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57화
“공격한 건 죄송해요.”
갑작스러운 주현의 사과.
그것은 도깨비들이 공물을 받치고 있던 그때, 은신 상태였던 나를 공격한 것을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분명 은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어서요.”
“단순히 감이었군요…….”
“……네.”
기척과 모습을 완전히 숨겼음에도 위화감을 느껴 공격을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역시, 보통은 아니구나.’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지금껏 그녀의 강함을 경험해 보았기에 수긍할 수 있었다.
“앞으로 계획은 있습니까?”
“계획이요?”
“……평생 도깨비들의 군주로 살 건 아니죠?”
어디 됐건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옥에 들어온 후 줄곧 모든 목표는 주현을 만나는 것.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만나게 되었고, 남은 것은 결국 지옥을 나가는 것이었기에 계획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그럼요. 다시 돌아가야 해요.”
“혹시, 방법을 아시는 건가요?”
“……아뇨.”
“…….”
주현의 대답에 흥분하며 물었지만 돌아온 건 힘없는 목소리였다.
아무리 그녀라고 한들, 지옥에서 돌아가는 방법까지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어찌 됐든, 아자토스도 비트레이도 이곳에서 나간 것은 확실해 보이니.”
“……사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 지옥에서 빠져나간 이들이 있었으니, 우리 또한 이곳을 나갈 수 있으리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안심하라는 의미에서 주현에게 말하자 그녀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추측되는 게 없지는 않아요.”
“……! 네? 무슨 말이에요?”
“돌아가는 방법이요.”
“……!”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 그녀에게 집중하자.
돌아온 것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자 설명을 이어갔다.
“도깨비 참모에게 흘러가듯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도깨비 참모요?”
아무래도 그녀가 이야기하는 참모란, 지옥의 군단에서 군단장 같은 역할을 하는 도깨비를 말하는 듯하였다.
일반 도깨비들과는 달리 좀더 강하고 계급이 높은 위치에 있는 도깨비일터.
이해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힐금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음 비트레이는 지옥의 군단을 배신했다고 해요. 그건 알고 계시죠?”
“네,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비트레이.
그는 아자토스가 지옥의 군단에 있을 무렵, 제1군단장의 자리에 올라간 군단장이라 했다.
아자토스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가 지옥의 군단을 뒤로한 채 자신의 하수인인 도깨비들을 데리고 떠나 새로운 집단을 이루었다고 들었다.
“지옥의 군단에서는 배신이라 여겼지만, 도깨비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배신한 것이 아니라고 해요.”
“배신이 아니다?”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결론을 내리긴 어려웠다.
지옥의 군단과 도깨비.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에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 또한 다르다고 밖에 느낄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 됐든 비트레이가 배신을 했든, 말든 관심은 없었다.
어째서 그녀가 돌아갈 방법을 설명하면서 그의 얘기를 꺼냈는지가 궁금했고, 그녀의 음성에 집중했다.
“비트레이는 그 누구보다 아자토스에게 충성했다고 해요.”
“……충성심이 컸기에 배신감이 더 커진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도깨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해요.”
“이유는 뭔가요?”
“비트레이는 아자토스가 사라지고, 그를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요.”
“……소용이 있었나요?”
“글쎄요. 하지만 그는 지옥을 뒤져 아자토스의 흔적을 찾아다녔고, 사라진 이유를 찾아냈다고 해요.”
“……? 이유를 찾아냈다고요? 그게 뭐죠?”
주현이 말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일수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자토스가 사라진 이유.
그것은 단순히 세상이 변함과 동시에 지옥에 있던 그가 인간 세상으로 오게 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이유가 있었다는 그 소리에 다음에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그건 저도 알지 못해요. 도깨비 참모 역시 알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어요.”
“……그렇군요.”
하지만 주현 역시 아자토스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않았다.
실망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떤 이유였든 비트레이는 아자토스가 인간 세상으로 이동한 것을 알게 되었어요.”
“……! 그,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는 도깨비들에게 항상 인간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요.”
“……어떻게?”
“지옥의 전역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는 듯해요.”
“그럼 비트레이는 아자토스가 인간 세계로 넘어갔다는 것을 알고, 자신 역시 그 방법을 찾아 인간 세계로 넘어갔다는 말인가요?”
“……아뇨. 그래 보이지는 않아요.”
천천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상황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아자토스가 사라진 후, 가장 충성심이 높았던 비트레이는 그가 사라진 이유를 찾아다녔다.
지옥 전역을 뒤져 결국 그 이유를 찾아냈고, 인간 세계로 넘어가는 방법을 알아내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어느 순간 비트레이 역시 아자토스와 마찬가지로 지옥에서 모습을 감췄고, 그로 인해 주현이 도깨비들의 군주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하지만 그가 인간 세계로 넘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주현의 말에 흥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자토스든 비트레이든 사실 별 관심은 없었다.
주현과 내가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것.
그 방법이 가장 중요했고, 그것을 비트레이가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그녀의 말에 어서 빨리 말을 이어가라는 듯 재촉하며 물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정확히는 그 방법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해요.”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 수 있는 방법이요?”
“…….”
확신하지 않아서 인지 주현은 말을 아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 뭔지 알고 있나요? 우리에겐 가장 중요해요.”
“아자토스의 연구실.”
“……네?”
“지옥의 군단 내에 있는 아자토스의 연구실에 그 방법이 있다고 해요.”
“…….”
주현의 대답에 드디어 돌아갈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한편으론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아자토스의 연구실.
이미 언데드 군단의 성채에서 역시 비슷한 장소가 있었기에 연구실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았다.
지옥의 군단에도 연구실이 있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 본 것이었다.
하지만 비트레이.
그가 어째서 도깨비들을 데리고 지옥의 군단을 빠져나왔는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군단에 속해 있다면 오히려 연구실에 접근하기 수월했을 터.
자신의 세력을 데리고 나와 군단과 적대 관계를 이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생각한 것이었다.
“도깨비 참모의 말에 따르면 비트레이가 처음부터 군단에서 나올려고 한 건 아니라고 해요.”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거군요.”
“네. 그는 지옥의 전역을 돌아본 후, 지옥의 군단에 돌아와 군주의 자리에 오르려 했다고 해요.”
“……단순한 권력 욕심이 아니었군요.”
“네, 하지만 그는 군주의 증표가 없다는 이유로 군단장. 특히 이리시라는 밴시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었어요.”
“…….”
익숙한 이름인 밴시 이리시가 나오자 흠칫 놀랐지만, 이내 수긍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겪어본 이리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비트레이, 그가 군주의 자리에 올라가려 한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아자토스를 따라 인간 세계에 가려했고, 그 방법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군주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던 거군요. 인간 세계에 가기 위해서.”
“……네.”
혹시나 하여 물어본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맞아떨어졌다.
아니길 바랐건만, 복잡한 생각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 이유가 뭡니까?”
“아자토스의 연구실. 정확히는 군주의 연구실은 군주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요.”
“음…….”
그녀의 대답을 들음과 동시에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비트레이가 군주의 자리에 도전하고 실패하자 자신의 세력을 데리고 나간 이유.
그것은 모두 아자토스의 연구실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군단장들의 반발에 군주가 되지 못해 연구실에 들어가지 못한 비트레이는 자신의 세력을 데리고 나가 새롭게 세력을 키워 나갔다.
‘지옥의 군단을 치기 위해서.’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트레이는 세력을 키웠고, 결국 목표는 지옥의 군단에게 전쟁을 선포에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을 것이다.
지옥의 군단 내에서는 이미 그가 군주의 자리를 욕심낸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그 안에서 계획을 도모하기에는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였다.
‘연구실이라…… 그곳인가.’
군단의 성채에 인간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군단의 성채라면 자주 넘나들었던 장소였기에, 연구실의 위치 또한 유추되는 곳이 없지는 않았다.
‘성채의 지하인가.’
밴시의 의해 군단에 입성했고, 못마땅해하는 듯했지만, 군단장들 역시 군주의 증표는 인정하는 듯했다.
성채에 그 어디든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지만, 그들이 막은 장소는 지하가 유일했다.
-진정한 군주가 되시면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충성을 보이던 밴시 이리시조차 그곳의 출입을 막으며 했던 말이었다.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그런가 보다 했지만, 성채에 연구실이 있다면 그곳이 확실해 보였다.
“아자토스의 연구실에 인간 세계에 가능 방법이 있다…… 그럼 아자토스는 인간 세계로 가는 방법을 연구했던 걸까요?”
“……아마.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갑자기 든 의문에 질문하자 주현 역시 동의했다.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아자토스를 상대한 적이 있었기에 생각이 일치하는 듯 했다.
아자토스, 그는 갑자기 인간 세계에 등장했음에도 자신의 세력을 순식간에 일으켰다.
지옥에 군단에 비할 바는 못했지만 짧은 시간에 언데드 군단이라는 강력한 군단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그는 너무나도 빨리 인간 세계에 적응하고 대처했으며, 자신의 목적을 실행했다.
그것은 분명 인간 세계에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했다.
“……그럼 일단 아자토스, 그러니까 군주의 연구실로 들어가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보이네요.”
“네.”
“그렇군요. 그럼 주현 씨가 도깨비들에게 빼앗긴 장비들을 가져다주겠어요? 은신을 이용해 연구실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들킨다고 하더라도 군주의 증표가 있으니 둘러댈 수 있을 거구요.”
“……그게.”
상황을 전부 듣고나자 해야 할 것은 분명해졌다.
지옥의 군단에 다시 돌아가 연구실을 살펴보는 것.
그렇게 한다면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주현은 어딘지 모르게 곤란한 표정으로 쳐다봤고, 불안한 마음에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러시죠?”
“……도깨비 군단이 지옥의 군단에게 전쟁을 선포했어요. 이미 출격했구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