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79화
실험실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화학약품들과 어떻게 사용했는지 유추할 수조차 없는 각종 물품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단 하나의 문을 사이에 두고, 같은 인물이 사용하는 것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두 장소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프랑켄의 방에 비해 실험실 내부는 완전히 돼지우리가 따로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이것들은…….”
생각보다 넓은 실험실 곳곳을 살펴보았지만, 그곳 어디에도 베슬로 보이는 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살펴볼수록 오히려 불쾌함이 몰려오는 실험실의 상태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리려는 그때.
실험실의 한구석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발견했다.
시체라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썩어져 가는 동물 그리고 생명체들의 덩어리.
그리고 부패화가 진행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아놓은 듯한 시체들까지.
강렬할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이것들은 이미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었다.
“머미와 강시…… 그리고 키메라.”
이미 확인해 본 적도, 상대해 본 적도 있는 그것들이 분명했다.
거대하고 투명한 유리관에 어째서인지 그러한 시체들이 각각의 모습으로 담겨 있었다.
그 수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시체는 프랑켄에 의해 계속해서 실험을 당한 듯했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역시, 둠 나이트의 조력자는 프랑켄이었나…….”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프랑켄 또한 상위 몬스터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돌아왔을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아자토스에 대한 복수심 또한 같이 떠올렸을 터.
나 이전에 제2군단장이었던 둠 나이트는 분명 아자토스의 언데드 부하들을 거느리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키메라.
생명체의 특수한 부위들을 모아 인위적으로 만든 끔찍한 그 생물을, 자신의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리고 지금 프랑켄의 실험실에서 발견된 이것 중 키메라가 존재하고 있었다.
둠 나이트가 거느리고 있었던, 보는 것만으로 구토가 나올 만한 끔찍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키메라가 분명했다.
그때보다 실험이 진전된 듯 더 안정되고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은 확실했지만, 여전히 역겨운 것은 사실이었다.
“프랑켄은 적인가. 동지인가.”
그가 행했던 모든 행위를 걷어낸 채, 아자토스와의 전투만을 생각한 것이었다.
언데드 군단의 간부로서 인간을 학살하고 지금 눈앞의 끔찍한 생물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게 용서할 수 없는 일임은 틀림없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그는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그가 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아자토스에 대한 반역이 분명했다.
먼저 반란을 꾀한 둠 나이트의 뒤에는 그가 있었고, 지금 또한 그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또한 반란의 계획일 가능성이 있었다.
‘아자토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쓸모없는 생각이라 하기에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언데드 군단과 인간과의 전쟁.
그 전투가 시작된 지는 꽤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상황은 시시때때로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단의 중심이 되는 아자토스는 어때한 명령도 대처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랑켄.
제1군단장인 프랑켄 또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단지 추측일 뿐이었지만, 만약 프랑켄이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아자토스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을 아닐까?
그렇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전쟁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두 존재가 서로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인간의 편에 있어서는 최고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지.’
순간 행복 회로를 돌리며 상상의 나래에 빠지려는 찰나, 고개를 휘저었다.
프랑켄, 그는 아자토스의 라이프 포스 베일을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인물이었다.
언데드 군단의 최하단에 있는 해골 병사조차도 리치인 아자토스가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프랑켄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제작한 베슬의 용도를 모르지는 않을 터.
그가 직접 아자토스를 마주할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생각이 정리되자 그제야 알아차렸다.
프랑켄이 아자토스의 복수를 위해 해야 할 일.
불사의 몸인 리치를 쓰러뜨리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베슬을…… 파괴한다!”
어찌 보면 그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다.
아자토스의 저주에 의해 언데드 몬스터의 끔찍한 육체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의 하수인이 되었다.
어째서인지 처음부터 기억이 있던 나와 다르게 모든 기억이 삭제된 채 몬스터가 됐던 그는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을 살해하기 이르렀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는 하였지만, 어찌 됐든 그는 나보다 더한 복수심을 가지고 있을 것은 분명했다.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아자토스에게 직접 맞붙을 리는 없었다.
그 또한 끔찍한 육체를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아자토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선택할 것은 아자토스의 영혼을 담고 있는 라이프 포스 베슬을 파괴하려 할 것이다.
“……내 예측대로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아자토스의 죽음으로 인해 나 역시 저주에서 해방될 것이다.
말 그대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오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이었다.
“……이곳을 나간다. 모두 따라오도록!”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었다.
프랑켄이 아자토스의 베슬을 찾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릴없이 일어날 상황은 아니었다.
실패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은 물론, 예측이 틀렸을 경우 낭패를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직도 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기에, 그저 그의 실험실에 베슬이 없는 것을 확인하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지막 남은 곳은…… 젠장.”
군단의 성채에서 내가 출입할 수 없고 베슬이 의심될 만한 장소는 이제 한 군데뿐이었다.
가장 유력한 장소였지만, 그곳만은 아니길 기도했던 장소.
바로 성채의 3층에 위치한 아자토스 그의 공간이었다.
언데드 몬스터로 생활하는 내내 단 두 번 그곳에 가본 적이 있었지만, 항상 아자토스가 있었기에 수색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곳에 출입이 금해져 있었기에, 그 누구도 그곳에 함부로 발길을 향할 수 없었다.
성채의 구석구석을 파악해 봤지만, 남은 곳은 그곳이 전부였다.
당장에라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아자토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현재 상황 속 아자토스가 있을 곳으로 유일하게 예측되는 곳이 바로 성채의 3층이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그가 직접 명령을 내렸던 장소 또한 그곳이었기에 그가 그곳에 있으리란 것은 확실했다.
‘지금 3층으로 향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고민에 빠져들었다.
지금 당장 3층으로 무장한 부하들과 함께 침투한다면 필연적으로 아자토스를 마주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성 전체에 음습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벌레만도 못한 존재들이 감히…….]
분명한 아자토스의 목소리였다.
머릿속을 때리듯 울려 퍼진 그 소리에 절로 계단을 향해 고개가 돌아갔다.
거대한 기운이 움직이듯 무언가 아주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로브의 끝자락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아자토스의 형체는 그가 계단을 내려올수록 완전하게 보였다.
해골밖에 없는 육체에 보라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며, 뼈밖에 없는 양 손가락 모두에는 큼지막한 형형색색의 보석이 박힌 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자신의 거대한 지팡이를 소지한 채 뒤에는 그가 소환한 것으로 보이는 상위 언데드 몬스터들이 뒤따랐다.
그의 몸에서 퍼져나오는 검은 오오라는 평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많은 양이였다.
검은 오오라는 상방의 언데드들을 향해 뻗어 나갔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자토스의 권능-모든 능력치가 100% 증가합니다.]
온몸 구석구석 오오라가 흡수됨과 동시에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지만, 그것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계단을 조금씩 내려오던 아자토스와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평소에 해골밖에 없던 그의 눈에는 새빨간 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으며, 그것을 마주친 순간 온몸이 얼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감이나 위압감 따위가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의 하수인이여 내 뒤를 따르라.]
나뿐만이 아닌 무기를 나눠주었던 나의 언데드 하수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자토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은 저절로 움직였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걸음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3층에서 내려온 아자토스는 2층을 지나 인간들과 전투가 치러지고 있는 성채의 1층을 향해 계속해서 내려갔다.
이미 의지를 상실한 나의 저주받은 육체는 자연스럽게 그런 아자토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 * *
“저놈이 아자…… 토스?”
자신의 부하들을 거느린 채 여유롭다는 듯이 아주 천천히 계단을 내려온 그 몬스터를 보고는 누군가 외친 말이었다.
지금껏 보았던 언데드 몬스터들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누가 보더라도 마법을 사용할 것 같은 복장에 위화감을 조정하듯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빛의 연기까지.
한눈에 보더라도 그가 이곳에서 가장 강한 언데드라는 것을 몸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
슉- 슉- 슉-
아자토스의 모습을 직접 본 인간들 모두가 얼어 있던 그때.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마치 공기를 발로 박차듯 빠른 속도로 움직인 그녀는 주위의 언데드들은 신경 쓰지도 않는 듯했다.
그저 방해가 될 뿐이라는 듯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가볍게 피한 그녀는 순식간에 아자토스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윈드 블레이드.”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혼잣말을 하면서, 손에 든 레이피어를 찌르는 듯한 자세로 내질렀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의 스피드로 아자토스에게 달려가서 공격을 시도한 것이었다.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아자토스를 향해 레이피어를 내지른 것은 바로 주현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언데드들을 휩쓸며 전투에 임하던 그녀는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대며 내려오는 아자토스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의 전투 방식, 특징, 강한 정도 등 그 어느 것도 알 수 없었기에 선제공격을 선택했다.
주위의 동료들이 아자토스가 내려온 순간 상황을 파악하는 도중.
모든 계획을 끝마친 그녀가 행동을 계시한 것이다.
[…….]
주현이 펜싱을 하듯 오른손을 이용해 내뻗은 레이피어는 아자토스의 갈비뼈를 관통했다.
뼈에 금이 가는 것을 넘어 완전히 박살을 내며 관통해 버린 레이피어는 아자토스의 몸 깊숙이 들어간 상태였다.
아자토스는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녀를 그저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