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27화
절벽이 무너지며 떨어지는 순간 공중에 있던 민혁을 붙잡은 것은 현지였다.
아래를 향해 속수무책으로 낙하하는 순간 그녀가 사용한 것은 그녀의 신발, 탈라리아.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얻은 물건으로 공중에 자신을 몸을 띄울 수 있게 해주는 신발이었던 것이다.
아직은 사용법이 미숙하지만, 순간적으로 탈라리아에 마나를 흘려 보낸 그녀는 눈앞에 떨어지던 민혁의 탄띠를 붙잡았고 그대로 서서히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으으으악, 아야야야. 괜찮으세요?”
“아야얏.”
사방에서 떨어지는 돌덩이와 트롤들의 시체를 피해가며 순조롭게 내려가던 도중.
땅까지 1m 정도 남았을 무렵 균형을 잃은 그녀가 공중에서 넘어졌고 그대로 낙하했다.
다행히 얼마 안 되는 높이에서 떨어져 무사할 수 있었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떨어진 여파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너진 절벽으로 인한 돌덩이와 트롤의 시체들, 그리고 그곳에 설치되어 있던 텐트들이 망가진 채 사방에 떨어져 있다.
“나머지 분들은 어디에…….”
“여기 있다. 개굴.”
순간적으로 걱정이 된 것은 옆에 있는 현지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었다.
함께 이곳까지 온 개구리 인간 종수와 이재혁, 피노와 강신우까지.
보이지 않는 그들이 생각이나 현지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대답이 돌아온 것은 바로 뒤쪽이었다.
“어, 종수 씨 무사하셨군요. 피노까지 데리고.”
“내가 데려왔다. 개굴.”
트롤과의 전투 중에는 보이지 않던 그가 어느새 피노를 품에 안고 그곳에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좀 전에는 보이지 않더니. 은신을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까?”
“그, 그렇게 됐다. 개굴.”
“절벽에서는 어떻게……?”
“무너지는 잔해들을 밟으면서 내려왔다. 개굴.”
“그렇군요.”
전투가 시작한 직후 모습을 감췄던 그였기에, 겁을 먹은 그가 은신을 이용해 몸을 숨긴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절벽이 무너지는 순간 개구리 인간의 특징인 높은 점프력을 이용해 피노를 챙긴 뒤 돌덩이를 밟아가며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우와 재혁의 행방이 묘연했고, 그때 저 멀리 트럭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있지 않을까요? 트럭에 숨어 있겠다고 했었는데.”
“……무사해야 할 텐데. 일단 가서 살펴보죠.”
전투 능력이 없는 이재혁은 트롤들의 습격이 일어나자 트럭에 몸을 숨겼고, 그가 있을 만한 장소는 그곳이 유일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트럭의 모습은 처참했다.
절벽에서 아무런 보호 없이 굴러떨어져 버린 트럭은 전복되어 있었고, 성한 곳 하나 없이 망가져 폐차라 해도 믿을 만한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그 안에 있었을 이재혁의 상태가 걱정될 정도였기에, 곧바로 망가진 트럭을 향해 걸어갔다.
“……이거 어떡하죠? 어디부터 살펴봐야 할지.”
트럭 가까이에 다가가자 그 상태는 더욱 심각해 보였다.
주변에 알 수 없는 부품들이 빠져 있고, 차체 또한 심하게 찌그러져 살펴보기도 힘든 상태.
어디부터 살펴봐야 할지 감이 안 오는 상황에 어디선가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요, 살려주…….”
“민혁 씨! 이 안에 있어요! 재혁 씨 같아요!”
부상을 입은 듯 힘없는 그 소리를 들은 것은 현지 또한 마찬가지였고, 곧장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가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전복되어 뒤집혀 있는 운전석이었고, 떨어지는 충격에 의해 터진 듯 그 안 가득 에어백이 가득했다.
“꺼냅시다. 종수 씨도 도와주세요!”
“알겠다. 개굴”
곧바로 운전석의 문을 열어 그를 꺼내주려 하였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찌그러진 차체에 의해 문이 낑겨 버린 상황.
“비켜보세요!”
쾅!
개구리 인간 종수와 함께 억지로 문을 열기위해 낑낑거리고 있자, 답답했던 그녀가 너클을 장착한 주먹을 날려 문자체를 뜯어버렸다.
“…….”
“종수 씨! 이거 끊어보세요.”
“아, 알겠다 개굴.”
거침없이 문을 뜯어버린 그녀는 운전석의 안전벨트를 가리키며 말을했다.
개구리 인간 종수가 자신의 단검을 이용해 그것을 끊어내자 그제야 그곳에 있던 이재혁의 모습이 드러났다.
“재혁 씨, 괜찮으세요.”
“쿨럭, 쿨럭. 예. 괜찮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리 큰 부상은 아닌 듯 잔기침을 한 그가 대답을 해왔다.
다행히도 그가 안전벨트를 메고 있었고 에어백이 터져준 덕분에 무사한것이었다.
“윽, 잠시만 도와주시겠어요?”
“예, 일어서시게요?”
“이,이런. 트럭이…….”
이재혁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듯 허공에 손짓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그를 부축하며 도와주자 절뚝이며 일어났다.
눈앞의 트럭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절망한 듯 눈을 질끈 감으며 자책했다.
“다 제 잘못입니다. 트롤들이 트럭의 흔적을 찾아왔을 겁니다. 제가 조금만 더 주의를 했어도…….”
“지난 일인데요, 뭐.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일단 자리에서 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자리에 서서 말을 하는데도 숨을 헐떡이는 그를 자리에 앉혀주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
강신우를 찾는 것이었다.
“신우는 저기 있다. 개굴.”
그때, 의도를 눈치챈 듯 손가락을 펼치며 알려주는 것은 개구리 인간 종수였다.
이미 신우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그가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며 그곳을 가리켰다.
“사, 살펴볼 거냐. 개굴.”
“일단, 저 혼자 가보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쉬고 있는 재혁을 제외한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까지 모두 누워 있는 신우를 살피려고 하자, 그들을 막으며 홀로 걸어갔다.
쓰러진 듯 미동도 하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까지 그의 상태를 봤을 때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혹여나 눈에서 뜬 신우가 다시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기에, 그들을 뒤로 한 채 누워 있는 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후…… 이 검 때문인가.”
아무리 상황을 파악하려 해도, 갑자기 그가 변한 이유는 이 검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쓰러져 누워 있는 그 상태로도 한 손에 자신의 검, 귀도를 곽 쥐고 있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모르니…….”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고 있는 그의 손가락을 펴며, 검을 발로 차서 그것을 멀리 떨어뜨려 놨다.
“신우야. 강신우.”
그리고 그를 흔들어 깨우자, 누워 있던 그의 눈꺼풀이 서서히 움직였다.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눈을 몇 번 깜박인 그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으으윽…… 이 병장님?”
“너…… 괜찮은 거야?”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자신의 눈앞에 있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의 이상해진 그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그의 표정.
순진한 듯 어벙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묻자 그는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으윽. 머리야. 여, 여기는 어딥니까? 트롤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너 기억 안 나?”
“예? 어떤게 말입니까?”
그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자신의 머리를 붙잡으며 괴로워했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묻고 있었다.
주변의 트롤의 시체들과 돌덩이들, 바뀐 주변의 풍경을 보며 당황스러워하는 그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부 설명했다.
“……제, 제가 그랬단 말입니까?”
“그래, 저 검을 사용했던 건 기억이나?”
“예…… 분명. 왠지 저 검을 사용하면 전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목소리 같은 게 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목소리?”
“예, 왠지 검이 저를 부르는 것 같은…….”
“……그 이후는?”
“귀도를 잡은 이후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당분간 저 검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심각한 표정으로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들은 신우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고,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듯 억지로 떠올리며 더듬더듬 그는 말을 이어갔고, 역시나 문제는 귀도에 있는 것으로 유추됬다.
트롤들에 밀리기 시작한 그때.
흑도가 부러진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귀도뿐이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려왔고, 왠지 모를 자신감이 쏟아졌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귀도를 쥔 채 전투를 나서려는 순간부터 기억이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강력하지만, 위험한 검이야.’
분명 단신으로 수백에 이르는 트롤을 압살한 그 힘은 대단했지만, 강권하기는 어려웠다.
혹시나 자책할 그를 생각해 말하지는 못했지만, 트롤을 모두 물리친 그가 다음으로 향한 것은 우리였다.
검을 날카롭게 뽑아 들며 달려오던 그의 모습은 잊을 수 없었고, 분명한 살기를 띠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대답을 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 떨어진 귀도를 향해 걸어갔다.
검을 들어 올린 그는 살펴보더니 이내 허리춤의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혹시나 검을 집는 순간 변하는 것인지 알아볼 요량으로 말리지 않았지만, 검을 들어 올린 그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귀신에 홀린 것 같군.’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저 검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말 그대로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신우 씨, 괜찮아요?”
“너, 신우 맞냐. 개굴.”
멀리서 멀쩡한 신우를 파악한 현지와 종수가 뛰어와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네, 괜찮아요. 이 병장님에게 모두 들었어요. 저도 당최 어떻게 된 건지…… 지금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다행이다. 개굴.”
신우는 밝은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대답했고, 그제야 안도의 함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든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네, 일단 앞으로 어떻게 할지부터 정해보도록 하죠.”
모두 약간의 부상을 입기는 하였으나, 심각한 이는 없었다.
트롤 무리와 맞닥뜨린 것에 비하면 단순한 상처뿐, 재혁 역시 충격에 의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무너진 절벽에 다시 올라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하기 위해 모두 모이기 시작했다.
“재혁 씨는 좀 괜찮으세요?”
“예, 많이 회복됐습니다. 이제야 좀 정신이 드네요.”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재혁의 주변으로 우리는 다가갔고, 그는 많이 괜찮아진 듯 말을 하며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지도입니다. 대략적이긴 하지만. 보는데는 문제 없을겁니다.”
“그렇군요.”
“지금 우리가 떨어진 곳은 여기.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이곳 역시 트롤의 영역입니다.”
그가 품 안에 꺼내 든 것은 지도였다.
손으로 그린 듯했지만, 정교하게 그려진 지도였고, 그것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가운데 펼쳐 든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혹시 용병 마을까지 가는 길은……?”
“음, 사실 마을까지 가는 길은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이 숲만 빠져나가면 되니. 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