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76화
성채의 정문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억지로 지나 안쪽으로 이동했다.
성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 대부분은 지능이 없는 하위 언데드들이 주였기에 그 누구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상위 언데드 몬스터들.
그들이 성채 안으로 이동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면 의아하게 여길 수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사방을 경계하며 이동해야 했다.
“끄어어억 전쟁이다!!!”
“인간들을 몰살시키자!!”
눈앞에 쳐들어온 인간들만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달려 나가는 언데드 몬스터들.
나의 하수인들 역시 그들과 거의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양손에는 검이 아닌 총기를 들고 있는 데스 나이트들과 지팡이를 들고 있지만, 해골 뼈에 수류탄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하수인들은 한눈에 식별할 수 있었다.
“휩쓸리지 말고 따라와!”
“예!!”
성채에 들어옴과 동시에 방황하지 않고 곧장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기 시작했다.
성채에 들어온 목적은 아자토스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 라이프 포스 베슬을 찾는 것이었다.
아자토스의 하수인이라 할지라도 비밀 속에 꼭꼭 숨겨져 있는 베슬의 위치를 아는 이들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자토스의 가장 큰 힘이 되는 원천이기도 하였으며, 가장 큰 약점이 되기도 하는 물건이었으니 그를 제외하고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가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끔찍한 언데드 몬스터로 생활하는 내내 절대 잊지 않았던 것은 저주를 풀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성채를 조사하는 것은 꾸준히 해왔고, 또 군단 내에서 지위가 상승할수록 출입할 수 있는 구역도 많아져서 점점 수월해졌다.
성채의 구석구석 베슬이 숨겨져 있을 만한 장소를 빠짐없이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베슬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지위가 상승했음에도 여전히 입장이 불가했던 세 군데의 장소가 있었다.
제2군단장의 칭호를 얻고도 입장할 수 없던 장소들.
아자토스 외에는 그 누구도 출입 불가능했던 그 장소 중 베슬이 있을것이라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단 지하로 간다. 따라와!”
가장 먼저 성채를 둘러볼 장소는 지하에 있는 창고였다.
언데드 군단의 모든 언데드가 알고 있는 장소였으나 그 누구도 출입이 금해져 있는 미지의 장소.
몬스터들에게 보물이나 보석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지만, 리치인 아자토스는 그 이름에 걸맞게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듯했다.
특별한 명령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사냥이나 전투 후 전리품으로 보석이나 보물을 가지고 오면 큰 보상과 함께 공로를 인정해 주고는 하였다.
인간이나 몬스터를 습격하고 사냥하는 것 외에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는 언데드들이었기에 사치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그것들은 전부 이곳 지하 창고에 쌓이고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아자토스의 출입이 잦았던 곳이야.’
무엇보다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름이 아닌 아자토스의 출입횟수였다.
일명 ‘보물 창고’라 불리는 이곳에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왕래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단순히 보물과 사치품을 보관하고 있는 장소라는 생각보다는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저주’로 인해 언데드로 변해 버린 후 성채를 둘러보던 중 우연히 지하로 통하는 계단으로 이동하였을 때 저지받은 기억이 있었다.
그곳이 지키고 있었던 것은 두 마리의 데스 나이트.
아자토스의 직접적인 명령으로 그곳을 지키고 있다고 밝힌 두 언데드는 입장을 저지하며 길을 막았다.
그로 인해 당시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를 터.
하수인들을 거느린 채 곧장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 * *
타닥탁탁탁.
군말 없이 뒤따르는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자드 그리고 나머지 언데드 몬스터들의 발걸음 소리가 지하 가득 울려 퍼졌다.
코가 없었기에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사방 가득한 곰팡이와 벌레들로 인해 퀴퀴한 공기로 가득 차 있을 거라는 것을 보기만 해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얼마나 밑으로 내려갔을까.
계단의 끝이 다가온 그곳에는 여전히 두 마리의 데스 나이트가 지키고 있었다.
별다른 특징이 없었기에 전번에 확인했던 그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의심스럽군.’
지금의 상황은 영락없는 전시 상황.
움직이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지도, 음식을 통해 허기를 보충할 필요도 없는 언데드들이었다.
만약 인간끼리의 전시 상황에 식량고를 지키고 있었다면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았겠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사치품 또는 진귀한 물건들이 당장 언데드들에게 없다 한들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전시 상황에 투입되지 않고 외진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의심이 들기에는 충분했다.
“제2군단장님, 이곳은 어쩐 일이십니까?”
확실히 공손한 태도의 데스 나이트들.
아무런 직위도 없던 그저 네크로맨서였을 당시와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좀처럼 언데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이었으나, 그들은 한쪽 무릎을 공손히 꿇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한 듯 질문했지만, 그 태도는 분명 했다.
“네놈들은 지금 이곳에서 무얼 하는 것이냐?”
저주받은 몸으로 인해 인상을 찌푸리거나 할 수 없었지만, 최대한의 분노를 표출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호통을 치듯 언성을 높인 것이었다.
변명이 아닌 오히려 화를 내버리는 것.
상하 관계가 뚜렷한 군단 내에서 직위가 올라가자 취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이, 이곳을 지키라는 명령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의심이 들기도 전에 다그치듯 불호령 치자 그들은 더욱이 움츠렸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오히려 잘못이라도 한 듯 변명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 상황이 어떤 줄 모르는 것이냐?”
“저희는 이곳을 지키라는 아자토스 님의 명령을 받고…….”
“뭐라? 군단의 성채를 지키는 것보다 이곳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단 말이냐?”
“그, 그것이 아니라…….”
이들이 아자토스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고 있으리란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군단의 직위가 있다고 한들 어찌 됐든 이들은 아자토스의 직접적인 하수인이었다.
그렇기에 상황을 봐서 쓰러뜨릴 생각이었으나, 의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저희도 성채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무얼 하는 것이냐 어서 가서 싸워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예, 예! 알겠습니다.”
데스 나이트 특유의 전투를 사랑하는 이성과 자신들의 판단, 무엇보다 아자토스의 명령임에도 당사자가 가까이에 있지 않은 것이 크게 작용한 듯하였다.
고작 두 마리의 데스 나이트를 쓰러뜨리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어찌 됐든 그들은 언데드 몬스터들이었다.
군단 내에서도 데스 나이트 정도면 상위 몬스터로 분류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기에, 당장 총이나 수류탄, 스킬을 통해서 쓰러뜨린다고 한들 언제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았다.
아자토스의 권능이 닿기만 한다면 다시 살아나는 것은 확실했기에, 이곳에서 교전을 벌였을 경우 그 정보가 아자토스의 귀에 들어가는 것 또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순순하게 제 발로 떠나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서 가서 싸워라!”
“예!!”
머뭇거리는 데스 나이트들을 향해 다시 한번 호통치자, 그들은 허둥지둥 검을 움켜지며 계단을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자토스의 명령이라도 이 정도 효력이라니, 그렇다면…….’
그 순간 스쳐 지난 생각은 공격을 하지 말고 최대한 방어에만 신경 쓰라고 일러두었던 부하들이었다.
제2군단의 언데드들은 인간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그 명령을 내리는 순간부터 반문을 가졌다.
지하실을 지키고 있던 이들처럼 자신들의 판단과 반대되는 명령, 그리고 눈앞에 상관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명령을 지키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녀석에서 일러두었으니…….’
당장 믿을 만한 것은 원래의 제2군단에 속해 있던 데스 나이트가 전부였다.
어찌 됐든 그에게 최대한 방어에 집중하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는 부하들을 이끌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언데드들이 공격을 하지 말고 방어에 집중하게 한 것은 온전히 인간들을 걱정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시간을 끌려는 의도.
아자토스의 베슬을 찾는 동안 최대한 전투가 지속되고 어수선한 분위가 연출되어야 했다.
베슬을 찾기도 전에 어느 한쪽의 승리로 전투가 끝나거나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은 분명했다.
‘베슬을 찾기 전에 전투가 끝난다면 물론 언데드의 승리가 되겠지만…….’
지하실을 지키고 있던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곧바로 눈앞의 보물 창고의 문을 열었다.
* * *
“으윽, 병력이 더욱 늘어났어.”
“저 두 녀석이 나타난 이후부터예요.”
신우가 검을 재빠르게 휘두르며 불평하자, 현지 역시 그것을 느끼고 있었던 듯 대답했다.
그리고 현지가 손가락을 들어 해골마를 타고 있는 두 언데드 몬스터를 가리켰다.
언데드 군단의 성채 밖에서 계속되는 접전은 신성력을 바탕으로 한 인간들에게 유리한 듯 보였다.
하지만 전투가 지속될수록 언데드 군단의 병력은 더욱더 많아졌고, 그들의 선봉에는 두 마리의 몬스터가 이끌고 있었다.
제3군단의 군단장인 둠 나이트와 제4군단의 군단장인 골렘이 그들이었다.
군단 내에서 최상위 몬스터이기도 한 그들의 등장은 단순히 언데드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인간을 몰살시켜라!!”
“아자토스 님에게 대항하는 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어라!!”
선봉에 서서 진두지휘하는 그들로 인해 언데드들은 더욱 강력하고 쓰러지지 않았다.
개체 수가 늘어나며 그 효과 역시 같이 증가한 시너지 효과로 신성력에 대한 내성은 물론 부하들을 강화시키는 그들의 스킬 덕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유리했던 인간들의 고지는 갈수록 비등비등해져 갔고, 전쟁의 승패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 * *
끼이익.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유추할 수조차 없어 보이는 오래된 철문을 열자 기분 나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녹이 슨 문을 연 후,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이, 이게 뭐야……?”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
그리고 각종 사치품과 값비싸 보이는 예술 작품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보물 창고’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그렇게 알고 있을 때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성채의 모든 귀중품을 합친 것보다도 배는 많아 보이는 그것들은 그 아무리 검소한 누군가라 할지라도 눈이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세상의 모든 보물을 모아둔 것 같은 모습에 충격이 다 가기도 전에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이곳에 온 이유.
보물들을 애써 무시하며 아자토스의 베슬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