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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109화 (109/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109화

푸더더덕.

까마귀 군주가 양팔을 치켜들자, 그 주위로 수십 마리의 까마귀의 형상을 한 검은 그림자가 날아올랐다.

마치 그를 보호하듯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그것들은 그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자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공격입니다!! 조심해요!!”

까마귀의 형상을 한 그 그림자들의 눈동자는 빨갛게 빛났고, 수십 수백 마리의 그것들은 마치 검은 파도처럼 우리를 덮쳐왔다.

“으, 으으악!!! 떨어지면 안 됩니다!”

“개, 개굴!!!”

양손으로 얼굴을 막으며 버텨보았지만, 막을 새도 없이 덮쳐든 그것들의 세력은 엄청났다.

동굴의 입구를 가득 메우며 날아든 그것들은 개구리 주민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향했고, 스치는 순간마다 생채기를 내며 뒤로 밀어냈다.

우리가 서 있는 장소는 절벽에 위치한 까마귀 몬스터들의 둥지, 도망칠 장소 따윈 없었다.

이곳에서 떨어진다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위치한 거센 강이 전부였던 것이다.

“개굴, 버틸 수가 없다 개굴!! 으아악.!!”

조그만 틈도 없이 계속해서 밀려드는 그것들로 인해 시야를 확도 할 수 없는 상황.

최대한 그것들을 버텨보았지만 조금씩 뒤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개구리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 고통에 찬 비명들이 곳곳에서 들려왔고 결국 둥지에 밀려 하나 추락하고 있었다.

‘이대론 안 돼!’

갑자기 등장한 까마귀 군주는 우리를 향해 공격을 시도했고, 이대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간 전부 전멸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무수히 날아오는 까마귀 형상의 그림자뿐.

바로 앞에 있던 까마귀 군주는 물론, 근처에 있던 개구리 주민들 또한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녀석의 공격을 멈춰야 해, 수류탄이나 폭탄을…….’

당장 떠오른 생각은 이 까마귀 그림자를 멈추는 것이었다.

무기고에 있는 수류탄이나 폭탄을 꺼내 광범위한 공격으로 이것들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이 들었고, 곧바로 실행하려던 찰나 행동을 멈추었다.

‘젠장, 그럼 개구리들이 버티지 못할거야…….’

다량의 수류탄과 폭탄을 꺼내 까마귀 군주의 공격을 저지시킨다고 해도, 문제는 개구리 주민들이었다.

방탄 피부, 지치지 않는 체력, 끈질긴 생명력, 트롤의 생명력 등의 스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큰 피해는 없겠지만, 그들은 어떠한 방어 계열의 스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광범위한 수류탄이나 폭탄이 위력을 발산했을 경우,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 였던 것이다.

이곳에 온 목적은 개구리 주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한 것이었기에 곧바로 그 계획을 철회했다.

“개굴, 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개굴!!”

그 와중에도 고통에 찬 개구리들의 비명은 계속해서 들려왔고, 더 이상 고민할 시간 따윈 없었다.

“이판사판이다! 이거라도!!”

철컥. 철컥. 피유우우우웅-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간 모든 개구리 주민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위기였고, 결국 꺼내든 것은 역시 돌격 소총이었다.

까마귀의 형상을 한 그림자들로 인해 옷이 찢기고 상처가 늘어났지만, 더 이상 방어 태세를 멈췄다.

방어를 위해 본능적으로 취하고 있던 손을 내리며 총기를 장전했고, 녀석들이 날아오며 부딪히는 물리적인 힘에 저항하며 총구를 들었다.

목표는 까마귀 군주가 위치했던 바로 그곳, 움직였을 수도 있는 그를 예상하며 전방을 향해 총구를 겨눈 것이었다.

검은 그림자에 둘러싸인 총기에서는 푸른빛이 발산됐고, 자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두.

개구리 주민들은 내 위치보다 뒤에 있었고, 전방을 향해 갈기기 시작한 공격이 그들을 향할 걱정은 없었다.

사정없이 총구에서 튀어나간 푸른 마탄으로 인한 그 효과는 굉장했다.

“효…… 효과가 있어!”

까마귀의 형상을 한 그것들은 마탄의 푸른빛에 닿자 녹아버리듯 사라진 것이었다.

끊임없이 사방에서 날아오던 그것들은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점차 앞에 있던 까마귀 군주의 모습이 보였다.

까마귀 군주의 검은 그림자들은 날아오는 마탄을 향해 모여들었고, 그로 인한 결과였다.

‘마탄을 막으려는 것인가?’

겹겹이 뭉친 까마귀의 형상을 한 그림자들은 까마귀 군주의 앞에만 모여 있었고, 그것들은 마탄을 저지했다.

푸른빛에 녹아드는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지만, 이내 그의 앞에서 힘을 다한 마탄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의 까마귀 그림자들 역시 남아 있지 않았고, 그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았다.

“…….”

“…….”

까마귀 군주의 공격은 멈췄고, 나또한 더 이상 그를 향해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마탄으로 그의 그림자 공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했고, 그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탄과 까마귀 형상의 그림자로 공방을 계속해도 그저 서로의 마나를 소비할 뿐, 어떠한 데미지도 줄 수 없는 무의미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총구를 돌리지 않은 채, 뒤에 있던 개구리 주민들을 힐끔 보며 물었다.

그의 공격에 얼마나 필사적으로 버텨냈는지, 둥지에 매달린 그들은 온몸에 생채기가 가득했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우, 우리는 괜찮다. 개굴.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개굴.”

“……일단 집중하세요. 언제 다시 공격을 해올지 모릅니다.”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는 그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개구리 주민들의 수는 줄어 있었고, 필시 그들은 아래로 추락한 것으로 보였다.

그저 그들이 무사하길 바랄 뿐, 남아 있는 이들을 지켜내는 것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 * *

“내 손 잡아라. 개굴.”

둥지에 매달린 주민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끌어올리고 있는 것은 개구리 인간 종수였다.

그 또한 상처로 가득했지만, 고통을 참아가며 그들을 하나둘 구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개굴. 힘내라. 개굴. 어서 올라와라. 개굴.”

까마귀 군주와 민혁이 대치하고 있는 사이 둥지의 끝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던 주민들을 전부 올려준 종수는 그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약하고 힘이 없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참기 힘든 고통을 받았음에도 작은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개구리들.

그것은 자신조차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개굴.’

개구리 인간 종수가 마을 주민들에게서 시선을 옮긴 것은 여전히 총구를 든 채 조준을 하고 있는 민혁이었다.

개구리 주민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의 군복은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벌어진 상처들에서는 피가 새어 나와 굳어져 있었다.

그가 마을에 찾아온 목적은 분명 마정석을 복구하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사정을 들었지만 모른 척 지나갔더라도, 그라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우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처참해진 몰골을 한 그는 우리를 앞에서 지켜주고 있었고,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개굴.’

그에 반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과 주민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오른손에 단검을 있는 힘껏 쥐자 팔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자신 또한 할 수 있다며 결심했지만, 거대한 까마귀들을 향해 단 한 번도 휘둘러보지 못했다.

민혁이 눈치채기 전, 까마귀 군주를 가장 먼저 발견했고 그를 기습할 수 있는 순간도 있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 왔고, 더 이상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나도 무언가 해야 돼! 개굴.’

* * *

탕!!

까마귀 군주가 손가락을 까닥하는 순간, 곧바로 조준하고 총구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검은 그림자가 마탄을 막았고, 공격이 이어졌다.

반대편의 손을 이용해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손을 휘두르자 검은 까마귀 형상의 그림자들이 뿜어져 나왔고, 나 역시 곧바로 마탄을 발사해 그것을 저지시켰다.

“재미있구나, 감히 네놈 따위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냐?!!”

“…….”

자신의 공격이 계속해서 막히자 그의 눈은 더욱 빨간 빛을 발광했고, 흥분한 듯 소리쳤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그림자 공격을 멈춘 그는 양 날개를 다시 한번 펼쳐 들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파악할 수 없어 더욱 그에게 집중한 순간, 소리가 들려온 곳은 매우 가까웠다.

쩌적, 쩌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그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왔고, 금방 그 출처를 알 수 있었다.

둥지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그 알들에서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그의 행동에 의한 결과인 듯 수 많은 알은 금이 가며 깨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화했다.

“까악. 까악!”

“까악. 까아악!”

그 속에서 울음소리를 내며 부화한 것은 역시 까마귀였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그들을 역시로 부화시킨 듯, 일반적이 까마귀보다도 훨씬 작은 상태의 까마귀 새끼들이었다.

“으라아아악!!!”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까마귀들을 보며 의아하던 그때 그가 소리쳤다.

그리자 변화하는 새끼 까마귀들의 모습.

점점 그 크기가 거대해진 그들은 마치 까마귀 몬스터들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게 변화한 것이었다.

그동안 상대해 온 까마귀 몬스터들에 비하면 절반의 크기조차 되지 않는 녀석들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뭔가?’

하지만 거대해진 몸집 외에도 어딘가 이상한 까마귀 새끼들의 모습.

아직 털도 다 자라지 않아 보송보송한 녀석들은 뒤뚱거리며 바둥거렸다.

날개 또한 성장하지 않아서 날지 못하는 녀석들은 그저 검은 병아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막 태어난 녀석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밥 달라는 듯 울어댈 뿐이었다.

까마귀 군주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거대해진 새끼 까마귀들은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까마귀 군주를 바라봤지만, 그 또한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게 끝이냐?”

“……으아악! 감히!!!”

무언가 하려다 실패한 그를 향해 도발하자 화가 난 그가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나타나는 까마귀 형상의 그림자를 보며 마탄을 발사했지만, 무언가 달랐다.

‘피했다고……?’

자신의 몸 전체가 까마귀 형상의 그림자로 변한 그는 마탄을 피해 다가온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결국 간파가 가능한 공격이었고, 총구를 돌리는 그때 그의 그림자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

“무기를 내려놔라.”

더 이상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자 까마귀 군주가 생각해 낸 것은 또다시 인질극을 하는 것이었다.

개구리 주민을 한 손으로 붙잡은 그는 둥지의 끝에서, 협박하기 시작했다.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개구리 주민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겠다는 의미였다.

“비겁한 놈.”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그 무기를 내려놔라…… 으악!”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 그가 고통스러운 듯 소리쳤고 그 앞에 나타난 것은 다른 개구리 인간이었다.

“……종수 씨?”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있던 개구리 인간 종수가 그의 팔에 단검을 휘둘렀고, 매달려 있던 주민은 둥지에 무사히 떨어졌다.

“가…… 감히, 개구리 따위가!!”

흥분한 듯 소리친 까마귀 군주의 붉은 눈은 종수를 향하고 있었지만,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종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까마귀 군주를 향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으아아악!!! 개굴!!!”

둥지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그의 몸은 체중을 실어 덮친 종수에 의해 중심을 잃었고, 뒤로 기울어지며 밑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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