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92화
인간과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은 끝이 났다.
결과는 인간들의 대승리.
시간이 얼마나 걸렸던, 그 과정에서 어떤 실수를 했던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의 힘을 모아 모든 언데드 몬스터들을 물리쳤고, 이 땅에서 몰아냈다.
두 번째 퀘스트 또한 완벽하게 클리어.
무엇보다 감회가 새로웠던 것은 바로 몸을 되찾았다는 것이었다.
“스읍- 하. 스읍- 하.”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숨이 쉬어지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팔, 다리가 멀쩡했고 피부엔 촉감이 느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
그동안 당연하다 여기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행복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좋으세요?”
“하하하하.”
신우와 현지는 그런 나를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웃음 지었지만, 해골이 되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소소한 행복에 웃음이 떠나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심현섭 님은 왜 오라고 했을까요?”
“음, 글쎄요?”
현지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은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언데드 군단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우리는 모두 심현섭이 있는 마을로 돌아왔고 휴식을 취했다.
사람들을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고, 그로 인해 우리 역시 들떠 있었다.
떨어진 그동안의 행적들과 이야기로 잔뜩 떠들던 우리는 피로에 이기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고 숙소에 찾아온 것은 심현섭 그와 함께 있던 동료였다.
자신을 찾아와 달라는 서신을 그를 통해 보낸 것이었다.
아침이 밝자마자 서울로의 여정을 떠날 예정이었던 우리는 그로 인해 심현섭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 * *
“어서들 오게.”
전쟁이 끝났음에도 오히려 더욱 바빠 보이는 사람 중 심현섭 또한 섞여 있었다.
무엇을 그리도 정신없이 바쁜지 의아할 정도였다.
인기척을 느낀 이들은 하나둘 우리를 확인했고, 심현섭 또한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전쟁도 끝났는데 뭐가 그리 바쁘십니까?”
“허허, 처리할 일이 산더미라네. 오히려 전쟁 전보다 더 바쁜 것 같구만.”
“음, 그렇군요.”
심심한 대화를 나누던 중 노인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흠 그래, 자네들은 가족을 찾기 위해 서울로 간다고 했던가?”
“네 맞습니다. 지금 바로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음…… 그렇구만. 다름이 아니라, 신세 진 것도 있으니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해 주도록 하겠네. 서울까지는 무리여도 근방에 경기도까지라면 무리 없을 걸세. 직접 가는 것보다는 배는 빠를걸세.”
“……!”
떠나기 전 작별 인사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던 그때, 그의 제안은 실로 놀라웠다.
텔레포트 스킬, 직접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아자토스의 마법진에서 사람들을 구한 스킬이라 들어 알고 있었다.
신우와 현지가 설명해 준 그 스킬은 순식간에 공간 이동을 시켜준다고 하는 꿈만 같은 스킬이었다.
“그, 그렇게 먼 거리도 가능한 겁니까?”
“걱정하지 말게. 자네들 정도 인원이면 문제없네.”
상상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텔레포트 스킬을 듣는 순간, 노인에게 서울까지 사용해 달라는 부탁을 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분명 언데드 군단의 성채 안에서 밖으로 간 것이 전부였다기에 포기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조금 있네.”
“뭐, 뭡니까?”
“일주일 뒤에나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내 지팡이가 깨졌다는 문제가 있네.”
“네?”
노인의 설명은 이러했다.
고위 마법 스킬로 구분되는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일주일에 두 번뿐, 쿨 타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군단의 성채까지 이동하는데 한 번, 마법진 위에서 피하기 위해 한 번 사용했기에 다음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이들 외에는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 없었고, 무엇보다 5명 이상이 모여 한 번에 사용해야 하는 엄청난 마나가 소비되는 스킬이었기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의 지팡이가 깨졌다는 것.
정확히는 그의 지팡이에 달려 있는 구의 형태를 한 보석이 깨진 것이었다.
“지팡이에 보석이 깨진 게 어째서 문제가 되나요?”
“음, 이게 내 마정석이여서 그렇네.”
지팡이에 달린 보석이 깨졌다 한들, 장식품 정도로 생각했기에 가볍게 던진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마정석이란 곧 마나를 뜻했다.
어떤 비밀이나 효과가 더 숨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정석을 통해 마나의 총량을 늘리고 자유롭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것을 부정할 순 없었다.
대량의 마나를 필요로 하는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선 마정석은 꼭 필요했던 것이다.
“마정석이 깨졌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말이야.”
“방법이 있습니까?”
“스킬을 통해 마정석을 복구할 수 있는 자를 한 명 알고 있다네.”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나를 소비해서 마정석이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깨져 버렸다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 대량의 마나를 한 번에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그리 흔치는 않을 거란 생각에 우리까지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심각했다고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표정을 읽은 그는 안심하라며 말을 했다.
“그러면 어서 그분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습니까?”
“음, 그것을 자네들에게 부탁하고 하네.”
“……예?”
“자네들이 소탕했던 약탈자들이 있던 폐공장 기억하는가?”
“……예.”
“마을과 그 폐공장 사이, 작은 산이 있네.”
“예.”
“그곳에 있는 작은 마을에 다녀오면 되는걸세.”
“……어째서 저희한테.”
“보다시피 지금 업무로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인원이 없네. 무엇보다 그곳은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라서 말이야, 그 약탈자들로 함부로 가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곳에 가서 마정석을 복구해 오란 말이군요.”
“맞네, 자네가 있으니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겠지.”
노인은 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는 현지를 가리켰다.
다소 갑작스러운 부탁에 떨떠름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쁠 것은 없었다.
일주일 후에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출발한다 해도 한 달이 걸릴지 일 년, 오 년이 걸리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의 마정석 역시 전쟁을 통해 깨진 것이었고, 텔레포트를 사용해 주기 위해 복구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건넨 제안은 부탁보다는 호의에 가까웠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저희가 다녀오겠습니다.”
“고맙네.”
제안을 수락하자 감사 인사를 건넨 그가 이번에는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이건 자네한테 주는 게 맞는 것 같네.”
“이게 뭡니까?”
“열어보게.”
귀하게 보자기로 감싼 그것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이, 이건!”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몇 명의 인원들이 남아 발굴 작업을 시작했네. 무너진 성채의 잔해 속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이라네.”
그가 건넨 것은 다름이 아닌, 지팡이와 거대한 로브였다.
보는 것만으로 사악한 기운이 풍겨 나오는 그것은 분명 아자토스가 사용하던 그것들이었다.
아자토스의 지팡이와 로브를 나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이, 이걸 어째서 저한테?”
“자네 사정은 나 또한 듣게 되었네. 마정석을 얻는 과정에서 언데드 몬스터가 되고 베슬을 파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더군.”
“…….”
“결국, 아자토스를 물리친 것도, 프랑켄을 물리친 것도 자네이니. 이것을 우리가 가질 수는 없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한 것은 신우와 현지가 전부였다.
숙소를 엿들었던 것인지, 어째서 그가 이런 정보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그것을 짚고 넘어가진 않았다.
“정보 확인!”
[아자토스의 지팡이-아자토스가 오랜 시간 사용한 오래된 지팡이, 그의 힘이 농축되어 있다. (사용 불가)]
[아자토스의 로브-아자토스가 오랜 시간 사용한 오래된 로브, 그의 힘이 농축되어 있다. (사용 불가)]
눈앞에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물건들의 정보를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그 무엇도 확인할 수 없었다.
“전문적인 감정 스킬이 아니면 확인하기 어려울 걸세.”
“……그렇군요.”
분명 범상치 않은 물건들임에는 의심이 없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능력을 당장 확인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단출한 설명과 함께 표시되어 있는 사용 불가 문구였다.
언데드 몬스터 상태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와 방어구였고, 신우와 현지를 주자니 그들 또한 사정은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 또다시 해결책을 내려준 것은 그 노인이었다.
“사용할 수 없는 게 문제인가 보군.”
“예, 맞습니다.”
“개조를 해보는 건 어떤가?”
의외의 제안에 눈을 번뜩였다.
나의 무기고를 통해서도 개조를 할 수 있었지만, 어찌 됐든 그것은 무기고에 속한 것들에 국한된 것이었다.
당장 눈앞의 물건들을 개조할 순 없었지만, 세상은 넓고 다양한 스킬을 가진 자들은 많이 있었다.
어디에든 개조를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닐세.”
“혹시, 그 성채에서는 무엇을 발굴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든 생각에 노인에 질문했다.
분명 그는 전쟁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그곳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했고, 그것은 그전부터 준비했다는 의미였다.
“숨길 이유는 없겠지. 아자토스, 그가 모아둔 보물과 프랑켄이 연구한 일지들을 찾고 있네,”
“프랑켄의 연구 일지요?”
아자토스의 보물을 발굴하는 것이야 단번에 이해가 되었지만, 프랑켄의 연구 일지까지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가 연구한 것은 베슬뿐만이 아니었네.”
“그럼?”
“수도 없이 많은 연구를 진행했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말이야. 마정석의 활용 방법부터, 실생활에 이용 가능한 스킬의 활용. 큰 것부터 아주 작은 부분까지. 그가 몬스터가 되었다는 것이나 인성적인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그는 천재가 분명하네.”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고 있는 겁니까?”
그가 대단한 듯 추켜세우는 심현섭을 보며,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켄의 연구를 마치 그 전부터 알고 있다는 듯한 그의 뉘앙스 때문이었다.
“허허, 의심을 샀나 보구만.”
“…….”
“이 마을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것과 관련이 있네.”
“……그것이 프랑켄 덕분이라는 겁니까?”
“물론, 프랑켄과 뒷거래를 했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
“그렇군요.”
“우연한 계기였네. 던전을 통해 그가 흘리고 간 작은 분량의 메모를 발견했지.”
“프랑켄이 말입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짧은 메모였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했지. 마정석과 스킬을 이용한 전기의 사용과 건물의 설계 등. 이 마을에 토대가 되는 그것들은 전부 그 짧은 메모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세.”
“…….”
“화이트를 통한 마정석의 보급과 우연히 발견한 그 쪽지. 전투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