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47화
“시체 흡수…….”
불타고 있는 비버를 닮은 몬스터의 곁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며 읊조렸다.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음성과 펼쳐지는 홀로그램은 설마 했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불타는 비버의 시체를 흡수했습니다.]
[시체 흡수의 효과로 화염 내성이 1% 증가합니다.]
흉물스럽게 쓰러져 있던 시체는 손에 빨려드는 모양새로 사라졌고,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얻게 된 것이었다.
이미 펜던트가 있었기에 화염 내성이라는 효과가 의미는 없었으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데드 종족이 아닌데 어째서…….’
시체 흡수는 과거 아자토스의 저주에 의해 언데드 몬스터의 육체를 얻게 된 후 줄곧 사용했던 스킬이었다.
말 그대로 시체를 흡수함으로써 시체가 가지고 있던 일부 능력과 새로운 스킬, 그리고 기억의 조각을 얻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그로 인해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얻고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우연히 알게 된 기억의 조각으로 아자토스의 계략까지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시체를 흡수한다는 그로테스크한 능력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그 효과나 효율은 틀림없이 엄청난 것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시체 흡수 LV2 (특별) - 마정석에 각인된 스킬. 언데드 종족만이 사용 가능]
하지만 마정석에 각인되어 있는 이 스킬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자토스의 저주를 해제하고 인간의 육체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언데드 종족이 아니었고, 그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인간으로 돌아온 후 몇 번이나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시도해 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저 언데드, 해골의 육체에서 돌아온 것만으로 만족하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것을 포기했던 시체 흡수였던 것이다.
“……시체 흡수! 시체 흡수!”
[불타는 비버의 시체를 흡수했습니다.]
[시체 흡수의 효과로 화염 내성이 1% 증가합니다.]
[불타는 비버의 시체를 흡수했습니다.]
[시체 흡수의 효과로 화염 내성이 1% 증가합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시체 흡수는 해골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육체를 하고 있는 지금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이 가능했다.
주변에 쓰러진 불타는 비버들의 시체를 전부 흡수하며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었다.
“이것 때문인가?”
[죽음을 거부하는 자 Lv1-영혼을 태우는 불꽃의 효과를 상쇄합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의심이 가는 것은 있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
효과는 분명 영혼을 태우는 불꽃의 효과를 상쇄한다고만 적혀 있었지만, 이 스킬로 나타나는 오오라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손을 펼치며 확인하자 펼쳐져 있는 얇은 막.
손뿐만이 아닌 온몸에 퍼져 있는 이 기운은 분명 이곳에 가득한 화염들에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풍기는 느낌이나 분위기는 분명 아자토스의 그것과 같았던 것이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아자토스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가 보여주었던 강함을 부정할 순 없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분명 아자토스의 그것과 유사했고 언데드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조차 이 때문으로 느껴졌다.
사용하기엔 꺼림칙한 면이 분명 있었지만, 이미 경험해 본바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손 안의 무기고 Lv7-Lv8까지 필요코인 350,000 코인]
[방탄 피부 Lv5-Lv6까지 필요코인 85,000 코인]
[지치지 않는 체력 Lv8-Lv9까지 필요코인 100,000 코인]
[끈질긴 생명력 Lv7-Lv8까지 필요코인 80,000 코인]
[트롤의 생명력 Lv3-Lv4까지 필요코인 90,000 코인]
[죽음을 거부하는 자 Lv1-Lv2까지 필요코인 100,000 코인]
당장 코인을 이용해 스킬을 성장시킨다면 가장 높은 효율을 가져올 만한 스킬은 ‘내 손 안의 무기고’가 분명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보유한 코인의 양.
신현섭에게 전해줘야 할 5만 코인을 포함하더라도 당장 가진 코인은 10만 코인이 조금 넘을 뿐이었다.
‘내 손 안의 무기고’를 제외한 어떤 스킬이든 하나의 스킬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방탄 피부나 지치지 않는 체력, 끈질긴 생명력 중에 고르려 했지만…….”
이곳에 들어온 후 전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고,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어쩔 수 없이 스킬의 성장은 꼭 필요한 부분임이 분명했기에, 하나의 스킬을 성장하려 한 것이다.
무기고 스킬을 제외한 스킬 중 지금 당장 가장 높은 효율을 가져다 줄 스킬을 고민하며 생존에 유리하게 적용되는 방탄 피부, 지치지 않는 체력, 끈질긴 생명력 중에서 선택을 하려고 했던 것도 잠시.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을 100,000 코인 소모해서 레벨 2로 올려줘!”
고민할 것도 없이 스킬을 성장시켰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 Lv2-영혼을 태우는 불꽃의 효과를 상쇄합니다.]
“역시!”
10만 코인이 소모되며 눈앞엔 스킬이 성장했다는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동시에 몸을 감싸고 있던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의 효과 역시 변화가 생겼다.
예상했던 대로 언데드가 아님에도 시체 흡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거부하는 자의 효과였다.
몸을 감싸고 있던 아자토스의 기운은 더욱 존재감을 과시하며 강하게 느껴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 봐야 아자토스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지만.’
당장 느껴지는 온몸을 감싸고 있는 불쾌한 기운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강해졌다고 한들 상대한 적이 있는 아자토스와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느낌이 비슷한 정도일 뿐, 그 강력한 힘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스킬의 레벨이 낮아서겠지.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해.”
언데드 종족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해골의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와 비교하면 이 힘은 터무니없이 미약했다.
하지만 시체 흡수와 더불어 네크로맨서의 스킬들.
경험한 적이 있고, 활용한 적이 있는 이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다.
* * *
“크흐흐, 오랜만이구나 일어나라 해골 병사! 구울!”
한쪽 손을 높게 쳐들며 외치자 죽은 몬스터의 시체는 검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수십 개의 뼈들이 삐걱거리며 일어섰고, 다른 한편에선 살덩어리들이 뭉쳐졌다.
“딱…… 딱…… 따…… 딱.”
“크르르르.”
명령을 하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천천히 걸어와 앞에 멈춰선 몬스터들.
각각 뼈로 이루어진 해골 병사와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구울이 자리했다.
괴이하고 끔찍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녀석들이었지만, 한편으론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음, 당장은 이 녀석들이 한계인가.”
아자토스의 성채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해골 병사와 구울들.
죽어도 죽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나는 녀석들은 애용하던 부하들이었다.
이외에도 해골의 육체를 가지고 있던 시절 부하들은 스켈레톤, 역병 좀비, 데스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자드가 있었지만 그들을, 소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스켈레톤 소환!”
[죽음을 거부하는 힘이 미약하여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시도를 해보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홀로그램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스킬이 존재함에도 소환되지 않는 몬스터들.
그 이유는 어림잡아 추측할 수 있었다.
“결국, 스킬의 레벨이겠지.”
죽음을 거부하는 힘이 무엇인지 정확이 파악하기는 어려웠으나, 결국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의 레벨이 오르면 해결될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당장 레벨2의 죽음을 거부하는 자로는 해골 병사와 구울이 한계.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인 스켈레톤과 역병 좀비, 더 높은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스킬의 성장이 필요했다.
“어디 보자 한 마리당 110코인 정도인가. 스킬 레벨업당 10만이라 치면…… 909마리…….”
눈앞에 쓰러진 몬스터들을 통해 얻은 코인은 평균적으로 110코인 정도였다.
한번 스킬을 올리는데 필요한 코인이 10만 코인라 치면 잡아야 하는 몬스터는 910마리가량.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요구하는 코인의 수 역시 같이 늘어날 게 분명하니 한 번의 레벨을 위해서 1,000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말문이 막힐 정도의 수였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네크로맨서의 힘을 이용할수록, 그 힘이 더욱 강해질수록 발휘되는 위력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다수의 부하를 거느리며 전투를 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은 주현을 찾는 것을 목표로하고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나아가야겠지.”
그렇다고 한들 이곳에서 몬스터들만 사냥하며 스킬을 성장시키는 데 온 힘을 쏟을 수는 없었다.
당장의 목표는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주현을 찾는 것과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내는 것,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 다시 돌아가는 것이 중점이 되어야 했다.
스킬이야 언제든지 성장시킬 수 있었기에 당장 주현을 찾아 나서며 이동을 시작했다.
* * *
“후우…… 보면 볼수록 이상한 곳이야.”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현을 찾아다니며 이동한 지도 벌써 3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온통 화염으로 가득한 이곳이 적응될 때도 되었건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쩍. 쩌저적. 꿀꺽. 꿀꺽.
불에 타 심밖에 남지 않은 나무의 꼭대기에서 채취한 열매를 가르자 출렁거리는 액체가 가득했다.
그것을 단숨에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며 잠시 자리에 앉았다.
원래의 모양이 무엇이었는지 열매 또한 까맣게 타버린 이것은 몬스터들이 식수를 해결하는 것을 관찰하며 알게 된 것이었다.
열매 안에는 가득 찬 액체를 마시는 것을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으나 갈증을 참기 어려웠고, 마셔본 결과 약간 시큼할 뿐 물과 다름없었다.
“몸에 이상도 없는 것 같으니 괜찮겠지.”
신우가 있었다면 섭취가 가능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었겠지만, 혼자 있는 지금 그럴 방법이 없었기에 직접 체험해 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불꽃으로 가득 찼다고만 생각되었던 이곳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곳에는 몬스터 외에도 각종 식물이나 동물 등의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모습이나 형태가 매우 독특하고 괴상했던 것이다.
불 속에서 생활하는 몬스터들이 강한 것은 물론, 그것은 식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보다…… 응?”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 그때. 저 멀리서 무언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시야석 반지를 끼고 있었기에 조그만 그것의 형상을 꽤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단순한 몬스터라 생각하기에는 그의 모습은 조금 독특했다.
인간의 형상과 같이 두 발로 달리는 그것은 온몸이 새빨갰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