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어다니는 무기고-126화 (126/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126화

“이, 이봐…….”

“잠시만요. 시, 신우 씨가 아닌 것 같아요…….”

“네?”

무고하게 혼자서 앞장서려는 신우는 어딘가 이상했고, 그런 그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현지가 막아섰다.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그를 쳐다보았지만, 신우가 분명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그녀에게 반문하였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신우를 노려보고 있을 뿐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언가 느낀 것인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행동을 할 만한 그녀가 아니었기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뿐이었다.

그녀가 탐지 스킬을 통해 무언가를 느낀 것으로 보였다.

모습은 분명 강신우 그대로였지만, 왠지 모를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어버린 그는 주변의 공기마저 무겁게 만들었다.

뚜벅. 뚜벅.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간 그는 수십, 수백 마리의 트롤들 앞에 홀로 멈춰 섰고 자신의 검을 비틀어 잡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발도’의 자세였고, 이 많은 트롤을 상대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조금의 감조차 들지 않았다.

그의 스킬은 분명 강력했고, 다수의 적을 베어버렸지만,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의 위력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한 번에 해치울 수 있는 트롤들의 숫자는 아무리 많아 봐야 다섯 마리.

그렇기에 지금, 이해가 되지 않는 그의 행동을 말리려 한 것이었지만 현지에 의해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 저, 검. 저 검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녀의 손가락은 신우의 허리춤에 차 있는 새로운 검을 가리키고 있었다.

음침한 기운을 내뿜는 그 검은 신우가 두 번째 메인 퀘스트의 보상으로 얻었던 그것으로, 흑도가 부러진 지금 그가 사용하려는 듯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천천히 자세를 숙인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검집을 비틀이며 검을 뽑아 들며 ‘발도’를 사용했고 그 순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끼엑---!”

소름이 끼치는 비명이 온 사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가 뽑아 든 귀도에서는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거대한 크기의 검기.

여전히 괴기스럽기 짝이 없는 그 검기에는 마치 영혼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탈출하려는 듯 춤을 추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신우 너……?”

그가 발산한 거대한 검기는 단순히 그 크기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귀도에서 뿜어져 나간 그것은 단숨에 트롤 무리를 강타했고, 그들의 절반 이상을 괴멸시켰다.

주변의 공기마저 차갑게 만드는 으스스한 그 검기가 트롤들에 닿는 순간 그들의 육체는 영혼이 빠져나가듯 말라갔고, 생기를 빼앗기듯 눈의 빛을 잃었다.

그야말로 믿기 힘든 광경이었고, 지금껏 신우에게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강력한 공격이었다.

분명 지금까지의 발도와 같은 그것이었지만, 그 위력만큼은 완전히 다른 스킬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조심하세요.”

놀라움과 당혹감, 여러 감정이 교차하며 그를 불러 서려는 순간 다시 한번 그녀가 나를 붙잡았다.

멈칫하며 바라본 신우는 개의치 않으며 두 손으로 검을 붙잡았고, 홀로 전투를 이끌어 나가려는 듯 보였다.

“이봐, 싸울 거면 같이…….”

홀로 뛰쳐나가려는 신우를 보며 함께하려는 순간, 슬며시 뒤를 돌아본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정확히는 눈이 마주쳤다고 느껴졌다.

이쪽을 응시하는 듯한 그의 눈동자는 동공이 없는 흰자뿐이었으며, 화가 잔뜩 난 듯 안면의 근육들이 뭉쳐 인상을 쓴 표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평소의 신우에게선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그 모습은 이질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신우가 아니야.’

지금껏 현지가 느낀 대로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이 자는 절대 강신우가 아니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 원인으로 보이는 것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이었고, 마치 신우의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행동을 주시했고, 머릿속으로는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을 빼앗아야 할지, 그를 제압해야 하는 것인지, 실제로 귀도의 영향을 받는 것인지, 트롤의 스킬은 아닐지, 우리를 공격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고민만 하고 있던 그때 그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민혁 씨…… 어떡하죠?”

“일단 지켜보죠.”

신우가 걱정되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현지가 물어왔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는 지금 함부로 행동할 순 없었기에, 그저 다음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크으윽? 크로아아아아!!!”

당황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닌 트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절반이 넘는 그들의 동료들이 일순간에 사라졌고, 그 시체들이 발아래 가득했다.

그들의 자랑인 엄청난 회복 속도를 자랑할 찰나의 시간조차 없이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강력한 그 힘은 그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였다.

상황을 파악한 트롤들은 더욱 흥분하며 날뛰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붙어보겠다며 신우를 향해 달려왔다.

스윽.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는 수많은 트롤 앞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서 있던 그의 손이 움직였다.

피하지 않겠다는 듯이 검을 비틀어 잡은 그는 홀로 그곳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파바밧.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뛰어든 그는 트롤의 무리에 섞여 들어가며 검을 휘둘렀다.

지금껏 보았던 신우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

한눈에 보기에도 그의 움직임은 가볍고 날카로웠으며, 간결했다.

사방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몽둥이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피해낸 그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주위의 트롤들은 남아나지 않았다.

마치 그의 양옆과 뒤에도 눈이 달린 것과 같은 정확한 움직임이었으며, 동작은 군더더기 없는 것이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최소한의 움직임을 이용해 피하며 트롤들을 공격했다.

“……그래도 위험하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그의 주변에 트롤의 시체들이 쌓여갔지만, 그래도 단신으로 저 많은 트롤을 상대하기란 쉬워 보이지 않았다.

밀리기 시작한 트롤들은 힘을 모아 한꺼번에 공격을 시도한 것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순간에 달려든 녀석들로 인해 그 속에 파묻혀 버린 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크아아악!!!”

“으랴랴랴!!!”

퍽! 퍽! 퍽!

흥분한 트롤들은 자신이 무엇을 때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신우가 있던 그 자리에 연신 몽둥이를 내리쳤고, 그로 인해 먼지구름이 가득 피어오르며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시, 신우…….”

그 모습을 지켜만 볼 수는 없었기에 현지를 뿌리친 채 달려들려는 그 순간.

먼지구름 속에서 신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작은 상처조차 생기지 않은 그는 엄청난 높이로 하늘 높이 뛰어오른 것이었다.

주변의 트롤을 디딤돌 삼아 뛰어든 그는 공중에서 자신의 검을 돌려 잡았고, 시선은 수직에 있는 땅을 향하고 있었다.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든 트롤을 향해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꺄아아아악---!!”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든 것이 아닌 그 검기는 그가 사용하는 발도 스킬이 아니었지만, 그 형태는 매우 유사했다.

그가 공중에서 휘두른 검에선 다시 한번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검기가 뿜어졌고, 이번에도 역시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로 날카롭게 울려 퍼진 소리는 검기 속에 갇힌 영혼들에게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툭.

공중에 뛰어오른 그의 몸은 가볍게 지면으로 안착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이미 그의 주변에는 살아남은 트롤들은 보이지 않았으며, 그들의 시체조차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

“……대체.”

그의 행동을 관찰하면 할수록 신우와는 달랐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그의 힘은 위협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우리 세 명이 전력을 다했음에도 감당할 수 없던 트롤 무리를 단시간에 그 혼자 완벽하게 말살시켜 버린 것이었다.

“으. 으윽…… 윽.”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검을 집어넣은 그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던 그는 신음을 토하고 있는 트롤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자랑인 회복조차도 먹히지 않는 듯 끔찍한 모습을 한 트롤은 살아남았지만, 이미 육체의 반 이상이 썩어버려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워 있었다.

푹--!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눈동자조차 보이지 않는 흰자만 가득한 그의 눈은 쓰러져 신음하는 트롤을 향하고 있었고.

이내 다시 검을 뽑아 들어 마무리 지었다.

촥. 쉬이익. 탁.

허공에 검을 내리쳐 피를 털어낸 그는 다시 검집에 검을 집어넣으며 뒤로 돌아섰다.

“…….”

“……누구냐, 네놈은.”

“…….”

우리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까먹은 듯 인기척을 느낀 그는 멈춰 서며 우리를 마주했다.

어떠한 말이나 행동, 표정조차도 읽을 수 없는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먼저 입을 열었지만, 그는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위험해요. 저 사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계속해서 경계하던 현지는 이번에도 역시 무언가 느낀 듯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공포를 주체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잠시, 그가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스으윽.

여전히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적대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검을 허리춤에서 뽑아 든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가 공격하려는 대상은 우리였고, 이내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 * *

쩌저적. 쩌저저적. 쿠쿵쿠쿵!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를 베기 위해 달려오기 시작한 그 순간,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있던 장소는 길게 늘어진 절벽의 끝이었고, 그로 인해 하중이 단단하지 못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해 조그만 집조차 지을 수 없다던 그곳에 수백 기에 이르는 트롤의 시체가 쌓이며 과부하가 된 절벽이 버티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발밑에 사정없이 갈라지는 땅을 알아차렸을 당시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절벽이 무너지며 그 위에 있던 모든 것은 아래를 향해 끊임없이 떨어졌다.

“으아아악!!!!”

예고 없이 펼쳐진 난대 없는 상황에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고, 몸은 땅을 향해 점점 더 그 속도를 더해가며 곤두박질쳤다.

주변의 트롤의 시체들과 절벽이 무너지며 떨어져나온 돌덩이밖에 보이지 않던 그때.

공중에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으, 으악. 가만히 좀 있어 봐요!”

“현지 씨!”

머리 위에서 들려온 익숙한 음성에 올려보자 보인 것은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현지였다.

무거운 듯 양손으로 나의 탄띠를 움켜잡은 그녀는 서서히 땅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