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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121화 (121/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121화

“든든하네요.”

운전을 하고 있던 그가 내 쪽을 힐끔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이동을 위해 올라탄 트럭의 조수석에는 한 명밖에 탈 수 없었다.

나를 제외한 신우와 현지, 피노와 개구리 인간 종수는 짐칸에 탑승한 상태였다.

상태창을 확인한 뒤 이번에는 무기들을 점검하고 있자, 그것을 보고 말한 것이었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요.”

“네, 그래도 아직 트롤들의 영역이 나오기까지는 조금 남아 있습니다. 저희 마을 근방까지 녀석들이 오지는 않으니 벌써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몇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아 물론, 혼자서는 아니구요. 지금처럼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음, 그렇군요.”

그는 용병 마을까지 가는 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자신 있게 말하였고, 의아하여 질문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어떤 일 때문에 간 것인지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으나.

이전에도 마을끼리의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건…… 그것도 스킬로 작동하는 겁니까?”

“예? 아, 이것 말이군요. 예. 맞습니다.”

한차례 대화를 주고받은 뒤.

왠지 모를 서먹한 공기가 주변을 감싸 안았고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이었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는 그의 양손은 누가 봐도 마나를 이용해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생소하시겠네요. 차에 마나를 주입시켜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음…… 석유 대신 말입니까?”

“예, 아무래도 요즘에 석유를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요.”

“그렇군요…… 대단하네요, 이런 식으로 마나를 활용할 수도 있다니.”

“하하, 별거 아닙니다. 인간이야 늘 방법을 찾아내지 않습니까.”

질문에도 여전히 운전대를 잡은 그는 앞을 보고 있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채 그대로 대답해 주었다.

그의 말대로 변해 버린 지금의 세상에서 석유를 얻기란 정말이지 어려웠다.

다른 차에 있는 석유를 빼내거나, 주인 없는 주유소를 터는 것 외에 석유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지금처럼 차를 굴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기할 정도였던 것이다.

의외로 그 해답은 스킬에 있었다.

이들은 석유를 대체할 연료로 마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고, 실행에 옮겼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이들 마을에서 또한 전기를 대체해 마나를 사용하고 있었으니, 그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자동차를 운전하는 스킬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네? 하하하하.”

세상이 변한 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스킬은 매우 다양했다.

그 종류는 물론 쓰임새나 활용도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신우나 현지, 그리고 나처럼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데 중점을 둔 스킬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건물을 수리하거나 식물이나 동물이 빨리 자라도록 하거나 옷을 만들거나 무기를 만드는 것처럼 생활에 중점을 둔 스킬을 가지게 된 자들 역시 다수 존재했던 것이다.

마나를 이용해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그를 보며 당연하게도 그러한 스킬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 유추했고, 질문하자 그는 무엇이 그리도 웃긴지 큰소리로 웃어 보였다.

“하하하,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렇게 보였을 수 있겠네요.”

“……?”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도 안 했군요. 저는 이재혁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심현섭 어르신 밑에서 일하고 있고 엔지니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엔지니어…… 요?”

웃는 그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 운전을 하고 있던 그는 힐끔 쳐다보며 사과를 건네왔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며 그제야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네, 맞습니다. 상태창의 직업에 쓰여 있는 명칭이긴 하지만, 사실 마을 전체에 관한 잡일이나 보수, 공사 등을 맡고 있습니다.”

“아…….”

“이 트럭도 제가 개조를 한 겁니다. 석유를 대신해서 마나를 이용해 움직일 수 있도록 말이죠. 면허는 있으시죠?”

“네? 네 있습니다.”

“이제 와서 필요가 있겠느냐마는. 이 트럭은 운전을 할 줄 알고 마나를 조금만 다룰 줄 알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습니다. 마나도 아주 소량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조금만 연습하시면 그쪽도 운전이 가능할 겁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어째서 오신 겁니까?”

그는 자신이 개조한 트럭에 자부심이 있는 듯 자랑스럽게 그것을 소개해 주었지만, 그에 말에 귀를 기울일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트럭을 운전하기 위해 그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이 위험한 여정에 그가 온 것인지 의아했던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운전을 할 수 있고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자라면, 조금의 연습만으로 트럭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 연습은 마나를 흘려보내는 방법일 것이고.

운전을 할 줄 아는 자라면 나를 포함해서도 신우와 현지 최소 3명은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동하고 있는 장소는 트롤의 영역이었으며, 그 위험성을 그도 모르지는 않을 터.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우리가 연습을 통해 이동했다면, 굳이 그가 이런 위험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하하,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트럭이 고장이라도 나면 저희 마을이 곤란해서요.”

“음…… 그렇군요.”

그는 웃어 보이며 대답했고, 일리가 있었다.

우리가 조금만 연습해서 운전을 할 수 있다 하여도, 트럭 자체가 고장이 나버리면 어떻게 하기 어려웠다.

트럭의 짐칸 가득한 물품들을 옮길 수도 없었고, 최악의 상황에는 트럭을 포함한 모든 짐을 버려야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

무엇보다 트럭이 아무 이유 없이 고장 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트롤의 무리를 만나게 되었을 때였던 것이다.

트롤을 만나게 되고 전투가 벌어졌을 경우, 그로 인해 고장이 나게 될 경우를 심현섭은 이미 생각하고 이자를 우리와 함께 보낸 것이었다.

“사실,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여러분들이 배송하는 것 중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슨 의미죠?”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희 마을의 전기나 이 트럭의 석유처럼 에너지원을 마나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제가 필요합니다. 그 원리나 방법 따위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간단한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제 스킬이 없으면 실행할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기술교류를 하는 거군요.”

“굳이 따지자면 그렇습니다. 저희 마을 역시 발전해야 할 것이 많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그걸 지금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하하, 깜빡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던 중 저도 모르게 약간 언성이 높아지며 따지듯이 물었다.

깜빡했다며 웃어 보이는 그였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였고 우리가 배송해야 하는 것은 뒤에 가득한 물건들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야.’

그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마을 간의 동맹에 관한 조건 중 그의 역할이 가장 컸을 것이 분명했다.

전기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자.

어찌 보면 그는 변해 버린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능력을 빌려주는 대가로 심현섭은 동맹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했을 것이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나의 무리한 조건에도 수락을 했고, 우리는 지금 이자를 무사히 이동시켜야 했던 것이다.

“하하, 들켜 버렸네요. 하지만 뒤에 물품들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약속했던 물품들이니까요.”

“하아…… 저희가 당신을 내팽개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몰랐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습니까?”

“저희도 사정이 있다 보니…….”

“……더 숨기는 것은 없습니까? 혹시 전투에 관한 스킬은 있습니까? 공격이나 방어에 특화된 그런 종류의.”

“애석하게도…….”

“혹시라도 전투가 벌어지면 곧바로 저희 뒤에 숨으세요.”

“네.”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자.

그 또한 머쓱한 듯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단순한 물건 배송인지 알았던 우리의 목적은 그것이 아닌 이자를 무사히 이동시키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즉, 우선순위가 물품들이 아닌 그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되었다.

“……마을 간의 교류인데 저쪽에서는 무엇을 받습니까?”

그에게 야단치듯 주의를 주자, 삽시간에 아무런 말도 없이 어색해졌고 분위기를 풀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전투 쪽으로 기울어진 마을이다 보니. 용병들의 배치와 무기, 방어구, 전투 기술 등을 교환하기로 했을 겁니다.”

“음, 자세히는 모르는 모양이군요.”

“하하, 아무래도 심현섭 님을 포함한 고위 간부들만 동맹 회의에 참석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정말 그 이상은 모릅니다.”

“고위 간부라…… 서열을 나눈 겁니까?”

“음,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겁니다. 저희는 실질적으로 마을을 이끄는 그들을 뒤에서는 다들 그런 식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불만 같은 건 없나요?”

“몇몇 소수는 불만이 있는 것 같지만, 심현섭 님을 포함해서 그들이 아니었으면 이 정도 생활을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의 의견은 묵살되는 거군요.”

“…….”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 대화였지만,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가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듯한 마을이었지만, 실질적으론 그 차이가 벌어진 것이었다.

세상이 변하기 전의 사회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였고, 부와 명예에 따른 보이지 않는 서열이 나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느껴졌다.

몇몇 불만을 제기한 자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마을을 이끌고 발전시키는 그들의 공적은 대단했기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착하고 나면 그곳에는 얼마나 머무는 겁니까?”

침묵하는 그를 보며 대답할 의지가 없어 보여, 주제를 바꾸며 질문했다.

그는 용병 마을에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가는 것이었고.

돌아갈 때 우리와 같이 마을로 가는 것인지를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저는 같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마을 전체에 전기를 대신할 마나를 깔고, 이것저것 기본적인 것만 해도 최소 3개월 이상은 머물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꽤 오랜 기간인데 불만은 없으세요?”

“제 의사로 결정한 거라 괜찮습니다. 꽤 많은 보수를 약속받기도 했구요.”

“보수는 얼마나…….”

끼이이익-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트롤입니까?”

“일단 최대한 달아나보겠습니다만. 준비를 해주세요!”

그 순간 그가 핸들을 돌리며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거칠게 사이드미러를 확인한 그는 다급하게 외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확인했고, 그곳에는 수십 마리의 트롤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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