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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137화 (137/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137화

‘아, 안 돼!’

일촉즉발의 상황.

귀도를 날카롭게 들어 올린 강신우와 양손에서 불을 뿜고 있는 현지 그리고 개구리 인간 종수가 대치했다.

주위의 공기는 차갑게 내려앉았고 언제라도 전투는 시작될 것만 같았다.

‘젠장. 막아야 해. 으윽.’

하지만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트롤킹에게 당한 피해는 생각보다 더욱 심각했고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저들이 전투를 벌이게 된다면 걱정되는 것은 역시 신우가 아닌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였다.

강신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저자가 보여준 힘은 실로 놀라웠고, 무시무시했다.

감히 맞설 수 있으리라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차이.

그녀와 종수가 살아남을 수 있으란 확신마저 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으윽…….”

아무리 발버둥 치려고 해봐도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들에게 도망치란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그러니 사이 강신우의 검에는 영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종수 씨라도 어서 도망가세요! 은신을 사용한다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 그건. 개굴…….”

숨어 있는 동안 모든 전투를 지켜보았던 듯 그들 역시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이미 도망치기 힘들다는 것을 판단한 모양이었고, 자신의 뒤에 있는 개구리 인간 종수를 보며 소리친 것이었다.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그 은신 스킬이라면 확실히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녀에게 그런 스킬은 없었다.

이미 자신은 도망가기를 포기한 채 소리치는 그녀를 바라보며 개구리 인간 종수는 곤란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눈치를 볼 뿐이었다.

“나, 나만 도망갈 순 없다. 개굴.”

신우와 현지를 번갈아 보던 그는 결심한 듯 자신의 양손에 쥔 수도를 더더욱 움켜쥐며 결심했다.

도망가지 않겠다는 의지.

눈앞의 맹수를 발견한 사냥감처럼 벌벌 떨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후회하셔도 몰라요.”

“더, 더는 도망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개굴. 너희를 두고 나 혼자 도망가지 않겠다. 개굴.”

개구리 인간 종수가 내비친 굳은 의지에 힐끔 쳐다본 그녀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눈앞의 그를 바라보며 너클을 쥔 양손에 힘을 주었고 모든 힘을 쏟아부은 듯 화염은 커져만 갔다.

“이야야얏!!!”

“개, 개구울!!”

모든 결심이 끝난 듯 그들은 먼저 선수 치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던 그도 그제야 움직였다.

무엇이든 베어버릴 듯 날카롭게 날이 선 검을 비껴 잡은 그 또한 물러서지 않고 맞서 달려 나간 것이었다.

순식간에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가는 그들의 눈빛에는 망설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젠장, 어떻게 상황이…….’

서로의 등을 지켜주던 동료에서 이제는 서로를 헤치기 위해 무기를 들이대는 상황.

어떻게 된 것인지 도저히 믿기 힘든 상황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변해 버린 세상에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마저 넘쳐났고, 그 어떤 몬스터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무력감은 온몸을 지배했고, 그 어떤 고통보다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쉬이이익.

화아아아아악.

그 순간 강신우의 귀도가 바람을 가르며 내질러졌고, 현지의 화염을 머금은 너클 역시 강렬하게 뻗어 나갔다.

“……!”

-콰과광!! 퉁! 퉁! 퉁!

“……괜찮아요?”

그들이 서로를 향해 공격을 시도한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무언가를 타격한 폭발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안타까움이 밀려오던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우나 현지 그리고 개구리 인간 종수도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그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

“……이제 안심하세요.”

눈을 뜨자 앞엔 그림자가 져 있었고, 천천히 올려다보자 서 있는 것은 심각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녀였다.

이미 만난 적이 있고, 이전에도 우리를 구해준 적이 있었던 그녀.

워낙 말수가 적어 표현하진 못하지만, 그녀의 표정엔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으…… 으윽.”

“……억지로 움직이실 필요 없어요…… 성곤 님!”

“예, 주현 님. 이곳도 해결되었습니다!”

억지로 움직이려 애쓰자 그녀는 말렸고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자연스레 이동한 시선에는 대답하는 강성곤이 보였다.

그와 더불어 같이 있는 것은 김낙현, 강신우는 이미 기절한 듯 의식이 없었다.

그들은 강신우의 몸에 올라타 제압한 상태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허허허. 저희가 늦진 않았군요. ”

“어…….”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운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현지 역시 놀란 토끼 눈을 하며 그들을 향해 말끝을 흘렸고, 강성곤과 김낙현이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그, 그 검을 어서 떼어내라 개굴!”

“오, 개구리?”

“쓰읍, 이보게 실례네.”

옆에 있던 개구리 인간 종수는 신우의 검, 귀도를 가리키며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강성곤은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생김새를 보며 흥미로운 듯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 역시 수인의 존재에 대해서 모를 리는 없었고, 그런 강성곤을 말린 것은 김낙현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우선적으로 신우가 움켜쥐고 있는 검을 떼어내려 손을 뻗었다.

“음, 이 검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이걸 떼어내면…… 으, 응?”

“이보게 뭐 하는 건가?”

“자, 잠시만 기다리게. 흠흠.”

“어허! 이 사람.”

강신우는 이미 기절해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어째서인지 귀도를 쥐고 있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힘은 생각보다 강했고, 펴지지 않는 손에 당황한 강성곤이 곤란한 듯 온 힘을 다해 시도했다.

장난을 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김낙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가갔다.

“기절한 사람 손가락도 못 펴는 게 말이 되나. 비켜보게…… 어라?”

“가, 같이해 보게나.”

두 사람은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그의 손을 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허억, 허억. 안 되겠구만.”

“허억. 자세히 보니 이 친구 저번에 보았던…….”

“응? 그래, 맞구만. 가…… 가…… 그래, 강신우! 그 친구 아니었나? 어딘가 달라진 것 같기는 하다만은…….”

“……네, 맞아요.”

그들은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신우의 손을 펴려는 것을 포기했다.

그제야 얼굴을 확인한 그들이 현지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그녀 또한 알 수 없었기에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보다 그 거대하던 트롤은 자네들이 쓰러뜨린 건가? 우리는 그 몬스터를 보고 달려왔다네.”

그들이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트롤킹의 존재를 확인했던 이유였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녀석은 가까이 있는 용병 마을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고, 마을에 해가 될 요소라 생각했기에 곧장 달려온 것이었다.

이미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트롤킹을 처치한 이후였지만,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를 보며 나선 것이었다.

“아니요…… 거기 있는…….”

“음, 그런가? 자네도 대단하구만 그런 자를 쓰러뜨린 건가.”

“아, 아니요. 제가 한 게…….”

“허허허. 자네의 주먹이 이 자의 턱에 정확히 꽂히는 걸 봤다네.”

그저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트롤킹의 처참한 모습을 힐끔 바라본 그들은 곁에 있는 현지에 질문했다.

달려오는 동안 그들이 본 것은 그녀의 너클이 신우의 턱을 강타하는 장면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지금 쓰러져 있는 신우를 쓰러뜨린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듯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그 전에 뭔가…… 그래 분명 그때 신우 씨는 기절했어요.”

“기절?”

“네…… 갑자기 당황한 듯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음…… 기력이 다한 것인가.”

그 괴물 같던 신우를 쓰러뜨린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서로를 향해 공격을 시도하던 그 순간 그는 기절했다.

멈출 수 없던 그녀의 주먹은 그의 턱을 강타했고, 때마침 나타난 그들이 위험해 보이는 그를 제압하며 막아선 것이었다.

“음,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을로 가서 들어보도록 하는 게 좋겠네.”

“그게 좋겠어. 이 친구 상태도 이상하고, 저 친구도…… 어서 움직이세나.”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쓰러진 강신우와 나를 가리키며 재촉했다.

“주현 님, 제가 들겠습니다. 읏차.”

“커커억.”

“허허허. 조금만 참게나. 엉망진창으로 당했구먼그래. 볼 때마다 이런 상태라니, 심히 걱정되는구만.”

어느새 다가온 강성곤은 곁을 지키고 있는 주현에게 예의 바르게 말하고는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가 한쪽 어깨에 들쳐메자 온몸의 고통이 아우성을 치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무엇이 그리고 웃긴지 호탕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 * *

“…….”

“……미…… 혁…….”

“민혁 씨!”

귓속에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깜박일수록 흐릿한 실루엣은 또렷이 보였고, 이내 정신을 차렸다.

“어, 현지 씨…… 여기는?”

“드디어 일어나셨네요. 저희가 가려고 했던 용병 마을이에요. 기억 안 나세요?”

“아……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었네요.”

“그럴 만도 해요. 꼬박 3일이나 누워 있었으니.”

“……네? 뭐라구요? 어…… 얼마나 지났다고요?”

“3일이에요. 3일. 마을에 치료 스킬을 가진 분이 있어서 다행이지, 정말 큰일 날뻔했어요.”

“…….”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조그마한 방이었다.

안락한 침대 위에서 눈을 뜨자마자 곁에 있었던 것은 현지였고, 그간의 상황을 전부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재혁 씨는…….”

“재혁 씨는 무사해요. 잘 숨어 있었나 봐요. 트럭과 함께 있던 식량들도 찾으러 나섰구요.”

“찾으러 나선다는 게?”

“숲 안의 트럭의 위치를 알고 있는 재혁 씨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갔어요. 아마 곧 도착할 거예요.”

“……그렇군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물어본 것은 바로 이재혁의 행방이었다.

전투능력이 없는 그였으며, 어찌 보면 이 마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인물, 무엇보다 이곳에 온 이유라고 할 수도 있는 그였기 때문이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트롤킹이 나타나면서부터 그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기에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무사한 모양이었다.

트럭을 고칠 수 있는 그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우리가 가져온 물품들을 찾으러 간 것이었다.

“……그보다 다른 사람들은?”

“종수 씨는 멀쩡하고, 피노도 치료를 잘 받고 잘 쉬고 있어요…….”

“……그리고?”

“그…… 신우 씨는…….”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고, 이어지는 말에 불안감은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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