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96화
똑. 똑. 똑.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같이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까마귀들의 둥지만이라도 알려주세요.”
“…….”
밤새 까마귀들 처리한 후, 날이 밝자마자 다시 찾은 것은 개구리 인간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초가집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정도 문이라면 단번에 박살 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억지로 한다고 한들, 그가 마음을 바꿀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기다릴 뿐.
문밖에서 노크를 하며 계속해서 그를 설득했지만, 이제는 대답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후…….”
“어째서 이토록 완고한 걸까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현지가 질문해 왔다.
개구리 인간인 그가 완강하게 거절하는 이유가 궁금한 것이었다.
자신의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잡혀갔고,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자신의 가족 또는 친지 그리고 이웃들을 발 벗고 나서 구해주겠다고 하는데도 거절하는 그의 모습을 이해하긴 어려웠다.
아무리 싸우는 것이 싫고 두렵다고 한들, 그저 그들의 위치만을 알려 달라는 부탁마저도 응해주지 않는 그가 답답할 따름이었다.
“여기 음식 두고 갑니다. 저희는 이만 갈 테니 드세요.”
그동안은 까마귀 몬스터들을 피해 다니며 밤에만 활동하는 그들을 피해 낮에 식량을 구해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후부터는 그 시간마저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그를 보며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 만난 당시에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까마귀 몬스터의 시체에 있는 벌레들을 잡아먹고 있던 그였다.
낮의 활동으로도 그 정도로 배를 곪았다면, 지금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고 우리 때문이 아닐 수 없었기에 조금이나마 식량을 그에게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동안 코인 활동도 없었겠습니다.”
“코인 활동?”
“네, 아! 이 병장님은 그동안 마을에 없으셨으니 모르시겠습니다.”
“그게 뭔데?”
“음, 마을 사람들은 몬스터들을 사냥하거나 서브 퀘스트 등으로 코인을 획득하는 것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일종의 경제 활동을 말하는 거구나?”
“예, 맞습니다.”
언데드 몬스터 생활을 하고 있던 동안 마을에서 생활했던 신우와 현지는 지금의 사회시스템에 꽤 많이 적응한 듯싶었다.
장비, 음식, 식수 심지어 유흥이나 여가까지, 전부.
이전에 쓰이던 화폐는 코인으로 대체되었다.
그가 말하는 코인 활동.
일종의 경제 활동으로 마을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코인으로 변경되며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렇겠네. 그 노인이 이 마을을 알고 있었는데 불구하고 교류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가.”
사실 교류를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분명 마정석을 복원하는 그 능력은 대단했고,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든든한 존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그 또한 잠깐뿐이었다.
마정석을 복원하는 스킬.
아무리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것을 이뤄낸다고 한들, 소비하는 이들이 없으면 그저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구성원의 다양한 능력이 결국 속한 사회의 발전이 될 텐데…… 마정석을 복구하는 능력이 있는 마을인데 교류하지 않는 걸 보면, 그만한 가치가 없는 걸까요?”
“전혀 전투를 하지 않는다면 코인도 얻지 못하고 그것만 보고 교류를 하기에는 짐만 될 뿐이겠지.”
우리 또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정보를 얻고 힘들게 얻은 마정석이었다.
아직 세상에는 마정석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 분명했고, 마정석을 복구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마나를 한 번에 사용했을 경우 마정석이 파괴된다고 했다.
오직 심현섭의 경험을 토대로 얻은 정보였기에 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다고 한들 지금의 우리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심현섭의 말 그대로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마나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강력한 스킬을 가졌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다.
그야말로 심현섭만큼 강력한 이가 아니면 보통의 경우에 마정석을 깨뜨릴 일은 없었다.
훗날에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더군다나 마을 전체의 인원이 전투를 싫어하고 기피하여 페널티를 받았다는 것을 보아, 평소에 몬스터 사냥을 하며 지내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방식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코인을 매개로 한 자본주의 사회였다.
코인을 통해 먹을 것과 입을 것 사는 곳까지.
모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고, 결국 코인은 변해 버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몬스터 사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 활동을 멈춰 버린 것과 같았다.
“그러고 보니 가장 성장한 도시 옆에 가장 발전하지 못한 마을이 있다니 아이러니하네요.”
그것 또한 결국 몬스터 사냥을 통해 그 차이가 더욱 벌어지고 있었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전쟁을 통해 승리한 심현섭의 마을은 언데드 군단의 금은보화와 함께 프랑켄의 연구일지를 통해 더욱 성장해 나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개구리 마을의 사람들은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통해 이미 개구리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도 모자라, 다시 한번 돌아온 메인 퀘스트에서는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단지 전투를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진 그 격차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돌아왔다.
* * *
“오늘도 같은 방법으로 전투할 거야, 모두 준비해.”
“네!”
“준비됐습니다.”
오늘 또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까마귀 몬스터들이었다.
또다시 밤이 되는 것을 기다리며 각자의 자리를 유지한 채, 무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까마귀 몬스터들의 그 수가 얼마나 될지 파악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의 상황으로선 불가능했다.
현지의 탐지 스킬을 통해서 그들의 본거지인 둥지를 찾아보려고도 시도해 보았으나, 날아다니는 그들의 특성과 더불어 산이라는 독특한 지형지물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녀 또한 답답한 듯 지속적으로 그들의 둥지를 찾아보려 노력하는 듯싶었지만 잘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생각을 정리하며 까마귀 떼가 올 때가 되자 곧바로 정신 차리며 자세를 잡았다.
신우에게 까마귀 떼가 등장하면 모두에게 알려주라는 임무를 주며 장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계속해서 나 또한 전방을 주시하며 곧 나타날 것이라 예상되는 까마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목표 또한 역시 까마귀들을 최대한 많이 처치하는 것이었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그들의 둥지를 쳐들어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숫자를 줄여놓아야 했다.
펄럭. 푸더더덕.
“이 병장님! 현지 씨! 저기…….까마귀 떼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을 살피고 있던 신우가 소리쳤고, 나 또한 전방을 살피고 있었기에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 밖의 전개가 이어졌다.
어두운 밤하늘에 보인 것은 간격을 벌리고 날아오고 있는 소수의 까마귀 무리였다.
푸더더덕.
예상보다 적은 까마귀들의 숫자에 의아함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날갯소리에 그 의도를 알아챘다.
어제의 전투, 그들이 학살당하다시피 한 그 전투에서 선두부터 차례대로 마탄 세례를 받았던 것을 기억했는지 사방에서 차례대로 등장하고 있었다.
까마귀들은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전투 준비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까마귀들과의 전투는 준비하고 있었고, 그 과정이 전부 순조로울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리를 지어 날아오는 까마귀들을 향해 이번에도 역시 섬광탄을 터뜨려 시야를 제한하고 단숨에 해치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귀마개 준비해!”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녀석들에게 섬광탄이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광음과 빛을 내뿜는 섬광탄은 시야와 함께 귀의 기능 또한 완전히 마비시킨다.
어제와는 달리 가까이에서 이것을 터뜨린다면 우리 또한 피해를 입을 것을 대비해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섬광탄이 발생시키는 약 170데시벨의 폭음을 겨우 귀마개 정도로 완벽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 또한 없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맨 귀에 이 거대한 폭음에 노출된다면 소리가 안 들리는 수준을 넘어, 방향감각과 균형감각 또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었다.
“준비됐습니다!”
“준비됐어요!”
각자 귀마개를 착용한 뒤,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으며 몸을 웅크린 신우와 현지를 확인했고, 곧바로 날아오는 까마귀들을 향해 섬광탄을 투척했다.
사방에서 우리를 포위하듯 날아오는 녀석들이었기에, 그 중심에 있는 내 바로 위를 향해 그것을 던진 것이었다.
피슈우우웅-
“까아아악!”
나 또한 섬광과 폭음에 방어하며 자세를 낮추려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 녀석들…….”
까마귀의 지능이 높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녀석들은 우리에 대한 대비는 그저 뭉쳐 있던 자신들의 대형을 분산시킨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가 섬광탄을 던질 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
순간 엄청난 속도로 날아든 선두의 까마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삼켜 버린 것이었다.
“젠장. 강신우! 현지 씨 일어나요!”
그 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눈과 귀를 보호하며 웅크리고 있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귀마개와 더불어 손까지 막고 있는 그들에게 그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기세 좋게 섬광탄을 삼켜버린 거대한 까마귀 역시 별다른 이상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강렬한 빛과 폭음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섬광탄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고, 녀석의 뱃속에서 폭발했음에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었다.
철컥. 철컥.
가장 가까이에 다가온 녀석을 곧바로 겨냥하며 총을 장전했다.
신우와 현지 또한 당장은 엎드려 있었지만 그래 봐야 단 몇 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몇 초 동안 그들을 이 까마귀에게서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되기에 이 녀석을 먼저 노린 것이었다.
“까아아악!!”
몸집에 맞게 발조차 거대한 녀석은 자신의 까만 발톱을 위협적으로 펼쳐 들며 공격해 왔다.
곧바로 결합시켜 놓았던 마탄을 사용했고, 총기의 내부에서 시작된 강렬한 푸른빛을 녀석의 부리 밑을 향해 발사했다.
타앙!
아무리 대비를 했어도, 마탄마저 녀석들이 어떻게 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부리 밑을 관통해 뇌를 넘어 두개골까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녀석은 그대로 날갯짓을 멈추며 곤두박질쳤다.
“어……!”
신우와 현지 모두 그제야 고개를 들었고,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낀 듯 당황하기 시작했다.
설명할 시간은 없었기에 그저 눈빛을 보냈고, 그들은 곧바로 전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당장 걱정되는 것은 양손에 강철의 너클을 착용하고 있는 현지였다.
신우야 자신의 검을 사용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사거리는 나왔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날아다니는 적을 상대로 더 이상 섬광탄을 통해 그들을 제압한 뒤 전투를 치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에 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