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45화
“강신우…… 가 아니구나…….”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강신우.
하지만 그의 오른손엔 귀도가 들려 있었고, 그 분위기나 모습 또한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강신우의 느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확연하게 달라진 그는 천천히 바위에서 내려왔다.
천천히 걸어오는 그의 주위를 안개가 감싸 안았다.
마치 생명이라도 있는 듯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안개들이 그를 보호하듯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
이전과는 다른 선명한 붉은 눈동자를 가진 그를 보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마에 돋아난 뿔이며, 조금 자란듯한 키까지.
분위기뿐만이 아닌 외형적인 부분에서도 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입은 무거웠고, 대답은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철컥.
숲에 발길을 옮기는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황.
동료였던 그와 결국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않는다.’
그의 눈빛을 정면으로 바라본 것만으로도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지만, 애써 부여잡으며 티를 내지 않았다.
트롤킹을 단숨에 해치우는 그의 무력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고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느꼈던 자만심은 그가 보여준 압도적인 강함 앞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눈앞에 다가오는 그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어차피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곧바로 총구를 들어 올렸다.
탕! 탕! 탕!
피하지 못한다면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패턴을 알아본다거나 그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떠보는 공격 따위를 할 여유는 없었다.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푸른빛의 총탄은 총구에서 사정없이 뿜어져 나갔다.
쉬이이익.
탕!
탕!
탕!
탕!
뿐만 아니라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모든 총구에서도 동시에 그를 조준하며 마탄이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운 것이었다.
콰광쾅! 쾅!
그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일순간 퍼부은 마탄은 일제히 그를 향해 날아갔고,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숲의 연기와 더불어 폭발로 인한 연기가 그가 있던 자리에 가득 피어올랐다.
“통했나?”
“…….”
헛된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연기가 걷히며 드러낸 그의 모습은 작은 상처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검을 이용해 마탄들을 막아낸 듯 그의 자세에는 변화가 있었다.
“……젠장.”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모든 신경이 쭈뼛 서며 긴장이 올라왔고, 순간 온몸을 공포가 지배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양손으로 검을 집으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멸살(滅殺).”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엄청난 속도.
무섭게 달려오는 그를 향해 다시 한번 모든 총기를 난사했지만, 오히려 그는 모든 공격을 예측이라도 한 듯 단숨에 피해냈다.
동시에 그의 검에 모여드는 영혼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 형체마저 뚜렷하게 보이는 그것들은 그의 검에 붙들려 비명을 질러댔다.
“이런.”
그와 가까워질수록 끝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 없었다.
초반에 모든 공격을 쏟아부은 것은 그가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먼저 선수를 치려는 의도만이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와의 거리.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총기를 쓰는 특성상 거리가 떨어질수록 유리한 면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검을 휘두르는 그와 근거리 전투에서 맞붙어 이길 수 있으리란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했고, 그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다.
“…….”
마음의 준비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귀도는 머리 위에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단숨에 베어버릴 듯 날이 선 검엔 주저함이라곤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며 반사적으로 눈이 감기려는 그 순간.
슉- 슉- 슉- 챙-!
“……! 주, 주현 씨!”
강신우의 검을 막아내며 주현이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 든 레이피어는 그의 검을 단숨에 찌르며 쳐냈다.
예상하지 못한 듯 미간을 꿈틀거린 강신우는 잠시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늦지 않았나 보네요.”
“예, 예. 어떻게?”
“……연기 속에서 길을 헤매다 발견했습니다.”
강신우를 경제하듯 막아선 그녀는 어깨너머로 말을 건네왔다.
거대한 늑대무리에 모두가 떨어졌을 때, 그녀 역시 모두를 찾아 나섰고 우연히 안개 속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지만, 속도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그녀였기에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잠시 상황을 살펴보는 듯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다시 한번 말을 건네왔다.
“……저 검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강신우가 들고 있는 귀도.
이상하리만큼 좋지않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그 검을 보며 말한 것이었다.
“뒤에서 지원해 주세요. 앞은 제가 막겠습니다.”
“네.”
잠깐이지만 주춤한 강신우는 다시 공격을 해오려는 듯 자세를 고쳐잡았고, 그것을 간파한 그녀 역시 바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주현은 자신이 강신우를 막겠다며 후방 지원을 요구했다.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그녀의 강함은 이미 경험한 바 있었고, 믿을 수 있었다.
뒤에서 공격을 이어가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었기에 곧바로 대답하며 준비했다.
“목표는…… 저 검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또한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자신 역시 지금의 강신우에게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곧바로 간파한 것이었다.
2 대 1의 상황이었지만, 불리하다는 것을 파악한 그녀는 우리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신우가 들고 있는 검을 노리자고 한것이었다.
“……끈질기구나.”
“……!”
“…….”
“더 이상 놀아줄 시간 따위는 없다. 아자토스의 하수인들이여.”
그때 불쾌하리 만큼 어두운 음성이 울려 퍼졌고, 고개를 들자 말한 것은 강신우였다.
귀도를 들어 올린 그는 똑똑히 우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고,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옵니다!”
“……윈드 브레이크!”
짧은 말을 내뱉은 그의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
엄청난 기(氣)가 그의 몸에서 방출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옥이 있다면 이곳일까.
그는 순식간에 이곳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었고,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챙! 챙! 챙!
하지만 주현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임에는 틀림없었다.
아슬아슬하지만 그의 공격을 물 흐르듯 부드럽게 맞받아치며 모든 공격을 흘려보낸 것이었다.
때를 놓칠쏘냐.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가며 그의 빈틈을 노리며 공격을 이어갔고, 그것은 조금씩 효과가 나타났다.
‘공격을 리드하고 있어.’
집요하다고 느낄 만큼 그가 들고 있는 귀도를 향해 모든 총구를 집중시켰고, 그것은 주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공격을 맞받아치면서도 순간순간 들어가는 공격은 그의 오른팔을 향했고, 그것은 티가 날 정도였다.
자신의 귀도를 노린다는 것을 눈치챈 그는 어느 순간부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검을 든 손을 방어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고, 전투에서의 우위를 가져온 것이었다.
탕!!!
“……이야야얏!!”
그때 총구에서 튀어나간 푸른 마탄이 그의 팔을 스쳤다.
잠깐이었지만 반사적으로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오른팔을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주현의 레이피어가 놓치지 않고 그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엇!”
“……어쩔 수 없습니다.”
그의 동공은 커지며 자신의 가슴에 꽂힌 레이피어를 보며 놀랐지만, 저도 모르게 소리친 것은 그가 아니었다.
지금은 서로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지만, 동료인 그였기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판단한 주현의 공격에 놀라고 있자 그녀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너는 누구냐?”
그리고 주현은 그의 심장에 레이피어를 뽑지 않은 채 질문을 이어갔다.
그녀가 숲에 따라온 이유이자 궁금했던 그것들을 물어본 것이었다.
“쿨럭…… 아자토스의 하수인들이여.”
“어째서 우리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냐?”
피를 토해낸 그는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린 그녀는 기분이 상한 듯 검을 더욱 밀어넣으며 다시한번 강압적으로 질문했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그는 어떤 반항도 하지 않은 채 순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 아자토스와 같은 기운이 흘러나온다. 다른 이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내 눈은 속일 수 없지.”
“…….”
그가 말하는 아자토스의 기운.
그것이 뜻하는 바를 유추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녀와 나의 공통점이자 아자토스와의 연결고리, 그것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목 뒤에 생겨난 알 수 없는 문양.
아자토스의 저주에 의해 언데드 몬스터에서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 생겨난 그 문양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녀 역시 이제는 확신한 듯 다른 질문을 이어갔다.
“너는 누구지? 아자토스와는 어떤 관계냐?”
“흐흐흐. 하하하핫!”
“……?”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녀는 흥분한 듯 그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무엇이 그리 웃긴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 웃긴 거지?”
“크크크크. 감히 네놈들이 그따위 것들을 묻는 것이냐?”
“…….”
슈우욱.
고개가 넘어가게 웃어 보이던 그는 정색하며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하며 물었다.
더 이상 대화를 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주현은 분노하며 심장의 레피어를 뽑아냈다.
동시에 그의 가슴에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그녀가 레이피어를 꽂아 넣으려고 하던 그때.
“놀아주는 건 여기까지라고 했을 텐데?”
“……으윽.”
그는 검을 들지 않은 맨손으로 그녀의 레이피어를 막아냈다.
단지 두 개의 손가락을 이용해 간단히 날을 잡아낸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보고 있었다.
“너희들을 벌하고 싶지만, 그것은 지옥의 군주에 대한 예가 아니겠지.”
“……지옥의 군주?”
그가 말하는 지옥의 군주.
그 칭호에 대해서는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적이 있었다.
문득 떠올린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것은 바로 던전에서 만났던 보스 몬스터 ‘본버닝’이었다.
그가 말하던 지옥의 군주는 분명 아자토스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 또한 마찬가지로 보였다.
말을 끝맺힌 그는 자신의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에겐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처는 이것이 전부다. 하수인들이여.”
그리고 그의 검엔 엄청난 수의 영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광경에 넋이 나가 있는 순간 그가 검을 땅에 내리꽂았다.
“……이, 이게 무슨!!”
그가 귀도를 내리꽂은 순간 땅은 검은 물결로 넘쳐났고, 영혼들로 가득 찼다.
넘쳐날 듯 헤엄치는 영혼들은 주현과 나를 붙잡으며 그곳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