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85화
성채의 3층에서 만난 건 다름 아닌 프랑켄이었다.
“…….”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을 건네온 그에게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가 나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인지, 지금 왜 이곳에 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득했지만 입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놀랐는가? 너무 그렇게 얼어 있지 말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 날카로운 그의 눈빛은 여전했고, 나의 정명을 쳐다보고 있던 그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지루한 듯 기지개를 켠 그가 다시금 말을 건넸다.
“…….”
여전히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의 눈길은 완전히 분해가 되어버린 뼛조각들을 향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지팡이와 몇 개의 수류탄이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모습의 뼈들은 나의 부하였던 스켈레톤 위자드가 분명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수색을 하고 있던 녀석이었다.
스켈레톤 위자드를 이렇게 만든 것은 눈앞에 서 있는 프랑켄이 분명해 보였다.
머릿속에선 당장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것이 옳은지 수만 가지의 상황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공격한다!’
짧은 순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결국 프랑켄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적인지 아군인지 아직도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먼저 공격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아자토스의 라이프 포스 베일을 수색하고 있던 나의 하수인.
스켈레톤 위자드를 이렇게 만든 것은 그가 확실했기에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이유를 불문하고 지금의 상황은 그를 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침묵을 유지한 채, 기회를 엿보았다.
어떠한 긴장감도 없이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프랑켄은 완벽한 무방비 상태였다.
그에 반해 나는 ‘내 손안의 무기고’가 있었다.
나의 고유 스킬이자, 나의 가장 강력한 스킬.
그가 이 스킬에 대한 정보까지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있다면 덤벼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무기고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공간과 시간에 제약 없이 수도 없이 많은 무기를 보관하고 꺼낼 수 있었으며, 지금 당장에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수십, 수백 개의 보관 중인 각양각색의 폭탄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의 손안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수류탄을 터뜨린 프랑켄이었지만, 모든 폭탄을 꺼내 폭발시킨다면 쓰러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안전까지 보장할 수는 없었지만, 그 양은 성채를 한 번에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그라도 버텨낼 순 없을 터.
만일의 상황에 대한 대비는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간다……!’
정적을 멈춘 채, 들고 있던 총구를 그를 향하기 위해 들어 올리려는 순간.
“들어오게.”
“……?”
아무렇지 않게 뒤로 돌아선 그가 손짓했다.
또다시 의도를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머뭇거리자,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아자토스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찾기 위해 온 것 아닌가?”
“……그걸 어떻게?”
“따라오게. 여기 있네.”
그는 역시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정곡을 찌른 그는 그대로 안으로 향하였다.
자신의 강력한 육체를 믿는 것인지, 그저 장난감이라 생각하는 나의 무기들을 무시하는 것인지 자신을 향한 총구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베슬이 이곳에 있다는 그의 말에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가 말한 대로 이곳에 온 궁극적인 이유는 아자토스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찾아 파괴하는 것이었다.
나를 언데드로 변화시킨 이 ‘저주’를 푸는 것도, 당장 이뤄지고 있는 전쟁에서 인간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도, 아자토스를 처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베슬을 파괴하는 것이다.
총구는 계속해서 프랑켄을 유지하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며 그를 따라 들어갔다.
언제 어디서 무언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뚜벅. 뚜벅.
방 자체는 그리 넓지 않았기에 그저 몇 발자국 이동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그 무엇도 튀어나오지 않았지만, 눈앞의 그것을 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가? 이게 라이프 포스 베슬이라네. 아자토스의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지.”
“……이게.”
프랑켄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양팔을 벌리며 독특하게 생긴 기계를 보여주었다.
이미 기억의 조각을 통해 그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장치였다.
개조 또는 업그레이드를 한 듯 더욱 그 장치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추가되어 있었고, 그 외관 또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둥그런 그 장치는 분명하게 확인한 적이 있던 그 베슬이 틀림없었다.
“내가 직접 만든 물건이라네. 감상이 어떤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분명 아자토스에게 협박당해, 그가 건네준 고서를 바탕으로 이것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가족을 잃고 인간이었던 그 또한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들이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베슬에 손을 올리고 질문해 오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애석하게도 반쪽짜리 물건이지만 말이야.”
“……반쪽짜리라고?”
“오? 드디어 관심이 좀 생겼나?”
계속된 침묵에 따분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는 반문하자 흥미로운 듯 익살스러운 제스처를 취했다.
그가 가볍게 꺼낸 말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자토스의 영혼을 봉인하고 있는 베슬이 반쪽짜리라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맞네. 내가 만든 물건이라는 것에는 놀라지 않았는데, 알고 있었던 건가?”
“…….”
“뭐, 상관없지.”
나 또한 기억의 조각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것에 불과한 내용이었다.
몇 번이나 그것을 체험하였지만, 나 또한 그것이 무슨 현상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에게 설명해 줄 방법도, 이유도 없었기에 다시금 침묵을 유지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넘어갔다.
“이건 아자토스가 가져온 오래된 책에 담긴 설명서를 보고 제작한 것이라네.”
“…….”
“나 역시 평생을 공부해 왔다고 자부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글자와 문양들이 가득한 것이었지.”
“…….”
“완전히 처음 보는 것투성이였다네. 고대 문자나 지구 반대편의 독특한 문자 수준이 아니었어. 완전히 다른 세계의…….”
“……그런 문자를 해석했다는 것인가?”
“절박함은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더군. 뭐, 중요한 것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지.”
그가 말한 절박함.
그것은 분명, 자신의 딸을 말하는듯하였다.
아자토스는 그의 딸을 인질로 협박했고, 박사는 그것을 거역할 수 없었다.
당시를 기억하듯 허공을 바라보던 그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몸서리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렴풋이나마 그 고서의 내용을 파악했고, 베슬을 제작하는 데에도 성공했지. 다만.”
“다만?”
“베슬을 통해 아자토스의 영혼을 분리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가 불사의 삶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네.”
“뭐……?”
이어서 설명하는 프랑켄의 말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자토스, 리치, 불사의 몸.
즉, 죽지 않는 영생의 삶을 얻게 되었다고 알고만 있던 그가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지금껏 아자토스를 불사의 존재로만 생각을 해왔고, 그 때문에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했나 생각이 들려는 찰나. 또다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분명 눈앞에 있는 것은 베슬이 분명했다.
이것을 통해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가 보군.”
멀찍이 베슬을 쳐다보고 있자, 그가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 베슬에 영혼을 분리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지?”
“하하하, 왜 베슬을 찾아 이곳까지 온 게 후회되는 것인가?”
“…….”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생각대로 이 베슬에 있는 것은 아자토스의 영혼이 확실하다네. 이 베슬이 존재하는 이상 아자토스는 죽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앞뒤가 맞지 않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네. 불사의 존재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죽지 않는 것?”
“그래, 그렇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 단지 그것이 전부라면 아자토스는 그것을 이루었을지도 모르겠군.”
“…….”
“하지만 이곳에 영혼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마나가 소비되는지 알고 있나?”
“마나?”
“그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마나가 지속적으로 필요하지.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거든.”
“……아자토스가 지금 그런 상태라는 말인가?”
“그래.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 아자토스는 지금도 엄청난 양의 마나를 이곳에 흘려보내고 있어. 어때 이 흐름이 보이나?”
설명하던 프랑켄은 베슬에 바짝 붙어 투명한 그 안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가자 푸른빛의 흐름이 그 안을 맴돌고 있었다.
“아무리 그 대단한 리치라고 한들. 마나가 바닥나면 그저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지.”
“……그렇게까지 해서 이곳에 영혼을 저장하는 이유가 뭐지?”
“베슬이 완성되기만 한다면, 마르지 않는 마나를 얻을 수 있네. 영원히 말이야.”
“마르지 않는 마나라면…… 무한하게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인가……!”
프랑켄의 설명을 듣고 나자 드디어 아자토스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하수인들을 포함한 무리한 공격이라든지, 심현섭의 공격에 무차별적으로 당하던 모습, 그리고 자취를 감춰 버린 지금의 상황까지.
막대한 양의 마나를 이 베슬에 흘려보내고 있던 아자토스는 어서 빨리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리를 했고, 조급했다.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마나가 바닥나면 불리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전쟁을 끝내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심현섭의 등장으로 틀어졌고, 계속해서 베슬을 통해 흘러나간 그의 마나는 바닥이 났다.
그로 인해 자신의 마지막 남은 마나를 쥐어짜 모든 신경을 자신의 방어에만 신경 쓴 채 숨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왜?’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자토스는 자신의 모든 힘을 쥐어짜 검은 구속에 모습을 감췄다.
그곳에 모습을 감추고 마나를 회복한다 한들, 어찌 됐든 그곳은 전장의 한가운데였다.
표적이 될 것은 분명했다. 더 안전한 장소를 찾아 숨을 시간은 충분했다.
굳이 그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설마!’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프랑켄을 쳐다보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맞네, 베슬을 완성할 방법은 그도 이미 알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