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83화
그곳에 있는 이들은 전투를 하면서도 모든 신경은 아자토스와 주현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저주를 내린 순간.
주현의 피부는 검은빛으로 물들며 썩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근육, 장기, 세포 하나까지 모두 사라졌고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뼈뿐이었다.
아자토스가 그녀에게 내린 저주는 민혁 또한 잘 알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
강성곤과 김낙현을 포함한 용병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본 그 누구도 어떠한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선망하고 존경했던 그녀가 눈앞에서 몬스터로 변해 버린 그것은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떤 슬픔이나 원망조차 느끼지 못한 그들은 그저 그 모습을 보며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툭.
목을 조르고 있던 아자토스는 그대로 손을 놓았다.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녀는 그대로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고,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해골은 그대로 널브러졌다.
[끈질기구나…… 인간들이여…… 이제 곧…… 고대하던…….]
언데드 몬스터가 되어버린 그녀는 더 이상 관심거리조차 되지 않는 듯, 그대로 해골을 지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인간들은 굳건했고, 계속해서 언데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체감상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가 안 보였고, 인간들은 포기할 줄 몰랐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놀이는 끝났다. 모든 인간을 씹어먹어라!]
쾅!!
아자토스는 자신의 언데드 하수인들을 향해 명령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지팡이로 땅을 내리쳤다.
그러자 그의 발밑에 있던 마법진에서 검은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성채를 넘어 거대한 게 형성되어 있던 바닥의 선들을 따라 순식간에 퍼져 나간 그 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연결되었고 그 중심에는 아자토스가 서 있었다.
“뭐, 뭐야?”
이번에도 역시 어떤 효과도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모두의 발밑에 마법진이 빛을 뿜고 있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던 아자토스에게 변화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몸에 검은 연기가 한군데로 뭉치기 시작했고, 이내 곧 압축되듯 그의 몸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어리둥절하기도 잠시, 그에게 계속해서 주입된 그 검은 연기는 멈출 줄 몰랐고 거대한 구를 형성했다.
“크로아아아!!!”
“죽어라!!”
그와 동시에 언데드 몬스터들은 더 이상 그의 주변을 지키지 않은 채 다시 인간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완전한 구.
흑색의 거대한 구 속에 들어가 버린 아자토스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 * *
‘뭘 하는 거지?’
무언가 엄청난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아자토스의 행동에 긴장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구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
‘숨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엇!’
그의 행동의 의미를 유추하기 위해 턱에 손을 기대며 생각하던 중 무언가 깨달았다.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자토스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던 몸이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죽어라라랏!!!”
그리고 앞을 바라보자 달려오고 있는 것은 바로 신우였다.
죽일 듯한 기세로 자신의 검을 움켜진 그는 영락없이 나를 베려 했다.
어느새 소환된 부하들까지 해치운 현지 또한 신우의 뒤를 따라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자, 잠깐! 신우야! 나야!”
“이야야아아…… 아?”
마지막 일격이라도 날리려고 했던 듯 검기가 서린 신우의 검이 해골에 닿기 일보 직전 멈추었다.
뒤에 있던 현지 또한 놀란 듯 자신의 벌린 입을 한 손으로 막고 있었다.
“저, 정말 이 병장님이십니까?”
공격을 멈추기는 하였지만 역시 믿지는 못하겠는 듯,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질문했다.
여전히 검은 나의 뼈를 향하고 있었고, 대답을 잘못했다간 당장에라도 내리칠 기세였다.
“그래, 그러니 이, 이 검 좀 치워줄래?”
“…….”
서슬 퍼런 검을 가리키며 요청했지만, 그저 자신의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녀석 언제 이렇게 의심이 많아진 거야?’
부대에서 처음 만났던 순진하고 허당기 넘치던 신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신중하게 자신의 검을 유지하며 주변의 언데드 몬스터들을 견제하는 신우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
“…….”
대화의 진전 없는 그 상황을 풀어준 것은 다름 아닌 현지였다.
모든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현지가 앞으로 나오며 상황을 중재해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자토스에게 조종받고 있던 건가요?”
“……예.”
“모습이 그렇게 된 건 방금과…… 같은 상황인 거구요?”
“……맞습니다.”
침착하게 모든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이미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껏 아자토스에 의해 이들을 공격하고 있었던 이유와 지금의 뼈밖에 남지 않은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까지.
방금 아자토스의 저주에 의해 주현이 언데드 몬스터로 변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그녀가 추론해 낸 것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탐지 스킬을 통해 내가 이민혁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보다 현지 씨와 신우, 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모든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신우는 이제야 오해가 풀린 듯, 자신의 검을 내려놓았다.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가 잔뜩 있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신우와 현지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 베슬이란 걸 파괴해야 저기 있는 아자토스를 쓰러뜨릴 수 있다 이 말이죠? 그렇게 되면 민혁 씨의 몸도 원래대로 돌아오구요?”
“네, 정확합니다.”
긴박한 상황에 두서없이 설명을 하였으나, 어찌 됐든 현지는 그 의미를 파악한 듯하였다.
아자토스의 라이프 포스 베슬.
그의 영혼을 가둬둔 그 장치를 부숴야 했다.
지금까지의 아자토스의 행동을 보면 그조차도 의심스러웠지만, 어찌 됐든 베슬이 있을지도 모르는 성채의 3층을 조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자토스가 검은 구체에 몸을 숨긴 지금이 바로 그 기회였던 것이다.
“그럼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죠?”
“저곳 계단까지 길을 여는 것을 도와주세요.”
“이 병장님, 저희도,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아니. 둘은 이곳에 필요해.”
현지의 질문에 대답하자, 신우가 결연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나 또한 오랜만의 재회에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잘 알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심현섭의 등장과 강력한 광범위 스킬들 그리고 아자토스의 부재까지.
인간들의 편에서는 매우 유리해졌다고 볼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이었지만, 언데드들의 숫자는 여전히 너무나도 많이 있었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인간과는 다르게 언데드 몬스터들은 체력을 소비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피로는 높아져만 갔지만, 그들은 여전했던 것이다.
심현섭 또한 강렬했던 등장과는 달리, 지금은 그저 주변의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을 뿐, 또한 인간들을 감싸고 있던 방어막 역시 사라지고 없었다.
‘마나가 다 되었다는 거겠지.’
대규모 방어 스킬과, 회복 스킬, 그리고 메태오라는 스킬까지.
그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 마나를 전부 소진했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 수 있었다.
대장격인 주현까지 그렇게 된 상황에서 현지와 신우, 이 둘은 적의 편에서 지켜본바, 인간들의 핵심 전력이라 봐도 좋을 정도였고, 이들이 전선에서 이탈한다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성채의 3층에는 아무도 없을 거야. 나 혼자서도 충분해.”
물론 신경 쓰이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프랑켄.
군단의 제1군단장인 그가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까지 설명할 겨를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 녀석들도 있고!”
“주인!”
“이, 이 병장님…… 부하인 것입니까?”
“이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들이…….”
손짓하자 다가온 것은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자드, 그리고 역병 좀비들이었다.
각각 총기와 수류탄을 소지한 언데드 몬스터들을 신우와 현지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역시, 이 총기들을 사용하는 언데드들…… 어떻게 된 거예요?”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은 일단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다, 다음에 꼭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부러운 듯한 신우의 표정과 기가 막힌다는 듯한 현지의 반응은 갈렸지만, 지금의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음. 남은 부하들은 이게 다인가?’
데스 나이트 2기와 스켈레톤 위자드 1기, 역병 좀비 1기까지.
나머지 해골 병사와 스켈레톤들은 인간들의 신성력에 의해 목숨을 달리했고, 더 이상 소환되지 않았다.
제2군단의 언데드 부하들은 아자토스의 명령에 따라 인간들을 공격했고, 내 명령에는 응하지 않았다.
새로 소환을 해도 마찬가지였고, 내 명령을 듣는 것은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녀석들이 전부였던 것이다.
* * *
철컥. 척.
“역병 발생!”
장전을 하던 중, 나타난 스켈레톤에게 한 손을 뻗으며 스킬을 사용했다.
녹색의 연기가 손에서 뻗어 나오며, 스켈레톤과 그의 주변에 있던 언데드 몬스터들을 향해 역병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K2에 장착해 놓았던 액세서리인 유탄발사기에 손을 바꿔 잡았다.
피유유융- 콰광!!!
두두두두두두!
역병이 퍼짐과 동시에 녀석들에게 유탄이 날아갔다.
그리고 또다시 쏟아지는 총알 세례.
“여, 역시 이 병장님이십니다!”
“……가자!”
오랜만에 듣는 신우의 알랑방귀에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근육이 없는 언데드의 육체로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었다.
무기고를 통해 익숙한 K2를 꺼내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 이상 네크로맨서의 특징인 언데드 몬스터를 소환한다 하여도, 그들은 강력한 아자토스에게 사로잡혀 나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아무리 마나가 많다고 한들, 결국 녀석들을 소환한다면 적의 숫자를 늘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간편하면서도 강력한 총기를 꺼내 들었고, 앞장서 길을 터주는 신우와 현지를 따라가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비켜라. 인간.”
총기를 든 데스 나이트가 앞장서 길을 터주는 신우가 거슬리는 듯 먼저 말을 건넸다.
누가 들어도 시비조의 말이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수하들이었지만, 어찌 됐든 그들은 언데드 몬스터였다.
아자토스의 부하들을 공격하라는 명령은 곧 자신들의 동료를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혹여나 명령을 거부한 채 아자토스의 곁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생각해 놓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처음부터 나와 함께 했던 이 녀석들은 나의 명령을 따랐다.
또한, 적이었던 신우와 현지를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순간부터 저런 식으로 불쾌감을 표현하긴 하였지만 철저하게 명령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