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40화
주현의 목덜미에는 동그란 원과 그 안을 메운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 선으로 이루어진 그 문양은 낯설지 않았다.
“저, 저도 같은 문양이 있습니다.”
흥분하며 내보인 목덜미에는 그녀와 같은 모양의 문양이 자리했다.
어느 순간 생겨난 그것이었지만 아무리 원인을 생각해 보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지우려고도 해봤지만, 문신처럼 새겨진 문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특별히 해를 끼치거나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연속되는 사건과 사고에 자연스레 잊고 있었던 문양이 그녀의 목덜미에서 발견됐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 문양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역시 그렇군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같은 문양에 저도 모르게 흥분하며 다그치듯 물었지만, 그녀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 올린 머리카락을 다시 내려놓은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민혁 씨도 이 문양이 갑자기 생났나 보군요.”
“네, 맞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알고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돌아온 것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그 문양이 목덜미에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마주친 적이 더러 있었으나, 이렇게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조차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째서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와 나만이 이런 문양이 생긴 것인지.
우리에게 있는 공통점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 문양이 생겨난 시점이…….?”
“……네. 언데드와 전쟁이 끝난 직후입니다.”
“…….”
“…….”
설마설마하며 물었지만, 그녀 역시 문양이 생긴 시점 또한 같았다.
모든 단서가 튀어나오자 서로 알아챈 듯 눈을 마주쳤고,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그녀와 내가 가진 공통점.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단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아자토스의…….”
“……저주.”
서로의 생각이 일치한 듯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 있던 이들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지끈거려오는 머리에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떨궜다.
‘저주…… 아자토스의 저주…….’
생각할수록 치가 떨려오는 그 이름이었지만 달리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주현과 나 사이의 공통점.
그것은 아자토스의 저주를 받아 언데드 몬스터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아자토스의 저주가 풀리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뒷덜미에 이 알 수 없는 문양이 생겨났다.
그것 외에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저주는 풀렸는데 어째서 문양이…… 설마…….”
“아직 끝나지…….”
“됐습니다. 거기까지 하죠.”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말을 끊어냈다.
순간적으로 언데드 몬스터였던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심장도 피부도 없던 그때의 경험을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자토스의 저주가 끝나지 않았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의견에 반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진실인 양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도 없었다.
지금의 상태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멀쩡했고, 언데드의 기운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자토스의 저주가 남아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멀쩡했던 것이다.
“혹시 다른 변화가 있습니까? 아자토스와 관련될 만한…….”
“……네.”
“……어떤?”
“스킬이 생겼습니다.”
“……!”
혹시나 다른 특징이 있는 것일까 그녀를 응시하며 물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
“……젠장.”
그녀가 꺼낸 말은 주위의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듯 생소한 표정을 지었지만.
단번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죽음을 거부하는자 Lv1 - ?]
그것은 나에게도 생겨났던 효과를 알 수 없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이 또한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 이후 생겨났던 것이었고, 그녀 역시 같은 스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더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주현 씨도 그 스킬의 효과나 설명이 표시되지 않는 겁니까?”
“네.”
이제야 그녀의 의견을 완전히 인정하며 묻기 시작했다.
“혹시 해결 방안이나 이러한 현상들에 관해 더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아니요.”
“……그렇군요. 그래도 덕분에 의문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
“아자토스의 저주가 끝나지 않았다라……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네요.”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을 공유했지만, 그녀나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지금의 대화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아자토스의 저주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것 하나를 알게 된 것만으로 큰 의미였다.
알고 당하는 것과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당장은 어떤 해결 방법도 찾기 어려웠지만, 사고가 터지기 전에 대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 *
“저는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아서요.”
“저도 신우 씨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러 가볼게요.”
계속해서 오가는 심각한 이야기에 자리가 불편했던 것일까.
기회만 노리고 있던 이재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현지 역시 따라 일어섰다.
아무리 봐도 주위의 무거운 공기가 부담스러워 간다는 핑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굳이 그들을 잡아둘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혹여나 잡기라도 할까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자네는 용건이 더 남아 있나?”
“예. 사실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든 물어보게. 어떤 질문이든 자네에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겠네.”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자, 김낙현은 의아한 듯 물었다.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었기에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재혁과 현지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사합니다. 사실 화이트라는 조직? 기업?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
“……!”
어떤 것을 물을지 귀를 기울이던 그들의 표정은 일제히 놀란 듯 상기됐다.
내 입에서 화이트라는 단어가 나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한 그들의 반응이었지만, 그들은 이내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당황했네. 자네 입에서 화이트의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거든.”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보다 우리에게 물었다는 건 역시 무언가 들은 게 있는 모양이구만.”
“예, 심현섭 그분에게 살짝 들었습니다.”
“역시…… 그랬구만.”
먼저 입을 뗀 것은 김낙현, 강성곤은 슬며시 눈을 감을 감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듣기만 했다.
그의 말처럼 이들에게 화이트에 대해 물은 것은 심현섭 그의 정보 때문이었다.
마을 간의 첫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나에게 그 정보를 일부러 슬쩍 흘린 듯했지만, 거짓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래, 여기 있는 주현 님과 나 성곤이 이외에도 마을의 꽤 많은 인원이 화이트에 속해 있었다네.”
“그렇군요.”
“정확히 묻고 싶은 게 어떤 건가. 그리고 어째서 물어보는지 알 수 있겠나?”
김낙현은 평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입을 닫고 있는 주현과 성곤 역시 마찬가지였고, 주위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무거워졌다.
“다른 건 아닙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요.”
하지만 화이트에 대해 물어본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 지나지 않았다.
대피소를 알리던 지도, 구호 물품 심지어 마정석을 나눠준 사람들까지.
변한 세상에서 지금껏 생활에 오는 동안 계속해서 화이트라는 집단이 거론되고 연관되어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했던 그 단체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음…… 혹시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화이트 말입니까?”
“맞네.”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솔직히 수상히 여기고 있습니다. 왠지…… 세상이 변한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게…….”
화이트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그들이었기에 말하기가 조심스러웠지만 솔직한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한 것이었다.
겉으로는 변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보호를 해주는 것으로 보였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졌다.
마치 모든 것을 예견한 듯 기다렸다는 듯이 구호 물품을 뿌리고 대피소를 설치한 행위.
무엇보다 그 존재의 유무조차 알지 못했던 마나를 제어할 수 있게 해주는 마나석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사용법을 알려주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음…….”
대답을 들은 김낙현은 다시금 생각에 잠기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자네는 부모님을 찾기 위해 서울로 간다고 했던가?”
“……예? 맞습니다.”
살며시 눈을 뜬 그가 해온 뜬금없는 질문에 주춤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네 부모님을 걱정하는 거라면, 그들은 무사할걸세.”
“예?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자네 부모님뿐만이 아니네. 서울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안전하네. 화이트는 철저하고 완전하게 통제하고 있네. 그들은 그것을 보호한다고 표현하더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안전하다는 말은 기쁜 일이었지만,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세상이 변하기 바로 직전, 서울 주변에는 엄청난 높이의 벽들이 솟아났네.”
“…….”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이 이어진 그 벽을 이용해 사람들을 몬스터에게서 지켜냈지.”
“그것을 전부 화이트에서 했다는 말입니까?”
“맞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표정은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욱이 그것이 사실이라면 화이트에 대한 의심은 깊어져 갔다.
그 벽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미리 준비했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말하지 않았는가. 그들을 통제한 것 역시 화이트였네. 사람들은 빠르게 적응했고 원래의 삶을 이어나갔네. 마나석과 스킬의 발달로 오히려 삶은 더욱 풍족하고 편리해졌지. 사람들은 밖의 상황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네.”
“……그 말은?”
“맞네. 그들은 밖에서 일어나는 형상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네. 위협이 되는 몬스터의 존재 자체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넘쳐나지.”
“불가능합니다…….”
“철저한 세뇌와 통제로 일어나게 된 상황이네.”
“하지만 밖에서 들어온 이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들조차 통제할 수는…….”
“……무언가 착각하고 있군. 벽은 막힘없이 이어져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물론 입구가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전부 화이트에서 관리하고 있네.”
“……외부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