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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155화 (155/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155화

왕좌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도깨비들의 군주라는 것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도깨비들과는 반대로 그의 온몸은 칠흑 같은 갑옷으로 뒤덮여 있었다.

낯설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그 모습은 누가 뭐래도 기사의 그것이었다.

‘데스 나이트? 둠나이트? 아니야 그보다 더…….’

단지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언데드의 기운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했다.

데스 나이트, 아니, 그 위단계인 둠 나이트보다 강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마저도 칠흑의 투구로 완전히 가려 버린 그는 붉은 눈빛만이 날카롭게 보였다.

자신의 앞에 공물을 바치는 도깨비들을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볼 뿐.

어떤 행동이나 말조차 건네지 않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히 강해 보여…… 저 녀석이 비트레이겠지? 당장 마주쳐서 좋을 건 없겠어.’

루핀의 반지를 이용한 은신을 통해 모습을 숨긴 채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강해 보이는 그의 인상은 아자토스와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꽤 규모가 있는 방이었지만 그의 존재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 살펴볼 만한 건 없어 보여…… 일단 나가서 다른 곳을…….’

넓은 방에 보이는 것이라곤 갑옷을 입은 그와 도깨비들뿐이었기에 방 안을 나서려는 순간.

‘……응?’

그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나는 은신을 이용해 몸을 숨긴 상태.

그가 나를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들고 있는 무기를 포함해 입고 있는 옷까지. 전부 투명한 상태였고 기척 또한 지웠기에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의 붉은 두 눈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들킨 건가?’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해소되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움직인 것이었다.

투툭.

검은 기사의 손이 한쪽에 놓여 있던 검을 집은 순간.

그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붉은 눈동자의 잔상만이 빠르게 움직였고, 어느새 그는 눈앞에 등장했다.

챙!

“…….”

“……젠장.”

그가 휘두른 검을 반사적으로 막아내자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도깨비들의 눈에는 그가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분명 그것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들고 있던 총기를 들어 올려 억지로 막아내긴 했으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치, 침입자다! 깨비!!”

“누가 있다! 깨비!!”

공격을 받은 순간 은신이 풀려 버린 것.

그제야 도깨비들은 우왕좌왕하며 소란을 피워댔다.

얼마 가지 않아 성 전체가 떠들썩해지며 다급한 발걸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침입자의 소식은 순식간에 모든 도깨비들에게로 전해졌다.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것은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였지만 눈동자는 매섭게 불타고 있었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을 마주하고 있자 이어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공격을 하지 않지?’

반사적으로 총기를 들어 올려 그의 공격을 막았으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우연에 불과했다.

둠 나이트 이상으로 보이는 그에게 내가 무력으로 이길 수 있을 리는 없을 터.

원거리에서 기습한다면 그의 제압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눈앞에 있는 그의 검을 막아내기란 어려웠다.

“…….”

하지만 그는 그저 바라볼 뿐.

공격을 이어가지 않았다.

“깨비. 어떻게 해야 하냐 깨비.”

“무슨 상황이냐. 깨비.”

오히려 주위에 몰려든 도깨비들만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공격의 의사가 없어 보이는 그의 태도는 의아했지만, 그것은 분명한 기회였다.

‘원격제어!’

그의 검을 막아낸 총기를 사용할 순 없었지만, 나에게는 원격제어 장치가 있었다.

검을 막아낸 채 신중하게 정신을 집중시켰고 주위의 총기들을 조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해치워야 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총기들을 움직인다 하여도 주위에는 도깨비들이 있었다.

그들이 발견한 순간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순식간에 모든 마탄을 집중시켜 단숨에 해결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힐끔 쳐다본 도깨비들은 전투에 끼어들 의사는 없어 보였다.

눈앞에 이자를 쓰러뜨린다면 어떻게든 도망은 가능할 터.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

“저, 저희가 돕겠습니다. 깨비!”

‘지금이다!’

그 순간 지켜보고 있던 빨간 도깨비가 몽둥이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검은 기사의 고개가 잠깐 돌아간 그때.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주의 총기들이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오르며 장전했다.

총구에서는 일제히 푸른빛을 뿜어내며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슈아아아악!! 콰지끈!!!

검은 기사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뛰어올랐다.

공중에 유유히 떠 있던 모든 총기들은 반으로 쪼개지며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

“…….”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총기들을 눈치챈 그가 막아낸 것이었다.

유일한 기회가 사라지고 나자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다가와 나의 목을 향해 검을 드리웠다.

“……끝내라.”

“…….”

더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며 눈을 감은 그때.

한동안 쳐다보고 있던 그가 검을 집어넣었다.

쉬이이익. 착. 까닥.

그 소리에 살며시 눈을 떠 그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검집에 검을 넣은 그가 도깨비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고, 그들은 재빠르게 다가왔다.

“깨비. 침입자를 감옥에 넣을까요? 깨비?”

“…….”

다가온 도깨비들은 양쪽의 팔을 붙잡으며 검은 기사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도깨비들에게 끌려갔다.

* * *

“얌전히 있어라. 깨비.”

“지옥의 군단에서 왔냐 깨비. 그들의 냄새가 난다. 깨비.”

“군주님 덕분에 산지 알아라. 깨비.”

“…….”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오는 도깨비들.

하지만 그들에게 대답해 줄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도깨비들에 인도된 순간 나의 온몸은 천으로 뒤덮였고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들고 있던 무기를 포함해 입고 있던 모든 장비들을 빼앗겼고, 그렇게 쇠창살이 가득한 장소에 갇혔다.

“으윽. 후우…….”

거칠게 감옥 안으로 밀어 넣은 도깨비들은 하나둘 빠져나갔다.

결국, 어두컴컴한 공간에 홀로 남아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내뱉었다.

‘어째서 죽이지 않은 거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검은 기사.

짧게나마 확인한 그의 무력은 대단했다.

당시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가 나의 목을 날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나를 살려두었고, 감옥에 가두었다.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그것 역시 간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한 도깨비들조차 냄새를 통해 내가 지옥의 군단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은신 상태의 나를 공격해 온 그라면 그 정도는 간단하게 알아차렸을 것이 분명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분명할 터.

하지만 순순히 당해줄 생각 따윈 없었다.

“으윽. 우선 확인해 볼까?”

도깨비들이 얼마나 심하게 두들겼는지 입안이 다 터져 말을 하기 어려웠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눈앞의 쇠창살과 어둠뿐.

도깨비 성의 지하로 유추되는 감옥에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희미하게 비추는 뼈들만이 이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정도였던 것이다.

“루핀의 반지부터 원격제어장치까지…… 전부 빼앗긴 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도깨비들에게 빼앗긴 장비들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나를 흠씬 두들겨 팼을 뿐만 아니라 착용하고 있던 모든 장비들을 빼앗아 갔다.

들고 있던 K2 소총은 물론이고 손가락에 착용하고 있던 루핀의 반지와 시야석 반지.

탄띠의 형태로 착용하고 있던 원격제어 장치와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까지 전부 빼앗긴 것이었다.

“무기야 얼마든지 있지만…… 루핀의 반지와 원격제어 장치만은 어떻게 해서든 되찾아야 해.”

검은 기사에 의해 망가진 소총이며 빼앗긴 소총이라면 아깝지 않았다.

‘내 손안의 무기고’를 통해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 퀘스트의 보상으로 얻었던 장비들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제작을 할 수도.

다시 얻을 수도 없는 장비들이었으며 그 효과 역시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루핀의 반지야 귀속 아이템이었기에 그들이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원격제어 장치나 목걸이, 반지 등이 그들에 의해 사용된다면 그것 역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한담…… 우선.”

지금 바로 도깨비들에 대항해 장비들을 찾아오는 것은 자살행위에 불과해 보였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감옥을 탈출하는 것.

이곳에 오래 있다고 하여 좋을 것은 없어 보였던 것이다.

장비와 무기들을 빼앗아 이곳에 집어넣은 도깨비들은 절대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단단한 착각에 불과했다.

“무기고!”

무기고를 통해 얼마든지 총기를 꺼내올 수 있었고, 무엇보다 믿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데스 나이트 소환!”

새로운 K2를 어깨에 짊어지며 한 손을 내뻗자, 땅 위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닥에 놓인 뼈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하며 하나둘 제짝을 맞췄고, 그곳에 듬직한 기사가 나타났다.

“주인께 충성을 맹세하겠…….”

“쉿!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감옥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언데드 하수인인 데스 나이트!

이미 오랜 기간 훈련을 마친 그는 검이 아닌 나와 같은 총기를 들고 있었다.

기사인 데스 나이트에게 썩 어울리는 무기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익숙한 듯 능숙하게 들고 있는 무기였다.

“여, 여기는 어딘가 주인.”

“감옥이야. 지금 나는 갇혀 있는 상태야.”

“가, 감옥 말인가? 감히 누가 주인을 가뒀단 말인가! 내가!”

“쉿, 쉿! 알았으니까 그 입 좀 다물어 인마!”

“…….”

흥분하는 데스 나이트를 다그치자 그제야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떨궜다.

혹시나 소리가 새어갔을까 조심스레 철창 너머를 살펴보았지만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조심해, 밖에 감시하는 도깨비가 있을지도 몰라.”

“도, 도깨비?”

감옥에 있는 자라곤 나와 데스 나이트뿐이었지만,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아니 확실하게 도깨비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을 것은 분명했던 것이다.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하수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들켜서는 안 됐다.

‘도깨비들의 수가 많아. 모든 하수인을 소환한다 해도 가망은 없어.’

아자토스라면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곳에 있는 모든 도깨비들과 맞붙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대한 들키지 않게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이었고, 바로 그 계획을 시작하려 했다.

“최대한 들키지 않게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알겠다. 주인.”

데스 나이트에게 주의를 주며 쇠창살을 제거하려는 그 순간.

저벅. 저벅.

이곳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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