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72화
[조심성이 많군.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한참을 뜸을 들이던 아자토스가 입을 열었다.
권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자토스의 말에 반문한 것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듯하였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군단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압했다는 그 공로 덕분인 듯했다.
하지만,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았다.
조금 전 아자토스가 한 말에 따르면 해골 던전에서 받은 이 ‘저주’를 푸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태껏, 인간에서 해골이라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두 가지 희망 덕분이었다.
그 희망 중 하나가, 아자토스가 이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금 막 그중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 셈으로 허탈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이 없다면…… 역시…….’
나머지 남은 희망이라고는 퀘스트를 클리어해 내는 것이었고, 분명 그 끝에는…… 아자토스를 죽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거대한 언데드 몬스터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혼자서 해치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젠장. 그렇다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기습을…….’
수십, 아니, 수백 마리가 넘는 아자토스의 부하들이 언제 어디서든 존재했고.
게다가 그들은 언데드 몬스터들. 죽음이라는 개념 앞에 있어서 자유로운 존재였다.
죽여도 계속 살아난다는 언데드의 특징은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매우 까다롭고 성가신 적이었다.
그렇기에 당장 아자토스들의 부하들이 있지 않은 지금.
기습 공격이라도 시도해야 하나 생각한 것이었다.
지금 나와 아자토스가 대면하고 있는 장소는 성체의 3층.
아자토스와 아자토스가 허락한 존재가 아니면 그 어떤 언데드 몬스터도 출입을 할 수 없는 장소였다.
지금이 아니면 승산이 없다는 생각에 무기고에 있는 모든 폭약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아자토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저주를 푸는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지……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말이야.]
“……?”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죽지 않으니.]
그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던 순간, 그 의미를 알아챘다.
죽지 않는다는 아자토스의 말은 단순히 언데드 몬스터로서 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불사의 삶을 사는 리치는 영생을 살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 자신의 생명력을 라이프 포스 베슬(Life force vessel)이라는 특별한 용기에 담아 보관을 한다.
아자토스의 라이프 포스 베슬이 멀쩡한 상태로 존재한다면, 설령 육체가 전부 붕괴된다고 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육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서(古書)를 프랑켄을 통해 만드는 것을 기억의 조각을 통해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기습을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어…….’
아자토스에게 지금 당장 모든 폭약을 쏟아부어 공격한다고 하여도 라이프 포스 베슬만 무사하다면 그는 얼마든지 되살아날 것이고, 또 얼마가 지나도 죽지 않을 것이다.
당장 무언가 시도한다고 한들 그것은 오히려 내 죽음을 재촉할 것이 분명했다.
‘이 녀석을 죽이기 위해서는…….’
그렇다고 한들 완전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라이프 포스 베슬이 깨질 경우 리치의 저주받은 영혼은 영원히 소멸한다고 알려져 있다.
성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그것을 찾는 일.
당장 내가 해야 할 것은 확실해졌다.
‘아자토스를 죽여야 해.’
그가 말한 의도는 달랐지만, 의미는 분명 자신이 죽으면 저주가 풀린다는 것이었다.
육체를 얻는 퀘스트 또한 아자토스를 죽이는 것.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자토스를 해치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속으로 아자토스를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 아자토스가 말을 이어 나갔다.
[너에게는 제2 군단을 맡기겠다. 다가오는 전쟁에 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돌아가 명령을 기다리도록 해라. 준비가 끝나는 즉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예!”
* * *
“후…….”
민혁은 아자토스와의 대면이 끝난 뒤 성체 밖으로 나와서, 있는 힘껏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피부가 있었다면 지금쯤 온몸에 닭살이 가득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아자토스의 존재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긴장을 풀 겸 다시 한번 숨을 크게 쉬어 봤지만 역시 어떠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폐가 없었기에 그저 습관적인 행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성체에 들어가기 전 대기 시켜 놓았던 부하들을 찾아갔다.
군기가 있는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나름 질서 정도는 유지하고 있던 녀석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흩어져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
“전부 모여!”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재빠르게 소집하며 다시 원래의 형태로 질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을 소환한 주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언데드로서의 위치 또한 상위종의 몬스터로서 명령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명령에 칼같이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조금 전에 나눠 주었던 무기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소지하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우선 안심이 되었다.
“자, 잠깐. 뭐야? 이 수는.”
돌격 소총이나 수류탄 등을 몸에 잘 소지하고 있는 녀석들을 확인하고 있을 무렵, ‘이 정도면 전부 모였겠지’ 하는 생각을 했음에도 그 수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어떤 무기를 줘야 할지 선택하지 못한 소수의 해골 병사들에게 무장을 시킨 다음 전투 방법에 대해 학습시킬 생각이었으나,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언데드들이 내 앞에 집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끝없이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보고 있던 그때.
언뜻 봐도 강력해 보이는 데스 나이트가 거대한 검을 등에 쥔 채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앞으로 나왔다.
같은 데스 나이트였지만 나의 휘하에 있는 녀석들과는 그 분위기나 태도가 전혀 달랐다.
뼈 곳곳에 남겨진 상처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전투에 참여하였는지를, 또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희는 제2 군단에 소속된 언데드입니다. 새로운 군단장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만, 아자토스를 대면한 후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둠 나이트의 반란을 저지한 공로를 세운 나에게 아자토스는 군단 내에서의 나의 지위를 올려주었고, 그로 인해 하수인 또한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니까 군단의 제2 군단장이었던 둠나이트의 부대를 나에게 고스란히 넘겨준 것이었다.
당장 전쟁의 시작은 내일이었고, 시간 또한 없었다.
둠 나이트를 쓰러뜨렸으니 나에게 그만한 지위를 내리는 것 또한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지금껏 나의 부하들은 상위종 언데드의 수는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자드 각 3마리씩 해서 전부 6마리.
그리고, 스켈레톤들과 역병 좀비 20마리와 약 40마리 정도 되는 일반 언데드들이 전부였다.
약 60~70마리 정도 되는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정도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던데 반해, 갑자기 그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해 버린 것이었다.
“음…… 그 수가 얼마나 되지……?”
일일이 세어볼 수조차 없어 보이는 규모의 숫자에 질려 눈앞의 데스 나이트를 향해 질문했다.
“저를 포함한 데스 나이트 26기와 스켈레톤 위자드 25기 그 외에 약 150기의 언데드가 전부입니다.”
“……이 숫자가 전부인가?”
“면목 없습니다.”
약 200마리가 넘는 그 수에 ‘설마 더 있지는 않겠지’라는 마음으로 질문한 것이었으나, 그는 나무라는 것으로 오해한 듯하였다.
데스 나이트는 큰 죄를 지은 것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 모습은 기사로서의 표본을 보는 듯했다.
“이전의 상관께선 저희를 거의 방치해 두었기에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유지하기위해 노력하였으나…… 용서해 주십시오!”
이전의 상관, 즉 반란을 일으킨 둠 나이트를 칭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부하들을 방치해 두었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아자토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언가 계획을 세웠고, 제2 성채에서 차츰 그것을 실행하려 하였다.
자신의 부하기도 했지만 아자토스의 부하였던 언데드 몬스터들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으로 추측되었다.
실제로 만나본 그는 키메라를 이용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직접 전투를 치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정도 규모의 병사들이라면 내가 당했을 테지…….’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 역시 가시질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200마리가 넘는 언데드 군단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해서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순 없었지만, 또한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 또한 이들을 사용할 수는 없어.’
둠 나이트와 마찬가지로 아자토스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나 역시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었다.
당장의 계획은 소규모의 부대를 이용해 빠르게 아자토스의 베슬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아자토스를 죽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고, 무엇보다 베슬이 파괴되지 않으면 아자토스를 죽이는 것조차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 또한 중요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인간과의 전쟁을 직접 치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몬스터의 선봉에 서 인간들을 살육하고 마을을 점령하는 일.
그런 짓을 한 후 인간의 육체로 돌아온다 한들 어떠한 의미도 가질 수 없었다.
당장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자토스를 사냥하는 것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둠 나이트가 행동에도 일리가 있어.’
데스 나이트의 설명을 듣고 나니 걸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둠 나이트가 반란을 위해 자신의 부하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
이렇게 수적으로 많고 강력한 상위종이 있는 언데드들을 자신의 휘하에서 이용하였다면 반란 역시 더욱 빠르고 순조롭게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그가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이들 역시 결론적으로 아자토스의 부하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자신의 복수 대상인 아자토스의 부하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분노나 자만이 아닌, 막상 아자토스를 대면하였을 때를 고려한 것으로 보여졌다.
‘막상 전투가 실행되면 칼날의 방향은 내 쪽으로 향할 수도 있어…….’
태생적으로 아자토스의 힘을 통해 태어난 언데드들이 나의 휘하에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나를 떠나 아자토스에게 충성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새로운 언데드들을 제외하고도 나의 스킬을 통해 소환된 언데드 부하들을 살펴보았다.
당장은 나의 명령에 칼같이 복종하는 녀석들이었지만.
‘이 녀석들이 아자토스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무기를 나누어 주지 않은 하위 언데드들은 물론이고,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무기를 나눠준 상위종 언데드들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신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준 무기들로 나를 향해 겨눌 수도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