞서 경험한 물약들보다 강렬했다.
몸이 회복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고에서 새로운 총기를 꺼내 들었다.
“2층에 오른쪽 끝방으로 가면 된다 했지.”
지금 가야 할 장소는 도깨비 성의 2층.
빼앗긴 장비들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중요한 물건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루핀의 반지가 없으면 군단의 연구실에 들어가는 데 제약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도깨비들과 지옥의 군단이 전쟁을 벌이는 사이 은신을 이용해 아무도 모르게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임이 틀림없었던 것이다.
“우선, 감옥을 지키고 있는 도깨비가 있나 볼까?”
주현이 도깨비들에게 명령해 최대한 그들을 모집시킨다곤 하였으나, 모든 도깨비를 컨트롤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분명 남아 있는 녀석들이 있을것고, 2층까지 가는 동안 도깨비를 만나 잡히게 된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게 분명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끼리리리릭. 철컥.
‘소음기는 오랜만인데?’
들고 있던 K2의 총구에 소음기를 장착하며 장전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곤 총기뿐.
원격제어 장치는 빼앗겼고, 언데드 하수인을 소환하자니 너무 눈에 띄게 될 것이 염려되었다.
그나마 총기로 인한 소음이라도 줄이기 위해 소음기를 장착한 것이었다.
준비가 완료되자 곧바로 밖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감옥의 앞에서 지키고 있을지 모르는 도깨비를 경계하며 최대한 조심스레 이동했고,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살며시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주현이 데리고 갔나 보군.’
다행인지 문밖에서 지키고 있는 도깨비는 없었다.
안심하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며 이동을 시작했다.
“……!”
“깨비! 전쟁이다! 깨비!”
“군주께서 병력을 모집하셨다. 깨비! 어서 모여라 깨비!”
조심스럽게 이동하던 중 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재빨리 자세를 낮췄다.
살며시 고개를 들어 확인자, 분주히 이동하는 도깨들의 모습.
각자의 손에 각양각색의 방망이를 들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 도깨비들이 성의 반대편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주현이 도깨비들을 모으고 있나 보구나.’
주현이 벌써 행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도깨비와 지옥의 군단의 전쟁에 자신 역시 나서서 참여하기로 뜻을 보이고, 그에 따른 병력을 소집한 것이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함인지, 도깨비 성과 거리가 있는 곳으로 그들을 소집했는지, 상당수의 도깨비들이 성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지금이다.’
도깨비들이 떠나는 사이, 텅 빈 복도를 살피며 빠르게 지나갔다.
복도의 중앙에 이어진 계단으로 이동해 2층으로 올라와 오른쪽 방을 향해 이동했다.
“…….”
다행히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곧장 방 앞으로 도착한 것이었다.
하지만 굳게 닫혀 있는 오른쪽 끝 방의 문.
혹시 그 안에 누군가 있을지 몰랐기에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다.
끼이익.
잠겨 있지는 않은 듯 힘을 주자 손잡이가 돌아갔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문을 열어 들어갔다.
‘공물을 저장해두는 방인가?’
꽤 넓은 방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무수한 양의 잡동산이 들이었다.
도깨비들이 주현에게 받치던 공물과 같아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아무도 이곳은 공물을 저장해 두는 방인 것도 보였고, 이곳 어딘가에 내 장비 역시 모아둔 것이었다.
‘어딘가에 있을 거야, 빨리 찾아야 해.’
생각보다 거대한 방에 찾기가 쉽지는 않아보였다.
하지만 누군가 오기전에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고, 방 안을 샅샅이 뒤져보던 순간.
“……어?”
“깨비?”
도깨비와 눈이 마주쳤다.
작은 몸집에 아직 성채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도깨비.
“그, 그거…….”
그 도깨비가 입고 있는 것은 분명 탄띠 모양의 원격제어장치였다.
도깨비 역시 나를 발견하곤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