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어다니는 무기고-80화 (80/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80화

‘…….’

바람 같은 속도로 순식간에 나타나 공격을 한 그녀에 놀라기도 잠시, 일대는 정적이 감돌았다.

자신의 몸에 검이 꽂힌 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아자토스와 레이피어를 손에 쥔 채 그런 그를 노려보고 있는 주현의 모습을 번갈아 확인할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감돌던 그때.

지팡이를 들고 있던 아자토스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미있구나.]

“…….”

정적을 깬 아자토스가 그녀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 또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아자토스의 지팡이가 날아오는 순간, 갈비뼈에 꽂혀 있던 레이피어를 순식간에 뽑아 든 그녀는 백스텝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허공을 가른 지팡이는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스쳤다.

[재빠르군.]

리치 특유의 거만한 목소리나 표정은 여전했지만, 그녀의 공격이 아무런 효과가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관통한 레이피어를 뽑아낸 순간, 아자토스의 갈비뼈는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방금의 상황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듯, 부서져 버린 아자토스의 갈비뼈 사이로 바람이 지나 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자토스의 권능 또한 약해진 것이 느껴졌다.

주위의 언데드 몬스터를 제외하면 나 외에 그 누구도 느낄 수 없었을 테지만, 확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권능에 이끌려 움직이던 육체가 조금이나마 편해진 것이다.

[놀이는 끝났다.]

쾅-!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자토스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히거나, 전쟁의 상황이 급변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주변의 인간들을 둘러본 그는 지팡이를 땅에 내리쳤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파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내리친 지팡이 끝에서 검은 오오라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피해!!”

“저것에 닿지 마라!!”

언데드인 나 또한 처음 보는 그의 스킬이었기에, 인간들 또한 혼비백산했다.

지팡이에서 시작된 검은 줄기는 땅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전의 상황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보고 있던 모든 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도 못한 채 닿지 않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성채의 모든 바닥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가는 그것을 밟지 않으려 애쓰자 그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하하하! 소용없다!]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인간들을 보며 그가 웃음을 터뜨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검은 오오라는 서로 얽히고설켜 알아보기 힘든 문양을 만들었다.

그것은 성채의 모든 바닥을 넘어선 거대한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그래도 조심해요! 아무 이유 없이 행동한 것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다급했던 상황과는 반대로 그 어떤 상황도 펼쳐지지 않았다.

강력한 대규모 스킬, 엄청난 마법이나 그 무엇보다 강력한 몬스터가 소환될 것이라는 걱정과는 달리 그저 아무런 효과도 없었던 것이다.

“이거 마법진 같지 않아요?”

군중 속의 누군가가 외친 말이었다.

마법진, 실제로 사방으로 뻗어 나간 그 오오라는 엄청나게 거대한 마법진의 형태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마법진을 사용하던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휴식을 취할 공간을 위해 집을 소환하던 심현섭도, 마을에서 건물을 수리하거나 생성할 때에도 그들은 마법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마법진이란 것은 강력한 스킬을 사용할 때 사용하는 용도였다.

아자토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력한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마법진을 깔아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나의 하수인들이여! 나 아자토스를 위해 싸워라!!!]

강력한 스킬이 사용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양손을 머리 위로 뻗으며 소리쳤다.

전투를 시작하라는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언데드들은 표효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린 아자토스의 몸에서 뻗어 나간 검은 기운들은 모든 언데드를 향해 뻗어서 갔고, 그와 동시에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용 중인 시너지-소총(3/2) 적중률 10% 증가.]

[적용 중인 시너지-군인(27/15) 이동속도 25% 증가. 군인 직업에만 적용.]

[적용 중인 시너지-언데드(1,427/1,000) 200% 증가. 언데드에만 적용.]

[적용 중인 시너지-마법사(107/100) 마나 100% 증가. 마법사에만 적용.]

[적용 중인 시너지-기사(505/500) 물리 공격 250% 증가. 기사에게만 적용.]

[적용 중인 시너지-자폭병(277/200) 폭발 위력 200% 증가. 자폭병에게만 적용.]

[…….]

그리고 수도 없이 쏟아지는 홀로그램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아자토스가 자신의 밑에 있는 모든 언데드 몬스터들을 결속시킨 그 순간, 파악하기 힘들 정도의 효과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그 효과를 받고 있는 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뼈밖에 없는 나의 몸에서는 마치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것과 같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깊숙한 어딘가에서부터 느껴져 오는 강력한 기운들.

마치 당장에라도 아자토스를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온몸을 휩싸았지만, 아직도 내 몸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였다.

“딱…… 딱…… 죽어…… 라!”

“이, 이 녀석들…… 엄청나게 강해졌어!”

단지 신성력이 발려 있는 무기에 스치기만 해도 바스러졌던 해골 병사들조차 그 완력이 대단했다.

녹슨 검을 한 손에 들고 있는 녀석들은 인간을 향해 느린 속도로 검을 날렸고, 그저 만만하게 여기고 있던 이들은 당해낼 수 없었다.

두 손을 이용해 검을 잡은 채로 간신히 해골 병사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자토스의 권능과 다양한 시너지 효과는 언데드 군단 자체를 엄청나게 강력하게 만들었다.

[이 벌레만도 못한 것들에게 죽음을 선사해라!!]

이어진 아자토스의 명령에 나 또한 움직였고, 인간들과 마주했다.

억지로라도 몸을 컨트롤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해골 병사 소환, 구울 소환, 스켈레톤 소환, 역병 좀비 소환, 데스 나이트 소환, 스켈레톤 위자드 소환, 데스 디 멘션! 역병 발생!”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손과 입은 움직였다.

어느새 가까이에 다가온 제2군단의 언데드 부하들 역시 아자토스의 통솔을 따르고 있었다.

방어에 집중하라는 나의 명령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모든 언데드 부하들은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시너지 효과와 아자토스의 권능으로 인해 과할 정도로 넘쳐나는 마나로 네크로맨서가 된 후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소환 스킬과 공격 스킬을 아낌없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수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언데드 몬스터가 나의 주변과 뒤로 소환되었고, 그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언데드들에게 힘을 보태줬다.

아자토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나의 스킬 또한 강력했고, 그로 인한 효과는 인간들에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당황하지 마!! 우선 저 녀석부터 처리하자!”

“네!”

시간이 갈수록 밀리고 있는 인간들 사이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이러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던 그였다.

강해진 언데드들을 보며 당황한 동료들을 안심시키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강신우였다.

그동안의 수련이 효과가 없었던 것이 아닌 듯, 강력한 이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신우는 자신의 흑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전진해 왔다.

“네놈은 여기서 막는다!”

“…….”

신우가 나에게 칼을 겨누며 소리쳤다.

* * *

“젠장, 이 녀석들…….”

“숫자가 너무 많아요. 이대로라면 얼마 버틸 수 없을 거예요.”

아자토스의 등장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언데드 몬스터들의 그 숫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 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눈으로도 파악이 가능했다.

신우는 끊임없이 늘어나는 몬스터들을 보며 어찌할 도리없이 그저 눈앞의 상대에만 집중했다.

다른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때, 근처에 있던 현지가 신우를 보며 소리쳤다.

“저 녀석이에요! 저기를 봐요!”

현지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보이는 것은 아자토스의 근처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채 지팡이를 들고 있는 해골이었다.

스킬을 사용하는 듯 그가 지팡이를 내리칠 때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이곳저곳에서 생성되었다.

“현지 씨!”

“네, 성채 밖에 있던 두 몬스터들처럼 대장 역할을 하는 몬스터일 거예요. 저 녀석을 먼저 처리해야 해요.”

잠깐의 경험이었지만,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대장급의 몬스터를 쓰러뜨린 순간, 전세 역시 빠르게 역전되었다.

당장 아자토스를 처리할 수는 없어 보였기에, 계속해서 몬스터를 소환하고 있는 녀석을 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네, 바로 뒤쫓아 갈게요.”

눈앞의 데스 나이트를 현지가 상대하고 있는 사이, 신우가 먼저 그 해골을 향해 달려 나갔다.

“무엇이냐, 그 조잡한 무기는. 검을 들 생각은 없는 것이냐.”

“말이 많네. 빨리 덤비기나 하시지?”

“인간 여자여, 살아 돌아갈 생각 따위는 하지 말아라.”

데스 나이트는 너클을 들고 있는 현지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쉴 틈 없이 입을 놀렸다.

기사로서 검을 들고 전투하길 원하는 듯하였지만, 오히려 그녀가 도발하자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빠른 속도로 베는 검을 살짝 몸을 틀어 피한 현지는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단단하긴 하네.’

그녀의 주특기인 연계 공격을 쉴 틈 없이 날렸지만, 데스 나이트는 쓰러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주먹을 날리던 현지는 녀석의 급소인 머리를 향해 온몸의 체중을 실어 오른쪽 스트레이트를 날리려는 순간.

“건방지구나!”

“뭣!”

데스 나이트는 사선으로 아래에서 위로 검을 올려 베었다.

순간적으로 피하려고 몸을 돌렸지만, 엉거주춤한 자세가 될 뿐이었다.

“아앗.”

데스 나이트의 검은 그녀의 뺨을 스쳤고, 선홍빛의 선혈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또한 현지의 강철 너클에 얼굴이 박살 났고, 그와 동시에 온몸이 바스러지듯 쓰러졌다.

뺨에 난 쓰라린 생채기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는다는 듯 자신의 옷소매로 피를 쓱 닦아낸 그녀는 신우를 향해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사방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가 쉴틈 없이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이민혁.

계속해서 탐지 스킬을 사용하며 그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이곳에 온 뒤로 그의 기운은 더욱 강력하게 느껴졌지만, 멀어지고 가까워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그가 근처에 있는 듯 강렬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것은 확실했으나,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당장 신우의 전투가 급했기에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이야얏!!!”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