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42화
“그, 그럼 서울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는 게 아니라…….”
“맞습니다. 화이트에겐 그들 역시 그저 도구나 수단에 지나지 않아요. 목적이 달성되기까지 필요한 노동력에 지나지 않는 거죠. 마치 가축을 키우듯…… 지금 당장은 안정된 삶과 자유를 보장하지만, 자신들의 목적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잡아먹히겠군요.”
주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가 말하는 화이트의 실체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악랄했다.
그들이 서울 전역에 벽을 세우고 몬스터들에게서 지켜주는 듯한 행위.
그것들은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표면상의 이유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었지만, 실체는 자기 자신들을 보호하고 계획이 실행되는 동안 필요한 가림막에 불과했다.
사람들을 통제하고 일거리를 주며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듯싶었지만, 결국 마나스톤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 모인 후 마지막에 희생될 자원으로 삼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미쳤군.”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 다른 차원의 그곳이 어떤 곳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생각이나 방식, 과정은 결코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계획에 그저 말문이 막혀 욕지거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수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하고 있어요. 그들은 생각보다 더 교활한 녀석들입니다.”
“……그렇게 보이네요.”
그녀는 화이트의 행태를 차마 입에 담을수 없었는지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지만 그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 그들은 대피소를 운영한다는 정보를 퍼뜨려 사람들을 모았고, 이제는 마나석과 스킬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단순하게 본다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행동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나스톤의 에너지가 될 사람들의 영혼이었다.
하지만 사회 시스템이 망가지고 도시가 붕괴한 지금 뿔뿔이 흩어진 인간들의 영혼을 모으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마나를 이용하고 스킬을 활용하게 하여 군집을 이루게 만든다.
점점 모여드는 사람들을 마을을 이루고 더욱 나아가 도시로 발전해 있을 때, 그들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화이트는 귀찮게 찾아나서는 것이 아닌 사람들 스스로 모여들게 만들고, 그들의 영혼을 쟁취할 계획을 이미 실행하고 있었다.
‘대피소가 없었던 이유도 설명이 되는군.’
과거 화이트의 로고가 찍힌 안내도를 따라 대피소를 찾아 나선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곳 어디서도 대피소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자면 그곳에는 분명 대피소가 존재했을 것이다.
‘이미 화이트에 의해 사라졌던 거였어.’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화이트에 의해 대피소에 모인 이들 전부 마나스톤의 제물이 돼버린 이후였을 것.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진 후 도착한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 리 없었지만, 지금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러한 끔찍한 계획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지 상상만으로 토악질이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 함께하자는 것은 화이트를 공격하는 데 참여해 달라는 의미겠군요.”
“예, 맞습니다.”
주현과 김낙현, 강성곤이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지만 이내 정신을 다잡으며 다시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들이 했던 제안에 대해 다시 확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
“그들의 정체는 분명 충격적이고 없애야 할 존재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화이트라는 조직의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요. 저희가 함께한다고 해도…….”
심각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들을 보며 차마 말끝을 흐리며 끝맺지 못했다.
그들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생각됐다.
목적이 어떻든 화이트는 작은 마을이나 도시가 아닌 서울 전체를 통제하고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보통의 인원으로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기에 그 규모 또한 상당할 터.
또한, 사람들에게 마나석의 존재를 알려주고 스킬을 활용법을 알려준 이들이었다.
그 수준이나 강함 역시 현저하게 차이 날 것은 분명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한다고 해도 그 차이를 좁히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 자네 말이 맞네. 규모에 있어서도 힘에 있어서도 그들과 큰 차이가 날 것이네.”
집중하며 듣고 있던 그들은 곧바로 그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한 듯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침묵을 유지하던 그들 중 먼저 대답해 온 사람은 김낙현이었다.
“……어떤 계획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무리 용병 일을 하고 있는 이들 전부와 우리가 힘을 합쳐도 거대한 화이트에 대항하기란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그야말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계획이라…… 당연히 있네.”
“어떤겁니까?”
“자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대충 상상이 가네. 화이트와 정면으로 붙게 된다면 가능성이 없겠지. 물론.”
“그럼?”
“우리의 목적은 화이트가 아니네.”
“……?”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나스톤이라네.”
“마나스톤을 노린다는 말입니까?”
“주현 님이 말했다시피, 서울 중심부에는 화이트의 본거지가 있네. 그곳에 있는 마나스톤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네.”
“마나…… 스톤을 파괴한다? 그럼 어떻게 되는겁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주현의 눈치를 살폈고, 말해도 된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답했다.
그들의 계획, 그것은 모든 원흉이자 사건의 중심인 마나스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다라…… 그건 우리도 알 수 없네.”
“……그게 무슨.”
“마나스톤으로부터 나타난 변화들이었으니. 그것을 파괴한다면 우후죽순 생겨났던 몬스터가 사라질 수도 있고, 마나의 이용 또한 불가능해질 수도 있겠지.”
“확실한 것은 아니군요.”
“확실한 게 어디 있겠나. 마나스톤을 파괴한다 해도 몬스터는 여전히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
“…….”
“다만, 화이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겠지. 영문도 모른 채 마나스톤에 희생되는 사람들 역시 없어질 것이고.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군요.”
진지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인 그의 모습엔 진정성이 였보였다.
그가 말하는 목적과 방향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 대답은 충분하지 않았다.
“마나스톤을 파괴할 수 있는겁니까?”
단순히 마나스톤을 파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과 전면으로 붙지 않는다 해도 결국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마나스톤은 서울의 중심, 즉 화이트의 본거지에 있다고 했고 그것은 곧 화이트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결국, 문제로 삼았던 수적 열세와 힘의 차이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서울 주변에 있다던 몬스터 역시 문젭니다. 더욱 강력한 녀석들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자네 말이 맞네. 죽은 도시라 불리는 그곳엔 강한 몬스터들이 수없이 많이 포진해 있어. 아무래도 그 원인은 마나스톤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더욱 노출되서 그런 것으로 보고 있네. 서울까지 접근하는 동안 그들을 피하긴 어려울 걸세.”
“방어벽을 통과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는 것 역시 무리가 있구요.”
“흠…….”
계속해서 무언가 말하기를 피하는듯한 느낌을 주던 그는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결국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였다.
“자네에겐 비밀로 하려고 했건만, 어쩔 수 없겠구만.”
“……?”
“사실 이 계획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뿐이 아니라네.”
“누가 또 있는겁니까?”
“흠…… 자네가 말한 방어벽이며, 이동 문제 모두 텔레포트를 이용할 생각이라네.”
“……심현섭? 단순한 마을 간의 거래가 아니었군요.”
“허허허. 말하지 않았는가 동맹이라고.”
그들이 숨기려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심현섭의 존재였다.
지금껏 단순한 마을 간의 거래라 믿고 해왔던 모든 행위는 그들이 화이트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적 동맹을 위한 것이었다.
일부러 속이려는 것은 아니었고, 어쩔수 없는 상황이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서, 설마…… 그가 우리를 의도적으로 이곳으로 보낸겁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
“허허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네. 자네들이 아니면 이 위험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능구렁이 같은 영감같으니.”
모든 것은 그의 계획이었고 보기 좋게 넘어간 것이었다.
“그럼 두 마을이 전부인 겁니까?”
“아닐세. 인근의 마을들은 전부 우리와 함께해 주기를 약속했네. 심현섭 그분 덕분이지.”
“…….”
“그의 노력으로 우리와 함께할 인원들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네. 흠흠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는 개구리 수인들 역시 우리와 함께해 주기로 동맹을 맺었네.”
“……개구리 수인? 설마? 종수?”
“맞네. 자네와 함께 온 개구리 인간. 그 역시 심현섭 그분과 이야기가 끝났다고 하더군. 자네가 누워 있는 동안 우리와 동맹을 맺기로 했네.”
“…….”
“이해할 거라 믿네. 우리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보니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네. 하하핫.”
더욱이 이어지는 그의 말에 배신감은 가중되었다.
우리와 줄곧 함께하던 개구리 인간 종수 마저 그러한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어떤가 자네도 우리와 함께해 주겠는가?”
민망한 듯 한바탕 웃어보인 그는 다시 자세를 고쳐않으며 물어왔다.
일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바뀐 그는 동맹의 의사를 물어왔다.
“후우…… 제가 여기서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음…….”
“비밀 유지를 위해 저를 처리하기라도 하는겁니까?”
“아닐세. 아쉽기야 하겠지만. 어쩔수 없겠지. 자네가 어디 가서 지금의 이야기를 떠벌릴 것이라 생각은 않네. 계획은 전부 예정대로 진행되겠지.”
“……그렇군요.”
한숨을 내쉬며 혹시나 하여 그들을 떠봤지만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순식간에 들어온 많은 정보에 복잡해진 머리는 지끈거렸고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닌걸로 보입니다. 동료들과 상의를 좀 해보겠습니다.”
“음…… 알겠네. 그게 맞는 거겠지.”
타닥타다다다.
최대한 정중하게 고민할 시간을 달라 말하였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빠르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문이 벌컥 열렸다.
“허억. 허억. 이, 이봐! 개굴!”
“조, 종수 씨! 여긴 어쩐 일로?”
“시, 신우가 이상하다! 개굴!”
“……!”
거칠게 문을 열어 젖힌 것은 개구리 인간 종수.
쉬지 않고 달린 듯 거친 숨을 몰아쉰 그의 말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