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31화
“조심해! 옆이야!”
다급한 외침을 들은 현지는 곧바로 자신의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중에 두둥실 떠 있던 그녀를 향해 들고 있던 몽둥이를 움켜쥔 트롤이 뛰어올랐고, 그 순간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크, 이야야얍!”
그녀 역시 그렇게 판단한 듯, 자신을 향해 뛰어오른 트롤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품으로 더욱 다가갔다.
있는 힘껏 팔을 휘두르려던 트롤에 오히려 그 간격을 좁혀 충격을 완화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크어아아악!!!”
괴성을 질러대며 위협을 하는 트롤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그녀는 순식간에 파고들어 불꽃이 타오르는 오른 주먹을 올려쳤다.
예상하지 못한 듯 턱에 어퍼컷을 얻어맞은 녀석의 괴성은 고통으로 물들었고, 힘에 못 이긴 녀석은 뒤로 나뒹굴었다.
“치잇, 아야야.”
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지만, 사방에 가득한 트롤들로 인해 모든 움직임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었다.
트롤과의 간격을 줄여 효과적으로 충격을 줄이기는 하였으나, 몽둥이는 그녀의 왼쪽 팔을 내리쳤고, 그로 인해 그녀는 팔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했다.
“크로로로아아아아!!!”
“으랴랴랴랴!!”
생각보다 고통이 큰 듯 잠시 주춤하던 그녀였지만, 곧바로 양팔을 움켜쥔 그녀는 공격 자세를 취하였다.
주위에 가득한 트롤들은 우리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은 채 끝도 없이 달려들었고, 그것은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트롤들의 포효와 외침은 끊임없이 들려왔고, 주변에 보이는 것은 온통 녹색뿐이었다.
나무로 가득한 이 숲 어디에 그 거대한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 죽이고 또 죽여도 녀석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신우 조심해!”
“예! 발-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이제는 익숙함을 넘어 본능적으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걱정과는 달리 자신의 귀도가 아닌 단검을 집어 든 신우였지만, 역시 평소의 실력에는 현저히 못 미치는 정도였다.
단검을 뽑아 들며 연신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 전투를 이어나갔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밀리기 일쑤였고 그런 그를 돕지 않을 수 없었다.
탕! 탕! 탕!
공중에 떠 있는 6기의 총기에선 여지없이 마탄이 발사됐고, 그것들은 모두 신우의 주위에 있던 트롤들을 적중시켰다.
이제는 손발을 움직이는 것처럼 떨어진 총기들을 조종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 수 역시 증가했다.
원격제어 장치를 사용을 하면 할수록 익숙해진 것은 물론, 자유자재로 제어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위험천만한 상황들에 본능적으로 저도 모르게 그것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이, 이 병장님. 감사합니다! 으야얏!!”
“됐어! 집중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트롤들이 단번에 쓰러지자 신우는 이쪽을 바라보며 외쳤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동료들이 사라지기 무섭게 트롤들은 뒤이어 나타나 달려들었다.
잠시의 그 찰나의 순간조차 그들은 허락하고 있지 않았다.
철컥. 철컥.
‘젠장, 이러다간. 저 녀석들보다 마나가 먼저 소진되겠어.’
사방에서 끝도 없이 나타나는 트롤들이었지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개개인의 스킬 덕분이었다.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 신우까지.
전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었고 그것은 마나를 이용하는 스킬을 기반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마나에는 한계가 존재했고, 계속되는 전투에 그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불꽃이 작아졌어.’
현지 또한 그것을 느꼈는지 그녀의 양손에 타오르던 불꽃은 현저하게 줄어 들어 있었고, 더는 탐지 스킬 또한 사용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녀의 행동은 마나의 소모를 줄이려는 것으로 최대한 스킬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조절하는 것이었다.
생명력을 순식간에 회복시키는 트롤들이었기에 단번에 급소를 정확히 맞혀 그들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것은 스킬 없이는 불가능했다.
일반적인 총탄이 트롤들의 피부를 뚫을 수 없었던 만큼, 신우의 검이나 현지의 너클만으로는 소용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마나가 떨어지는 순간 일어날 참사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었기에 더욱 다급해졌다.
‘젠장, 무슨 방법이…… 그래!’
최대한 트롤들을 향해 마탄을 갈겼지만, 끝이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마나는 계속해서 소모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분명했고, 순간 떠오른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피노! 피노는 아직 안 깨어났습니까?”
그 순간 머리에 번뜩인 것은 우리의 동료이자 든든한 존재.
전설의 동물 중 불가사리에 속하는 것으로 유추되는 피노였다.
녀석의 강력함에 대해서는 익히 경험해본 바 있었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위기에서 몇 번이나 우리를 구해주던 피노였고, 당장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만한 방법으로는 피노의 도움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돌발적인 행동으로 온몸에 마비가 퍼져 버린 피노였지만, 그런 녀석을 돌봐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재혁이었다.
“아, 아직입니다. 하지만 얼마 후면 깨어날 겁니다. 회복될 만한 시간은 지났어요.”
전투 능력이 전혀 없는 이재혁이 피하거나 도망칠 장소는 없었고, 그나마 가장 안전한 내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 그의 품에는 마비당한 피노가 있었기에 질문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피노의 상태를 확인하며 소리쳤지만, 그것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깨워보세요. 그 녀석이 꼭 필요합니다!”
“네? 얘가요?”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늦지 않게요!”
“예, 예.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마나가 완전히 소비되기 전까지 피노의 도움은 필수적이었고, 다급함에 언성이 높아졌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트롤들의 포효소리와 총성에 정신이 없던 그는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으로 생각하며 되물었지만, 설명해줄 여유는 없었다.
겉보기에 피노의 모습은 작고 귀여운 생명체로 끽해봐야 고양이나 강아지 정도로밖에는 유추할 수 없었기에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피노의 진정한 모습을 직접 확인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설명해도 믿기 힘든 내용이었기에 그를 재촉할 뿐이었다.
애꿎은 그는 애를 태우며 피노를 깨우기 시작했고,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 * *
우리가 잠시 쉬려고 했던 그 장소는 이미 트롤들의 시체로 가득해졌고, 그들의 비릿한 피 냄새로 가득해졌다.
졸졸 흐르던 물은 트롤들의 녹색 빛깔의 피로 오염되었고, 만드라고라가 가득했던 밭은 이미 그 형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쓰러진 트롤만큼 더 많은 트롤들이 계속해서 덤벼들었고, 더는 체력도 마나도 한계에 다다랐다.
“민혁 씨……!”
“더는 마나가…… 개굴.”
“발…… 도! 저도 마찬가집니다.”
신발에 마나를 주입시켜 공중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공격을 회피하던 현지는 이미 땅에 내려온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주 소량의 마나였지만, 회피도 포기할 만큼 마나가 줄어들었다는 상황이었고 그것은 개구리 인간 종수나 강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개구리 인간 종수나, 더 이상 발도조차 사용하기 어려워 보이는 신우는 이쪽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피노는 아직입니까?”
“몸집이 작아서 마비 효과가 오래 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조금 더 시간이…… 어?!”
그들과 마찬가지로 계속된 마탄의 사용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마나가 바닥날 때의 증상인 정신적인 충격이 오고 있다는 것이었고, 곧장 뒤에 있는 재혁을 향해 소리쳤다.
어째서인지 그가 책임감을 느낀 듯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고, 일어나지 않는 피노를 보며 변명을 하던 그가 말을 멈추었다.
“무슨 일 있습니…… 피노야!”
“끼유유.”
무언가에 놀라는 이재혁의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눈이 마주친 것은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피노였다.
그의 품속에서 깨어난 피노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내 반가운 듯 울음소리를 내며 품에서 튀어나왔다.
“그래, 그래. 잠시만.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야.”
“끼유윱?”
그동안 자신이 마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걸음에 달려온 녀석은 애교를 떨어대며 얼굴을 비벼댔다.
평소라면 쓰다듬어 줬겠지만, 지금은 한시라도 트롤들에게 눈을 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꼬리에 모터라도 달린 듯 반가움을 표시하던 피노는 자신을 쓰다듬어주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한껏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둥거렸다.
“피노야, 지금 상황이 심각해. 우리도 도와줄 수 있니?”
“끼유유유.”
“여기 부탁 좀 할게. 최상급 AK-47이야.”
아무리 말을 한들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분위기는 파악한 듯 한층 차분해진 피노였다.
여전히 옆에 가만히 앉아 쳐다보고 있는 녀석에게 미리 준비해 두었던 총기를 꺼내며 앞에 놓았다.
“어…… 어……!”
와그작. 와그작.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 리 없는 이재혁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순간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며 소리를 내뱉었다.
자신의 앞에 놓인 총기를 과자 씹듯이 씹어먹어 버리는 피노를 발견한 것이었다.
‘됐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총기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안도할 수 있었다.
철, 그중에서도 무기 종류를 섭취하면 몸집이 거대해지고 그 누구보다 강력해지는 피노였지만, 항상 뜻대로 움직여주는 녀석은 아니었다.
까다롭지 그지없는 피노의 식습관은 보통이 아니었고 고집 역시 완강했다.
총기의 종류 중에서도 흠집 하나 없는 최상급에 멀쩡한 무기가 아니면 절대 먹지 않았고, 그 또한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같이 다급한 상황에도 예외가 아니었고, 피노가 거절하면 억지로라도 먹여야 하나 고민하던 중 소리가 들려왔다.
“끄르르륵, 캬아아아악!!!!!”
순식간에 AK-47을 먹어치운 피노의 몸집은 커지기 시작했고, 언제 봐도 그 모습은 감탄스럽기 그지없었다.
다양한 동물들의 장점만을 합쳐놓은 것 같은 전설의 동물, 불가사리 피노의 모습은 든든함을 넘어 의지하고 싶게 만들었다.
거대해진 피노가 자신감을 표출하듯 있는 힘껏 포효하기 시작하자 모든 시선이 쏠려왔다.
“아…… 분명, 그때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재혁은 넋을 놓은 채 입을 다물지 못했고, 그제야 기억이 난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언데드와의 전쟁에서 이미 피노의 모습을 확인한 적이 있는 것이었다.
“피노야!!”
“피노!”
“피…… 노라고? 개굴?”
이에 질세라 한참 위기에 빠져 있던 모두가 피노를 확인하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고, 개구리 인간 종수만이 당황한 듯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끄르르르, 캬야야약.”
사방을 둘러보던 피노는 지체하지 않고 높이 뛰어올랐고 순식간에 트롤들이 모여 있는 중심을 향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