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08화
“우선 밖으로 통하는 출구가 있는지 찾아봅시다.”
의욕이 앞선 개구리 마을 주민들은 당장에라도 까마귀들과 전투를 벌일 것처럼 으르렁거렸지만, 급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이들이 전투 의지를 불사르고 있다고 한들 결국 이곳을 탈출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천장이 무너지며 막혀 버린 입구로는 더 이상 이동하기 불가능했고, 또 다른 출구가 있는지 먼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고, 고맙다. 개굴.”
부담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개구리 주민들을 지나 그들의 앞장을 서 동굴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때 가까이 다가오며 말을 건넨 것은 개구리 인간 종수였다.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질문 공세를 받던 와중 자신의 편을 들어준 것이 고마운 것인지, 마을 주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 고맙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결의를 다지며 자신의 손에 단검을 단단히 움켜쥔 그를 보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곳에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혹시 이쪽으로 가본 적 있습니까?”
“없다. 개굴.”
“우리는 모두 까마귀들에 의해 강제로 이동했다. 개굴.”
동굴의 안쪽에 위치한 그 갈림길 중 왼쪽을 가리키며 뒤를 돌아보자 그들이 대답했다.
아무도 그곳을 향해 가본 적이 없다는 개구리 주민들.
오른쪽의 갈림길로 향해 있는 피 묻은 발자국을 보고 있자면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말에 따르자면, 까마귀 몬스터들에 의해 붙잡힌 주민들은 모두 오른쪽의 갈림길에 있는 공간에 갇혔다고 한다.
나 또한 확인해 본 적이 있는 장소였고, 그곳에는 사로잡힌 이들과 감시를 하고 있던 까마귀 몬스터가 전부였다.
이어진 길이나 통로 따위는 전혀 없는 사방이 막힌 공간이었기에, 더 이상 그곳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이쪽으로 이동합시다.”
“알겠다! 개굴.”
고민할 것도 없이 곧바로 발길이 향한 곳은 왼쪽의 갈림길이었다.
또 다른 출구를 찾기 위한 탐색이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개구리 주민들 또한 별말 없이 뒤를 따랐다.
“혹시 모르니 주변을 살피면서 이동하세요. 경계를 늦추지 말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가는 겁니다.”
“……꿀꺽.”
“명심하겠다. 개굴.”
왼쪽의 갈림길을 통해 입장한 순간부터는 더 이상 잡다한 이야기를 하거나 쓸데없는 인기척을 낼 순 없었다.
최대한 숨을 죽이며 주변을 살펴보라는 말을 하자, 그들 또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까마귀 몬스터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까마귀 몬스터는 없었지만, 동굴 안에는 분명 개구리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던 까마귀 몬스터가 존재했고 이곳은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이동해 본 적이 없는 장소였다.
어떤 장소, 어떤 공간이 존재할지 알 수 없었기에 혹여나 밖의 상황을 모르는 까마귀 몬스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었다.
그들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고, 이내 곧 고요할 정도로 침묵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 * *
쉬이익.
‘바람?’
경계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어두운 동굴을 나아가던 와중, 손끝에 스친 바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동할수록 바람이 조금씩 강하게 불어온다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추, 출구다. 개굴!”
“살았다. 개굴! 정말 출구가 있었다. 개굴!!”
얼마나 이동했을까.
무심코 바라본 저 앞에서는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의 바람이 강렬하게 불어오고 있었고, 그곳은 틀림없는 출구였다.
그것을 확인한 누군가 침묵을 깨고 소리쳤고, 그제야 마을 주민들 모두 밝아진 표정을 하며 기뻐했다.
아직은 어두운 밤하늘이 훤하게 보이는 그곳은 아무리 봐도 밖으로 이어지는 출구가 분명했고, 그제야 나 역시 안심이 되었다.
혹시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까마귀 몬스터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개구리 주민들에게 무기라도 나눠주며 훈련이라도 시키고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아무런 위기 없이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곧장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 * *
“……여기는?”
천천히 동굴의 밖을 향해 걸어갔고, 개구리 주민들 또한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왔다.
혹시나 앞을 지키고 있을지 모르는 까마귀 몬스터들을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거대한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동굴을 빠져나온 그곳은 전혀 예상외의 장소였다.
“……서, 설마. 개굴.”
“마, 말도 안 된다. 개굴.”
바닥에 무수히 많이 떨어진 검은 깃털을 주어든 개구리 인간들은 절망한 듯 중얼거렸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까마귀 몬스터들의 거대한 깃털.
그것들은 사방 천지에 깔려 있었고,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까마귀 몬스터들의 둥지.’
매섭고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은 절벽의 아래에 위치한 둥지였다.
거대한 까마귀들의 덩치에 맞게 그 둥지 또한 거대했고, 튼튼했다.
절벽에 위치한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 보자 까마득한 아래가 펼쳐졌다.
떨어지게 된다면 나 또한 무사할 수 있을지 의심이 되는 절망적인 높이, 날개를 가진 까마귀들이 아니라면 그곳에 위치하는 것 또한 불가능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여기 알이 있다. 개굴.”
또한, 그 둥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알이었다.
개구리 인간 종수가 집어 든 조그마한 그것은 우리의 발밑에 깔려 있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그 알들은 거대한 까마귀 몬스터들의 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크기였다.
그저 일반적인 까마귀 알에 불과해 보였던 것이다.
“저건……?”
“보, 보물이다. 개굴.”
“까마귀들이 모아놓은 보물이 분명하다. 개굴.”
무엇보다 검은 깃털과 더불어 이곳이 까마귀 몬스터들의 둥지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양의 보물들이었다.
하나같이 반짝거리고 진귀해 보이는 보물과 귀중품들이 둥지 안에 가득 놓여 있었다.
그중 다수는 그저 반짝이기만 할 뿐,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쓰레기도 많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기에 보물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물건들 또한 대단히 많이 존재했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까마귀 몬스터들이 온 사방을 날아다니며 모은 것들이었다.
“……정신 차려요. 어서 다시 돌아갑시다. 다른 출구, 다른 곳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보물들에 집중하고 있을 시간 따위 없었다.
탐이 나는 듯 입맛을 다지고 있는 개구리들을 보며 곧바로 정신을 차렸고,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절벽에 위치한 둥지에서 날개가 없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고, 저 수많은 보물을 가지고 가기에도 무리였다.
오히려 탐을 내다 이동이 늦어지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이 까마귀 몬스터들의 둥지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상 이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신우와 현지의 유인으로 인해 당장 까마귀 몬스터들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언제 다시 이곳으로 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단 한 마리의 까마귀 몬스터라도 이곳에 도착한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곧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젠장, 하필 까마귀 몬스터들의 둥지로 이어지다니.’
수식으로 떨어지는 경사로 인해 위로 기어 올라갈 수도, 그렇다고 아래도 떨어질 수도 없는 높이였다.
어쩔 수 없이 들어왔던 입구를 통해 다시 돌아가는 방법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입구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까마귀 몬스터들이 이곳으로 들어오진 못할 거야.’
입구를 발견한 당시에는 드디어 동굴을 탈출했다는 기쁨에 관찰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동굴에서 까마귀 몬스터들의 둥지로 이어진 그 입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개구리 인간들이나 내가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의 크기였으나, 분명 까마귀 몬스터들의 그 거대한 크기로는 도저히 이동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어째서 까마귀들의 둥지에 이곳이 이어져 있고, 그 입구가 이렇게 작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우리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이곳으로 다시 들어간다면 어찌 됐든 당장 까마귀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도 했다.
“어딘가에 또 이어진 출구가 있을 겁니다.”
“알겠다. 개굴.”
탈출했다고 생각한 개구리 주민들은 이곳이 까마귀 몬스터들의 둥지라는 것을 눈치채곤 눈에 띄게 풀이 죽었고, 그들을 위로하며 건넨 말이었다.
나 또한 실망한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또 다른 출구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두운 동굴의 내부였고, 우리는 그동안 느낌에만 의존하며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의 입구들 모두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라곤 보이지 않았기에 샅샅이 탐색한다면 반드시 다른 입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말을 끝내기 무섭게 곧장 다시 입구를 향해 걸어갔고,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다른 출구는 없네.”
낮고 굵은 목소리는 동굴의 안쪽에서 들려왔고, 누군가 천천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둥지에서 이어지는 동굴의 입구를 가로막으며 등장한 그는 고개를 좌우로 서서히 돌리며 우리를 관찰했다.
“음…….”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고개를 들어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당신은…….”
“까, 까마귀 군주다. 개굴.”
갑자기 나타난 그를 향해 질문을 던지려 하던 그때, 말을 끊으며 대답한 것은 개구리 인간 종수였다.
그제야 뒤에 있는 그를 쳐다보며 주위를 보자 하나같이 발발거리며 떨고 있었다.
종수 또한 마찬가지로 개구리 주민들 모두 맹수를 만난 사냥감의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이다.
“까마귀들을 유인하고, 개구리들을 탈출시키려고 한 것인가 보군. 자네 생각인가? 대단하군그래. 우리가 한 방 먹었네.”
그는 마치 칭찬을 하듯 부드러운 말투였으나 나를 향한 그 눈빛은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까마귀 군주냐?”
개구리 인간인 종수가 말한 대로 그의 모습을 보고 있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단단한 부리에 날카로운 눈매, 검은 깃털로 덥힌 그의 머리와 날개로 이루어진 손, 새의 발을 가진 그는 분명한 까마귀였다.
하지만 지금껏 보았던 까마귀 몬스터들과는 그 형태나 분위기, 크기까지도 완전히 달랐다.
거대한 까마귀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그 크기 또한 일반적인 성인 남성 정도였다.
까마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두 발로 선 채 자신의 날개를 마치 팔처럼 이용한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인간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고, 그 모습은 개구리의 모습을 가지게 된 주민들과도 같았다.
모습은 까마귀였으나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자네에겐 고마운 일도 있으니 말 못 할 이유도 없겠지. 맞네, 내가 까마귀들의 군주라 불리고 있는 몸이라네.”
“……나한테 고마운 일이 있다고?”
“그렇고말고. 이 지겨운 전쟁을 끝낼 수 있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자신의 양 날개를 활짝 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