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51화
“…….”
난감해하는 밴시를 보며 그저 두 눈을 깜박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현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말을 곰곰이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들? 우리는 누구고. 적이라니?’
밴시의 대답은 간략했지만, 그 짧은 말엔 의문투성이였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며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우선 우리라니? 우리가 누구를 말하는 거야?”
“물론 군주님을 기다리고 있던 하수인들입니다. 저희는 군주님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자토스 님의 부재에도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너 외에도 다른 하수인들이 있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규모가 얼마나 되지?”
“많은 이들이 떠나갔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 우리의 군단은 건재하고 군주님이 오신다면 우리의 지옥을 다시 한번 발아래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가장 먼저 밴시에게 물은 것은 우리라는 존재였다.
그녀가 말하는 우리가 단순히 지옥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곧바로 돌아온 밴시의 대답은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그녀가 말하는 우리란 그들만의 집단이 있다는 소리였고, 그것은 아자토스가 만든 군단이 남아 있다는 의미였다.
유추컨대 그 숫자 역시 결코 적은 수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당장 지옥에서 상대해야 할 몬스터가 줄었다는 것과 하수인이 늘었다는 것은 희소식이었지만, 결코 좋은 상황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다름 아닌 아자토스가 남긴 하수인들이었고, 그들이 이루려 하는 목표 또한 충분히 알 수 있었기에 골치 아파진 것이었다.
“지옥을 발아래 놓는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건가?”
“예, 맞습니다. 선대 군주께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던 그 길을 가셔야 합니다.”
차분하게 말하는 듯했지만 밴시의 태도는 분명 강압적이었다.
단호하면서도 강경한 태도에 반문하지 않은 채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그 적이라는 녀석들이 방해를 하고 있는것인가?”
“예. 아주 교활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죠.”
밴시는 정중하게 대답을 하면서도 적대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천천히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상황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밴시의 말에 따르면 지옥엔 아자토스의 군단이 남아 있고, 그들과 적대 관계인 무리 또한 존재한다. 주현은 그 적대 관계인 이들과 함께 있고…… 젠장.’
간략히 상황을 정리하고 나니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꼬여 버린 상황에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우선 주현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적이라는 녀석들에 대해 알려줘.”
그녀가 있는 장소를 찾았으니 상대하게 될 것이 농후해 보이는 그들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 대해 전반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밴시에게 다시금 물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들은 도깨비 종족입니다.”
“도깨비?”
밴시의 대답을 듣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었지만, 특이한 모습의 생명체.
두 머리에 뿔이 돋아난 새빨간 몬스터를 확인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몬스터를 본 순간 도깨비를 떠올렸고, 본능적으로 밴시가 말하는 것이 그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군주께서 미개한 도깨비들을 만나신 적이 있으신 겁니까?”
“그런 것 같아. 새빨간 몸뚱이에 뿔이나 있는 녀석들 맞지?”
“예, 맞습니다.”
“그 도깨비란 녀석들에 대해 알려줘.”
“도깨비들은 우리를 배신한 녀석들입니다. 거둬들여진 녀석들 주제에 군주님의 부재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교활한 자들이지요.”
“거둬들여져? 아자토스에 의해 군단에 들어왔다는 거야?”
“맞습니다. 지옥에 거주하던 그들은 아자토스 님의 권능을 받아들이며 군단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음. 배신을 했다는 건?”
“아자토스 님이 사라지자, 도깨비들은 새로운 군주가 있어야 한다며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한 도깨비가 나서며 새로운 군주가 되길 희망했고, 지옥의 군단을 이끌려 했습니다.”
“음.”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반발을 샀고, 그들은 군단을 떠났습니다.”
“새로운 군단을 만든 건가?”
“군단이라니 어림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배신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숨겨왔던 본심을 군주가 사라지자 드러낸 것뿐입니다.”
밴시는 열심히 설명해 주는 와중에도 분노하며 언성이 높아졌다.
도깨비들이 군주와 군단을 배신했다고 믿는 그녀는 그들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달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집단이라면, 네가 신경 쓰지 않겠지. 지옥의 군단에 위협이 될 정도야?”
“……맞습니다. 그들은 군주님이 없는 사이 빠르게 성장하고 강력해졌습니다.”
“빠르게 성장했다라…… 지도자의 유무로 인해 차이가 벌어진 건가?”
“…….”
“도깨비들의 군주. 그에 대해 아는 게 있어?”
“그 도깨비의 이름은 칼리. 저와 마찬가지로 아자토스 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했던 하수인입니다.”
“최측근이라…… 군단의 2인자 그런 건가?”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 밴시를 보며 차분하게 질문했다.
주현과 함께 있다는 도깨비들에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그들의 지도자에 대해 물은 것이었다.
밴시 자신 함께 아자토스의 가장 가까이에서 지냈다는 도깨비 캘리.
아자토스 군단의 2인자였던 프랑켄과 같은 위치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던진 질문에 그녀는 침묵을 유지했다.
대답하진 않았지만 부정하지 않는 밴시를 보며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캘리는 실질적으로 부군단장에 가장 가까운 도깨비였습니다. 그의 검 실력은 지옥 제일.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검……?”
이내 밴시는 그를 인정하는 듯한 말을 꺼내 들었고, 많은 추측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대화를 끝마치며 앞으로의 계획을 변경해 갔다.
* * *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얼어붙었던 하수들을 다시 소환하며 앞장선 밴시를 따라나섰다.
당장에라도 주현의 위치를 알아내 그곳으로 가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다.
밴시와 마찬가지로 도깨비들 또한 언데드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아 있을 것이라 추측됐고, 밴시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로 보였다.
언데드 하수인들을 대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홀로 그들에게 쳐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위에 불가했기에 계획을 조금 변경했다.
“모두가 새로운 군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밴시를 따라 아자토스가 남긴 군단을 만나보기로 한 것이었다.
상황에 따라 독이 될 수 있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 또한 보이지 않았다.
“저기, 이봐.”
“예, 군주시여.”
“혹시, 내가 간다 해도. 캘리처럼 반발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길을 멈춰 서며 고개를 숙인 밴시를 보며 물었다.
어찌 보면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기도 했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도깨비들은 분명 아자토스의 군단에 속해 있었고, 그들 중 새로운 군주를 세우려 했기에 반발이 일어났다고 했다.
더군다나 도깨비 캘리는 인정받는 실력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군단의 징표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나 역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가 새로운 군주님의 발아래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혹여나 만일의 사태가 일어난다 해도 제가 용서치 않겠습니다.”
“……그, 그래.”
왠지 모르게 든든한 모습에 의지하고 싶었지만, 역시 밴시의 모습은 거부감이 들었다.
거센 반발이 일어난다 해도 그녀가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어 보였다.
너무 많은 이들이 공격해 와도 밴시라면 모두 처치하지는 못하더라도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루핀의 반지를 비롯한 다양한 물건들과 스킬이 있었기에 그 정도라면 충분히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크크크르르륵.”
“으갸갸갹갹.”
“크흥, 크흥. 크흥.”
그때 지옥의 불씨 속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흉측하고 괴기스러운 몬스터들은 독특한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공격해올 것처럼 자세를 잡은 그들을 피할 수는 없어 보였다.
“일어나라. 하수인들이여.”
철컥.
밴시에 의해 얼어붙어 지나쳐왔던 언데드 하수인들을 다시 소환하며 들고 있는 총기를 장전했다.
단둘이 이동하던 그곳에선 하나둘 검은 기운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하나둘 자리에선 언데드 육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덜그덕. 덜그덕.
해골 병사와 구울, 스켈레톤과 역병 좀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타났고, 바로 눈앞의 몬스터들에게 반응했다.
“키야야야약”
“으랴랴랴”
삐걱거리는 하수인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몬스터들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온몸이 불타고 있는 녀석들은 뜨겁지도 않은지 저돌적으로 몸을 날렸고, 명령을 하기도 전에 하수인들은 그들을 겹겹이 막아섰다.
와장창창.
하지만 충성도만 확인했을 뿐, 다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잠깐동안 시간을 벌었지만 몬스터들과 부딪히는 순간 해골들의 뼈는 부서지고 구울들은 녹아버린 것이었다.
스켈레톤과 역병 좀비 또한 다르지 않았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정도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역시 지옥의 몬스터들을 당해낼 순 없었다.
툭. 투툭.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총기를 들어 올리며 그들을 조준하고 있었고, 방아쇠를 당겼다.
언데드 하수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잠깐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
실질적인 공격은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공중에 떠 있는 모든 총구가 한곳을 바라보며 일제히 마탄을 발사시켰다.
타당탕탕.
순식간에 몬스터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남아 있는 녀석들을 처리하려는 순간.
앞을 가로막은 것은 밴시의 뒷모습이었다.
“감히 누구를 공격하는 것이냐!”
거대한 그 뒷모습을 통해서도 분노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윽, 이 무슨.”
고막이 찢어질 듯 거대한 비명이 일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재빨리 귀를 막으며 그곳을 피했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들어오고 있었다.
밴시는 자신의 비명을 이용해 적들에게 공격을 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나 역시 피할 수 없었다.
“이, 이제. 그만.”
단순히 소리만을 이용한 공격은 아니었다.
밴시의 뒤에 있는 나와는 달리 앞에 있는 몬스터들은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치다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녀의 공격은 전방을 향해 비명과 충격파를 날리는 것으로 보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후방에 있던 나는 소리에 의한 충격만 받은 것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밴시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도착하기 직전 꽤 많은 코인들이 모여 있었고, 그것들을 전부 스킬에 사용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 Lv4-영혼을 태우는 불꽃의 효과를 상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