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56화
쇠창살을 제거하려는 순간, 들려온 발소리에 행동을 멈추었다.
‘젠장, 하필 지금.’
그야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건장한 데스 나이트 역시 인기척을 느낌과 동시에 행동을 멈추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
지하의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듯한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듯 더욱 크게만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커다란 놈을 숨길 수도 없고…….’
좁디 좁은 감옥안에 있는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데스 나이트를 숨길 수도, 소환을 해제하기에도 이미 늦었다.
지금 여기서 걸리게 된다면 더욱 경계를 강화하게 될 것은 뻔했고, 그렇게 된다면 작은 기회조차 사라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인.”
“…….”
일반 하수인과 다르게 지능이 높은 데스 나이트 역시 지금의 상황이 곤란하다는 것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심히 요동치는 눈동자로 명령을 기다리며 그대로 얼어버렸고, 명령을 기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물어왔다.
하지만 나 역시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
고민할 시간도 판단할 시간도 없었다.
“선수 치자. 부셔!”
“조, 좋은 생각이다! 주인!”
어차피 애초에 생각했던 계획은 일그러졌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감옥을 탈출한 뒤, 이곳으로 향한 누군가를 순식간에 제압하는 것.
‘발걸음은 여럿으로 들리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면 들려오는 발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였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소란은 있겠지만 데스 나이트와 함께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처치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경비를 서고 있는 도깨비가 있다면 분명 확인하러 내려올 테지만, 그마저도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도깨비들 모두에게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탈출하게 된다면 뒷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콰광쾅! 채쟁!
결심이 섬과 동시에 우리를 막고 있는 쇠창살을 박살 내버렸다.
도깨비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제거하려던 계획은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지하로 내려오는 누군가보다 이곳을 빨리 나오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으랴차차찻!”
거대한 몸집의 데스 나이트의 괴력에 쇠창살이 부서짐과 동시에 내려온 그와 마주쳤다.
“……!”
“주인! 내가 제압하겠다!”
그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감옥에서 뛰쳐나간 데스 나이트가 달려들었다.
“검은 기사?”
하지만 눈을 마주친 그의 모습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기껏해야 도깨비 감시병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지하실 감옥에 찾아온 이는, 온몸에 칠흑의 갑옷을 입고 있던 도깨비 군주로 추정되었다.
그는 자신이 도착과 동시에 쇠창살이 부서지는 광경을 목격했고, 잠시 놀란 듯 발걸음을 주춤했다.
“자, 잠깐.”
하지만 그야말로 쏜살같은 속도로 뛰쳐나간 데스 나이트를 말릴 새는 없었다.
“주인! 뒤에서 보조 부탁한다!”
무서운 기세로 뛰쳐나간 데스 나이트는 이미 수많은 전투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다.
자신들이 전방에서 적들과 상대할 때 후방에서 마탄을 이용해 공격하는 전투 스타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총기에 총검을 착검한 데스 나이트는 검은 기사를 향해 찌르듯 공격을 시도했다.
“아니…… 에라 모르겠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기사에 당황하기도 잠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철컥.
곧바로 데스 나이트를 보조하며 장전했고, 검은 기사를 조준했다.
캉! 캉! 타아아앙!!
하지만 역시 그의 강함은 거짓이 아니었다.
기습을 하듯 순식간에 뛰쳐나간 데스 나이트였으나, 역시나 검은 기사는 상위종.
데스 나이트의 위 단계인 둠 나이트보다도 더 높은 언데드였다.
간단히 데스 나이트의 총검을 받아친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온 마탄마저도 순식간에 피해냈다.
“하하핫! 강하구나!”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을 봤음에도 데스 나이트는 어딘지 모르게 신나 보였다.
오랜만의 전투와 자신과 같은 기사, 무엇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를 만난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지속적이고, 혹독한 훈련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그렇게 주의를 주었으나 데스 나이트는 흥분하며 더욱더 거세게 총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깡! 깡! 깡!
이에 질세라 뒤에서 연신 방아쇠를 갈겼지만, 그에게 소용은 없었다.
연속된 공격을 마치 전부 예상하기라도 한 듯 간단하게 막아내고 피해낸 것이었다.
‘젠장, 안 되겠어. 다른 하수인들을.’
전투가 이어질수록 승기는 기울어졌다.
감옥의 공간이 좁았고, 최대한 도깨비들에게 들키지 않게 빠져나갈 생각이었기에.
데스 나이트 한 마리만을 소환한 것이었지만.
지금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까딱하다간 눈앞에 있는 검은 기사에게 당하게 될 처지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언데드 하수인들마저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스 나이트 조금만 시간을 끌어!”
검은 기사와 상대하고 있는 그를 향해 소리쳤지만, 대답할 여유조차 없는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데스 나이트, 스켈레톤 위자드, 밴…….”
“……거기까지.”
하수인들을 소환하려는 순간 제지한 것은 검은 기사였다.
내가 무언가 하려는 것을 눈치챈 그는 단숨에 상대하고 있던 데스 나이트의 총을 두 동강 내버렸다.
더욱이 그를 제압하며 코앞까지 다가와 나를 막아낸 것이었다.
“……어?”
공기를 발로 차듯 순식간에 나타난 검은 기사의 모습이 눈앞에서 멈췄다.
칠흑 같은 헬멧에 가려 보이는 것은 붉은 두 눈뿐이었고, 그의 두 눈을 마주한 것이었다.
“……접니다.”
하지만 놀란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껏 말이 없던 검은 기사.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맑고 고운 여성의 음성.
그리고 공기를 발로 차며 이동하는 그 스킬까지.
왠지 모르게 전부 익숙한 것들이었다.
“……주현?”
“네, 저예요.”
그 대답을 끝으로 검은 기사는 자신의 칠흑 같은 헬멧을 벗었다.
그러자 보인 것은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주현의 얼굴이었다.
“……어, 어떻게? 아. 아니, 비트레이가 아니라…… 주현, 당신이었다고?”
믿을 수 없는 검은 기사의 정체에 놀라 말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녀는 주현이 맞아 보였다.
“…….”
“…….”
모든 행동도 생각도 사고조차 멈춘 채 빤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말을 아끼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장 어찌 됐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전투로 인해 꽤 소란이 일었고, 도깨비들 역시 그 소리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보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너무 소란을 피웠어요. 그들이 몰려올 겁니다.”
“괜찮아요.”
“네? 하, 하지만.”
“어떤 소란이 나도 들어오지 말라 명령해 두었습니다. 도깨비들 아무도 오지 않을 거예요.”
“아…….”
하지만 그녀는 차분하게 대응하며 진정시켰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자 그녀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역시…… 주현 씨 목 뒤에 있던 문양도 군주의 증표였던 거군요.”
“네. 민혁 씨도 마찬가지였나 봐요.”
늘어져 있는 데스 나이트의 소환을 해제한 채 쇠창살이 박살 난 감옥 안에 나란히 앉았다.
지옥에 들어온 후 그간 있었던 서로의 상황을 주고받으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아자토스가 남긴 문양이 군주의 증표였고, 우리 두 사람에게 그것이 나타난 것이군요.”
“네, 그렇게 보여요.”
“하지만…… 어째서?”
“……추측이지만. 일종의 보상 아니었을까요?”
“보상? 반지나 목걸이, 무기 같은 보상이요?”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음.”
주현의 말을 듣고 보니 일부분 수긍할 수 있었다.
퀘스트를 해결하거나 강력한 몬스터를 처치한 후 얻게 되는 보상.
그것들은 루핀의 반지나 원격제어 장치, 무기 등 다양했다.
피노 역시 퀘스트의 보상에서 얻은 알에서 태어났으니 그 형태에 제한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자토스를 물리치던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가장 활약은 한 것은 주현과 나.
그랬기에 군주의 증표가 우리에게 나타났을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 주현 씨는 지금 도깨비들의 군주가 되신 건가요?”
“……네. 본의 아니게. 제가 원한 것은 아니었어요.”
대화를 나누며 이미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다시 한번 그녀를 통해 확인했다.
나와 같이 지옥으로 이동된 주현이었지만, 서로 떨어진 장소는 달랐다.
그녀는 도깨비들의 영역에서 눈을 떴고, 그곳에서 도깨비들과 만났다.
군주의 증표를 느낀 상위 도깨비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군주로 여기며 지내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깨비들의 군주는 비트레이라는…….”
“네, 저도 들었어요. 지옥의 군단의 제1군단장이었던 배신자 비트레이.”
그녀의 말을 들을수록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분명 도깨비들의 군주는 비트레이라고 들었기에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 역시 알고 있는 듯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지금 지옥에 없어요.”
“……?”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해요.”
“……지옥에 있던 아자토스처럼.”
“맞아요.”
“……그렇게 된 거였군요.”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해소됐다.
사라진 비트레이.
설명은 듣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아자토스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사라졌고, 아마 그가 이동된 장소 역시 인간 세계일 것이 분명해 보였다.
“군주가 없어진 도깨비들이 주현 씨를 데려온 것이었군요.”
아자토스가 사라지자 배신한 도깨비들.
하지만 자신들의 군주인 비트레이 마저 사라진 순간, 그들의 앞에 나타난 주현을 발견한 것이었다.
군주의 증표는 물론, 그녀의 강함을 확인한 그들에겐 구세주와도 같은 그녀였을 것이다.
어느 정도 그녀의 상황을 이해했지만,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모습은…… 어떻게 된 거죠?”
군주의 증표 때문에 도깨비들의 왕이 됐다.
그것은 나 역시 지옥의 하수인들에게 겪은 바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모습.
마치 언데드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검은 기사의 모습에 대해 물은것이었다.
그저 모습뿐이 아닌 그녀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둠 나이트보다도 강한 언데드의 기운이 분명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을 마스터했더니 생겨났어요.”
“네?!”
“……이 모습은 언데드 기사가 맞아요. 다크 나이트예요.”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을 천천히 들었다.
주현 역시 지옥에 들어온 후,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지옥의 불꽃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을 통해 그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킬의 레벨을 올릴수록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가지고 있던 코인과 더불어 계속되는 사냥으로 빠르게 마스터 레벨인 10을 찍었고.
그 순간 새로운 스킬이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데스 나이트, 둠 나이트를 넘어 기사 계급의 마지막 다크 나이트로 변하는 스킬을 얻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