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25화
“무기고!”
오른손을 펼치며 외치자 손 안에 무기고가 펼쳐졌고 그와 동시에 그 안에서 무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무기를 세심하게 고를 시간조차 없을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으며,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 또한 제한적이었다.
녹색의 피부와 거대한 송곳니를 가진 트롤들은 수도 없이 많은 수를 자랑하며 진군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마탄 이외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탄 이외의 공격에는 쓰러지지 않는 녀석들이었기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돌격 소총이나 저격총 등의 주 무기들이 전부였던 것이다.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손에 들고 있는 K2와 함께 두 자루의 총기를 더 꺼내 들었고, 그와 동시에 입고 있는 탄띠를 작동시켰다.
평범한 탄띠가 아닌 ‘원격제어 장치’를 변형시킨, 일명 ‘원격제어 탄띠’.
마나를 이용해 들고 있는 총기 이외의 무기들 또한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눈 앞의 달려오는 트롤들을 확인하며 장전함과 동시에 두 개의 총기가 공중으로 떠올랐고, 나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도 준비 완료했습니다.”
간신우 또한 지금의 긴박한 상황에 자신의 흑도를 꺼내 들었고, 마치 결정을 기다리는 듯 이쪽을 쳐다보며 외쳤다.
“두 사람 다 데려왔다. 개굴.”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아…… 우리 흔적을 쫓아온 건가…….”
그때 텐트를 돌아다니던 개구리 인간 종수가 돌아왔고, 현지와 이재혁 또한 그의 뒤를 따라왔다.
이미 소리를 통해 모든 상황을 어림짐작한 현지는 그새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주는 신발인 탈라리아와 황금빛의 너클을 착용한 그녀와는 반대로 이재혁은 부스스한 머리에 정신없이 뛰어나온 듯 맨발을 하고 있었다.
눈앞의 트롤들을 보며 그녀가 물었지만, 우리 또한 알 수 없었기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을 깨물었다.
이재혁은 굳은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책했지만, 그것으로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어찌 됐든, 이곳에서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도망칠 곳은 없습니다…… 싸울 수밖에요.”
“……당신 미쳤어? 저 수를 봐. 족히 백 마리는 넘어 보인다고.”
“다른 방법 있습니까?”
“…….”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원인을 찾기위해 둘리번 거리는 이재혁을 무시한채, 그들을 향해 말을 건넸고 현지와 신우는 자신의 무기를 더욱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반대로 이재혁은 눈이 커지며 기겁했고, 점점 가까워져 오는 트롤의 무리를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다.
“재혁 씨는 전투 스킬이 없다고 했죠. 전투에서 떨어져 있으세요. 가능하다면 최대한 몸을 숨기고 있는편이 좋겠네요.”
“……정말, 싸울 생각입니까? 다 죽을 겁니다.”
“텐트보다는 트럭이 조금 더 낫겠네요. 그곳에 숨어 있으세요.”
“……알겠습니다.”
전투 의사를 내비치며 말을 이어나갈수록 그의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들에 의해 일일이 답변해 줄 시간도, 의사도 없었기에 최대한 단호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대답했고 그는 그제야 고개를 떨구며 트럭으로 걸어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어. 이 밑은 숲이라 뛰어들수도 없고.”
“예, 알겠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알겠다. 개굴!”
트럭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 이재혁을 확인하곤 신우와 현지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시 한번 경고를 주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절벽 끝에 위치한 우리의 정면에서 다가오는 트롤 무리들로 인해 그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었으며, 더군다나 절벽의 아래는 숲이 존재했다.
강이라도 존재한다면 뛰어들 수라도 있었겠지만, 그곳 역시 트롤들의 영역이라 추측되는 곳이었고 떨어지게 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엇, 피노야! 이, 이거 먹어볼래?”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현지의 곁에 있던 조그마한 몸집의 피노였다.
녀석 또한 소란 때문에 잠에서 깼는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구세주라도 만난 표정으로 곧장 각종 무기를 꺼내 피노에게 건네주며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피노는 무척이나 든든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무기를 먹게 되면 몸집이 거대해지며, 언데드 군단과 혼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지는 피노의 특성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고, 그것을 노린 행동이었던 것이다.
“끼이잉, 끼잉.”
하지만 피노는 연신 낑낑거리기만 할 뿐, 눈앞의 총기들을 보고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자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심지어는 자신의 솜방망이 같은 앞발로 총기들을 치우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크로아아아아아!!!!”
어느새 빠른 속도로 다가온 트롤들의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고, 더 이상 미적저릴 시간은 없었다.
“안 되겠다. 피노는 이대로 두고 바로 공격 시작하자.”
먹지 않겠다는 녀석에게 억지로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빠르게 포기한 후, 곧바로 총기를 들어 조준을 시작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저도 있다구요!”
트롤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자 신우와 현지 또한 기다렸다는 듯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흑검을 집어넣은 채 몸을 숙이며 달려 나가는 신우와, 양손에 거대한 화염을 내뿜기 시작한 현지는 이미 그들을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미 상대해 본 녀석들에게 일반적이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킬을 사용하며 공격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발도!!!”
순식간에 트롤들에게 다가간 신우는 자신의 흑도를 뽑아 들었고, 그와 동시에 강력한 검기가 뿜어져 나갔다.
거대한 검기는 무시무시한 절삭력으로 트롤들을 절단시켰고, 그 공격을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탕! 탕!
“포위 되지 않도록 조심해!!”
방아쇠를 당기는 족족 푸른빛의 마탄은 트롤들의 머리를 터뜨렸고, 그것은 공중에 떠 있는 총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두에 있는 신우와 현지를 보며 소리쳤고, 그들은 수적으로 우세한 녀석들에게 포위되지 않도록 공격을 한 후, 간격을 벌리며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야야얏!!”
현지는 아직 자신의 신발인 탈라리아가 익숙치 않은 듯 사용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없어보였다.
그녀의 양손에 불타고 있는 화염은 전보다도 거대해진 것처럼 보였고, 더욱 강력하고 날카로워진 너클을 이용해 연신 주먹을 날렸다.
트롤들의 세세한 급소까지 파악할 수 있는 그녀는 강력한 한 방 한 방을 녀석들의 급소에 꽂아 넣었고, 사방에서 휘두르는 몽둥이를 화려하게 피하며 전투를 이끌고 있었다.
“끄로아아아악!!”
“으윽, 젠장. 발도!”
하지만 의외로 고전하는 것은 다름아닌 강신우였다.
그의 다수의 적을 한번에 쓰러뜨리는 스킬인 발도는 매우 강력했지만, 문제는 그가 가진 공격 스킬이 그것뿐이라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많은 수의 적을 쓰러뜨리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계속해서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의 스킬은 발도는 말 그대로 검집에 있던 검을 뽑아들어야 하는 선행 조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근접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그가 한 번의 공격을 위해 검을 검집에 뽑았다 넣었다 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쾅! 깡! 쾅!
사방에서 밀려드는 트롤들은 그런 조그만 시간조차 주지 않았고,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해 왔다.
거대한 몸집을 이용해 체중을 실은 몽둥이를 살기를 담아 휘둘렀고, 그는 그것들을 흑도를 이용해 막아내기에도 벅차보였다.
“젠장, 신우야 도와줄게!”
비교적 선방하고 있는 현지를 뒤로한 채, 아슬아슬 위험해 보이는 신우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고, 그의 주변에 공격을 해오는 녀석들을 향해 마탄을 발사했다.
트롤들의 몽둥이를 막아내기에 정신없는 그를 엄호해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잠깐의 효과만 있었을 뿐, 한 기의 총기로 트롤들에게서 신우를 지켜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원격제어를 이용해 공중에 띄어 놓은 총기들은 세밀한 조준을 하기에는 미숙했기에, 들고 있는 것만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나…….”
원격으로 제어하고 있는 총기들 또한 마탄을 사용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조준이었다.
신우를 보호하기 위해 마탄을 사용하려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조작 미숙으로 그를 맞추게 된다면 더욱 큰 피해를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고민만 하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나도 긴박했고, 각오를 다지며 신우의 주변의 트롤들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두 마리, 왼쪽에 한 마리…….’
머릿속으로 목표를 지정하며 총구를 들어 올렸고, 곧이어 양쪽에 뛰어진 두기의 총기와 내 손의 총기가 푸른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연신 자신의 검으로 몽둥이를 쳐내며 막기 급급한 신우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춘 그때 방아쇠를 당겼다.
‘가라!’
탕! 타 당!!
“억!”
“이, 이병장님?”
일순간 푸른빛을 머금은 총탄들이 바람을 가르며 일제히 날아갔고, 목표한 트롤들의 머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어떠한 반응도 하지못한채 단말마의 외침을 한 트롤들은 쓰러졌고, 자신을 중심으로 트롤들이 쓰러지자 놀란 신우가 이쪽을 바라봤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격려해 주자, 그는 잠깐의 순간, 다시 흑도를 검집에 집어넣으며 몸을 한 바퀴 돌아 뽑아 들었다.
“발도!”
* * *
“허억, 허억.”
“이 녀석들 끝이 없어요.”
“으윽…….”
얼마나 오래 전투가 이어졌는지 어느새 해가 뜨고 아침이 밝아왔다.
한계까지 다다른 체력으로 인해 숨을 헐떡이며 억지로 전투를 이어나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의 눈앞에 쓰러진 트롤들의 시체는 가득했지만, 살아남은 그들의 수는 배는 더 많았던 것이다.
스킬을 이용해 급소인 머리를 정확하게 맞추지 않는 이상, 무지막지한 생명력 회복을 가진 녀석들의 상처는 순식간에 치료가 되었고, 그로 인한 결과였다.
쨍!!!!
선두에 서서 전투를 이어가던 강신우는 흑도를 이용해 녀석들의 공격을 막아냈고, 이번에도 역시 트롤의 몽둥이를 막아내던 그 순간.
그의 검이 부러졌다.
“으아아악!!! 젠장!!”
자신의 흑도가 부러진 순간.
넘어진 신우는 당황하며 소리쳤고 트롤들은 그를 향해 다시 한번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탕! 탕! 탕!
“강신우, 피해!!! 현지 씨! 돌아와요!”
본능적으로 신우를 향해 뛰어드는 트롤들을 골라 적중시켰고.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며 외치자 트롤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단, 세 명에서 트롤 무리를 상대하고 있었고, 그중 신우가 무너짐과 동시에 전세는 완벽하게 뒤집혔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녀석들을 보곤 현지에게 소리친 것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신우와 현지 모두 불러들이기는 했으나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그 순간 눈앞의 신우의 표정을 확인했다.
“뭘 하려고? 더 이상, 네 발도로는…….”
“…….”
다시 한번 홀로 앞장서려는 그를 말리려는 순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자신의 새로운 검인 귀도를 잡은 신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발도(抜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