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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98화 (98/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98화

“까아악! 까아악!”

어두워진 밤 어김없이 집 밖에선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려왔고,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저 오늘 밤 역시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하늘의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탕! 탕! 쾅!! 쉬잉익.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어서 빨리 아침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던 그때.

평소와는 다른 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요란한 총소리와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검 소리, 그리고 둔탁한 타격음이 까마귀들의 울음소리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개굴. 저 사람들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 거야…… 개굴.”

그 소리의 원인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정석을 복구하기 위해 찾아왔던 이방인, 그들이 분명했다.

마을엔 더 이상 단 한 명의 사람, 아니, 단 한 마리의 개구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 남아 있다고 한들, 저 까마귀들에게 대항할 만한 용기를 가진 자는 없을 것이다.

“까아아아악!!!!!”

분노한 듯 날카롭게 울려 퍼진 까마귀의 소리에 온몸은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거대하고 강한 까마귀 몬스터, 그들은 개구리가 되어버린 우리에게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감히 그들에게 반격할 수 없었고, 대항할 수 없었다.

그저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도망가는 것 그것이 최선이었다.

“나도. 개굴. 저들처럼 강한 힘만 있었다면…… 개굴.”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손이라 볼수 없는 점성 가득한 점액질의 손을 움켜쥐었다.

처음부터 우리가 이렇게 숨고, 피해 다닌 것은 아니었다.

세상이 변한 그 시점의 마을은 지금보다 거대했고, 사람들 또한 많이 있었다.

곳곳에서 나타난 몬스터들과 적들이 공격해 왔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가족과 친구, 이웃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고 모두의 힘을 모아 함께 헤쳐나갔다.

“개굴…….”

하지만 결국 그 모든 행동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몬스터들에게 당해낼 수 없었다.

수적 열세와 힘의 차이는 절실하게 나타났고,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포기한 채 남은 이들은 모두 숨어버렸다.

페널티에 의해 모습은 이렇게 변해 버렸지만, 우리는 그때 깨달았다.

“전투를 하지 않으면. 개굴. 살아남을 수 있어. 개굴.”

아주 간단했다.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몬스터와의 전투, 이따금 일어나는 인간들끼리의 전투 때문이었고, 그것을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모습이 개구리로 변하든 코인을 얻지 못하든 상관없었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도망갔고, 살고 있는 곳에 몬스터들이 들끓으면 이동했다.

그렇게 소수의 마을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남고 있었던 것이었다.

“……개굴.”

오랜 시간 이동 끝에 찾아낸 장소가 바로 지금의 산골짜기의 작은 마을이었다.

사람은 물론, 몬스터 또한 찾아보기 힘든 장소.

누군가 살다 버리고 간 이곳은 집도 음식도 제대로 된 것이란 단 하나도 없었지만, 우리는 이곳에 정착했고 조금씩 마을의 형태를 갖춰나간 것이다.

폐허가 된 집들을 수리하고 배가 고프면 자연에서 해결했다.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충족시킬 순 없었고, 우리는 목숨을 걸고 산을 내려갔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심현섭이란 노인과 약탈자들.

우리의 모습에도 편견을 가지지 않은 노인은 근처의 마을이 있다고 했고, 음식과 식수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품들을 주겠다며 교류하자 했지만 거절했다.

그럼에도 그는 약속한 것들을 우리의 마을에 전부 넘겨주고는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문제는 약탈자들이었다.

우리의 모습을 본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공격해 왔고, 우리는 도망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우리가 산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지만 이곳만큼 마음에 들고 편한 곳은 없었기에 더 이상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들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싸우지 않고 약탈자들을 쫓아내기로 결심한 우리는 빠르게 작전을 세웠다.

“크큭. 개굴. 약탈자들도 별거 아니었다. 개굴.”

약탈자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산을 수색했고 우리는 숨어서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그들이 우리의 마을을 찾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개구리의 특징을 가지게 된 우리는 보호색을 통해 자연에 몸을 숨기는 것이 유용했고, 그들이 우리를 찾진 못했다.

때를 기다린 우리는 비가 오는 저녁 행동을 계시했다.

어김없이 산길을 따라 올라오는 두 명의 약탈자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그 모습을 전부 관찰하고 있었다.

슈우우욱.

개구리의 모습을 가지게 되며 얻게 된 능력은 보호색뿐만이 아니었다.

야행성인 개구리와 마찬가지로 밤이 된 순간 동공은 사람보다 많은 빛을 받아들여 더 잘 볼 수 있고, 눈을 보호하는 막으로 인해 물속에서도 눈을 멀쩡히 뜰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강력한 뒷다리는 엄청난 거리도 순식간에 이동이 가능했다.

지금껏 몬스터들을 피해 도망을 다닐 수 있던 이유기도 했다.

이 산속에 자리 잡은 우리는 지형지물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고, 비는 그칠지 모르고 쏟아졌다.

우리는 계획한 대로 산길을 따라 올라오는 약탈자들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저 빠른 속도로 나무와 나무를 오가며 몸을 숨겼고, 그들은 인기척을 느끼곤 주변을 돌아봤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빠르고 위협적으로 주변을 이동하며 산만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자신의 주변에 느껴지는 인기척과 시선을 완전하게 느끼고 있었다.

비가 오는 저녁 그들이 겁을 먹긴 충분한 상황이었고, 그것으로 만족했다.

완전히 겁을 먹은 녀석들은 뒤도 보지 않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갔고, 그들이 포기할 때까지 계속해서 상황을 반복했다.

약탈자들 사이에선 산속에 무언가 있다는 소문이 일어났고, 시간이 갈수록 그 소문은 커져간 것이었다.

“키키킥. 전투 없이 이뤄낸 완벽한 승리지. 개굴개굴.”

하지만 약탈자를 물리친 후 지속될 줄 알았던 평화는 얼마 가지 않았다.

바로 두 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까마귀 몬스터와의 전쟁, 퀘스트의 완료 조건은 까마귀 군주를 처치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에겐 더 이상 페널티는 겁나지 않았다.

모습이 어떻든 살아 있는 것만으로 만족했기에, 전쟁에 참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애써 그것을 무시한 채 평범한 일상을 지내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마귀들이 나타났다.

익히 주행성이라 알고 있던 까마귀들은 우리가 생활하는 밤에 나타나는 치밀함을 보여줬다.

밤하늘을 날아온 녀석들은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왔지만, 그 피해는 크지 않았다.

우리는 재빠르게 모습을 감추며 숨어버렸다.

하지만 녀석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 작전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까마귀들을 피해 아무리 도망가고 숨는다 한들, 완전히 모습을 감출 수는 없었다.

누구든 그중 걸리는 이가 있었고, 까마귀들은 그들을 죽이지 않고 데려갔다.

그들은 산에 자리를 잡았고, 그곳에 그들을 살려두었다.

전투를 꺼리는 것일 뿐, 가족이나 친구, 동료에 대한 애정이나 사랑조차 없는 것은 아니었고.

까마귀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그들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까마귀들의 작전이었던 것이다.

함정에 걸린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까마귀들에게 잡혔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바로 내가 전부였다.

“나까지 잡힐 순 없다. 개굴. 내가 잡히면…….”

아무리 모습이 개구리로 변하였고, 그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들, 두뇌까지 개구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까마귀들은 우리 마을 사람 대부분, 아니, 나를 제외하고 전부를 데려갔다.

전쟁에 있어서는 승리를 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마지막 남은 나를 찾아다녔고, 그것은 곧 나를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

우리에게도 까마귀 군주를 처치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나를 잡아야 하거나, 마을 사람 모두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까지 잡혀가게 되면 그 뒤에 일어날 참사는 예견된 것과 같았다.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나는 숨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탕!!!

“수고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까마귀들에게 잡혀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그때, 날카로운 총소리를 끝으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들리지 않는 까마귀들의 울음소리.

불과 방금까지만 해도 산 전체가 떠나가라 사방에서 울려대던 까마귀들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리지는 않지만, 밖에서 희미하게 떠들고 있는 그 소리는 분명 세 명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개…… 개굴. 말도 안 된다…… 개굴.”

의심은 호기심으로 변했고, 굳게 닫혀 있던 문고리를 향해 나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끼이이익-

혹여나 까마귀에게 들킬세라, 잠겨 있던 문고리를 풀어 아주 살짝, 미세하게 문을 열었다.

그 좁은 틈새를 통해 밖을 살펴보았다.

“까, 까마…… 개굴.”

순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까마귀의 거대한 얼굴에 놀라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찍었다.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다시 자세히 보니 차갑게 식어 있는 눈동자.

보란 듯이 이마에 바람구멍이 뚫린 까마귀의 시체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꿀…… 꺽.

넘어지며 살짝 건드린 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누가 보기라도 했을까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며 침을 삼켰고, 용기를 내 밖을 향했다.

* * *

“너도 수련을 통해 새로운 스킬 얻은 거 없어?”

“저는…… 어! 이 병장님!”

신우의 대답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던 그때, 녀석이 놀란 듯 내 뒤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철컥.

동시에 인기척을 느꼈고 장전을 함과 동시에 뒤를 보며 총구를 겨냥했다.

살아남은 까마귀 몬스터가 나타났다 생각한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이뤄진 동작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고,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에 걸쳐 있었다.

“개…… 개굴…… 끅.”

하지만 그곳에는 놀란 듯,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딸국질을 하고 있는 개구리 인간이 서 있었다.

양손을 높이 들며 영락없는 항복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는 긴장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이곳을 바라봤다.

“……?”

그를 확인함과 동시에 곧바로 총구를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며, 겨누고 있던 총기를 치워줬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커진 동공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사방을 둘러보며 나를 한번 힐끔 보고 다시 까마귀를 보곤 신우, 그리고 현지까지.

정신없이 주변을 살펴보던 그의 입은 어느새 벌어져 다물지 못했다.

“무슨 일이시죠?”

아무리 찾아가도 꿈쩍도 하지 않던 그였기에, 어째서인지 제 발로 나온 지금은 찬스가 분명했다.

최대한 정중한 말투를 유지하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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