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36화
“끼에에엑-”
“끼이이이익-”
그 순간 신우의 검 주위로 무언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형체가 없는 그것들은 듣기 싫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으며 마치 억지로 흡수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영혼들로 유추되는 그것들이 자신의 검에 충분히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듯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끄랴랴랴략!!”
보랏빛의 영혼이 귀도 감돌기 시작하자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낀 트롤킹은 포효했다.
기다려 주지 않겠다는 듯 갑작스럽게 신우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그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으랴랴랴략!!”
트롤킹이 주먹을 내지른 순간 들려온 비명은 신우의 것이 아니었다.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인 그는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그의 뒷모습에선 도깨비의 형상이 보였다.
착-
“…….”
그는 자신의 검에 묻은 녹색의 피를 단숨에 털어 내며 뒤를 돌아섰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트롤킹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덤덤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트롤킹이 주먹을 내지른 순간, 그의 검은 그대로 그것을 갈라냈고 두부를 자르듯 썰어버린 것이었다.
이어지는 공격은 눈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고 순식간에 트롤킹의 팔은 완전히 조각이 나며 떨어졌다.
“으으으으랴랴랴랴!!”
쑤우우우우욱!
완전히 왼쪽 팔이 떨어진 트롤킹의 어깨에서는 녹색의 피가 뿜어나왔다.
고통인지 분노인지 몸부림치던 녀석이 있는 힘껏 포효했고 그 순간 잘린 어깨에선 거대한 팔이 솟아났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회복 능력.
자신이 트롤들의 대장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트롤킹의 능력 또한 트롤에 비해 더욱 뛰어났다.
약점이 아닌 이상 당하지 않는다는 듯 순식간에 회복해 버린 것이었다.
“…….”
하지만 여전히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마치 자신을 어서 공격해 오라는 듯 그 자리에 멈춰선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크으으으으캬아아아악!!!!!”
그가 도발을 한 것이라면 그 효과는 대단했다.
한눈에 봐도 뻘겋게 물든 녀석의 얼굴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자신을 무시하는듯한 태도에 분노한 듯 이를 갈며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거지? 잠깐…….’
트롤킹은 자기 자신을 있는 힘껏 공격했고 그로 인해 상처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 상처들은 녀석의 회복 능력에 의해 순식간에 회복이 되고 있었다.
단순히 상처를 입히고 회복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자세히 확인해 보면 그렇지 않았다.
‘상처가 회복되면서 더욱 거대해지고 있어…….’
단순한 분노의 표출만은 아닌 듯 트롤킹이 자해를 이어갈수록 안 그래도 거대했던 근육 역시 더욱 거대하고 흉측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속적인 찢어짐과 회복이 반복되던 근육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지고 강력해진 것으로 보였다.
“크랴아아악!”
아무리 강한 회복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은 듯 트롤킹은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신우는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볼 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이내 모든 과정이 끝난 듯 트롤킹이 멈춰섰다.
“크흐. 크흐. 크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녀석.
녹색을 띠던 피부는 피로 범벅이 되어 붉은빛을 띠고 있었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급작스럽게 성장한 그의 근육은 흉측한 모양으로 발달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거대했던 몸집은 더더욱 거대해져 그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이 넘쳐났다.
“크흐흐흐흐흐. 캬아아아악!”
한층 성장한 자신의 힘에 취한 녀석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포효했다.
그리고 다시 강신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크아아악.”
“…….”
자신의 눈앞에 있는 상대가 절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녀석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양손을 깍지를 끼며 머리 높이 들어 올린 녀석은 있는 힘껏 온 체중을 실어 달려든 것이었다.
어떠한 준비 동작도 없이 순식간에 뛰쳐나간 공격에 그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기 어려워 보였다.
콰콰쿵.
눈 깜짝할 새 벌어진 공격으로 인해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단순히 트롤킹의 거대한 육체와 완력만으로 만들어낸 소리였고, 그 위력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충격으로 인해 주위는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고, 그 어디에도 강신우는 보이지 않았다.
피하지 못한 채 트롤킹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의미였기에 걱정되기도 잠시,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실루엣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
‘……마, 말도 안 돼.’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트롤킹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강신우였다.
모든 힘을 폭발적으로 끌어모아 내리친 트롤킹의 두 주먹을 그가 가뿐하게 막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믿을 수 없는 것은 그가 방어해 낸 방법에 있었다.
‘인간의 육체가 아니야.’
강신우의 육체를 하고 있는 저것이 공격을 막아낸 것은 다름 아닌 손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귀도가 아닌 왼손을 높게 쳐들어 트롤킹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맨손으로 자신보다 10배 이상은 거대한 몬스터가 체중을 실은 공격을 막아낸 그가 더 이상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지끈.
“……버티지 못하는 건가.”
하지만 그때 어디선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덤덤하던 그의 표정에도 변화가 이어졌다.
실망한 듯 인상을 찌푸린 그의 시선은 자신의 팔을 향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본 신우의 팔은 어딘가 이상했다.
‘부, 부러진 거야?’
뒤로 꺾여 버린 그의 팔은 불편해 보이는 것을 넘어 괴기스러울 정도였지만, 그의 표정에는 고통 따위를 엿볼 수는 없었다.
단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뿐, 평소의 신우의 모습이라곤 단 하나도 찾기 힘들었다.
멈칫하던 트롤킹 역시 그것을 눈치챈 듯 곧바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후우욱.
이번에도 역시 양팔을 높게 들어 올리며 앞에 있는 강신우를 내리치려 한 것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부러진 팔에는 분명 그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났다.
연속적인 공격으로 확실히 우위를 잡으려는 듯 다시 한번 트롤킹의 팔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슉. 슉.
하지만 그 순간 움직인 것은 영혼이 깃든 검이었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귀도가 휘둘릴 때마다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베여나갔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그의 움직임은 잔상조차 따라가기 힘들었다.
툭.
그리고 떨어져 나온 것은 거대한 손목이었다.
트롤킹이 공격을 시도하던 그 찰나의 순간 그것을 베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약점이 아닌 이상…….’
분명 강력한 공격임은 틀림없었지만, 트롤킹의 강점은 엄청난 생명력에 있었다.
아무리 통째로 손목을 베어버렸다고 한들 약점이 아닌 이상 곧바로 재생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느끼려는 순간.
툭.
투툭.
툭.
툭.
뿌슈슈우우욱.
펼쳐지는 상황에 고통조차 잊은 채 멍하니 넋을 놓고 그것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던 거대한 트롤킹의 몸에서 피가 분노처럼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거대한 조각들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강함, 그 자체였다.
그의 힘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시시하군.”
마치 지금까지 장난감이라도 가지고 논 듯 간단하게 처치해 버린 그는 천천히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그것들을 지나쳤다.
푹.
그리고 트롤킹의 조각난 머리 앞에 멈춰선 그가 귀도를 찔러넣은 순간.
[인스턴스 던전-트롤의 서식지를 정복하였습니다.]
끝을 알리는 메시치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난……건가.’
퍼스트킬 보상이나 코인, 아이템 등 보스 몬스터인 트롤킹을 처지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기에 단출한 홀로그램창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끝을 알리고 있었다.
거대한 크기는 물론 무지막지한 괴력,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생명력을 가진 트롤킹은 완전히 죽음에 이르렀다.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상대였지만, 오히려 압도적인 강함으로 눌러 버린 것은 강신우였다.
“아직…….”
지긋지긋한 던전이 끝났다고 안심하려던 그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강신우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느낌이나 태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 그가 무언가 중얼거린 것이었다.
“아직, 아직…… 부족해…….”
그는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이내 시선이 한곳에서 멈춰섰다.
“……시, 신우 맞냐? 개굴.”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뭔가…… 뭔가…… 사악한 기운이 느껴져요…….”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있는 것은 바로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였다.
각자 피노를 구하기 위해 떠났던 그와 신우를 구하기 위해 이동했던 그녀는 임무를 완수했든, 못했든 상황을 지켜보며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피노를 안고 있는 종수와 그녀를 그가 발견한 것이었다.
“조심해요. 우리가 아는 신우 씨는 절대 아니에요.”
“아, 알겠다. 개굴.”
잔뜩 경계하는 그들과는 달리 신우의 모습을 한 그는 무언가 불편한 듯 멈춰서 자신의 팔을 움켜잡았다.
우두둑. 우두둑.
그리고는 억지로 자신의 팔을 비틀며 뼈를 맞추기 시작했다.
살벌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만으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을 이어나갔고 이내 만족한 듯 왼손을 연신 접었다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뚜벅. 뚜벅.
다시 그들에게 시선을 옮긴 그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트롤의 피로 흠뻑 젖은 그의 몸에선 피비린내가 진동해 왔다.
오른손에 단단히 움켜쥔 귀도와 그의 표정은 살기로 가득했으며 그것이 향하고 있는 것은 명확했다.
맹수가 먹이를 사냥하듯 신중하게 걸어오던 그에게 먼저 나선 것은 현지였다.
“누, 누구야 당신은? 신우 씨는 어떻게 한 거야?”
“…….”
“워, 원하는 게 뭐야?”
“……부족해.”
잔뜩 겁에 질린 개구리 인간 종수와는 다르게 용감하게 나선 그녀는 그의 앞을 막아서며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없는 말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뭐…… 뭐?”
“……아직. 아직. 피가 부족하다.”
“…….”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하는 그가 답답한 듯 그녀는 날카롭게 되물었고, 이내 돌아온 대답에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뿜어내는 살기는 농담 따위가 아니었고, 그것을 느낀 그녀의 양손에선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의심의 여지 없이 공격을 하겠다는 의사표시였고, 그것은 개구리 인간 종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
그 모습을 바라본 그는 화답이라도 하듯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다시 검을 바꿔 잡으며 독특한 자세를 이어갔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에 잊을 수 없던.
순식간에 트롤킹을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던 바로 그 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