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52화
밴시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장소.
지옥의 한편에 자리한 그곳에 입성했다.
이곳에 오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몬스터들을 만났고, 공격을 받았지만 밴시의 도움과 언데드 하수인들 덕분에 헤쳐올 수 있었다.
끊임없는 전투는 우리를 계속해서 성장시켰고 그로 인해 어떤 피해도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어느 순간 앞장서 있던 밴시가 발길을 멈췄다.
그곳엔 칠흑 같은 어둠과 불길이 썩 어울리는 거대한 성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전에 봤던 언데드 군단의 성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크기나 위압감은 거대했다.
“이…… 이게 전부…… 뭐야?”
“아자토스 님의 하수인. 아니, 이제 새로운 군주님을 모시는 군단입니다.”
과거 언데드 군단의 성채와 비슷해보이지만 확실히 그 규모는 거대했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밴시의 손짓과 함께 성채의 정문이 천천히 열렸고 그 안에 몬스터들이 빼곡히 존재하고 있었다.
“들어가시지요. 이제 군주님이 이곳의 주인입니다.”
“…….”
고개를 숙이며 충성스러운 말을 건네는 밴시였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대한 성채의 문이 열리자 본건물까지 이어진 마당의 몬스터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말 그대로 지옥의 군단.
익숙한 언데드 몬스터인 해골 병사나 구울, 스켈레톤뿐만이 아닌 온몸이 돌로 이루어진 골렘부터 처음 보는 모습의 다양한 하수인들이 그곳에 있었다.
“……이게 전부 아자토스의 부하들이라고?”
“성채 안에 더욱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간 쏟아지는 시선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와서 돌아갈수도 없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며 성문을 지나 마당을 걸어갔다.
밴시의 뒤를 따라 마당을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모든 하수인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모였고, 떨어질 줄 몰랐다.
지금까지 만났던 지옥의 몬스터들의 반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다짜고짜 공격해 오던 그들과는 달리 이들은 지켜보기만 할 뿐 공격의 의도는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들은 내가 소환한 하수인들이 아닌 아자토스의 하수인들이었고, 당장 나를 공격해 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직은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은 채 지켜볼 뿐이었지만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부담감을 느끼는 와중에 길고 거대한 마당을 지나 본건물을 앞에 멈춰섰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익숙한 언데드 몬스터들이었다.
“…….”
“…….”
문을 지키고 있는 것은 두 마리의 데스 나이트.
그들은 문앞에 멈춰선 밴시와 대치했고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채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분위기는 뭐지?’
밴시의 뒤에 서 있었지만 그 분위기는 확연히 느껴졌다.
어색함을 넘어 싸한 공기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아무런 대화도 없이 대치하고 있던 그때 밴시의 분노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뭣들 하는 것이냐?”
“군주님의 허락을 받은 자 외에는 성채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감히…….”
길을 막은 채 우두커니 서 있던 두 마리의 데스 나이트를 향해 차분히 말을 건넸지만, 그 분위기는 살벌했다.
그들의 임무인 듯 거대한 창을 든 데스 나이트들은 문에서 비켜줄 기미 따위는 없어 보였다.
단호한 그들의 태도에 밴시의 뒷모습은 희미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감히! 어디서 이런 무례한!”
그 순간 밴시의 분노가 폭발했다.
언성을 높이며 소리친 순간 일대는 차가운 기운으로 뒤덮였고, 데스 나이트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다.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것이었다.
“군주시여, 이 우매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용서하시길.”
“…….”
또한 그녀는 뒤로 돌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주위에 바라보고 있던 모든 하수인들을 살펴보았다.
마당에 있는 그들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지만 일종의 경고인 듯 보였다.
문을 사이에 둔 채 양쪽에 얼어붙은 데스 나이트들을 지나 밴시가 손짓하자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렇게 성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강해 보여.’
처음 성채의 안을 들여다 본 순간 느낀 것이었다.
성채 안의 위치한 몬스터들, 즉 지옥의 군단의 하수인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역시 아자토스의 군단이 맞는 듯, 체계 또한 이전의 성채와 비슷해 보였다.
군단 내의 강함을 기준으로 계급이 나뉘어 있고, 그에 상응하는 공간이 허락되는 구조였다.
성채의 밖인 마당에 있던 하수인들과는 풍겨오는 분위기부터가 완전히 다른 녀석들이었다.
‘1층부터 둠 나이트…….’
과거 아자토스의 언데드 군단에선 군단장을 역임할 정도의 둠나이트였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그들은 1층에 머물고 있었다.
그 수준부터가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였다.
‘아자토스의 진정한 힘은 여기에 있었구나. 이 군단과 전쟁을 치뤘다면 승리하기 어려웠을…….’
어쩔 수 없이 이전의 전투를 떠올랐다.
아자토스가 만든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에서의 구성원들은 그가 인간 세상에 소환된 뒤 일궈낸 하수인들이었다.
밴시의 말을 토대로 추측건대 그가 갑자기 지옥에서 소환된 뒤, 그의 군단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었다.
원래 지옥의 군단을 이끌던 그는 어렵지 않게 새로운 군단의 틀을 잡고 급하게 하수인들을 만들어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강함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급조된 군단이었지만 몇 가지 상황들과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결코 승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밴시만 보더라도 그 강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에 더더욱 든 생각이었다.
‘규모 또한 엄청나.’
단순히 하수인들의 강함뿐만이 아닌 성채의 규모와 걸맞게 그들의 숫자역시 엄청났다.
군단장급이었던 둠나이트는 성채 안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던전에서 확인한 적이 있던 본버닝 등의 다양한 지옥의 하수인들이 수도 없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한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한 내부는 과거 아자토스토스의 군단과 비교해도 몇 배는 더 넓어 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치품과 귀중품이 가득했던 성채와는 달리 비교적 휑해 보이는 내부,
하지만 오히려 분위기나 기운은 더욱 음침하고 어두웠다.
끼이익. 끼이익.
밴시가 내뿜은 냉기에 의해 영향을 받은 문이 힘겹게 열리자, 이곳 또한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한 마리 한 마리가 풍겨오는 기운이나 분위기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
하지만 앞에 있는 밴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당당하게 안내하며 나아갔다.
* * *
밴시를 따라 성채 내부로 더욱 들어가 도착한 곳은 2층의 공간이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2층의 공간 또한 한 번에 살필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넓은 공간에 한쪽에는 단상과 같은 무언가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 올라가면 한눈에 주변을 살필 수 있을 만큼 높이가 있는 장소였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무엇을?”
“모든 군단장들을 소집시켰습니다.”
“…….”
밴시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성채의 내부를 구경하고 있던 중, 멈춰선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기다리라는 말에 의문을 가지며 묻은 질문에 돌아온 것은 뜻밖의 대답이었다.
군단장들을 소집했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아자토스가 만들었던 군단인 만큼 계급 체계가 같은 듯했고, 군단장 역시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군주였던 아자토스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하수인들이 군단장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오롯이 강함뿐만이 아닌 일반적인 몬스터들과는 달리 리더십과 지능이 높으며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존재들이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생각하기에 따라 배신을 하는 이들 역시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쿵. 쿵. 쿵. 쿵.
“뭐, 뭐야? 지진?”
그때 성채가 울릴 정도의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지진이라도 난 것인지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자세를 낮추자 공중에 떠 있던 밴시가 창문을 가리켰다.
“제4군단장이 도착했습니다.”
“……뭐?”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그녀의 태도를 보며 창문으로 시선을 옮겨간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을 통해 보이는 것은 거대한 돌덩이.
하지만 살아서 움직이는 눈이 깜박이고 있었다.
돌로 이루어져 있지만 분명 그것은 눈처럼 보였고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골렘?”
“맞습니다. 제4군단장은 자이언트 골렘입니다.”
이미 골렘을 본적이 있었기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크기는 결코 익숙치 않았다.
성채로 발길을 옮길 때 스쳐본 적이 있던 거대한 돌덩이.
단순히 거대한 건물이라 생각했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그것이 살아움직이는 하수인이었던 것이었다.
“군주. 반갑다.”
자이언트 골렘을 빤히 보고 있자, 그가 말한 듯 거대한 소리가 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말할 때마다 돌맹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넋을 놓고 있자, 뒤이어 다른 하수인들 역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도 자리로 가겠습니다. 군주여.”
어느새 단상 위에 자리하고 있자 밴시는 아래로 내려가며 그들과 나란히 위치했다.
몸집이 거대해 성에 들어올 수 없는 자이언트 골렘을 제외하고도 총 넷의 인원이 도착했다.
맨 왼쪽에 위치한 밴시부터 온몸이 불타고 있는 본버닝과 비슷해 보이는 몬스터와 키메라와 비슷한 듯 수많은 시체가 모여 만들어진 흉물스러운 존재, 마지막으로 해골의 육체를 하고 있는 몬스터가 그들이었다.
“새로운 지옥의 군주님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제2군단의 군단장이자 군주님의 시종 이리시입니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그간 함께했던 밴시였다.
공중에 떠 있던 그녀는 땅에 내려오며 고개를 숙였고, 그것을 시작으로 하나둘 행동하기 시작했다.
“제3군단장 지옥의 화염에서 태어난 파이크입니다.”
밴시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온몸이 불타고 있던 그가 말을 이어갔다.
성격이 급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이전에 보았던 본버닝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더 상위종의 몬스터인 듯 불타는 화염과 분위기는 더욱 심오했다.
“군주. 4군단장. 아크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는 창문에서 넘어왔다.
돌맹이들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자이언트 골렘이 말한 것이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성채 내부가 울릴 정도였으나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익숙한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제5군단장 융합체.”
“제6군단장 리치, 이리크입니다.”
또한 이어서 나머지 군단장들이 자신을 소개했다.
몬스터들의 시체를 섞어서 만든 듯 끔찍한 모습을 한 그는 자신을 융합체라 말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어디에서 말하는 것인지 입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말을 섞고 싶지 않을 정도의 모습에 그렇게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소개한 것은 해골의 몬스터.
아자토스와 같은 리치인 그는 거대한 지팡이를 든 채 자신을 소개하며 앞으로 한 발짝 나왔다.
“이리크 무슨 짓이냐?”
그 모습을 본 밴시 이리시가 소리치자, 리치 이리크는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단상을 올려보며 소리쳤다.
“아자토스 님이 아니다. 그를 군주로 인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