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24화
“트롤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장소라…… 어떻게 발견하신 겁니까?”
“제가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마을의 주민분이 발견한 장소입니다. 트롤의 영역에서 조난해 길을 헤매던 중 이곳에 머물렀고 트롤들이 이 주변으론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음…… 운이 좋았네요,”
“그분께서 이곳의 위치를 정확히 표시해 두었고, 모두에게 알려 지금은 베이스캠프 정도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녁이라고 해서 이동하는 데 문제는 없지만, 도중에 습격이라도 받게 된다면 피해는 더 커지니까요.”
“그렇군요. 그래서 이런 텐트들이…….”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시선이 향한 것은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텐트들이었다.
처음 설치된 후, 한 번도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듯 먼지가 가득 쌓인 텐트들이 주변에 설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네, 보통 어두울 때만 잠깐 몸을 숨기는 용도로 사용하다 보니 초라해 보일 수는 있지만 있을 만한 것들은 모두 완비되어 있습니다.”
“굳이 텐트를 쓰는 이유가 있습니까? 스킬을 이용해서 건물도 쉽게 만들고 하던데…….”
대화를 듣고 있던 신우 또한 텐트를 살펴보며 의아한 듯 물어왔다.
그의 말대로 스킬을 이용해 건물을 간단하게 지어 올리는 광경을 몇 번 확인한 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건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재료와 인력이 필요했지만, 더는 그런 시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재료 같은 경우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육체의 노동을 요구하는 작업은 다양한 스킬들을 통해 대체되어 가고 있었다.
눈앞의 작고 먼지 쌓인 텐트들을 직접 설치하는 그것보다도 간단히 스킬을 사용해 건물을 올려 버리는 것이 오히려 더 간단해져 버린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신우의 질문에 충분히 공감되었고, 질문을 받은 이재혁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말입니까?”
“아무리 스킬이라고 한들, 만능은 아니여서 말이죠.”
“……?”
“이곳에 건물을 짓게 되면 트롤들이 발견될 가능성이나 스킬을 보유한 자를 데리고 오는 데에서의 어려움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길게 늘어진 절벽이다 보니 충분한 지대가 받쳐주지 못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 듯, 재혁은 의아해하는 우리를 보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느낀 대로 마나를 다룰 줄 알고,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순식간에 건물을 생성해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종류나 형태가 무엇이든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다는 전제가 필요했다.
심현섭이나 마을의 주민들, 심지어 개구리 인간 중에서도 그러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지만, 문제는 이곳이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한복판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 세상이 바뀐 후 사람들이 갖추게 된 능력은 한정적이었다.
전투 계열의 스킬이 아닌 경우 대부분 사람이 추가 스킬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고, 건축물을 생성하는 것처럼 생산에 중점을 둔 스킬을 가진 자들 역시 그에 속했다.
당연하게도 전투 능력이 없는 그들이 이곳에 오게 될 이유도, 상황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혹여나 필요 때문에 그들이 이동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지금 이재혁을 보호하는 것처럼 꽤 많은 인원이 함께 참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겨우 이곳에 조그만 건물을 짓겠다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한 사람이 있을 리 없었고, 그의 말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잠깐만요. 길게 늘어진 절벽이요? 지반이 충분하지 않다고요?”
그때 조용히 피노를 안고 있던 현지가 그의 말에 반문하며 물었다.
“네. 이곳 지형이 조금 특이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튀어나온 절벽일까요?”
“……예?”
무엇이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그의 대답에 우리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우리가 있던 장소는 트럭의 짐칸이었고, 얇은 벽으로 막혀 있는 탓에 밖의 풍경을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이미 어두워진 이후 트럭에서 내렸을 때는 그곳이 절벽이라는 사실만을 알았을 뿐, 자세한 지형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하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건물이 생기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지 지금 저희 무게 정도는 끄떡없습니다.”
“……혹시 밑에는 ”
“절벽 밑에는 숲이 있습니다.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트롤의 영역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우리를 보며, 그는 안심하라는 듯 큰 소리로 웃으며 설명해 나갔지만, 오히려 불안감은 켜졌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위치한 곳은 튀어나온 절벽의 끝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그 밑에는 트롤의 영역으로 의심되는 숲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그곳에서 몸을 숨겨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마저도 트롤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는 장소였다.
“이 병장님, 여기 정말 괜찮겠습니까?”
“……별수 없어. 일단 오늘은 여기서 잠을 청하고 내일 일찍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죠.”
“네, 그렇게 해요.”
“어쩔 수 없다. 개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지만, 신우에게 말한 대로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를 보며 의견을 전하자 그들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결정되셨나요? 그럼 아무 텐트나 가셔서 쉬도록 하세요. 불편하시면 트럭에서 쉬셔도 상관없지만, 혹시 모르니 불을 피우거나 너무 시끄러운 소리만 나지 않게 주의해 주세요.”
상황을 지켜보던 이재혁은 우리의 결정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텐트를 향해 걸어갔다.
* * *
“쿠우우웅~ 푸우우우~ 쿠우우웅~ 푸우우우~”
‘새벽 일찍 출발하면 오전 중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 무사히 도착해야 할 텐데…….’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신우를 뒤로한 채, 걱정에 잠을 청하지 못한 채 몸을 뒤척였다.
“개굴. 민혁 자냐? 개굴?”
“아뇨. 아직 안 잡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텐트의 밖에서 말을 걸어온 것은 개구리 인간 종수였다.
밤잠이 없다며 보초를 서겠다고 한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질문해 온 것이었다.
“아니다. 개굴.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다. 개굴”
“뭡니까? 편하게 물으셔도 됩니다.”
“너네는 용병 마을의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냐? 개굴.”
그가 조심스레 질문해 온 의도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걱정되셔서 그런 건가요?”
“맞다. 개굴. 심현섭 어르신과는 이야기가 잘되었지만. 개굴.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개굴. 강한 사람들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혹시 실수라도 해서 우리 마을에 피해라도 끼치게 되면…… 개굴……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지…… 개굴.”
그가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 이유는 또 다른 동맹을 제안하기 위해서였고, 그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현섭과는 이미 몇 번의 교류가 있었고, 안면이 있었지만, 그들과는 첫 만남이었다.
메인 퀘스트의 페널티로 인해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동맹을 이뤄낼 수는 있을지 등의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분명 하나같이 괴물처럼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 그러냐. 개굴.”
“하지만 그만큼 경험도 많고 인정이 넘치는 분들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
“동맹을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종수씨의 모습을 보고 공격하거나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심 불안해하는 개구리 인간 종수를 보며 안심시키기 위해 건넨 말이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주현이나 김낙현, 강성곤 등 용병 마을의 사람들은 강력한 만큼 거침없고 저돌적인 부분이 있었으나 남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등의 행동을 할 만한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보는 우리를 구해줄 만큼 선하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냐…… 개굴. 고맙다. 개굴.”
“아닙니다. 그나저나 피곤하시면 언제든 들어와서 쉬셔도 됩니다. 아니면 저랑 교대하셔도 좋구요.”
“아, 아니다. 개굴. 난 잠이 오지 않는다. 개굴. 너도 어서 자라. 개굴. 미안하다. 개굴.”
그럼에도 개구리 인간 종수의 불안감이 해소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어서 쉬라는 듯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시켰다.
그는 생각이 많은 듯했고 동맹에 관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었기에 그렇게 그를 뒤로한 채 서서히 잠자리에 들었다.
* * *
“……우오오오오”
“……쿠오오”
“……개굴. 음냐. 신우 코 좀 그만 골아라. 개굴.”
보초를 서고 있던 개구리 인간 종수는 어느새 졸고 있었고,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반쯤 뜨며 중얼거렸다.
텐트 밖에서도 신우의 코골이는 거슬릴 정도로 들려왔고.
당연히 그 소리 또한 그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쿵. 쿵. 쿵. 쿵.
“쿠오오오와와아!!!”
그 순간 땅을 울리는 거대한 울림과 이상하리만큼 괴기스러운 음성에 개구리 인간 종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개굴! 뭐, 뭐냐! 개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더듬거린 그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고, 이성이 돌아온 순간 뒤를 돌아 소리쳤다.
“트, 트롤이 쳐들어왔다. 개굴!!! 어서 일어나라 개굴!!!”
* * *
“비, 비상…… 개굴”
“어서…… 나라. 개굴.”
잠에 빠져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벌써 일어날 시간이 다가왔는지 개구리 인간 종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해가 뜬 건가…… 아직도 피곤해.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잘걸. 그나저나 왜 이렇게 요란을…….’
“……트롤이다!!! 트롤이 쳐들어왔다! 개굴!”
“뭐…… 뭣!”
비몽사몽 하던 그때 들려온 소리에 본능적으로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은 매우 급했고, 신우 또한 그것을 느낀 듯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곧장 텐트의 밖을 빠져나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 젠장.”
거의 울기 직전인 개구리 인간 종수를 보며 상황을 물어보려던 찰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저 멀리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는 무리는 분명 녹색의 트롤들이었고, 그들은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들은 우리를 습격한 것이었고, 우리에겐 그 어디에도 도망갈 장소는 없었다.
트롤 무리는 정면에서 달려오고 있었고, 절벽 끝에 위치한 이곳에선 피할 곳도 숨을 장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신우야, 전투 준비해! 종수 씨는 현지와 재혁 씨가 깨어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아, 알았다. 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