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99화
“다, 당신들. 아니, 세 분이 하신 겁니까?”
왠지 모르게 절로 공손해지는 말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사방에 쓰러져 있는 거대한 까마귀들의 시체는 넓게 퍼져 있었고, 참혹할 정도로 비참했다.
구멍이 뚫리고 베이고 심지어 불에 탄 까마귀들의 시체는 아무리 봐도 그들이 한 짓이 분명해 보였지만, 믿을 수 없었다.
그 거대하고 강력한 까마귀들을 단 세 명에서 이 정도의 수를 처치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비고 확인해도 까마귀들은 전부 죽어 있었고, 이들은 멀쩡했다.
총기를 들고 있는 남자와 검을 들고 있는 남자, 그리고 양손에서 불을 뿜고 있는 여자까지, 그들이 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맞습니다.”
“저희가 마을 주민들을 구해주겠습니다.”
“그 수를 미리 줄여 놓은 거예요.”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들이라면…… 이들이라면…….’
이분들이라면 정말 까마귀들에게서 마을 사람들을 구출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상상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차마 실행에 옮길 수도,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했던 바로 그 계획.
모든 까마귀를 단숨에 처치하고 사람들을 구해오는 그 상상을 이들은 이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람들을 구하려면 그쪽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생각에 빠져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 전부터 계속해서 이들이 요청했던 까마귀들의 둥지를 알려달라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엇다.
마을 사람들이 잡혀간 그곳을 나는 알고 있었고 이들에겐 그 정보가 필요했다.
마정석을 복구하기 위함인지 다른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은 보기에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동안 둥지에 같이 가달라는 부탁은 물론이고 그 위치만이라도 알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까마귀들에게 모두 죽고 말 거야.’
하나하나 거대한 몸집을 가진 까마귀들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거대한 부리와 발톱은 매서웠다.
지능 또한 높아서 어디서 어떤 전략으로 공격해 올지 몰랐다.
지금껏 이들이 한 마리의 까마귀를 처치한 것을 보긴 했지만, 지금 내가 확인한 까마귀들의 숫자는 수십 마리에 육박했다.
이전에는 둥지가 어디인지 알려준다 하더라도 그저 이들의 죽음만 앞당길 뿐 어떤 기적도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이들을 강함을 확인하고 나자 그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 * *
“제,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개굴.”
“다시 한번…… 예? 아, 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당연히 거절 의사를 내비칠 줄 알았던 그는 예상과는 다른 답변을 했다.
결연한 그의 눈동자는 무언가 결심한 듯 보였다.
예상외의 답변이었지만, 분명한 희소식이었고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까마귀 몬스터들의 둥지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제가. 개굴. 데려다주겠습니다. 개굴.”
이 또한 의외의 상황이었다.
까마귀의 까 자만 들어도 몸을 벌벌 떨며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던 그가 둥지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나눠 보니, 아무래도 말로 그곳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이곳에 정착한 그는 산속의 지리를 잘 알고 있고, 둥지까지 가는 길 역시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했다.
까마귀 몬스터들의 둥지는 산 위쪽의 절벽 끝, 그는 우리를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노라 약속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개굴. 나는 결심했다. 개굴.”
“그럼 바로…….”
그가 혹여나 말을 바꿀까 곧장 둥지를 향해 떠나려고 했던 그때였다.
피유우욱-
“아앗.”
현지의 양팔에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졌고, 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붙잡으며 그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모든 마나를 소비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 마나가 남아 있지 않자 유지하고 있던 스킬이 자연스레 사라졌고, 그로 인해 두통과 함께 빈혈 증상이 온 것으로 보였다.
“괜찮아요?”
“네, 윽. 네.”
신우는 다시 한번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그녀를 붙잡으며 부축했고, 안부를 물었다.
인상을 찡그리는 와중에도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우리 또한 마나를 완전히 소비해 소위 말하는 리바운드 현상 또는 반동 현상을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가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두통과 함께 정신이 우울해지는 그 고통 속에서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는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휴식을 조금 취했다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개굴. 어, 언제든 상관없다. 개굴.”
“그럼 저녁에 출발하도록 하죠.”
“알겠다. 개굴.”
* * *
저녁이 됨과 동시에 현지는 물론이고 신우와 나 역시 모든 회복을 끝마쳤다.
더 이상 나무랄 곳이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개운한 컨디션이었다.
마을의 중앙, 헤어졌던 그의 집 앞에서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그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기다렸습니까. 개굴.”
무엇을 했는지 땀을 흘린 그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언가 달라진 모습.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복장이 달라져 있었다.
“멋진 단검이네요.”
“고, 고맙다. 개굴.”
그 차이를 발견한 것은 역시 눈썰미가 좋은 현지가 가장 먼저였다.
그녀의 말대로 그의 허리춤엔 두 개의 단검이 멋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그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확인한 적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렸고, 평소 검을 사용하는 신우 또한 큰 관심을 보였다.
“단검 두 개를 모두 사용하는 건가요?”
“마, 맞다. 개굴. 이, 이렇게. 개굴.”
단순히 한 개의 단검이 아닌 두 개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기에 호기심에 물어본 질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곤란해 보이는 그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며 두 개의 단 검을 칼집 그대로 집어 들며 자세를 잡았다.
“……으흠?”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듯 제 자리에서 두 개의 단검을 든 그는 마치 적과 전투라도 하는 듯 허공을 향해 그것들을 휘두르고 찌르는 듯한 행동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것을 유심히 보고 있던 신우의 표정이 어딘가 미묘하게 변했다.
“왜. 개굴. 왜 그러냐. 개굴.”
“음…… 실제로 사용해 본 적은 없나 보네요……?”
“……개굴.”
“단검 그렇게 잡으면 손목 다 나가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신우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잔뜩 긴장하며 경계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신우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숙였다.
눈에 띄게 자신감이 하락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보기 안쓰러웠고, 신우 또한 그럴 의도는 아니었던 듯 미안해하는 것이 보였다.
막상 출발도 하기 전 기운이 다 빠져 버린 듯한 그를 보며 재빠르게 화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도, 단검이면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안 그래 신우야?”
“아! 맞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신우는 그제야 기억이 난 듯 손뼉을 치며 반응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것을 잊을 수는 없었다.
바로 처음 만났던 오크를 상대했던 그때의 일이었다.
정확히는 시너지 효과를 처음 사용했던, 그중에서도 단검 시너지 효과를 기억해 낸 것이었다.
“확실히 도움이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우의 말 그대로였다.
그의 무기 숙련도나 실력에 상관없이 적용되는 시너지 효과란 그런 것이었다.
체력과 마나를 10% 증가시켜 주는 효과를 가진 단검 시너지는 모두에게 적용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전투에 유리했고, 각자가 어떤 무기를 들고 있느냐에 따라 전투의 양상은 다르게 흘러가게 되는 것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무기가 통하지 않던 오크를 상대하며 마정석조차도 없던 우리에게 마탄을 사용하게 해주었던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시너지 효과였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시너지!”
말이 나온 김에 곧바로 적용 중인 시너지 효과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적용 중인 시너지 – 군인(2/2) 이동속도 증가 15% (군인 직업군에만 적용)]
[적용 중인 시너지 – 근접 무기(2/2) 물리 데미지 증가 10% (근접 무기를 착용한 자에게만 적용)]
신우와 나에게만 적용되는 군인 시너지는 군인이 2명일 때 발동되는 시너지 효과였다.
구성원 중 군인의 수가 늘어나면 그 효과도 같이 증가 되었지만, 당장 그 효과는 이동속도를 15% 증가시켜 주었다.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것은 근접 무기 시너지였다.
검을 사용하는 신우와 강철 너클을 사용하는 현지로 인해 발생되는 것이었다.
“물리 데미지의 10% 증가……?”
시너지 효과에 적힌 물리 데미지라는 개념 자체를 아직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 뜻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근접 무기를 착용한 자에게만 적용되는 이 효과는 나를 제외한 신우와 현지의 검과 너클이 더욱 강력하게 효과를 발휘한다는 의미였다.
“응? 이게 끝인가?”
하지만 그 어디에서 보이지 않는 단검 시너지.
분명 눈앞의 개구리 인간이 양손에 단검을 들고 있었음에도 그 효과는 발생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의 착각이라 하기엔 당시 오크와의 기억이 선명했고, 시너지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의아함은 곧 양손에 단검을 들고 있는 그에게 옮겨졌다.
‘양손에 단검을 들고 있어서 그런가?’
시너지 효과를 사용하게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있었지만, 이것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언데드 군단에 속해 있던 당시 군단의 구성원이 군인의 시너지 효과를 받았던 것은 물론, 지금처럼 양손에 무기를 착용하던 한 손에만 착용하던 그 차이가 있는지조차 아직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나 그가 양손에 단검을 들고 있기에 단검 시너지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한 개의 단검만을 들어보게 하려는 순간.
“어……! 이거. 모형 같은데요?”
“무, 무슨 소리냐! 개굴!”
“이거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죠?”
“…….”
그가 칼집에서 꺼내든 단검을 본 신우가 자세히 확인하기 위함인 듯 눈을 찌푸리며 다가갔다.
그리고 살펴보던 도중 칼날에 손가락을 스쳐보았다.
베이기는커녕 뭉툭한 느낌의 칼날에 그를 바라보며 질문한 것이었다.
“……제 단검 빌려 드릴게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지금 발견한 게 오히려 다행이네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지금껏 그 단검을 완전히 진짜 무기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연히 줍게 된 두 개의 단검은 그 겉모습이 화려하고 멋있었다.
평소에 전투를 하지 않던 그였지만, 항상 최후의 수단이라 생각하며 꼭꼭 숨겨두었고, 때가 왔다 생각해 지금 그것을 처음으로 꺼내 든 것이었다.
“고, 고맙다. 개굴.”
하지만 그것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형에 불과했다.
장식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그것은 아마 안전상의 이유로 날이 뭉툭하게 만들어져 무조차 썰 수 없을 만큼 무기로 사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그제야 단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었고, 좌절하고 있는 그에게 신우는 자신의 단검을 꺼내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