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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68화 (68/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68화

흐뭇하게 메시지창을 보고 있던 민혁에게 들려온 갑작스러운 질문.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스럽기만 하였다.

강한 마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전장을 휩쓰는 일인 군단 네크로맨서.

엄청난 체력과 공격력을 바탕으로 일대일의 전투나 소수의 병력을 제압하는 둠 나이트.

둘의 성격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음…… 아니오!”

[둠 나이트로 전직하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물론 근접 전투에 더 익숙하고 더 강해질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육체적인 능력이야 시체 흡수를 통해 얼마든지 역전 시킬 수 있었지만, 문제는 민혁이 리치 아자토스의 군단에 속해 있다는 것.

아자토스를 쓰러뜨려야 할 민혁이었기에 군단의 의심을 피해야 했다.

네크로맨서였던 민혁이 한순간에 둠 나이트가 되어 돌아온다면 군단의 의심을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체 흡수로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됐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새로운 정보를 알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네크로맨서의 직업조차도 시체 흡수를 통해 얻은 것이었지만, 의심만 할 뿐 시체 흡수를 통해 직업 또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었다.

[시체의 기억의 조각을 얻었습니다.]

둠 나이트를 흡수하자 들려온 기억의 조각을 획득했다는 메시지.

민혁의 머릿속에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수고했다. 나의 종이여. 상을 내리노라.]

“예! 감사합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기사, 그리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누군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인지 그의 로브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 있다.

마법사로 보이는 그가 무언가 주문을 외우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충성을 다한다는 맹세인 듯 고개를 숙이며 앉아 있는 기사.

칠흑같이 어두운 갑옷을 입은 그 역시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무언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이 끝나자 기사의 주위에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검은 연기.

먹구름이 피어나듯 순식간에 거대하게 퍼진 검은 연기가 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변화하는 기사의 육체.

[훌륭하도다. 둠 나이트여, 네게 2군단을 맡기겠노라.]

“영광입니다. 리치 아자토스여.”

로브를 입은 그의 정체는 리치 아자토스.

불사(不死)의 마법을 완성한 그는 마지막 남은 숙원(宿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자신의 발아래 언데드로 만드는 것.

원대한 계획의 첫걸음으로 자신의 언데드 군단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새로운 힘에 적응하도록 하여라.]

“예!”

새로운 힘.

언데드 기사의 최상위 단계.

둠 나이트가 된 그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몰라보게 강해진 힘에 매료되었다.

응축된 언데드의 힘.

그 누구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강한 힘이 넘쳐나고 있었던 것.

‘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나의 군주. 리치 아자토스 님을 위…….’

“으아아악!”

그 순간 괴로운 듯 머리를 움켜쥐며 쓰러지는 둠 나이트.

알 수 없는 기억들이 폭발하듯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 * *

“도혁! 축하한다, 딸이라며?”

시끄러운 주점 안, 친한 사이라도 되는 듯 어떤 남자가 어깨동무를 하며 자리에 합석하였다.

익숙한 듯 점원을 불러 추가 주문을 한 그가 말을 이어갔다.

“짜식!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부럽다.”

“하하, 부럽긴.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은 무슨, 무슨 걱정이 있어.”

“됐네, 이 사람아. 비행기 태우기는. 바빠서 애 얼굴 볼 시간도 없다. 왕국도 뒤숭숭하고.”

질문을 한 그는 배가 고팠는지 미리 시켜놓았던 안주를 하나둘 집어 먹고 있었다.

도혁의 대답에 무언가 생각난 듯 급하게 입속의 음식을 우걱우걱 씹어댔다.

“꿀꺽. 동부 쪽이 시끌벅적하던데. 전쟁이라도 난 거야? 아니면 몬스터 습격?”

요즘 한창 시끄러운 동부의 이야기.

동부에 관한 소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음. 글쎄. 자세한 건 모르는데.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있다나 봐.”

“혼자? 누군데?”

“대단한 건 아니고. 조금 특이해. 우중충하니 로브를 뒤집어쓰고 몬스터를 부리나 봐.”

“몬스터를 부려? 그럴 수가 있나?”

시장해 보였던 그는 새로 시킨 안주가 나왔음에도 흥미로운 듯 눈길도 주지 않고 질문하였다.

“테이머 스킬이나 유혹하는 스킬을 사용하는 거겠지.”

“어휴 그래도 이 정도로 소란스러운 건 처음인데. 위에서는 어떻게 한데?”

“안 그래도, 오늘 밤 출정이야. 이놈이 밤에만 나타난다나 봐.”

“뭐? 오늘 밤? 너 지금 이러고 있어도 돼? 술도 마셨지 않아?”

“됐어, 호들갑 떨지 마. 불만 품고 시위하는 거야 한두 번도 아닌데 뭘.”

도혁의 입장에서도 걱정하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가 변한 후 종종 이런 식으로 시위를 벌이는 일들이 잦았다.

대부분 간단히 처리되었고. 이 역시 같을 거라 생각하였다.

초승달이 높게 뜬 저녁.

은색의 번쩍거리는 갑옷과 허리춤에 찬 장검.

한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은, 건장한 말을 탄 도혁이 50여 명의 병사를 이끌며 동쪽의 성문을 지나고 있었다.

‘아오. 멀미야, 조금 마셨는데 이러네. 쉬었다 가자 할 수도 없고 이거야 원.’

선봉에 말을 타고 근엄함 표정을 짓고 있는 도혁.

하지만 속에서는 좀 전에 마신 술로 인해 죽을 맛이었다.

말을 탈것을 예상하지 못한 탓에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말로 인해 일어나는 멀미.

체면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꾹 참으며 속앓이를 하며 참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 왔지? 이쯤이라 들었는데.’

[왔는가! 인간이여.]

그때 머릿속에 울리는 낮고 음침한 목소리.

앞을 바라보자 한 사내가 검은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어두운 밤, 얼굴이 보이지 않아 사내인지 확실치는 않았으나 머릿속에 울린 목소리로 유추한 것.

“이것도 스킬인가? 나만 들린 거 아니지?”

도혁이 뒤를 돌아 자신의 부하로 보이는 자에게 질문하였다.

대답을 하기 위해 급하게 달려오는 남자.

“예, 소리 전달 스킬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소란을 피우는 자는 저자가 맞나? 주위에 몬스터는 안 보이는데?”

“예. 하지만 인상착의는 동일합니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앞을 바라보자, 병사 또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 멀리 서 있는 검은 로브에 빨간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든 남자.

평범해 보이는 복장은 아니었기에 도혁 역시 그가 소문 속 주인공이 맞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저기요. 아저씨! 이제 그만하시고 돌아가세요”

주위에 몬스터 한 마리 보이지 않자 부풀려진 소문 정도로 생각한 것이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멀리 떨어져 큰 소리로 소리쳤다.

혼자인 그를 무력으로 제압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많은 병력을 데려온 탓에, 말로 설득하려고 한 것이었다.

“저기요? 내 말 안 들려요? 용건이 뭔데요? 말을 하셔야 알죠.”

멀리서 소리쳤지만, 그는 어떤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어떠한 행동도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우두커니 자리에 서 있기만 하였다.

“원하는 게 뭔지 말해주세요! 가능한 거면 저희가 잘 말해볼게요!”

[인간들의 시체를 원한다.]

답답함에 화를 내듯 소리치자 들려온 그의 대답.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구긴 도혁은 한숨을 크게 내 쉬었다.

“어휴, 불만은 알겠는데. 이렇게 때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모두가 힘을 합쳐서 해결해 나가야죠. 세상이 이렇게 변해 버린 걸 누굴 탓하겠어요.”

[…….]

대화에 진전이 없자, 직접 설득하기 위해 말에서 내린 도혁이 그에게 다가가려 하였다.

“다, 단장님.”

당황한 듯 말리려는 그의 병사.

괜찮다는 듯 손을 올리며 제스처를 취한 그가 로브를 쓴 사내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아저씨……?”

가까이 다가갈수록 저절로 올라가는 고개.

도혁 역시 작은 키가 아님에도 불과하고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로브의 사내.

코앞까지 다가간 도혁은 말을 걸며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얼어버렸다.

썩어 없어져 비어 있는 눈구멍, 하얗고 단단해 보이는 머리와 코를 찌르는 시체 썩는 냄새.

로브로 가려진 그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해골이 분명했다.

[네놈은 쓸 만해 보이는구나.]

도혁의 얼굴에 뼈밖에 없는 손을 뻗었다.

마치 물건 살펴보듯 구석구석 바라보던 그가 땅에 지팡이를 내려쳤다.

쿵!

으가가각각.

딱! 딱! 딱!

그와 동시에 기괴한 소리를 내며 땅에서 일어나는 몬스터들.

해골과 유령, 무덤이나 묘지에서나 등장한다고 알려진 언데드라 불리는 몬스터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로브를 뒤집어쓴 해골 옆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골렘.

으어어억어!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녹색의 괴물이 도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랑켄, 죽여라!]

으어어어!

포효하며 달려오는 골렘.

검을 뽑기도 전, 덩치에 맞지 않는 엄청난 스피드로 주먹을 뻗어왔다.

난타를 두드리듯 멈출 생각 없이 뻗어오는 그의 주먹에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듯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더 이상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게 완전히 눈을 감았다.

* * *

[나의 종, 데스 나이트여 내 너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였도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모두 썩어 뼈밖에 남지 않은 몸, 검은빛의 갑옷, 완전히 지배당한 정신.

도혁의 그 무엇도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

[피로 물들여라.]

리치의 명령에 따라 시작된 대학살!

아직 군단이라 부르기 어려운 정도의 소규모 집단이었으나, 마을은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동쪽의 침공 소식을 들은 그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언데드.

죽어도 계속해서 다시 살아나며, 대항하던 자들이 죽으면 양질의 언데드로 다시 태어났다.

순식간에 언데드의 규모는 늘어났고, 마을은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이미 완전한 언데드로 각성한 도혁.

그 역시 다른 언데드와 다르지 않았다.

데스 나이트가 된 그는 자신의 친구, 동료, 지인 가리지 않고 모두를 베었다.

“사…… 살려주세요…….”

“응애, 으으응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아이를 안고 뛰어가는 여인, 그녀의 앞을 누군가 가로막았다.

무차별적인 살생을 벌이고 있는 데스 나이트.

우는 아이를 달래주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성 따위 존재하지 않는 언데드가 된 이후였다.

자신을 배웅하기 위해 나왔던 아내와 딸 또한 데스 나이트가 된 도혁의 검에 의해 그들의 피가 흩뿌려졌다.

* * *

“뭐야, 이 기억은…….”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당혹감이 몰려옴과 동시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온몸을 지배하였다.

언데드로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슬픔, 사랑, 분노 따위의 감정이 살아난 것이었다.

아자토스의 명령으로 행해진 모든 행동과 과거의 기억들.

모든 것들이 떠오르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정리되지 않은 기억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

모든 분노는 리치 아자토스를 향하고 있었다.

똑. 똑.

그때 누군가 노크를 하더니 문이 열렸다.

“자네도 기억이 돌아왔나 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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