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04화
‘갈림길?’
동굴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것은 두 개로 갈라진 길이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공간이 더더욱 넓어진 공간은 그 끝을 예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이 어디에 잡혀 있는 것인지 동굴 안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종수 씨. 거기 있나요?”
“있다. 개굴.”
“오른쪽 길로 이동합시다.”
“개굴. 그게 맞는 것 같다. 개굴.”
하지만 마을의 주민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동굴 어귀에서부터 이어진 발자국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피로 물든 발자국은 동굴의 갈림길 중 오른쪽을 향해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서 가보자. 개굴.”
개구리 인간 종수 또한 그것을 전부 살펴보고 있었고, 그로 인해 의견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그 또한 마을의 주민이었고, 그 발자국을 확인함과 동시에 다급해져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한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곧바로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까마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알겠다. 개굴.”
얼마나 발걸음을 옮겼을까, 시간이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안쪽에선 인기척이 들려왔고.
그 인기척은 한 둘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추청되는 그곳에 도착하기 직전.
개구리 인간인 종수에게 경고한 것이었다.
그곳엔 마을 사람들뿐만이 아닌 까마귀 몬스터들 역시 존재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건 이곳은 까마귀의 둥지, 즉 몬스터들의 본거지였다.
마을 사람들을 잡아놓고 미끼로 활용하기 위한 장소였고, 그들이 밖에서만 감시할 이유가 없었다.
까마귀 몬스터 또한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있으며 그들을 감시하고 있을 것을 경고한 것이었다.
“…….”
“…….”
곧장 우리는 은신을 유지한 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고 환한 공간이 펼쳐졌다.
동굴의 안으로 이어진 공간의 벽엔 등불이 걸려 그곳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모두 개구리로 변한 인간들이었다.
종수 그가 말한 그대로, 첫 번째 퀘스트의 실패로 인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페널티를 받은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으나, 하나같이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은 밧줄에 의해 하나로 묶여 자리했다.
“개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 개굴.”
“배고프다…… 개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겠다. 개굴.”
모두 개구리 인간 종수와 마찬가지로 말 중간중간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지쳐 보이는 그들은 불평을 쏟아내며 중얼거렸다.
중간중간 그들 사이에는 까마귀 몬스터들에 당한 듯 피를 흘리고 있었고, 그 상태가 오래된 듯 쓰러져 있었다.
‘문제는…… 저 녀석인가.’
하지만 역시 문제는 까마귀 몬스터가 그들과 함께 있다는것이었다.
개구리들이 불평을 쏟든, 혼잣말을 중얼거리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까마귀 한 마리가 그들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의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 까마귀는 동굴에서 이어지는 입구에 우두커니 앉아 졸고 있었다.
등불이 걸려 있다 한들, 그 수는 한 개가 전부였고 넓은 동굴을 완전히 환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은은한 불빛 속에 고개를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녀석은 어떠한 경계도 보이지 않았고,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다행이었다.
‘저 녀석을 처리하는 게 먼저다.’
당장에라도 묶여 있는 개구리들의 족쇄를 풀어 동굴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어찌 됐든 까마귀를 처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자는 사이 몰래 빠져나갈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중간에 그가 깨거나 동굴 밖에 다다랐을 때 탈출한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까마귀의 거대한 울음소리로 동료들을 부르거나, 중간에 그가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먼저 경비를 지키고 있는 까마귀를 처리하기도 마음먹었다.
‘꿀꺽. 간단한 일이야.’
혹여나 녀석이 깨어날까 봐 긴장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자고 있는 상대였고, 녀석은 지금 나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총기를 발사하는 순간,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 ‘루핀의 반지’ 효과가 풀려 모습이 드러나겠지만, 그것은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간다!!’
은신의 효과로 인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총기를 더듬거렸다.
민혁은 이제 총구, 총열, 방아쇠, 전부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저 손끝의 감각만으로 그것을 확인하기 어려움이 없었고, 식은 죽 먹기보다 간단했다.
곧장 어깨에 견착을 하며 졸고 있는 녀석을 향해 조준했다.
보이지 않는 총기로 인해 정밀 사격은 불가능했지만, 그저 녀석의 머리를 노릴 뿐 그것으로 완벽했다.
곧바로 미리 장전해 놓은 총기에 집중했고, 그곳으로 마나가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총구에서는 마탄의 푸른 빛이 새어 나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개굴. 네, 종수 아니냐?”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 벌어졌다.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묶여 있던 마을 사람들 사이였고, 그곳엔 단검을 들고 있는 개구리 인간 종수가 서 있었다.
그리고 졸고 있던 까마귀는 눈을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 개굴. 아저씨. 조용히…… 제발…… 개굴.”
당황한 듯 떨리는 눈동자와 함께, 종수의 벌벌 떨리는 손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묶여 있던 모두는 종수를 향하고 있었고, 그것은 까마귀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의사소통의 문제였다.
개구리 인간인 종수와 나 모두 은신 상태였고, 우리 둘은 이곳에 도착한 순간 경비를 서고 있는 까마귀 몬스터를 발견했다.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말로 인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종수는 까마귀 몬스터를 보고 당황했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 생각인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자고 있는 까마귀 몬스터를 확인했고, 용기를 낸 것이었다.
‘까마귀가 자고 있는 틈에 사람들을 구하자.’
서로 의사소통이 없는 사이, 내가 총기를 들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단검으로 마을 사람들이 묶여 있는 줄을 풀어줌과 동시에 자고 있는 까마귀를 피해 빠져나갈 생각을 한 것이었다.
물론 계획대로 되기만 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에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줄을 끊어주기 위해 다가갔고, 그들이 놀라지 않도록 자신의 은신 스킬을 풀어버린 것이었다.
설마 마을 사람들이 큰소리를 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 개구리 인간 종수를 본 순간 반갑다는 듯 소리쳤고,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까악…….”
피슉.
경비를 서고 있던 까마귀는 개구리의 모습을 한 종수를 발견함과 동시에 목청을 가다듬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셨다.
자신들의 계획이자 지금껏 실행하고 있던 작전의 마무리, 까마귀와 개구리의 전쟁이기도 한 두 번째 퀘스트의 마무리가 다가왔다는 것을 동료들에게 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목청껏 소리 높여 울음소리를 내려고 했던 녀석의 머리에는 자비 없는 푸른 총탄이 박혔다.
“개굴. 누구데? 개굴.”
“무, 무슨 일이여. 개굴?”
“개굴. 개굴.”
까마귀 몬스터에게 종수가 들켰지만 다행이라면 그 순간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던 것이었다.
까마귀가 그의 동료들을 부르기 전, 마탄이 준비됨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고 그것이 녀석의 머리통을 갈겨 버렸다.
이 또한 소음을 줄이기 위해 미리 제작해둔 아음속마탄이었고, 그로 인해 그저 바람 소리만 미세하게 울릴 뿐, 거대한 총성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탄이 날아옴과 동시에 까마귀는 은신이 풀린 나를 발견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고 그는 단 한 발의 공격에 맥없이 쓰러졌다.
“꿀꺽.”
루피의 반지.
그 효과는 착용자를 은신 상태로 바꿔주는 효과를 가져다 주지만, 제약 조건이 존재했다.
밤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공격을 받으면 은신 상태가 풀려 버린다는 것이다.
공격을 받는다는 의미는 물리적인 공격이나 스킬을 통한 공격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이나 상대방이 나의 존재를 눈치채고 공격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만으로 은신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당연히 총을 쏜 순간, 까마귀 몬스터는 날아오는 마탄에 위화감을 느꼈고 누군가 그곳에 있다고 생각한 것만으로 은신이 풀려 버린 것이었다.
“…….”
“저, 저와 함께 모두를 구하러 오신 분입니다. 개굴.”
왠지 모르게 어색해진 상황.
뜬금없이 나타난 누군가가 총을 들고 있자 개굴개굴거리던 그들은 조용해지며 개구리 인간인 종수와 나를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처음 보는 내가 적인지 아군인지 파악하지 못해 당황하며 경계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그가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 자네가 까마귀를 쓰러뜨린 거구만. 개굴.”
“예, 예. 맞습니다.”
“우리는 구해주러 왔다는 게 참말인가? 개굴?”
“예, 종수 씨와 함께…….”
“그렇구만, 역시 종수. 우리 종수 네가 해낼 줄 알았다. 그래. 개굴.”
개구리의 모습을 한 종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심한 그들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이내 그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쑥스러운 것인지 부끄러운 것인지 몸을 비비 꼬는 그를 보며 나지막이 불렀다.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아, 미안하다 개굴. 내가 모두 풀어주겠다. 개굴.”
마을 사람들과의 재회를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이럴 시간이 있지 않았다.
동굴 안에 까마귀 몬스터는 존재했고, 그 수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당장 그가 동료들을 부르는 것은 막았지만, 동굴은 그만큼 넓었고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종수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하자, 그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 모두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을 유지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단검을 이용해 묶여 있는 주민들을 풀어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혹시 동굴 안에 까마귀 몬스터들이 얼마나 있는지 아십니까?”
“개굴. 우리는 몰러. 개굴.”
“……그럼. 밖에 있는 까마귀들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개굴. 수백, 수천 마리 정도 된다. 개굴.”
두 손, 두 발이 자유로워진 그들을 데리고 본격적으로 탈출에 나서지 직전, 질문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동굴에 갇혀 있던 그들이었기에 혹시나 동굴에 대해 파악하지 않을까 하며 물어보았지만, 원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둡고 침침해 그 위치조차 파악하기 힘든 그곳에서 계속 갇혀 있던 그들이 본 것이라면 교대하는 까마귀들뿐이었다.
혹시나 하여 밖에 있는 까마귀들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물어보았지만, 그저 그들의 추측일 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