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50화
“새로운 군주시여.”
갑작스럽게 나타난 밴시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행동을 보여줬다.
공격해 올 의사는 없어 보였기에 조금이나마 안심하며 그녀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심은 그대로 유지하며 천천히 움직임을 살폈다.
언제 돌변해 공격해 올지 몰랐으며, 밴시가 보여준 능력.
주위의 유령들과 언데드 하수인들을 한순간 전부 얼려 버린 그 능력은 너무나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녀가 말하는 지옥의 군주가 누구를 뜻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경계심을 풀 수 없었다.
“새로운 군주라면…… 이전의 군주는 아자토스를 칭하는 것이냐?”
“예, 맞습니다. 우리를 이끌었던 지옥의 군주. 리치 아자토스 님이 선대의 군주이십니다.”
살펴본 밴시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멈춰서 있었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가 말하는 새로운 지옥의 군주.
어째서인지 나를 보며 그런 칭호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아자토스와의 관련을 추측하며 이전의 지옥의 군주에 대해 물은 것이었다.
밴시에게 돌아온 대답은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아자토스의 군대가 이곳에도 남아 있었구나.’
역시나 밴시는 아자토스의 부하였던 것으로 보였다.
“우리라면, 언데드 하수인들이 더 있는 것이냐?”
또한, 그녀가 말하는 ‘우리를 이끌었던 지옥의 군주’, 그것은 자신 외에 누군가 더 있다는 것을 뜻했다.
아자토스가 보여줬던 강력한 힘과 권력, 그 영향력이 성채뿐만 아니라 이곳에도 남아 있었다는 것이었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질문을 경청하던 밴시는 천천히 입을 움직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지옥의 하수인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옥의 하수인?”
“이곳에 있는 모든 하수인들이 군주님의 발아래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
그리고 이어진 대답을 들은 순간 머리가 복잡해져 왔다.
분명 리치 아자토스가 부리던 하수인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밴시까지.
전부 언데드에 국한되어 있었기에 당연하게 물어본 것이었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 것이었다.
“지옥? 이곳이?”
“……? 맞습니다. 모든 것이 불타며 칠흑 같은 어둠이 가득한 세계. 살아 있는 생명을 허락하지 않는 죽음의 땅. 지옥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아자토스님의 영광을 받아들인 존재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 지옥에 있는 모든 이들은 지옥의 군주님의 하수인입니다.”
“…….”
아무렇지 않게 설명하는 밴시의 설명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모든 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곳의 정체가 지옥이었다는 것이었다.
강신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자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공격을 받아 눈을 떠보니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지옥이라니…… 내가 죽었다는 거야? 아야야…… 하지만 이렇게 멀쩡한데?’
믿기 힘든 사실에 볼을 꼬집어 봤지만, 통증은 여실히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했지만 절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다급하게 다시 밴시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자토스는 어떻게 된 거지?”
이상했던 점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아자토스의 행방이었다.
이곳이 지옥이었고, 밴시는 그들의 군주가 바로 아자토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 아자토스와 마주쳤고, 상대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그가 이곳 지옥이 아닌 그곳에 있었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아자토스 님은……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그 결과 지옥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군주의 부재로 많은 이들이 군단을 빠져나갔고 시도 때도 없이 수많은 사건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군주님이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갑자기 사라져?”
밴시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섭고 섬뜩했지만, 생각에 빠진 듯 슬피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옥이 혼란에 빠지던 사건이 터지던 그런 것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아자토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말했고,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이 변한 것과 연관이 있을까?’
세상이 변했던 그 날, 인간 세상엔 수많은 몬스터들이 갑자기 등장했다.
모두가 혼란에 빠지고 사건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갑자기 생겨난 몬스터들.
그들 역시 어디에선가 나타났을 것이고, 원래의 살던 세계가 있었을 것이다.
추측건대 아자토스, 그 역시 그가 살던 이곳 지옥에서 인간 세계로 소환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럼 나 역시 강신우의 모습을 한 그자에 의해 이곳으로 소환된 것은 아닐까?’
죽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기에 조심스럽게 추측한 내용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사용하던 힘에 의해 빨려 들어갔고, 그 결과 이곳으로 소환된 것이었다.
아자토스가 이곳에서 인간세계로 소환되었다면, 그 반대로 인간세계에서 이곳으로 소환 역시 가능할 터.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터무니없는 생각이라 보이지는 않았기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자토스가 아니다. 너도 그것 정도는 알고 있어 보이는데?”
혼란스럽던 생각이 정리되자 다시 밴시를 향해 물었다.
대화를 몇 차례 주고받은 결과, 그녀는 나를 아자토스라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를 보며 새로운 지옥의 군주라 칭하고 있었기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새로운 군주시여. 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
언데드의 육체도 아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물어본 질문에 밴시는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녀의 오해가 달갑진 않았기에 당장에라도 반문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아자토스의 뒤를 잇는 자, 새로운 지옥의 군주가 아니라고 밝힌다면 밴시가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아직도 꽁꽁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하수인들을 보며 참아냈다.
“이곳, 그래 지옥에 온 뒤 수많은 몬스터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군주를 대하는 태도라기엔 의문이 드는데?”
밴시의 태도에 어느 순간부터 하대하는 듯한 말투로 바뀌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듯 그녀는 더욱 자세를 낮추며 대답했다.
“군주님께 사죄드립니다. 어리석은 존재들의 만행이니 너그러운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너는 어째서?”
“저는 아자토스 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살피던 시종입니다.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군주님에게 느껴지는 군주의 증표를.”
“군주의 증표?”
“예, 군주님의 목 뒤편에서 느껴지는 그 증표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밴시가 말하는 증표란 아무래도 목 뒤에 새겨진 문양을 말하는듯했다.
아자토스의 저주에 의해 언데드의 육체로 변한 뒤, 아자토스를 물리치고 저주가 해제되며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생긴 바로 그 문양이었다.
‘아자토스의 저주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나?’
갑자기 생겨나 지워지지도 않는 그 문양에 단순히 아자토스의 저주가 아직 남아 있을 것이라 추측했었다.
하지만 분명 밴시가 말하는 것은 이 문양을 가리키며, 그 문양을 군주의 표시라 칭하고 있었다.
‘군주의 표시라…….’
잠시 눈을 감으며 상황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목에 생겨난 이 표식, 그것은 아자토스를 처치한 후 ‘죽음을 거부하는 자’스킬과 함께 생겨난 것으로 보였다.
정확히는 아자토스를 처치한 프랑켄을 물리친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이 표식이 지옥의 군주를 뜻하는 징표라면 어째서 나에게 새겨진 것일까.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아자토스를 물리친 프랑켄을 통해 나에게까지 돌아오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또한, 이 문양은 나뿐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현, 그녀 역시 목 뒤에 같은 문양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녀 또한 아자토스와의 전투에서 활약을 했다고 들었어.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 내 목에 이 징표가 나타난것일까? 하지만 심현섭은? 그도 활약을 했다고 들었는데? 아자토스에게 직접적인 공격보다 아군을 보호하고 텔레포트에 힘을 썼기에 징표가 생겨나지 않은 걸까?’
머릿속에 생겨난 의문은 끊임없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났지만, 결론을 내리긴 힘들었다.
어찌 됐든 주현과 내 목에 생겨난 문양은 아자토스의 저주가 남은 것이 아닌 지옥의 군주를 칭하는 징표였다는 것이었다.
“너는 이 징표를 느낄 수 있는 건가?”
“예, 군주시여. 아직 그 힘이 온전하진 않으나 똑똑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에 나 외에 다른 징표가 있을 텐데? 그것 또한 느낄 수 있나?”
“……!”
밴시는 이 문양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듯했다.
아직 완전한 힘이 발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신경이 쓰였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밴시가 이 기운을 느낄 수 있다면 같은 문양을 가지고 있는 주현의 기운 또한 느낄 수 있을 터.
위험해 보이지만 눈앞의 밴시를 이용한다면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곧바로 물어본 질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밴시는 질문에 깜짝 놀란 듯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 역시. 군주님은 전부 알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군주님의 징표 외에도 다른 징표가 느껴집니다.”
밴시는 고개를 바짝 내리며 사죄하듯 말을 이어갔고, 그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군주의 증표들에 당황했나 보군. 둘 중 저울질을 하려 했던 것인가?’
하지만 밴시의 의도가 어떻든 주현을 찾아야 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밴시를 보며 다시 물었다.
“상관없다. 부탁할 게 있다. 고개를 들어라.”
“저, 저의 무례함을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뭐, 그. 그래.”
아래도 상관없었지만 밴시는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을 자책했다.
용서하겠다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들며 서서히 다가왔다.
“뭐, 뭐야?”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역시 새로운 군주님은 당신이었습니다.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공중에 둥둥 떠 있던 밴시는 땅으로 내려와 무릎을 공손하게 꿇으며 정식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쩔 줄 모르며 멀뚱멀뚱 서 있던 그때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밴시가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밴시 소환 Lv1 – 죽음의 시종 밴시를 소환합니다.]
‘밴시 소환?’
밴시가 충성을 맹세하자 그로인해 새로운 스킬이 생성된 것이었다.
“그보다 징표를 가진 그녀를 찾아야 한다. 안내해 줄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군주시여.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
여전히 무릎을 꿇은 밴시를 보며 그녀의 능력을 이용해 주현을 찾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약간 당황한 듯 보이는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였다.
“징표를 느낄 수 있으나, 그 위치가 천둥벌거숭이 녀석들의 본거지에 있습니다.”
“그래? 그곳으로 안내해라.”
“……그게. 그들은 저희의 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