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86화
아자토스가 몸을 숨긴 장소는 전장의 한가운데였다.
분명 다른 안전한 장소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무슨 의도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떠오른 것은 바로 아무런 효과도 발생하지 않던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성채 주변을 넘을 정도로 거대하고 넓게 펴진 그것은 아자토스가 가장 먼저 실행했던 행동 중에 하나였고, 어떤 의미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자토스 그가 자리를 잡은 장소.
그곳은 전장의 한가운데이기도 했지만, 그 마법진의 정 가운데 이기도 했다.
“베슬을 완성하는 그 방법이 마법진과 연관이 있는 건가?”
눈앞에 웃음 짓고 있는 프랑켄을 향해 질문했다.
그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박수를 치며 대답에 응했다.
“하하하, 생각보다 영리하구만. 맞네.”
기뻐 보이는 그와 반대로 나는 초조함이 밀려왔다.
언제 그 마법진이 발동할지 알 수 없었고, 지금 눈앞에는 모든 것을 해결할 베슬이 존재했다.
이것을 파괴하면 모든 것이 끝이 날것이다.
아자토스 그가 영생을 얻는 무한한 마나를 사용하든 이 기계 덩어리만 파괴한다면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베슬의 앞에는 프랑켄이 있었다.
아자토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숨김없이 말해주는 그의 부하.
적어도 지금까지 판단에 그의 말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여전히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이것을 파괴하려 하였을 때 그가 취할 태도가 예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그를 무시한 채, 자리를 걸어 나왔다.
들고 있던 소총을 무기고에 넣으며 꺼낸 것은 바주카포.
일반적인 총알로는 베슬을 파괴하는 것이 무리라 생각되어 이곳에서 사용하기 적당한 바주카를 꺼내 든 것이었다.
“오, 그게 인간이었을 때 자네의 능력인가?”
스킬인 무기고를 통해 거대한 바주카를 꺼낸 것이었지만, 프랑켄이 보기에는 그저 허공에서 무기를 꺼낸 것으로 보였다.
그는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관심을 보였다.
“음, 베슬을 지금 파괴하려고?”
장전을 하며 어깨에 바주카포를 올리자, 프랑켄이 턱을 쓰다듬으며 질문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시큰둥한 질문에 나 또한 질문했다.
“방해하지 않는 건가?”
“내가 왜?”
프랑켄과의 전투는 필연적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의외의 쿨한 모습의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옆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신경을 거둘 수는 없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의 태도는 어느 순간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 수 없었고,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장난감으로 될까?”
“…….”
본격적으로 구경하듯 베슬에서 떨어져 자리에 앉은 그가 중얼거렸다.
순간 자존심의 스크래치를 입었다. 하지만, 그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무시한 채, 베슬을 향해 정확히 조준했다.
바주카의 위력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연속적으로 발사했다.
슈우우우욱- 펑!!!
슈우우우욱- 펑!!
슈우우우욱- 펑!!
귀를 찢듯 거대한 소리를 내뿜으며 바주카가 연속적으로 날아갔고, 움직이지 않는 베슬을 표적으로 맞추는 것은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프랑켄 또한 어떠한 돌발적인 행동 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모든 것이 이상하리만큼 수월했고, 만족스러웠다.
베슬에 맞닿은 바주카들은 폭발과 함께 엄청난 연기를 일으켰다.
좁은 방 가득 일어난 연기 속에서 그 무엇도 볼 수 없었고, 베슬 또한 확인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의 연기가 빠지고 주변의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
“음. 기스도 없는데?”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베슬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베슬에 다가간 프랑켄은 약 올리듯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나를 보며 조롱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베슬을 찾는 것에만 집중했고, 찾기만 한다면 파괴하는 것 따위는 간단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기고 속 무기들은 그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크크크. 그런 장난감으론 안되지.”
옆에서 웃고 있는 그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슬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클레이모어, 소총, 폭탄,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이용해 베슬을 파괴하기 위해 시도했고, 또 시도했다.
“……뭐야 이거?”
“그럼, 누가 만든 건데.”
계속된 시도에도 흠집조차 생기지 않는 베슬을 보며 울화통이 치밀었다.
여전히 옆에서 한마디씩 거드는 프랑켄 때문에 더욱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베슬의 가까이에 다가가 자세하게 그것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가장 약할 것 같은 연결부위를 찾아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이번에는 저격총을 꺼내 들었다.
“엥? 일반 총? 드디어 포기한 거야?”
그동안 보았던 다른 무기들에 비해 약하다고 생각한 프랑켄이 의아한 듯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구경이 재밌는 듯 자리를 떠나지 않는 녀석을 뒤로한 채,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한 뒤 어깨에 견착했다.
그리고 미리 봐두었던 취약할 것이라 예상되었던 연결부위를 조준.
호흡을 내쉬며 숨을 멈춘 뒤,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탄!”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것은 바로 마탄이었다.
푸른빛을 품은 마탄이 총구 안에서 발광했고, 총구를 통해 그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정확히 조준한 그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기자, 모든 일대를 녹여 버릴 듯한 강렬한 열기와 함께 푸른빛이 발사되었다.
빨려 들어가듯 정확히 발사된 그 마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탕! 탕! 탕! 탕! 탕!
몸속 어딘가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리는 없었다.
푸른 빛을 품은 총알은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계속해서 날아갔고, 그 위치 또한 정확했다.
한 발, 두 발 마탄을 사용하고 나서 모든 마나를 소진해 탈진해 버리던 과거의 모습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마정석을 지니고 있고 네크로맨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지금, 마나의 양은 그때와 근본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아무리 많은 마탄을 사용해도 더 이상 그로기 상태에 빠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였던 것이다.
탕!
탕!
쩌적…….
계속해서 동일한 연결부위를 향해 오차 없이 마탄을 날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과가 드러났다.
흠집조차 나지 않던 베슬에는 조금씩 스크래치가 생겨났고, 한 방 두 방 마탄이 겹칠수록 그 효과는 두드러졌다.
‘됐다! 효과가 있어!!’
분명하게 효과가 있었고, 마탄을 사용하기 위해 남아 있는 마나 또한 무리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슬을 파괴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 다시 조준을 했고,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철컥.
탕!!!
“잠깐, 거기까지.”
그 순간 확대된 조준경을 통해 보인 것은 녹색이 전부였다.
그리고 들려온 낮고 굵은 프랑켄의 목소리.
조준경에서 눈을 떼 그곳을 바라보자 인상을 찌푸린 그가 한 손으로 베슬을 막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진지한 표정의 그는 죽일 듯 이곳을 노려보며 나를 제지했다.
순간적으로 손바닥을 펼쳐 날아오는 마탄을 막은 듯, 그의 손에는 푸른 빛이 꺼진 마탄이 박혀 있었다.
‘마탄이 뚫지 못하다니…….’
날아오는 마탄을 순간적으로 막은 것도 대단했지만, 그의 방어 능력 또한 감탄을 내기에는 충분했다.
총탄의 절반 정도가 그의 손바닥에 박혀 상처를 입히기는 하였지만, 그의 피부를 관통하지 못한 것이었다.
‘역시, 베슬을 파괴하게 둘 생각은 없었나.’
지금껏 베슬을 파괴하는 것이 즐거운 듯 구경하며 앉아 있던 프랑켄이었지만, 막상 그 조짐이 보이자 행동에 나섰다.
더군다나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것을 방해했다.
다급했다는 증거였고, 그는 베슬을 넘겨줄 생각 따윈 없었다.
“그렇게 못하겠다면?”
하지만 이 또한 예상했던 범주 안에 있었던 상황이었다.
누운 채 자세를 잡고 있던 몸을 일으켜 그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명백한 전투 의사였다.
나 또한 이곳에서 물러설 생각은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후”
무언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인 그는 여전히 자리를 비키지 않은채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아까 했던 말 기억나나? 베슬이 반쪽짜리라는 것 말이야.”
“뭐?”
시간을 끌려는 것인지 뜬금없이 그가 좀 전에 했던 주제를 꺼내왔다.
순간 예민해진 신경에 날카롭게 반문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해석할 수 없는 문장들이 가득한 그 고서. 최근에야 그 고서의 연구가 끝났네,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말이야.”
“…….”
“그래, 아까 말한 그대로 그곳에는 이 베슬을 완전하게 하는 방법이 적혀 있었지.”
“그것이 마법진이 아니었나?”
“음, 맞다고도 할 수 있고. 생각하기 나름이지.”
“장난치는 것인가?”
“아니. 선행조건이 있었거든.”
“선행조건?”
“마법진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아. 베슬을 완벽하게 만들 도구에. 이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했으니, 중요하긴 했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에서 아자토스가 전쟁이 시작되고도 바로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빠듯하게 완료된 연구로 인해 그 마법진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 전쟁에서 그 마법진이 필요했던 것.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자, 그가 입을 열었다.
“베슬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혼 외에도 대량의 살아 있는 인간의 영혼이 필요하네.”
“……뭐?”
“살아 있는 인간들, 그들이 마법진 위에 존재하면 베슬은 완벽해지지.”
“이미 사람들은…….”
“마법진의 발동시간이 오래 걸리거든. 아자토스가 내려갔을 때가…….남은 시간은 10분 정도인가?”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영혼이 빠져나가는 거지. 그럼 어떻게 되겠어?”
“……!”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단순히 마법진에 무언가 있을 것이란 추측만 했을 뿐,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프랑켄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남은 시간은 10분.
마법진 위에 있는 모든 인간, 그러니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앞으로 10분 후 영혼을 빼앗기고, 살아 있지 못하게 된다.
언데드 군단은 라이프 포스 베슬을 완성뿐만이 아닌 전쟁에서의 승리까지 쟁취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자토스는 그저 마나 회복을 위해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계획을 가지고 행동한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그 순간 나에게 두 가지의 선택이 남아 있었다.
프랑켄을 처치한 뒤, 베슬을 부수는 것과 1층으로 내려가 사람들을 마법진 밖으로 내보는 것.
베슬을 막고 있는 프랑켄과 전투를 치른 후 베슬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이었지만, 문제는 10분이라는 시간이었다.
프랑켄, 그가 보여준 무력이나 방어력은 강력했고, 짧은 시간 동안 그를 처치한 뒤 베슬을 파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을 성채의 밖으로 나가게 해 마법진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언데드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신우와 현지가 있었기에 그것을 이루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물론, 지금의 해골로 변해 버린 저주를 풀지 못하게 될 것이다.
‘베슬을 선택해 시간이 지나거나 프랑켄에게 패배하면 모두가 죽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면 저주를 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