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06화
“뭐 해요! 달려요!!”
“네? 네!”
거대한 까마귀 무리를 향해 검기를 쏘아 올린 신우는 곧바로 뒤로 돌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현지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에게 어떤 해결 방법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호기심에 바라보고 있던 현지는 자신을 보고 외친 그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정신을 차렸다.
신우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표정은 다급함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일단 저지르고 본 거구나.’
그야말로 신우다운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온갖 폼을 잡으며 꺼낸 검을 다시 검집에 빠르게 집어넣고는 꽁무니 빠지게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까아악!!! 까아아악!!!”
분노한 까마귀 몬스터들은 더욱 울음소리를 높여댔고, 거센 날갯짓을 이어갔다.
그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아래 있는 신우와 현지로 고정됐고, 곧바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아아악, 사람 살려!”
수십 마리의 검은 무리를 신우가 어찌할 방법은 없었고, 그건 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잡힐 듯 말 듯 그의 뒤를 아슬아슬하게 따라붙은 녀석들을 보며 그녀 또한 달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력 질주.
더 이상 뒤를 볼 새도 없이 앞만을 바라보고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민혁이나 마을 주민들의 안부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잡히면 죽는다.’
까마귀 무리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온통 머릿속엔 ‘생존’이라는 단어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팔과 다리를 흔들며 계속해서 앞을 향해 달려갔고, 뒤에서는 서늘할 정도의 살기가 느껴져 왔다.
* * *
쿠궁! 쿵쿵쿵!
“……젠장.”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총구는 까마귀 몬스터들을 쉴 새 없이 견제했고, 그들 또한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까마귀는 세 마리, 그것이 전부였다.
동굴의 입구까지 달려가 마탄을 쏜 것은 까마귀 몬스터들이 목표가 아니었다.
동굴 밖의 잠에서 깨어난 까마귀 몬스터들은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들이 동굴을 향해 날아올 것은 당연했고, 수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이곳으로 들어온다면 마을 주민들이 희생될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그 순간 생각해낸 것은.
‘동굴의 입구를 막는다.’
본능적으로 떠올린 그 생각은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동굴의 입구 위쪽을 노려 마탄을 발사했고, 그곳이 무너지며 입구를 막은 것이었다.
마탄에 의해 부서진 천장은 돌무더기를 사정없이 떨어뜨렸고, 거대한 소음과 함께 그곳을 무너뜨렸다.
예상외의 큰 진동과 소음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결국 멈춰졌다.
‘후…… 운이 좋았다.’
순간의 판단으로 이어진 행동이었지만, 그것의 결과는 오롯이 운이 좌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탄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동굴의 입구를 막으려 했지만, 까닥하다 그것은 동굴 내부 전체를 함몰시켜도 이상하지 않았다.
천장의 돌들이 무너지며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입구를 막은 것은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까아아악!!!”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미 동굴 안에 있던 세 마리의 까마귀 몬스터는 여전히 그곳에 자리했다.
한숨을 돌릴 새도 없이 장전을 이어가며 전투가 시작됐다.
철컥. 탕!!
곧바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까마귀 중 한 마리의 이마에 마탄을 쏘며 달려갔다.
전투의 시작을 알린 총탄은 녀석의 머리에 명중했고, 그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위협하듯 각자 자신의 날개를 펼 쳐든 나머지 까마귀 몬스터들은 그것을 펄럭이며 날아올랐고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좁은 동굴 안에서 녀석들의 거대한 날갯짓은 바람을 일으켰고, 녀석들의 행동은 재빨랐다.
탕! 탕!
계속해서 녀석들의 머리를 겨냥하며 방아쇠를 당겼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까마귀들.
자신들의 날개를 넓게 펼쳤다 접었다 하는 것을 반복하며 예측할 수 없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푸른빛의 총탄은 녀석들을 빗나갔고 그것은 곧 공격을 허용하게 만들었다.
쉬이익. 쉬이익.
날개를 한껏 모아 마치 로켓의 모습을 한 까마귀들은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속도로 달려든 것이었다.
크고 날카로운 부리를 창을 찌르듯 곧게 쳐들었고, 두 마리의 까마귀들의 돌진은 날카로웠다.
사방에서 정신없이 날아드는 녀석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공방이 계속되고 있었다.
‘허억. 허억. 이래선 끝이 없어.’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두 마리의 까마귀 몬스터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들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많이 지친 상태.
정확히 맞진 않았지만 스쳐 지나간 마탄에 의해 데미지가 누적되어 있었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까마귀들의 부리에 급소를 맞거나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진 않았지만, 그 공격들을 완전하게 막진 못하고 있었다.
팔이나 다리, 어깨 등을 스친 녀석들의 부리는 날카로웠고, 단지 그것만으로 패이고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새어 나왔다.
‘여기서 내가 당한다면…….’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살폈지만 어두컴컴한 동굴의 내부만이 보일 뿐이었다.
마을 주민들을 데리고 도망가라고 소리치자 개구리 인간인 종수가 그것을 잘 따라준 것이었다.
까마귀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종수에게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치라 했고, 그는 자신의 주민들을 데리고 동굴의 안쪽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동굴의 입구에서 반대편으로 간다고 한들, 그곳에 또 다른 출구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앞의 까마귀들에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고작이었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까마귀들을 막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예상 가능했다.
만약 출구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개구리의 모습을 한 그들이 아무리 빠르게 점프를 통해 이동할 수 있다 하더라도 까마귀들은 날개를 이용해 날아다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던가.
말 그대로 개구리 주민들은 까마귀 몬스터들에게 당해낼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까아악!”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겠다는 듯 동굴 전체가 울리게 포효한 까마귀 몬스터들은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사이 생각은 정리되었고, 나 또한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슈우우욱.
“이야야야아!!”
자신의 날개를 완전히 접으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까마귀를 향해 나 역시 피하지 않고 달려갔다.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녀석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탕!
정면으로 날아오는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곳을 향해 푸른빛의 마탄을 발사했지만, 가뿐히 피해 버리는 녀석.
날아오는 도중 공중에서 몸을 돌려 마탄을 회피한 것이었다.
‘지금이다!’
하지만 녀석이 마탄을 피할 것이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유도했다 봐도 무방했다.
나에게 있어서 정면으로 들어오는 까마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처럼, 까마귀에 있어서 나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에게 강력하지만 정직한 공격은 그만한 단점이 존재했고, 전투가 진행될수록 그것은 뚜렷하게 보였다.
“으윽.”
“까아아아악!!!!!”
녀석을 저지하기 위해 취한 행동은 바로 녀석을 붙잡는 것이었다.
까마귀의 부리에 의해 팔뚝을 깊숙이 스친 순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모든 아귀힘을 쥐어짜 그것을 움켜잡았고 그와 동시에 뛰어올랐다.
날아오는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녀석의 털을 움켜잡은 손이 떨어질 듯 압박감이 들었지만,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녀석의 장점이자 가장 큰 단점이라면 몸집이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강력한 힘과 체력을 가졌을지 몰랐지만, 그로 인해 표적이 되기 쉽고 지금처럼 어디에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있었다.
다만 까마귀 몬스터의 엄청난 속도감으로 인해 그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다.
몬스터의 머리 치고 똑똑한 녀석들에게 한번 그 작전이 노출되면 곧바로 파악하는 녀석들이었기에, 확신에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행동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녀석에게 공격을 받은 그 순간 앞뒤 잴 것 없이 곧바로 손을 뻗었고 녀석의 등에 올라탄 것이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당장 까마귀의 부리에 스친 오른 팔뚝이 시큰거렸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녀석의 몸통에 올라타자 까마귀는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비행했지만, 순순히 내려올 생각은 없었다.
나머지 한 마리의 까마귀 역시, 자신의 동료 위에 올라탄 나를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고, 당황한 듯 날개를 활짝 펼치며 공중에 멈춰 섰다.
“까아악!! 까아아악!!!”
“까악, 까악!”
이 또한 지능이 발달한 녀석들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자신의 동료가 해를 당할까 멈춰 버린 녀석은 그 자리에 멈춰서 까악거리기만 할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거대 까마귀의 등에 올라타 한 손으론 녀석의 털을 단단히 움켜잡았고, 나머지 손에는 총기를 들고 있었다.
떨어지라는 듯 난폭하게 몸을 흔들며 비행하는 녀석 탓에 위험천만했고, 한 손에 든 K2 소총은 견착을 할 수도, 조준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문제는 없었다.
녀석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절대 떨어질 줄 몰랐고, 등에 올라탄 이상 견착이나 조준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이다!”
왼손으로 녀석의 목덜미를 꽉 잡은 그 상태 그대로 오른손의 소총의 총구를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두었다.
동물적인 직감으로 위기를 느낀 녀석의 속도는 더더욱 빨라졌지만, 소용없었다.
마탄의 푸른빛은 피어올랐고, 총구를 통해 뿜어져 나왔다.
탕-!
“까아악!”
날고 있는 그대로 까마귀 몬스터의 뒤통수를 녹여 버렸고, 그대로 녀석은 목숨을 다했다.
순식간에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그것을 보고 소리친 것은 마지막 남은 까마귀 동료였다.
“다음은 너다!”
순간 땅을 향해 떨어지는 까마귀의 등위에서 뛰어올랐고, 곧바로 공중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까마귀 몬스터를 향해 조준했다.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듯 울부짖는 녀석의 부리는 활짝 열려 있었고, 그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탕-!
턱. 터덕.
“으, 윽. 허억. 허억.”
그와 동시에 나 역시 바닥을 향해 떨어졌고, 동굴의 바닥을 사정없이 구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팔의 패인 상처는 더욱 벌어져 피가 흥건했고, 떨어진 충격으로 인해 온몸이 아우성을 쳤지만, 눈앞에 있던 모든 까마귀 몬스터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털썩.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시나마 자리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죽어 있는 까마귀 몬스터들의 시체.
더 이상 위협할 적은 남아 있지 않았고, 그제야 승리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읏…… 차.”
하지만 이 또한 일시적인 승리일 뿐, 저 밖에는 수십, 수백 마리의 까마귀 몬스터들이 존재했고 아직 그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곧바로 자리에서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 동굴의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