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81화
“…….”
몰라보게 달라진 동작으로 검을 휘두른 신우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단숨에 나를 향해 공격을 시도하려 하였지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언데드 하수인들이 아니었다.
공격을 해오는 신우를 가로막은 스켈레톤 병사들과 해골 병사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검과 화살을 날렸다.
“이크.”
아무리 하위 언데드였지만 시너지 효과와 아자토스의 권능을 두르고 있는 하수인들의 집중 공격을 막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강신우는 당황한 듯 동공이 흔들렸지만, 이내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리고 둘러싸고 있는 언데드들을 예의주시하며 자신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를 모르는 누군가 본다면 포기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행동이겠지만, 계속해서 신우와 함께했던 나는 알고 있었다.
“발도(拔刀)!”
왼쪽 허리춤에 있는 자신의 검집을 비틀어 잡은 신우는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뽑아 들었다.
분명 익숙하고, 알고 있는 신우의 스킬이었지만 그 위력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칼을 뽑아 듦과 동시에 초승달의 형태를 한 거대한 검기가 언데드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검기는 주변에 있던 해골 병사들과 스켈레톤을 완전히 두 동강 냈다.
‘강해졌구나.’
한 번에 주변의 모든 언데드들을 초토화시켜 버린 신우를 보며 대견스러움도 잠시.
아자토스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입은 떨어질 줄 몰랐다.
그저 나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신우에게 그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던 것이다.
해골 병사들과 스켈레톤 병사들을 순식간에 처리했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일대만을 정리한 것뿐이었다.
언데드 병사들은 수도 없이 존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를 다른 언데드들이 채웠다.
새로운 하수인들이 자리하자 일그러지는 신우의 표정.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자드들이 앞으로 나오자 당황한 듯 그의 시선이 떨려왔다.
“초…… 총……?”
다름이 아닌 이들의 무장 상태 때문이었다.
K2를 익숙하게 견착하고 있는 데스 나이트와 수류탄을 주렁주렁 메달고 있는 스켈레톤 위자드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들을 하나하나 샅샅이 살펴보던 신우의 시선이 나에게도 향했다.
“서, 서…… 설마.”
무언가 알아차렸는지 신우가 입을 떼려는 순간.
그의 뒤에서 몬스터들을 뚫으며 현지가 나타났다.
“신우 씨, 그, 그 해골…….”
그리고 정확히 나를 가리킨 그녀가 신우를 보며 소리쳤다.
“미, 민혁 씨 같아요……!”
“……네??”
어째선 현지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는지는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의 탐지 스킬 덕분으로 보였다.
주변을 탐색하거나 적의 급소를 파악하는 그녀의 스킬을 이용하여 내 진짜 정체를 파악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모습이여도…….’
뼈밖에 남지 않은 이러한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나를 인식했다.
그녀 또한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주먹에 끼워진 글러브나 컴파운드 보우가 아닌 한눈에 보기에도 살벌한 징이 박힌 너클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없었음에도 착실하게 역경을 극복해 나가며 계속해서 성장을 한 동료들을 보며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이런 식으로 재회를 했다는 것에 자책감이 몰려왔다.
더 샅샅이, 더 빠르게 행동해 베슬을 찾고 파괴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병장님이 왜 저희를…….”
“모르겠어요…… 하지만…….”
현지의 말을 반박하며 의문을 제기하였지만, 그녀라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는 듯 그 둘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그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내 입에서는 내 의지와는 전혀 다른 말들이 새어 나왔다.
“저 둘의 시체를 가져와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켈레톤 위자드의 스킬, 화염 폭발이 신우와 현지를 향해 시전됐다.
데스 나이트들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빠른 기동력을 자랑하며 총구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폭발로 인한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총기의 소음으로 인해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시야로 인해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그때, 연기 속을 튀어나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우였다.
폭발을 뚫고 그사이에 곧바로 달려 나온 듯하였다.
단숨에 검을 꽂아 넣을 듯 맹렬한 기세로 뛰쳐나온 신우는 순간 나의 해골밖에 없는 눈두덩이를 빤히 쳐다보며 질문했다.
“저…… 정말 이 병장님이 맞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해온 신우에게 손을 뻗었다.
앙상한 다섯 개의 손가락뼈는 그대로 신우의 얼굴을 잡아냈다.
“……역병 발…… ㅅ”
“신우 씨! 안돼요!”
신우의 얼굴 정면을 향해 역병 발생을 사용하려던 그 순간.
그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역시나 현지였다.
나의 손끝에서 녹색의 역병이 피어오르려는 그때, 둔탁한 무언가가 나의 손을 걷어냈다.
신우의 얼굴에서 방향이 틀어진 손에선 녹색의 연기가 발사됐고, 그것은 땅을 향하였다.
“……아니야. 이 병장님이…… 이 병장님이 나를 공격할 리 없어!”
나의 손끝에서 발사된 녹색의 역병은 땅에 닿자마자 움푹 파이며 일대를 녹여 버렸고, 신우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자신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빠르게 파고들었다.
“발도!”
엄청난 속도로 파고드는 신우의 공격을 해골의 육체로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신우의 검 끝에서 퍼져 나온 검기는 정확히 나를 덮쳤다.
[생명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 트롤의 생명력이 발동됩니다.]
몸으로 직접 체험한 녀석의 스킬은 강력했지만, 지금의 나 또한 아무런 능력도 없이 제2군단장의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것은 아니었다.
시체 흡수를 통해 얻었던 패시브 스킬, 트롤의 생명력이 발동함과 동시에 상처 입었던 나의 해골 육체는 곧바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공격을 해올 것이라 예측하며 신우와 현지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표정은 무언가 이상했다.
복잡미묘한 그 둘의 표정은 순식간에 재생된 스킬을 보고 놀란 것은 아니었다.
“이, 이 병장님…….”
“민혁 씨…….”
그제야 그들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나의 복장, 그것도 정확히는 나의 명찰이었다.
지금까지 아자토스에게 하사받은 군단의 로브를 군복 위에 껴입고 있었지만, 신우의 검기에 로브가 찢어지며 안에 있던 군복이 드러난 것이었다.
정확히 나의 이름인 ‘이민혁’이 적힌 명찰을 두 사람은 똑똑히 쳐다보고 있었다.
* * *
“주현 님, 혼자서는 너무 위험합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
순식간에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강해진 언데드 몬스터들로 인해 아자토스와의 거리가 벌어졌지만, 주현의 목표는 하나였다.
보스 몬스터인 아자토스를 처치하는 것.
모든 관심은 녀석에게 쏠려 있었고, 다시 한번 그를 상대하기 위해 가려고 했다.
그런 그녀의 의도를 알고 다가온 것은 바로 강성곤과 김낙현이었다.
용병 생활을 하기 전부터 오랜 기간 같이 생활한 그들은 그녀의 생각을 너무나도 잘 파악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도와주겠다는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명백한 거절 의사였다.
평소에 말수가 없는 그녀였기에 더 이상 이유를 묻거나 한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고집 또한 완강한 그녀였기에 그저 맡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허허허.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저희는 방해만 될 뿐이겠지요.”
“……그, 그게 아니라…….”
“허허 괜찮습니다. 그럼 길을 터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요? 잔챙이 녀석들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저 말라비틀어진 해골 놈에게 한 방 먹여 주세요!”
“…….”
이미 주현과 대화하는 법 따위는 완벽하게 숙지한 강성곤은 능청을 피우며 껄껄대고 웃어댔다.
곤란해 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강성곤과 김낙현은 앞의 몬스터들을 향해 거대한 검과 해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힘이 얼마나 센 것인지 그 아무리 강력한 효과를 받고 있는 언데드라 할지라도 버텨낼 수 없었다.
김낙현이 해머를 내리치면 땅이 울리고 진동이 일어났으며 강성곤이 검을 휘두르면 스치는 모든 것들이 베이고 갈라졌다.
그 둘의 강함은 오직 강력한 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의 전투 경험, 강력한 몬스터를 찾아다니며 전투를 즐긴 그들은 모든 전투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김낙현이 검을 휘두르는 데스 나이트의 검은 회피한 뒤, 뒤에 있던 스켈레톤 위자드에게 해머를 내리찍었다.
그러면 김낙현에게 검을 휘두른 데스 나이트에게는 강성곤의 검이 여지없이 날라왔다.
둘의 호흡은 여하를 막론하고 완벽했던 것이다.
“…….”
말릴 새도 없이 막무가내로 길을 열어주는 그 둘을 바라본 주현은 곧바로 아자토스를 향해 나아갔다.
강선곤과 김낙현은 주현의 근처에 언데드 몬스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고, 그 효과는 대단했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바람처럼 달려 나간 주현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아자토스를 보며 레이피어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윈드…… 블레이드!!”
그녀의 검에 바람이 응축되듯 모여들었고, 그 주변에선 무엇이든 베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감돌았다.
더욱 빨라진 속도로 일직선으로 파고든 주현은 레이피어를 아자토스를 향해 찔러넣었다.
캉!!
하지만 들려온 것은 낡아빠진 뼈를 부수는 타격음이 아닌, 무언가와 부딪힌 파열음이었다.
날카롭게 들어온 레이피어를 막은 것은 커다란 보석이 박혀 있는 지팡이였다.
[또 그대인가.]
“……!”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아자토스는 눈앞에 있는 주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보다 한참이나 큰 그는 주현을 내려다본 채로 가소롭다는 듯이 읊조렸다.
[재미있구나. 좋다. 내 친히 그대를 상대해 주도록 하겠다.]
곧바로 레이피어를 거둬들이며 자세를 고쳐잡는 주현을 보며 아자토스는 자신의 긴 손가락뼈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그녀에게 흥미가 생긴 듯하였다.
[그대 또한 나의 영광을 받아들여라.]
아자토스가 허공에 손을 뻗자, 그곳에선 검은빛의 창들이 생겨났다.
공중에 둥둥 떠 있던 세 개의 창은 아자토스의 손짓에 맞춰 날아갔다.
훅.
훅.
훅.
그가 주현을 향해 팔을 뻗자, 엄청난 속도로 창들이 하나씩 뻗어 나간 것이었다.
침착한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주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창을 가볍게 피해 냈고, 다시 한번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재빠르구나. 이건 어떠냐!]
약이 오른 듯 조금이나마 언성이 높아진 아자토스는 이번에는 양팔을 허공에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도 또다시 검은빛의 창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수십, 아니, 수백은 되어 보이는 검은빛의 창들은 순식간에 공중을 가득 메우듯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