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35화
쾅! 쾅!
거대한 팔로 얼굴을 가린 트롤킹은 아무런 패턴도 없이 무작정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지만, 거대하고 빠른 녀석의 공격을 바로 앞에서 전부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몸을 뒤튼 순간, 이어지는 트롤킹의 주먹이 복부를 강타했다.
“컥! 쿨럭.”
특별할 것 없는 공격이었지만,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고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피를 토해냈고, 순간적으로 눈앞은 흐릿해지며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쉬이이익!
하지만 녀석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듯 다음 공격을 이어나갔고, 강렬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억!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며 몸을 날렸지만, 거대한 트롤킹의 몽둥이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녀석의 공격은 옆구리를 스쳤지만 그로 인해 몸 전체가 나뒹굴었고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억. 허억. 허억.”
숨쉬기 힘들 정도의 괴로운 상황에 흐릿해진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거대한 녹색의 무언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움직이려 애를 써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쿵. 쿵.
움직이지 못하는 와중에도 거대한 땅의 울림은 여지없이 느껴졌고, 가까워져 오던 그것은 내 앞에 멈춰 섰다.
트롤킹은 이제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자신의 몽둥이를 들어 올렸고 온몸을 이용하며 내리찍기 시작했다.
‘여기까지인가.’
[생명력이 일정 이하로 떨어져 ‘트롤의 생명력’이 발동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이지 않는 몸을 포기한 채 눈을 감은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며시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짧은 문구의 홀로그램.
그와 동시에 온몸에 피가 빠르게 도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하며,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이야야얏!”
상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머리 바로 위에선 바람이 느껴졌고, 몸을 날렸다.
콰광!!!
거대한 몽둥이는 맨바닥을 여지없이 내려쳤고, 몸을 일으켜 세우며 떨어진 총기를 주워들었다.
위기의 순간 패시브 스킬인 트롤의 생명력이 발동된 것이었다.
일정 수준 이하로 생명력이 떨어지면 순식간에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스킬로, 눈앞의 녀석과 마찬가지로 트롤을 처치하고 얻게 된 스킬이었다.
철컥. 철컥.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체력이 완전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투하기에 이 정도는 문제가 없었다.
머리에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내며, 다시 한번 장전을 이어나갔다.
“으르르르, 으랴랴랴!!”
얼마나 세게 내려친 것인지 트롤킹은 땅속에 박혀 버린 몽둥이를 두 손을 이용해 뽑아 들기 위해 노력했다.
‘기회다!’
몽둥이가 생각보다 깊게 박혀 버린 듯 연신 낑낑대며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다신 없는 기회였고,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끄르르르.”
트롤킹이 눈앞의 몽둥이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조심스럽게 하지만 신속하게 총기를 들어 올렸다.
‘눈치챘나?’
한쪽 눈으로 조준경을 통해 녀석의 미간을 조준하던 그 순간 낑낑대던 녀석이 멈칫했다.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눈을 살짝 떼며 트롤킹의 얼굴을 확인했고, 녀석의 눈동자는 이쪽을 향해 돌아가 있었다.
“끄랴아아아악!!!”
트롤킹은 순간적으로 눈동자를 돌려 이곳을 확인했고 그로 인해 들키게 된 것이었다.
자신을 향해있는 총기를 확인한 녀석은 더 이상 땅에 꽂혀 버린 몽둥이를 빼내는 것을 포기한 채 달려오기 시작했다.
양 주먹을 불끈 쥐고 거대한 몸을 이끌며 다가오는 녀석을 확인했지만, 총구를 거두지 않았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가라!”
트롤킹이 있는 힘껏 자신의 주먹을 휘두르는 그 순간, 오히려 그 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정확히 녀석의 인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자신을 향해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자 당황한 녀석이 대처하기도 전에, 주위에 둥둥 떠 있던 모든 총기는 한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여지없이 뿜어내는 푸른 총탄!
더 이상 뒤를 생각하지 않고 바로 앞에서 이어진 총탄들은 일제히 트롤킹의 인중을 꿰뚫었다.
쿠쿵.
“허억. 허억.”
아직까지 눈에는 푸른빛의 잔상이 남아 있던 그때, 거대한 소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살펴본 결과 쓰러져 있는 것은 녹색의 거대한 몬스터였다.
약점에 노출된 녀석이 그대로 정신을 잃으며 뒤로 쓰러진 것이었다.
“……꿀꺽.”
더 이상 남아 있는 위협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스턴스 던전에 살아가던 트롤들은 전부 트롤킹에 의해 목숨을 달리했고, 그런 강한 녀석조차 눈앞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아직은 여전히 어두운 주변을 살펴보자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고, 그제야 완전히 정신을 차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거대한 몸뚱이로 인해 빙 돌아가는 그것마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대하구만…….”
막상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트롤킹을 살펴보자 더욱 거대한 것이 와닿았다.
녀석의 머리조차 성인 남성의 몸집만 했으니 새삼스레 느껴진 것이었다.
눈을 감은 녀석은 숨을 쉬지 않았고, 인중에는 다수의 구멍이 뚫려 그 모습 또한 흉측했다.
“현지 씨는 신우를 안전하게 옮겼으려나…… 종수씨도 피노를…….”
쓰러진 트롤킹을 확인하며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것은 신우와 피노였다.
처참하게 당한 그들이었기에 살아남았을지조차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용병 마을이 가깝다고 했으니, 치료를 받을 수는 있을 거야…….”
하지만 그들이라면 쉽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고, 다행히 치료를 받을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재혁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우리의 목적지인 용병 마을과 매우 가깝다고 했고, 그곳에 간다면 치료를 받는데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치료계열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가 있다면 간단하게 치료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잠깐…… 어째서…… 클리어가 나타나지 않는 거지?”
이제 인스턴스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던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곳에 남아 있는 트롤은 더는 없었고, 그들의 보스 몬스터인 트롤킹 역시 처치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인스턴스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홀로그램이 펼쳐지지 않았다.
당연히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고 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기에 당황스러웠다.
“설마?”
그때 다시 한번 트롤킹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눈이 마주쳤다.
“크흥. 크흥.”
누워 있는 채로 또렷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트롤킹.
녀석의 콧구멍에선 거친 날숨이 뿜어져 나왔고, 거대한 가슴팍은 그에 맞춰 위아래로 움직였다.
흉측하게 뚫려 있던 인중은 빠른 속도로 원상 복귀되며 아물었다.
“어.”
퍽- 콰광쾅쾅!
입을 떼기도 전에 트롤킹의 주먹이 그대로 날아왔고,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채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었다.
“으윽. 젠장. 트롤의 생명력…….”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날아가 부딪혔고 그제야 눈치챘다.
패시브 스킬인 트롤의 생명력, 본디 그것은 트롤들의 것이었고 보스 몬스터인 트롤킹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리 없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녀석이었지만, 트롤의 생명력이 발동되었고 순식간에 체력을 회복한 것이었다.
“크랴랴랴랴악!!!”
그제야 몸을 일으킨 듯 저 멀리 에선 트롤킹의 포효가 여지없이 들려왔고,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으윽, 도망. 도망쳐야 해.’
다가오는 거대한 진동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녀석이 이미 보여주었던 행동.
신우에게 했던 그대로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지리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트롤킹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쿵! 쿵!
“으, 으아악!!!”
분노로 가득한 트롤킹은 예상했던 그대로 공격을 이어갔다.
자신의 양손을 터질 듯이 움켜쥐며 내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주변의 쓰러진 나무들과 돌덩이들에 파묻힌 나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울 테지만 녀석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쓰러져 있던 모든 곳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생각인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쿨럭. 으악.”
녀석의 공격은 쉴 틈 없이 이어졌고 주먹 한 방 한 방이 덮칠 때마다 피가 터져 나왔다.
더 이상 어디에서 피가 흐르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고통은 끝이 없이 이어졌고 몸속의 뼈들은 이미 부서진 지 오래였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이 온전히 그 공격들을 받아내야 했고, 돌파할 방법 따윈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퍽. 퍽. 퍽.
* * *
“…….”
트롤킹의 계속되는 공격에 정신을 잃었다 생겼다 반복한 지도 몇 번이나 이어졌다.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있으란 기대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밀려드는 고통에 몸을 맡기고 있던 그때, 어째서인지 아무런 충격도 전해지지 않았다.
‘……드디어 죽은 것인가? 으윽.’
트롤킹이 공격을 멈추리란 생각 따위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기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육체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육체의 고통.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던 그때 안간힘을 쥐어짜며 눈을 겨우 떴고 실루엣이 보였다.
“…….”
“크로아아아악!!”
흐릿하게 비친 눈동자에는 트롤킹을 가로막은 누군가가 자리했다.
자신을 가로막은 누군가에게 분노한 트롤킹이 포효하며 주먹을 내질렀지만, 그는 미동하지 않았다.
깡! 깡!
검을 든 그는 트롤킹의 주먹을 간단하게 막아내는 것은 물론, 오히려 받아치고 있었다.
‘저 검은…….’
움직이지 않는 육체로 인해 그저 눈을 연신 깜박이며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또렷하게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신우!’
눈앞에 검을 든 채 트롤킹을 막아선 것은 강신우였다.
살아 있다는 반가움에 안도하기도 잠시, 어딘가 다른 그의 모습은 낯설었다.
살짝 옆을 돌은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눈동자가 사라져 흰자만 가득한 눈에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하얀 연기.
피로 범벅된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두 개의 뿔이 돋아나 있었다.
‘결국, 그 검을…….’
그가 그렇게 변한 이유를 유추하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엔 귀도(鬼刀)가 들려 있었다.
강력하지만 알 수 없는 그 힘에 사용하는 것을 자제시켰지만, 결국 귀도를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크라아아악!!!”
하지만 그 힘은 실로 놀라웠다.
무차별적인 완력을 이용해 공격해 오는 트롤킹의 공격을 신우는 매우 간단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전에 본 적이 있었던 그 힘보다 더욱 강력해진 것은 그의 변해 버린 외관과도 관련이 있는 듯했다.
마치 어린아이와 놀아주듯 간단히 트롤킹을 공격을 막아낸 그는 검을 돌려 잡았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자세를 취하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멸살(滅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