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16화
“끼요욥!”
“피노야!”
심현섭의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피노였다.
단 며칠이었지만 떨어져 있었던 동안 그리웠나 보다.
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향해 달려왔고 그런 피노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잘 지내고 있었어?”
“끼유육.”
“……하하하.”
하지만 주인인 나를 무시한 채 지나갔고, 뒤를 돌아보자 피노는 이미 현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살갑게 대해주는 그녀와 품 안에서 애교를 피우는 피노를 보며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자네들 왔구먼.”
“네, 조금 늦었습니다.”
“아니네, 그사이 또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구만.”
그러던 중 앞으로 나온 것은 심현섭이었다.
그는 우리의 모습과 뒤에 자리하고 있는 개구리 인간 종수를 보며 이해한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는 분명…….”
“반갑다. 개굴. 종수라고 한다. 개굴.”
“음, 반갑네.”
그가 역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종수였고, 둘은 서로 악수하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겠나?”
그는 산속을 빠져나온 개구리 인간들을 보며 의아한 듯 쳐다보며 물었다.
이미 산속에 자리 잡은 개구리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그였으며, 그들의 특성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
몬스터들을 피해 숨어다니며, 함께 힘을 합쳐 동맹을 맺자는 자신의 제안마저 거절했었던 그들이다.
그랬던 그들이 어째서 이곳에 찾아온 것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설명하겠다. 개굴.”
그를 보며 입을 떼려고 할 때.
지켜보고 있던 개구리 인간 종수가 끼어들며 가로막았고 자신이 설명하겠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나왔다.
“저번에 준 제안 거절해서 미안하다. 개굴. 그날 이후 많은 사건이 있었다. 개굴. 정말 미안하지만, 아직 그 제안 유효하면 받아들이고 싶다. 개굴.”
“음…… 동맹을 하자는 말인가?”
“맞다. 개굴. 우리 마을 모두 생각이 바뀌었다. 개굴. 더 이상 몬스터에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다. 개굴.”
“흠,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겠나?”
개구리 인간 종수는 자신들의 마을을 대표해 심현섭과 대화를 이어나갔고, 그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받아주었다.
곧장 개구리 인간들의 제안을 받아줄 것으로 생각했던 그는 의외로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며 뜸을 들였고, 확실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이내 그는 우리와 함께 있던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이지 물으며 질문했다.
* * *
개구리 인간 종수는 지금껏 우리와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렇게 된 거다. 개굴.”
“그런 일이 있었구먼.”
까마귀 몬스터와 까마귀 군주의 공격, 그들의 두 번째 메인 퀘스트 그리고 더 피하고 있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들의 결의까지 모든 것을 듣고 난 그는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자네들도 고생했어. 내 부탁 때문에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리게 되었구먼.”
“하하, 아닙니다. 저희가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음, 그런가? 어찌 됐든 미안하게 되었네.”
그가 말을 꺼낸 것은 개구리 인간들이 아닌 신우와 현지를 포함한 우리였고, 자신의 마정석을 복구하기 위해 떠난 우리에게 미안한 감정을 전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을 도와주었던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자발적이었고, 피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자네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마음이 바뀌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네, 전투 의지가 없는 자네들을 보며 내심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니 말일세…….”
“……감사하다. 개굴.”
“하지만…….”
그는 다시 개구리 인간들을 보며 말을 이어갔고, 이내 종수와 그들을 빤히 쳐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네.”
“…….”
“내가 동맹을 제안했던 당시는 두 번째 메인 퀘스트가 막 시작하기 직전이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이나 시너지, 힘을 합쳐 싸울 동료가 필요했던 것이네.”
“……개굴.”
“하지만 지금 모든 상황은 끝이 났고 그로 인한 피해 복구와 마을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만으로도 과부하가 올 지경이라네.”
그가 은연중에 내비친 말들은 부정적인 것들이었고, 개구리 인간 종수 또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듯 침묵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도 동맹을 맺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습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네.”
그때 끼어든 것은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강신우였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 않자, 난데없이 그가 끼어들며 물었고 심현섭은 그를 보며 조심스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지금의 상황에선 오히려 혹을 붙이는 격이 될지도 모르겠군.’
내심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신우였지만, 심현섭의 태도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의 상황은 언데드 군단과의 전투로 인해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들의 구성원이 아니었기에 자세한 상황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마을에 있던 사람들을 보면 그러한 것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대부분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팔과 다리, 머리, 손, 발 어디든 붕대 등으로 치료 중인 흔적을 가지고 있었고, 온전히 성한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
아무리 다양한 스킬 등을 이용해 번성해 나가기 시작한 마을이라 할지라도, 구성원인 사람들이 상처를 입어 자유롭지 못한다면 발전은 더뎌질 것이 분명했다.
또한, 언데드와의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은 대부분의 마나를 쏟아부었고, 다양한 스킬에는 쿨타임이 존재했다.
그것은 아무리 강력한 심현섭조차 마찬가지였으니,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 동맹을 맺는다고 해서 개구리 인간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마음을 고쳐먹은 개구리 인간들과 동맹을 맺는다고 해서 얻게 될 이득이 무엇이 있을지 짐작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들이 전투 의지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들.
이미 마을은 평화로웠고 혹여나 몬스터가 쳐들어오는 상황이 생기게 되어도 오랫동안 전투와 떨어져 있던 그들의 도움은 미미할 것이 분명했다.
경제, 문화, 예술 그 어떤 것도 개구리 마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들은 짐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나 혼자서 결정할 사항은 아닌 것 같구먼. 조금 이따 회의를 열도록 하겠네. 그래도 괜찮겠나?”
“조, 좋다. 개굴. 이해한다. 개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은 아무것도 없이 볼품없는 개구리 인간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특성. 물에서 숨을 쉬거나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 엄청난 점프력으로 인한 빠른 이동 속도 등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유롭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종수의 은신 능력이라든지 망가진 마정석을 복구할 수 있는 건이 아저씨의 능력 등은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또한, 얼마든지 발전 가능성이 있는 그들이었기에, 그 또한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기에 잠시 양해를 구하며 대화 주제를 변경하며 질문해 왔다.
* * *
“회의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걸세, 그 전에…….”
“아, 여기 있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침묵하고 있던 와중, 그가 바라보자 곧바로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있던 보따리를 꺼내 들었다.
“오, 역시 완벽하구먼. 고맙네. 건이 그자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주게.”
“알겠다. 개굴.”
그는 곧장 보따리를 풀어 보았고, 푸른빛을 발산하는 자신의 마정석을 꺼내 살펴보기 시작했다.
금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고쳐진 마정석을 보며 흡족한 웃음을 띤 그는 우리와 개구리 인간들을 차례대로 보며 감사를 전했다.
“자네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텔레포트가 준비되려면 3일 정도 남아 있네.”
주섬주섬 자신의 마정석을 집어넣은 그는 신우와 현지 그리고 내 쪽을 바라보며 질문했고, 그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개구리 인간을 도와주느라 소비한 시간은 4일 정도였고, 그가 약속했던 텔레포트의 준비까지는 3일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가 물어보는 것은 주현이 이끄는 용병들에게 찾아갈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들은 언데드와의 전쟁을 무사히 마친 후, 우리를 정식으로 초대했고 그 위치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그곳까지 왕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일, 텔레포트가 준비되기까지 남은 시간과 맞아떨어졌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음…… 저는 어느 쪽도 상관없긴 한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우리 목숨을 구해줬던 분들인데 찾아가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었기에 옆에 있던 신우와 현지에게 물어봤고, 둘은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곧 대답했다.
어떤 결정이든 상관없기는 하지만, 위험하다는 현지와 당연히 가는 쪽을 선택한 신우의 결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음, 트롤이 문제네.”
이곳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트롤들에 의해 위기를 겪었고 그런 우리를 도와준 것이 바로 주현과 강성곤, 김낙현이었다.
목숨을 빚진 이력이 있었고 그들 또한 우리를 정식으로 초대했으니 찾아가 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을까지 가기 위해 중간에 있는 트롤의 구역이 걸렸다.
아무리 그 당시보다 우리가 강해졌다고 한들.
이미 트롤들에게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고 그들의 구역이나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언제 어떤 사건에 휘말릴지 알 수 없었고, 무슨 상황이 일어나게 될지 예측할 수 없어 고민하는 것이었다.
“혹시 시간 때문이면 걱정하지 말게. 텔레포트가 준비되더라도 자네들이 오기까지 준비만 해두겠네.”
“그렇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렇고말고. 언제 자네들이 제시간에 도착한 적이 있었나 껄껄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자 그런 우리를 보고 있던 심현섭이 말을 꺼내왔다.
그의 말대로, 그가 제안했던 약탈자 소탕, 마정석 구하기, 마정석 복구까지.
전부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했으나 시간을 맞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그를 보며 머쓱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우리가 도착하기까지 기다려 준다는 뜻이었다.
마음이 찾아가는 쪽으로 기울어지던 그때 그가 다시 말을 건넨다.
“그러고 보니 자네들도 서울로 간다고 했으니, 도움이 되지 않겠나?”
“예?”
“음, 몰랐는가? 그들 중엔 서울에서 내려온 이들이 다수 있다네. 가기 전에 서울의 상황 정도는 파악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몰랐나 보구만, 그중에는 화이트라는 기업에 속해 있던 이들도 있다고 들었네.”
“화, 화이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