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95화
다행히도 날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하자 쓰러져 있던 까마귀들이 하나둘 날아오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신우야, 이제 그만 확인해도 돼. 다 간 거 같다.”
“이 병장님, 저기 누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닙니다. 분명합니다.”
마지막 불침번을 서고 있던 신우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창문을 통해 다시 한번 밖을 확인했다.
분명하게 보이는 누군가의 뒷모습.
자세한 모습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누군가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까마귀가 있던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인가? 어서 가보자!”
“네, 알겠습니다. 혀, 현지 씨. 일어나세요!”
당장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 마을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던 그때 나타난 사람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보는 밖을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유일한 희망이라 느껴졌기에, 지체하지 않고 달려갔다.
신우 또한 밤잠을 설친 현지를 깨우며 따라나섰다.
끼이이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는 혹시나 근처에 까마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달려가는 그의 뒤를 쫓아갔다.
“여기는······.”
그리고 도착한 곳은 밤새 보았던 까마귀들이 있던 그곳이었다.
이곳에 있는 거라고는 떠나 버린 까마귀들이 남기고 간 깃털들과 한 마리의 까마귀 시체가 전부였다.
마탄으로 인해 완전히 부서져 버린 두개골과 밤에는 어두운 시야로 인해 확인하지 못했던 까마귀의 흥건한 피가 흘러 있었다.
처절하기 짝이 없는 그 거대한 까마귀의 시체 앞에 누군가 자리하고 있었다.
허겁지겁 무언가 하고 있는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 저기요. 마을 사람입니까?”
“끅, 개굴.”
“모, 몬스터?”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다가가 그를 부르자, 놀란 듯 당황한 그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그의 모습에 더 놀라며 각자의 무기를 그를 향해 겨냥했다.
그의 모습은 완전한…… 개구리.
개구리의 모습을 한 그는 거대한 까마귀의 시체를 뜯어 먹고 있었다.
“개굴. 사…… 살려줘라. 나 몬스터 아니다. 개굴.”
“몬스터가 아니라고?”
“개굴. 페널티 때문에.”
“…….”
중간중간 개굴개굴 울어대는 탓에 그의 말을 듣는 데 지장이 있었지만, 그 의미는 확실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
메인 퀘스트의 페널티.
그동안 그 페널티로 인해 수인이 된 자들을 본 적이 있었기에,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페널티로 그런 모습이 되었다는 말이군요.”
“맞다. 개굴. 그럼 나는 가보겠다. 개굴.”
“자, 잠시만요.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당신은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습니까?”
“……개굴. 이 마을에. 더 이상 사람은 없다. 개굴.”
“저희는 마정석을 복구하는 스킬을 가졌다는 분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아니나요?”
“당연. 개굴. 건이 아저씨다. 개굴”
“그분은 지금 어디 있죠?”
“개굴. 까마귀들에게 잡혀갔다. 개굴”
“……잡혀갔다구요?”
* * *
“이거라도 드세요.”
“저, 정말 먹어도 되는 거냐. 개굴. 얼마만의 음식인지 모르겠다. 개굴.”
“방금은 혹시 까마귀의 시체를…… 먹고…….”
“아니다. 개굴! 절대! 개굴. 거기 있는 벌레들을 먹었다. 절대 시체를 먹은 게 아니다. 개굴”
“…….”
그거나 그거나 매한가지로 보였지만, 굳이 표현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지고 있던 음식을 나눠주자 얼마나 기쁜지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도망가려고 시도하는 그였기에, 반강제적으로 이동한 장소는 그가 머물고 있는 작은 초가집이었다.
어제 이곳 또한 수십 번은 문을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까마귀들에게서 자신을 숨기기 위함인지 모든 창문은 암막 가려져 있었다.
“이 마을에서 생활하는 것은 혼자뿐인 겁니까?”
“맞다. 개굴. 밖에 까마귀들이 나타난 이후부터 쭉 이곳에 있었다. 개굴”
“아까 까마귀한테 마을 사람들이 잡혀갔다는 것은 무슨 소립니까?”
“……개굴. 말 그대로다. 개굴. 얼마 전 두 번째 퀘스트. 개굴.”
“아, 두 번째 퀘스트…… 그 까마귀들과 전쟁이 일어난 겁니까?”
“마…… 맞다. 개굴. 우리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개굴”
“……혹시 그럼 마을 사람 전부가…… 개구리의 모습을…….”
“맞다. 개굴. 첫 번째 퀘스트의 페널티였다. 개굴.”
“…….”
우리가 건넨 초코바와 빵 등 비상식량으로 챙겨두었던 식량들을 허겁지겁 해치우는 와중에도 연신 대답해 주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의 현재 상황은 두 번째 퀘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개구리 인간들과 까마귀 몬스터들의 전쟁으로 이어진 퀘스트로 인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까마귀들에게 잡혀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잡혀 있다고 하는거죠?”
그때 질문을 한 것은 가만히 듣고 있던 현지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모두가 그녀에게 집중하자, 말을 이어갔다.
“분명, 전쟁이고. 마을 사람들이 패배한 것이라면…….”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녀는 눈앞의 개구리 인간의 눈치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지만, 뒤에 이어질 내용은 모두가 유추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의 패배는 곧 죽음을 뜻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마을 사람들이 잡혀갔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굴. 까마귀들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다. 개굴.”
“무언가 알고 있는 거군요?”
“개굴. 마을 사람들은 까마귀들의 둥지에 잡혀 있다. 개굴.”
“어떻게 그걸 알죠?”
“직접 봤다. 개굴. 녀석들은 머리가 좋다. 우리가 싸우기 싫어하는 것을 알고 도망을 다니자 사람들을 미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개굴.”
“미끼로 사용했다?”
“자신들의 둥지를 일부로 알려준 후, 마을 사람들이 구하러 오면 그들 또한 잡아갔다. 개굴.”
“……!”
그가 말한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똑똑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징그러울 정도로 비겁하고 비상한 수를 사용하는 까마귀 몬스터들이었다.
전투를 싫어하고 피해 다니자, 몬스터들 입장에서도 퀘스트를 완료할 수 없었고.
그런 마을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미끼 작전을 사용한 것이었다.
작디작은 마을이었기에, 이웃들끼리의 친근감이나 정은 더욱 각별했을 것이고, 가족이나 이웃이 잡혀간 것을 안 이상 가만히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직접 전투를 하진 못하더라도 그들을 빼내오려고 했고, 까마귀들의 함정에 걸린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잡혀간 것이었다.
“그럼 당신도 까마귀들의 둥지를 알고 있겠군요?”
“개굴. 아, 알고 있다. 개굴”
“마정석을 복구할 수 있는 그 건이 아저씨도 그곳에 있구요?”
“개굴. 마, 맞다 개굴.”
“바로 안내하시죠.”
“저, 개굴 절대 안 된다. 개굴.”
“네? 저희가 마을 사람들 구하는 것을 도와주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개굴. 나…… 난 모른다. 난 가봐야겠다. 개굴”
“여기는 당신 집인데…….”
“어서. 개굴. 나가라. 개굴.”
의외로 순조롭게 일이 풀리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마정석을 복구할 수 있다는 건이 아저씨는 살아 있었지만, 까마귀 무리에게 잡혀 있었다.
그들의 위치를 알고 있는 이자에게 그 위치를 물어봤지만, 그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을 구해 준다고 말했지만, 그 또한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쫓겨나듯 그의 집에서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하죠?”
“음…… 일단 살아 있는 걸 알았으니 천천히 해결해 보죠.”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어찌 됐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살아 있기만 하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어떤 방법이든 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저자가 입을 열어주면 가장 좋지는 한데…….”
“어쩔 수 없죠…….”
* * *
“준비됐죠?”
“네.”
“예, 저도 준비 완료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큰 소리로 대화하며 각자의 준비 완료를 말하였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준비했던 저격총을 정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밤이 되면 까마귀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저기 보입니다.”
“그래, 모두 몸조심하고!”
신우를 신호를 토대로 각자가 준비를 완료했다.
셋 모두 각자 위치를 잡은 것은 우리가 지난밤 잠을 청했던 집을 기준으로 하여 삼각형 모양으로 진을 쳤다.
까마귀들이 그곳에 모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번에도 역시 그곳으로 올지, 우리를 향해 올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철컥.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낸 까마귀 떼들은 빠르진 않지만,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중 가장 먼저 행동을 시작한 건 나였다.
“까아아악! 까아아악!”
괴기스러운 울음을 터뜨리는 녀석들을 보며 마탄을 장전했고,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조준했다.
“먼저 한 놈!”
탕!!
아무것도 모른 채 유유자적 날아오던 까마귀 몬스터의 머리를 정확하게 조준했고, 마탄을 발사했다.
총구를 통해 날아간 푸른 총알은 녀석의 머리를 관통했고, 순식간에 땅을 향해 추락했다.
자신의 동료가 당하자 당황한 듯, 공중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조준을 완료한 두 번째 거대 까마귀를 향해 다시 한번 마탄을 날렸다.
탕!!
이번에도 역시 명중.
시시할 정도로 마탄에 맥을 못 추리는 녀석들을 보며, 더욱 신이 나서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현지 씨!”
“네!!”
다섯 마리쯤 처리했을 때, 부른 것은 현지였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현지는 있는 힘껏 공중을 향해 쇳덩이를 던졌다.
약속한 듯 우리는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시야를 보호했고, 동료들의 죽음과 더불어 정신없던 까마귀들은 그것에 노출됐다.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온 까마귀들에게 현지가 던진 것은 바로 섬광탄이었다.
미리 섬광탄의 효과를 입증한 후였기에, 다른 무기를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띠~~
귀를 막았음에도 먹먹할 정도로 강렬한 섬광탄은 또다시 까마귀들의 눈에 노출됐고, 그들은 땅에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바로 매타작이었다.
“가자!!”
공중을 날고 있던 모든 까마귀 몬스터들이 땅에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신호를 보냈다.
각각 너클과 검을 무장한 현지와 신우는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까마귀들을 향해 거침없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발도!”
잔인할 정도로 무차별적인 학살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이 마을에 온 목표는 마정석을 복구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자를 바로 이 까마귀들이 납치했다.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까마귀들의 본거지인 둥지로 가야 할 것이 분명했기에, 미리 그 숫자를 줄여놓기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