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67화
소수의 강한 적을 상대할 때의 가장 기초적인 전술
근접 공격과 탱커들을 보낸 뒤 후방에서 활과 강력한 마법으로 공격한다.
간단하지만, 매우 효율이 좋은 방법이었다.
둠 나이트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계속해서 다가오는 녀석들을 베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그사이 마법과 화살에 무방비한 상태로 당하다 보면 속절없이 당할 것이 분명했다.
“좋은 전략이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자네는 죽기 전에 지휘관이었을지도 모르겠네.”
‘허세인가? 아니면…….’
전투에 대비하기는커녕 오히려 민혁의 전략을 칭찬해 주는 둠 나이트.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민혁이 황급히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얌전히 매달려 있는 키메라. 움직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키메라를 이용하여 다시 한번 혼란을 줄 생각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무얼 믿고 저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둠 나이트, 그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알 수 없는 물건.
무언가를 작동시키는 스위치인 듯 버튼이 달린 물건이었다.
“그, 그건?”
“별거 아니라네. 내 오랜 친구가 만들어준 물건이라네.”
그가 꺼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스위치를 눌러 작동시켰다.
자폭이라도 하려는 건가?
혹여나 폭발의 스위치는 아닐까 생각한 민혁은 옆에 있던 스켈레톤을 방패로 삼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리치 아자토스의 언데드 오라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강한 신성력으로 인해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강한 신성력으로 인해 언데드의 소환이 해제됩니다.]
[강한 신성력으로 인해 데스 디멘션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 *
툭.
툭.
투둑툭툭.
폭발을 막기 위한 방패로 삼은 스켈레톤에 힘이 빠지며 쓰러졌다.
이를 시작으로 들려오는 땅을 두드리듯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
연속적인 소리에 감았던 눈을 뜬 그곳에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언데드 부하들이 모두 쓰러지며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던 것.
그나마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것은 데스 나이트.
하지만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어떤가. 내가 신성력을 이용하는 것은 의외인가?”
기고만장하게 서 있는 둠 나이트.
과연 그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허세만 가득한 건 아니었다.
둠 나이트가 스위치를 누르자 작동된 것은 신성 배리어.
성을 모두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배리어를 작동시킨 것이었다.
‘어떻게 배리어를.’
신성력이 가득한 배리어.
언데드를 약화시키는 수단이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최적의 도구였다.
응축된 신성력이 가득한 배리어 안의 언데드는 힘도 써보지 못했다.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텐데?”
민혁과 부하들만 신성력에 효과를 미치는 것은 아니다.
둠 나이트 그 역시 언데드.
상위 언데드인 그는 민혁의 부하들처럼 소환이 해제될 정도는 아니었으나 분명 효과를 받고 있었다.
눈에 띄게 검은 오라를 발산하며 포스를 풍기던 그의 모습은 없었다.
민혁과 마찬가지로 능력치 하락과 각종 스킬의 효과를 적용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 말이 맞네. 나 역시 신성력에 효과를 받지. 시간이 얼마 없네.”
“크, 크어억!”
둠 나이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명력이 바닥이 난 데스 나이트의 비명.
누군가의 공격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신성 배리어 안에 있는 것만으로 언데드의 생명력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갔다.
둠 나이트와 민혁 둘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겁하다 욕해도 좋네. 언데드의 힘을 이용할 수 없는 이곳에서 네크로맨서인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테지.”
비장하게 칼을 꺼내 들은 둠 나이트.
그제야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강한 생명력과 검술에 특화된 둠 나이트, 그에 반해 강한 마력과 마법에 의존하는 네크로맨서.
그 점을 이용한 둠 나이트의 전략.
둠 나이트와 민혁 모두 체력이 깎인다 한들, 더 많은 생명력은 가진 둠 나이트가 유리했다.
무엇보다 그는 검술에 매우 뛰어난 기사였다.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데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네크로맨서쯤은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그의 완벽한 계획이었다.
‘나보단 아자토스를 위한 전략인 것 같지만 말이지.’
아자토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 그였기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 테스트 과정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지팡이를 집어넣고 조용히 칼을 꺼내 들었다.
“오! 그 검은, 실험실에 갔었나 보군!”
칼을 꺼내 든 네크로맨서를 보자 의외인 듯 쳐다보던 둠 나이트.
신성력이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와 은은한 빛을 띤 검을 보자 아는 체를 해댔다.
총기를 사용할 순 있었으나 단순한 총탄으로는 그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상위 언데드 몬스터인 그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신성력이 필요했고,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이 단검이 유일했다.
‘검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이렇게 하면…….’
신우라면 이 단검을 가지고도 잘 싸울 수 있겠지만, 민혁은 그렇지 않았다.
검술에는 자신이 없었기에 생각해낸 것은 총에 신성력이 깃든 단검을 장착하는 것이었다.
총검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에 일반적인 검을 이용한 전투보다는 유리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아자토스에게 반란을 일으키려는 작정이냐?”
“음. 반란이라.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적이 없으니 그 표현은 맞지 않네. 나의 모든 것, 죽음까지도 빼앗은 그자를 처단할 생각이네”
“어째서 나에게 그런 것들을 알려주는 거지? 나 역시 아자토스의 부하인데.”
“왜냐, 그대는 여기서 완전한 죽음에 들 것이기 때문이네”
말을 끝마친 둠 나이트는 검을 든 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신성력에 의한 페널티가 무색할 정도의 무서운 스피드.
순식간에 민혁의 앞에 도착한 그가 검을 내려쳤다.
챙!
날카로운 검 날이 부딪히며 발생한 파열음.
당황하지 않고 검을 들어 올리며 둠 나이트의 공격을 막아냈다.
과연 엄청난 완력을 가진 둠 나이트의 검에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민혁.
검을 위로 쳐내며 뒤로 무른 민혁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단순한 네크로맨서가 아니군. 웬만한 기사도 내 검을 이런 식으로 막지는 못하는데 말이야.”
자신의 검을 막은 민혁이 놀라운 듯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
이번에는 자세를 고쳐 잡은 민혁의 차례였다.
검을 사선으로 벨 생각으로 칼자루를 눕혀 잡은 민혁이 둠 나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먼저 공격까지 해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둠 나이트였는지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너무 얕보았나 보군.”
눈앞까지 다가와 순식간에 검을 휘둘렀다.
잠시 주춤한 사이 아래서 위로 올려친 민혁의 검 끝에 둔탁한 무언가가 걸쳐졌다.
둠 나이트를 보호하고 있던 헬멧이 벗겨지며 드러난 그의 해골.
이미 썩을 대로 썩어 더욱 음산한 분위기가 그의 해골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황하지도 않은 듯 자세를 고쳐 잡은 그가 민혁의 가슴을 노리며 검을 내뻗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기 잠시.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칼을 피해내기 위해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급소는 피했으나 둠 나이트의 검이 왼팔을 스쳤다.
[생명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져 트롤의 생명력이 발동됩니다.]
그때 들려오는 메세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갉아먹던 신성력과 둠 나이트의 공격으로 순식간에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내려간 것이었다.
패시브 스킬인 트롤의 생명력. 3배의 속도로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신성력의 영향으로 미세할 정도의 회복만이 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피가 떨어질 때와 비교하면 그마저도 감사할 정도였다.
‘지금이다!’
견제하듯 휘두르는 검을 쳐내던 민혁이 순간 쪼그리며 앉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쪼그린 민혁의 머리 위를 지나는 둠 나이트의 칼날.
‘역시!’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둠 나이트의 공격이 민혁의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끝이다!”
쪼그리고 앉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한 것!!!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둠 나이트의 가슴팍에 검을 꽂아 넣었다.
“으헛!”
그 순간 단말마의 신음과 함께 둠 나이트는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축 늘어지는 그의 시체와 함께 옆으로 떨어지는 스위치.
그것을 주워들은 민혁이 스위치를 작동하자, 얇은 보호막처럼 둥글게 펼쳐져 있던 신성력이 공중으로 분해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풀썩.
민혁이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해골의 육체를 가지 된 이후 피로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그였으나,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빼앗고 육체 능력을 떨어뜨리는 신성 배리어로 인해 오랜만에 느껴보는 피로감 때문이었다.
[퀘스트-진상 조사를 완료하였습니다.]
“후, 그래 퀘스트 완료는 완료고 일단…….”
퀘스트의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들려오자, 민혁은 옆에 누워 있는 둠 나이트의 시체를 보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썩어들어 간 해골.
군데군데 갈라져 더욱 흉악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의 시체였다.
만지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도 않을 만큼 기괴한 해골의 모습이었지만, 민혁은 그런 그것을 보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흐흐흐! 내가 원하던 시체야.”
소름 끼치는 대사를 중얼거리는 민혁의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미쳤다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민혁이 원한 건 시체가 아닌 그의 능력.
해골이 된 후 항상 육체적인 전투에 갈증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둠 나이트와의 전투에서도 위기가 있었지만, 항상 걱정하던 문제였다.
네크로맨서의 취약점.
대난투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불안했던 것이다.
“신성력으로 인해 이겼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쓰러져 있는 건 내가 되었을지도 몰라.”
네크로맨서였기 때문에 민혁을 얕본 둠 나이트. 확실히 이번 전투를 통해 근접 전투에 대한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전투에 특화된 시체를 얻은 것이었다.
민혁이 원하는 것은 공격 능력과 체력의 증가!
스킬까지 얻는다면 천군만마나 다름이 없었다.
“시체 흡수!!”
민혁이 둠 나이트의 시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스킬을 사용하자, 둠 나이트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검은 기체.
한순간에 그의 몸이 검은 기체가 되어 민혁의 손을 통해 빨려 들어갔다.
[시체 흡수에 성공하였습니다.]
[공격력이 증가하였습니다.]
[체력이 증가하였습니다.]
[패시브 스킬 : 검술을 익혔습니다. 공격력이 15% 증가합니다.]
[파멸의 기사-둠 나이트의 시체를 흡수하였습니다.]
[둠 나이트로 직업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네크로맨서에서 둠 나이트로 직업을 변경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