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84화
뒤에서 바라본 신우와 현지의 호흡은 가히 완벽했다.
오랜만에 지켜본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이얏!”
“발도!!”
현지가 빠르고 정확하게 몬스터들의 급소만을 치고 빠지면, 신우가 여지없이 강력한 한 번의 스킬로 다수의 적을 처리해 냈다.
뒤에 있는 총을 들고 있는 내가 무색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언데드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며 길을 터주고 있었던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선두에서 길을 터주는 신우와 현지뿐만이 아닌,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자드 역시 그 존재를 과시했다.
언데드 하수인들에게 측면을 맡도록 명령하자, 그들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게 임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준 것은 데스 나이트 들이었다.
같은 종류의 언데드 몬스터들이었지만, 검을 들고 달려오는 데스 나이트들이 접근하기도 전에 총알을 난사하며 빠른 속도로 저지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구나.’
집중력이 낮은 것은 물론, 지능 또한 그리 높지 않은 이 녀석들에게 총기 사용법을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노리쇠 뭉치, 총열, 총신 등 명칭을 외우는 것 따위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장전을 하고 견착을 정확히 한 다음 쏘는 것.
동료를 향해 총구를 들이대지 않는 정도만을 기대했지만, 의외의 결과였다.
전투에 열정이 있는 녀석들은 총기사용법을 익히고,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욱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길 원하였고,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역시, 녀석들에게 검 대신 총을 잡게 한 건 옳은 선택이었어!’
검을 들고 전투를 하는 데스 나이트 역시 강력한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고질적인 문제점이 존재했다.
바로 검을 든 상대만 보면 주위의 상황과 관계없이 전투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그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았고, 그가 강해 보이면 강해 보일수록 그 욕망은 커졌다.
상관인 나의 명령에도 굴복하지 않을 정도의 욕망이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제2군단장이었던 둠 나이트에게 결투를 신청했을 정도였으니, 말은 다한 셈이었다.
‘그래도 신우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않은 걸 보면.’
무엇보다 주무기를 총기로 바꾼 이후 의외로 그 문제점은 쉽게 고쳐졌다.
총기를 양손에 들고 있는 데스 나이트는 신우를 보며 못마땅해하기는 하였어도 검을 들고 있는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콰광!! 콰광!!
또한, 걱정스러웠던 스켈레톤 위자드들 역시 훈련했던 그대로 잘 해주고 있었다.
스켈레톤 위자드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격은 화염 계열 폭발과 중독을 일으키는 스킬이 주를 이루었다.
두 스킬 모두 광범위 마법으로 강력한 공격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문제는 마나에 있었다.
마법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이었기에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나는 높은 편이었으나, 스킬들 또한 소모되는 마나가 적지 않았다.
마나석을 주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 또한 마나석을 얻으려다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었으니 그것은 훗날의 문제였다.
그들의 마나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3, 4번이 전부였고, 모든 마나가 소진되면 스켈레톤 위자드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일반적인 스켈레톤과 비교해 마나의 양과 강력한 스킬을 사용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역으로 그 완력이나 힘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마나가 소진한 뒤에 검을 들고 싸우게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기에, 그들에게 수류탄을 쥐여준 것이었다.
‘완벽하다. 완벽해!’
애초에 수류탄의 사용법이 어려운 편도 아니었고, 무기에 대한 두려움조차 없는 녀석들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지능이 발달한 녀석들은 수류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적들이 몰려 있는 중심을 노려 투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그래, 여기 있다. 잘하고 있어!”
더욱이 놀라웠던 것은 수류탄이 떨어지면 나에게 받으러 온다는 것이었다.
스킬을 사용하다 자신들의 마나가 전부 소진되면 주저 없이 수류탄을 꺼내 들어 투척했고, 그 또한 전부 떨어지고 나면 두리번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무엇을 하는지 의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스켈레톤 위자드들은 나를 발견하고는 거침없이 다가왔고, 뼈밖에 없는 손바닥을 나에게 내밀었다.
하나같이 말이 없고 표정도 지을 수 없는 녀석들이었기에 그 손바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악할 수 있었다.
녀석들 또한 수류탄의 위력을 직접 체감했고, 스스로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나에겐 무기고를 통해 보관 중인 수류탄이 얼마든지 있었고, 만약 부족하더라도 코인을 통해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었으니 아낄 필요가 없었다.
다만 긴박한 전투 상황에 시도 때도 없이 다가와 손을 내미는 녀석들 탓에 다소 난감하기도 하였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서 죽는 것보단 나았으니 문제는 없었다.
“이 병장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고맙다.”
“민혁 씨, 부탁할게요.”
“네, 현지 씨도 감사합니다.”
얼마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그 사이에 언데드들은 가득했고 그들을 사이를 헤쳐가며 길을 터서 전진해갔다.
계단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을 마지막으로 막고 있던 몬스터를 처리한 순간 신우가 외친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빈자리를 메우는 몬스터들 탓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곳을 지나야 했고, 짧은 인사만을 건넨 채 그들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랐다.
* * *
간신히 따라붙은 언데드 하수인들을 거느리며 빠르게 계단 하나하나를 밟아갔다.
같은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성채의 1층을 벗어난 순간 한산할 정도였다.
그만큼 언데드 몬스터가 전부 모여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게 그 노인이 한 거란 말이지.’
성채를 올라갈수록 곳곳에는 거대한 구멍들이 눈에 띄었다.
1층에 있을 당시에는 그 충격과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단 하나의 메태오만을 간접적으로 확인했을 뿐이었지만, 위로 갈수록 그 피해는 거대했다.
‘그 노인 얼마나 강한 거야?’
새삼스럽게 놀라게 하는 위력이었다.
얼마나 뜨거운지 벽 자체를 그 구의 크기로 녹여 버리고, 주변을 화염으로 그을린 자국들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던 것이다.
성채의 2층을 지나 3층으로 이동할수록 그 화염구에 의한 구멍들은 많아졌고, 이곳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그 스킬을 쓸 당시 인간들에게 방어막을 펼쳐두긴 하였으나, 만약 성채가 아닌 평지였다면 무용지물이었을 거라 확신했다.
무엇보다 현재 인간이 아닌 몬스터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내게 그 스킬이 명중했다면 뼈조차 남지 않고 녹아 버렸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자토스는 이 정도 스킬을 정면으로 맞고도 버틴 건가.’
여지없이 녀석의 강함을 인지하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스킬이나 복장, 무기까지 모두 마법사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었기에 방어력만큼은 약점이 될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증명해 낸 녀석의 방어력 또한 발군이었다.
‘그런 녀석이 죽지도 않는다면…….’
생각을 거듭할수록 걱정은 쌓여갔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단을 올라 성채의 3층에 도착함과 동시에 그곳을 향해 뛰어들어 갔다.
아자토스가 이곳에 없는 것은 확실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 * *
사방에 가득한 사치품들과 귀금속들, 그리고 고풍스러운 그림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두 번 정도 와본 것이 전부였지만,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놀랍거나 신기하지 않았다.
지하의 보물 창고를 통해 더욱 귀한 것들을 원 없이 본 탓도 있겠지만,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한들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었다.
탐이 나서 가져간다 한들 그저 짐이 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들에 눈길을 돌린 채, 베슬 수색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도 특이하게 생긴 기계를 찾으면 나에게 오면 된다!”
“네!!”
“…….”
역시나 데스 나이트의 대답만이 들렸다. 말을 못 하는 역병 좀비나 스켈레톤 위자드의 대답은 바라지도 않았다.
“시작해!”
투다다다닥!
외침과 동시에 제각각 흩어지며 빠른 속도로 3층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무장을 하고 집을 뒤지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무장 강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너무 넓어.’
그전부터 느꼈던 것이었지만, 베슬을 찾기 위해 수색을 시작하니 그 공간은 더욱 넓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살펴보았던 공간들은 지하의 보물 창고나 프랑켄의 실험실, 모두 그저 방 몇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조차 살펴보는 데 꽤 오랜 시간을 소비하였는데, 지금 있는 아자토스의 공간은 성채의 3층 전부였다.
층 하나를 통째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그였기에, 그 공간은 더욱 넓게만 느껴진 것이었다.
또한, 그 층에 있는 방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다행이라면 심현섭의 메태오로 인해 공간 곳곳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곳 모두 꼼꼼히 수색하지 않을 수 없었고, 촉박함을 느끼며 베슬을 찾아다녔다.
-쿵! 쾅! 쾅!
아자토스의 보석을 모아둔 보석방, 로브들을 모아둔 옷방을 넘어 다음 장소를 수색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복도 끝에서 거대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뭐, 뭐지?’
못된 짓 하다 걸린 아이처럼, 순간 놀란 마음에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복도 끝 방 안쪽에서 날아와 벽에 무언가 부딪혔다.
순간 캐치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간 그것이 부딪히자 벽이 움푹 파일 정도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금씩 다가갔고,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완전히 박살이 나고 조각이 났지만, 손가락뼈에 집고 있는 지팡이와 몇 개의 뼈에 묶여 있는 수류탄은 분명 나의 하수인의 것이었다.
‘……스켈레톤 위자드? 어떻게 된 거지? 안에 누군가 있는 건가? 이 파괴력은……? 어떻게 해야 하지?’
쿵. 쿵. 쿵.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방 안쪽에서 나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거대한 발걸음 소리는 문 앞에 다가와 멈췄고,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켈레톤 위자드 따위가 이곳엔 어떻게 온 거야? 이 장난감은 또 뭐고?”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그는 나머지 손으로 수류탄을 공놀이하듯 튀기며 걸어 나왔다.
거대한 몸집에 동그란 안경.
몸에는 하얀 가운을 걸친 그는 프랑켄이었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온 그는 문 앞의 나를 발견했고, 공중에 튀기던 수류탄을 거대한 손으로 움켜잡아 힘을 줬다.
퉁. 후두두둑.
그는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터진 수류탄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잔해들을 털어내며 웃어 보였다.
“아, 역시 너였구나? 제2군단장. 아니, 이민혁 병장이라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