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49화
“잠깐! 멈춰!”
외침과 동시에 모든 언데드 하수인들이 이동하던 발걸음을 멈춰섰다.
해골 병사 7마리와 구울 5마리, 스켈레톤 2기와 역병 좀비 1마리까지 총 15마리의 언데드들이 명령에 복종한 것이었다.
직접 소환한 언데드 하수인들이었으나 혹시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자토스의 저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네크로맨서의 역할을 수행하던 당시에는 나 역시 언데드인 해골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온전한 인간.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에 의해 이들을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이기에 걱정이 앞선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여서 다행이긴 하지만.’
당장 해골 병사부터 스켈레톤까지 소환한 모든 하수인들은 죽음도 불사하며 명령을 착실히 이행했지만 안심할 순 없었다.
레벨이 부족하여 아직 소환하기 힘든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자드.
지금의 하수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인하고 든든한 존재들이었으나, 그만큼 위험이 될지도 몰랐다.
언데드에서도 상위종으로 분류되는 그들은 단순히 육체적인 성장만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성장.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심할 경우엔 상관에게 반기를 들기도 하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이미 몇 차례 경험한 바 있었으니 그 사실에 변화는 없었다.
자신을 소환했다 한들 지금 나의 모습은 인간이었고 특히나 언데드, 그중에서도 기사의 자부심을 가진 데스 나이트가 덤벼들진 않을까 걱정이 들어온 것이었다.
‘……말만 잘 들어준다면 문제가 없을 테지만.’
아직까지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의 레벨이 충족되지 않았기에 섣부른 걱정일 수 있었으나 만약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자드가 하수인으로 들어온다면 엄청난 전력 강화가 되겠지만 반대의 경우 오히려 위협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양날의 검과 같은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보다. 일단 여기에 자리를 잡는다. 너희들은 퍼져서 사주 경계하도록. 몬스터가 다가오면 신호를 보내라.”
달그닥. 달그닥.
복잡한 머릿속의 생각을 날려 버리며, 일단 충실한 하수인들을 향해 외쳤다.
어느새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자리를 잡으며 명령한 것이었다.
애초에 언데드들은 잠을 자지 않는 존재들이었기에 부담없이 주변의 경계를 맡길 수 있었다.
이곳은 어디에든 위험 요소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하수인들의 존재는 큰 도움으로 다가왔다.
전투에서 뿐만이 아닌 밤에는 이런 식으로 이들을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육체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자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한들 잠을 청하는 동안은 무방비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기에, 언데드 하수인들이 사방에 넓게 진을 치며 몬스터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에-취! 이곳 날씨는 적응이 안 되는구만.”
살을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에 재채기를 하며 몸을 움크리며 앉았다.
땅은 온통 불길로 가득하며 하늘은 칠흑으로 가득찬 곳.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기온을 통해서가 유일했다.
낮에는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더움을 넘어 뜨거울 정도, 스킬의 효과가 아니었다면 이미 온몸이 타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반대로 밤에는 엄청난 기세로 온도가 떨어졌고, 입에선 김이 나올 정도였다.
극심한 기온과 날씨의 변화는 극과극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응?”
또한 낮과 밤의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녁이 되면 나타나는 몬스터 또한 달라졌다.
대부분 낮에 만날 수 있었던 몬스터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밤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녀석들이 모습을 비추는 것이었다.
쉬이이이이. 쉬이이이익.
바람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모습을 보이는 바로 저것이었다.
공중에 둥둥떠 있으며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반투명한 생명체.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을 구분하긴 어려웠지만,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는 그것들은 유령이라 부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타탁. 탁. 탁.
“됐어, 걔들은 신경 쓰지마.”
어김없이 밤이 되자 유령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을 확인한 건 언데드 하수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을 몬스터로 인식한 하수인들은 삐걱거리며 신호를 보내왔고, 그들을 제지한 것이었다.
처음 유령을 마주했을 땐 흉측하게 생긴 모습과 풍기는 분위기에 각종 무기들을 이용해 총공격을 펼쳤지만, 소용없었다.
언데드 하수인들의 공격은 물론 마탄조차 그들의 몸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유령들의 공격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협을 해오거나 공격을 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몸 또한 우리를 그대로 통과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유령을 마주했고, 은탄을 이용해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위협이 되지는 않으니. 저 녀석들 빼고 다른 몬스터가 나타나면 신호해!”
위협이 되지 않는 유령들을 살피며 외치자,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던 언데드 하수인들이 일제히 다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유령들 역시 우리를 신경쓰지 않는 듯 유유히 지나다닐 뿐,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 * *
“쓰으읍. 왜 이렇게…… 추워?”
어느새 잠들었는지 눈을 감고 있던 그때 심각할 정도의 추위에 정신이 들었다.
몸을 웅크리는 것으로 참을 만했던 추위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다가온 것이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뜨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대체…….”
서서히 눈의 초점이 돌아오는 순간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확인하자 보이는 것은 유령들.
어마어마한 수의 유령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아무리 위해를 가하지 않는 유령들이었으나, 셀 수 없을 정도의 그 수는 위협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젠장.”
철컥.
추위가 심해진 것 또한 그들 때문인지 확실하진 않았으나 왠지 모를 위압감에 바로 총구를 들어 올렸다.
은탄을 장전하며 유령들을 정리하려는 순간.
눈앞의 허공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방에 가득한 유령들과 비슷하지만, 확연하게 다른 거대한 무언가.
[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아주 느린속도였지만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그것이 나타나자 주위의 유령들 또한 동요하기 시작했다.
유유히 떠다니던 그들은 정신없이 빠른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듣기 싫은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은 물론.
수 십의 유령들이 내지르는 소리에 고막이 터질것만 같았다.
“으윽, 뭐야? 정보 확인!”
[밴시]
[실체가 없는 모습으로 어린 소녀, 품위 있는 귀부인, 음침한 노파 형태를 보이며 나타난다고 한다. 죽음을 울어서 예고한다고 하며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은 자 중 살아남은 이는 없다고 전해진다. 한기와 우는 소리를 이용해 공격한다.]
“밴시? 갑자기 한기가 서려온 건 저 녀석 때문이었나?”
갑자기 나타난 밴시에 의해 주위의 유령들은 사정없이 날뛰었고, 날씨가 추워진 것 역시 이유는 같아 보였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유령들과는 대조적으로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 움직이지 않는 듯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끼끼끽.
“…….”
공중에 떠 있는 밴시의 몸집은 일반적인 유령보다도 배로 거대했고, 풍기는 위압감 역시 비교할 수 없었다.
주변을 경계하던 해골 병사와 구울, 스켈레톤과 역병좀비 역시 그것을 느낀 듯 했다.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움직인 하수인들은 밴시에게 달려든것이었다.
자신의 갈비뼈를 휘두르고 이빨, 손톱 등을 이용해 공격을 시도했지만 역시나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반투명한 밴시의 육체 또한 유령들과 마찬가지로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은 것이었다.
“…….”
흐릿한 육체 탓에 그 얼굴을 자세히 살피기는 어려웠지만, 밴시의 표정에 변화가 있었다.
자신을 공격하는 언데드 하수인들과 정신없이 날뛰는 유령들이 거슬린 듯 천천히 주변을 살피던 그녀의 양손이 조금씩 움직였다.
“으윽…….”
밴시의 손이 들어 올려진 순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매서운 눈보라가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살을 파고드는 추위에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은 눈보라는 주변을 살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불어왔다.
움직이면 부서질 것 같은 매서운 공격에 어쩌지 못하고 있던 그때 밴시가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렸다.
“꿀꺽.”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는 광경.
일순간 조용해진 일대에 넋이라도 나간 듯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모든 언데드 하수인 뿐만이아닌 공중에 떠 있던 유령들까지 전부 그 상태로 얼어버린것이었다.
일대를 덮친 밴시의 공격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나와 그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얼려 버렸다.
“…….”
주위가 정리되자 밴시는 만족한 듯 그제야 다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1미터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지만, 마주한 채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은 섬뜩했다.
철컥.
다른 방법 없이 바로 총기를 장전하며 그녀를 조준한 순간.
쩌저저적.
방아쇠를 당겼지만 은탄은 발사되지 않았다.
밴시가 재빠르게 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그와 동시에 총구를 포함한 총기의 절반 이상이 꽁꽁 얼어붙어 버린 것이었다.
원격제어를 하고 있는 총기들엔 은탄이 장전되어 있지 않았기에 어쩌지도 못한 채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다가온 밴시는 바로 코앞에 멈춰섰다.
“제길.”
눈앞에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훨씬더 거대하고 흉측했다.
일그러진 얼굴과 존재하지 않는 눈동자로 인해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으며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조차 하기 어려웠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실감에 자조하던 그때 그녀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격을 해오리라 생각하며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하려던 순간 들려온 그 소리는 귀를 의심케했다.
“새로운 지옥의 군주시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 소리에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여전히 공중에 뜬채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엎드린 밴시의 모습이었다.
‘지옥의 군주라면?’
대답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머리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던전에서 마주한 몬스터 ‘본버닝’이 떠오른것이었다.
그는 분명 아자토스의 부하이자, 지옥의 군주를 모신다고 하였다.
지옥의 군주란 곧 아자토스를 뜻하고 있었다.
“아자…… 토스?”
저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에 밴시는 반응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끔찍한 얼굴을 한 그녀는 다시 한번 말을 이어갔다.
“예, 맞습니다. 저는 선대부터 이어진 군주님을 모시는 시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