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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87화 (87/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87화

지휘관이 없는 언데드 군단과 인간들의 전투는 끊임없이 이뤄졌다.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종적을 감춰 버린 아자토스에 의해 더 이상의 시너지 효과와 그의 권능을 잃어버린 언데드 군단은 한없이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상황 또한 여의치 않았다.

육체의 피로나 상처에 있어 자유로운 언데드 몬스터들과는 달리 계속해서 이어진 전투에 인간들은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누적된 피로도와 데미지는 인간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쌓여갔다.

그 어느 쪽도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전투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진형을 유지해라!”

“저것을 깨부숴! 승리가 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적장이 사라진 전장은 그들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만들었고, 조금의 희망의 끈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검을 휘두른 이대근은 여전히 눈앞의 언데드를 향해 달려들었고, 사람들의 사기를 불어넣었다.

전투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며 전장을 지휘하는 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그가 검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외치자, 모두가 그곳을 바라보았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 갑니다!”

주변의 몬스터를 하나둘 처리한 이들은 발빠르게 그곳을 향해 모여들었다.

이대근의 검 끝이 향한 것은 다름 아닌 검은 구체.

전장의 한가운데이자,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마법진의 한가운데 있던 바로 그 검은 구체였다.

이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 검은 구체에 아자토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망설일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바로 전쟁에서의 승리였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의 완료 조건이자 전쟁에서의 승리 조건은 바로 아자토스를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눈앞에 어떠한 공격도 마법도 사용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그것은 당연하게도 모든 이들의 표적이 되고 있었다.

“으아악!!”

“이야얏!!”

캉! 캉! 캉!

눈앞의 승리가 멀지 않았다 생각한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단결된 상태로 검은 구체를 향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무기를 그것을 향해 휘둘렀다.

도끼, 검, 활, 해머, 둔기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모든 근육을 쥐어짜며 혼신의 일격을 가했지만,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박한 타격음만이 연속적으로 울릴 뿐이었다.

“젠장, 이거 너무 단단해.”

“방법이 없어! 계속 공격해, 언젠가는 부서질 거야!!”

아자토스가 모습을 감춘 검은 구체는 인간들의 공격으로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각자의 마나를 이용한 스킬 공격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달리 어떤 해결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더욱 구를 향해 몰려들었고, 그로 인해 전장의 형태 또한 변화되었다.

언데드 몬스터와 인간들이 대치하는 형태에서 언데드 몬스터가 조금씩 인간들을 포위하는 형태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장의 한가운데 있던 검은 구체를 깨기 위해 더욱더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그럴수록 마법진 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뭣들 하는 것이냐! 눈앞의 언데드들에게서 눈을 떼지 마라! 전열을 유지해!!”

그들을 향해 소리친 것은 역시 이대근이었다.

전열을 이탈하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검은 구체로 향한 이들에게 호통쳤다.

아자토스가 모습을 감춤과 동시에 약해졌다고 한들 언데드 몬스터들은 여전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바글바글한 언데드들은 쉬지 않고 인간들을 공격해 왔고, 지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열을 유지하고 있던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버거울 정도로 많은 수를 상대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인간들이 조금씩 밀리고 시작했다.

* * *

“주, 주현 님!!!”

눈앞의 해골을 양손으로 바치며 무릎은 꿇고 있는 것은 김낙현이었다.

거대한 덩치에 우락부락한 얼굴은 한 그는 어울리지 않는 눈물을 훔치며 한탄했다.

또한, 그의 옆에서 다가오는 언데드들을 상대하며 검을 휘두르는 강성곤 또한 얼굴에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저앉아버린 그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었다.

“으아아악!!!!”

전투에 손을 놓아버린 채 그저 방해만 되고 있는 김낙현이었지만, 강성곤은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마음속 깊이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며 눈앞의 몬스터를 처리할 뿐.

그 역시 주현을 잃은 슬픔은 동일했고, 김낙현의 마음을 똑같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 또한 슬픔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는 책임감에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며 그들을 지켜주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돼…….”

주현이 아자토스의 저주에 의해 모습이 변하고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순간, 가장 먼저 달려 나간 것은 김낙현이었다.

순간 이성을 잃은 그는 당장에라도 터질 듯한 표정으로 해머를 움켜쥐며 거침없이 나아갔다.

“이, 이봐!! 위험해!!”

“절대, 절대 용서할 수 없네!! 나를 말리지 말게나!”

눈앞에 아무것도 뵈지 않는 그를 따라나선 것 또한 강성곤이었다.

그들을 당장에라도 아자토스의 머리를 날려 버릴 생각으로 그곳을 향해 나아갔지만, 도착했을 땐 이미 모습을 감춘 이후였다.

눈앞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는 해골을 조심스럽게 안아 든 그들은 그녀를 데리고 나왔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확인해 봐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주현이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 고스란히 입혀진 그 해골은 그녀가 분명했다.

하지만 피부도 심장도 사라져 버린 언데드 그 자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그녀의 해골은 어떤 움직임도 없이 그저 쓰러져 있었다.

* * *

“지금이 기회입니다. 어서 마나를 회복하고 저희가 나선다면 전쟁의 승리가 멀지 않았습니다.”

“음…….”

“언데드 몬스터를 처리한 뒤, 저 검은 구체만 파괴한다면 그 아무리 아자토스라고 한들 어쩔 도리가 없을 겁니다.”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지팡이만을 휘두른 채, 마나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 노인의 곁에서 그는 신이 난 듯 떠들었다.

그저 신중하게 말을 아끼며 듣고만 있는 노인은 심현섭.

무언가 마음에 거리는 듯 인상을 찌푸린 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무언가 이상해…….”

“예? 어떤 게 말입니까?”

뜸을 들이듯 나지막하게 꺼낸 심현섭의 말에 옆에 있던 그가 반문했다.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심현섭의 표정은 심각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의 직감은 예리하게 발동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모든 전투를 지켜본 그의 눈에는 아자토스의 행동들이 부자연스럽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어째서 굳이 이곳에서 모습을 숨겼을까…….”

“그야, 현섭 님의 공격에 당해내지 못해서 꽁무니 뺀 거 아닙니까?”

“……아니야. 뭔가 있어.”

콕 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녀석의 행동엔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의 난잡하게 연결된 선들이었다.

“이건 대체……!”

아자토스가 등장과 동시에 펼친 바로 그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후발대로 급하게 나타난 심현섭과 그 일행들은 이제야 온 바닥에 펼쳐진 그것을 확인했다.

도착과 동시에 대규모 스킬과 아자토스와의 접전으로 인해, 정신이 없었기에 무리도 아니었다.

그는 성채를 모두 둘러싸고 남을 법한 거대한 마법진을 확인하며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몸을 숙여 손을 가져다 데려는 그 순간.

파아아앗-

마법진을 구성하고 있던 그 선들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빛을 뿜으며 이어지기 시작한 그 선들은 서로 이어졌고,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 예견이라도 하듯 보라색이 감도는 빛을 뿜었다.

“혀, 현섭 님. 이게 어떻게…….”

“마법진이 발동됐어. 이 정도 규모라니, 대체…….”

그조차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규모의 마법진, 그것에서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심현섭, 그의 마음 한구석에 찜찜했던 무언가는 이것을 확인한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현섭 님, 저희는 준비가 다 됐습니다.”

“…….”

그때 그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 또한 마나가 일정수준 이상 회복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계획대로라면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던 것은 대규모 신성 스킬, 턴 언데드.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단숨에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광역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꺼번에 이곳에 있는 모든 언데드를 향해 그것을 쏟아부어 이 전쟁을 마무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심현섭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계획을 변경한다!”

“예? 하지만…….”

“설명할 시간 없네! 모두 나를 믿고 따라주게나.”

갑작스러운 계획의 변경.

어리둥절한 그의 곁에 이들이 이유를 듣고자 했지만, 심현섭은 깨닫고 있었다.

마법진이 발동한 순간, 더 이상 남은 시간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 * *

“자, 어떻게 할 건가?”

눈앞의 거대한 골렘이 선택을 재촉하듯 질문해 왔다.

“젠장…….”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고민하는 사이 벌써 1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단 9분뿐, 더 이상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철컥. 철컥.

총기를 장전하며, 눈앞의 프랑켄을 향해 조준했다.

“음, 의외인데?”

그 행동만으로 결정에 대한 대답은 충분했다.

결국, 선택한 것은 눈앞의 프랑켄을 처리한 뒤, 아자토스의 베슬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인간들을 마법진 위에서 대피시킬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마법진이 발동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9분이 전부였다.

9분이 지나고 나면 마법진 위의 살아 있는 인간은 전부 베슬을 완성시키기 위한 재료가 될 것이다.

지금 바로 프랑켄을 뒤로한 채, 계단을 통해 성채의 1층으로 내려간다면 그동안 소비되는 시간은 아무리 단축시킨다 한들 3분 정도였다.

그렇게 되면 남은 시간은 6분.

6분 동안 그곳에 있는 인간들을 설득시킨 뒤, 성채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지만, 문제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었다.

살과 피부가 없고 오직 뼈밖에 남지 않은 해골, 그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이었고, 영락없는 언데드 몬스터가 분명해 보였다.

아무리 진심을 호소한다 한들, 언데드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그들에게 나의 말이 설득될 가능성은 적었다.

나의 정체를 알고 있는 신우와 현지가 있었지만, 그들 또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넓은 장소에서 둘을 찾기까지 또한 얼만큼의 시간이 소비될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맞아.’

애써 나의 선택이 옳은 거라 자위하며 총구를 프랑켄의 머리를 향해 조준했다.

어찌 됐든 선택은 끝이 났고, 그렇다고 하여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8분.

단 8분 안에, 눈앞의 저 골렘인 프랑켄을 쓰러뜨리고 아자토스의 베슬을 파괴해야 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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