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65화
“으아아아앙~ 아빠~”
모두 침묵만이 가득한 그때 아이의 울음소리가 연구소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수민이 아빠를 찾으며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여. 어째서 우는 것인가.]
울음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해골.
자신을 리치 아자토스라 밝힌 해골이 울고 있는 아이의 앞에 도착해 뼈밖에 남지 않은 손을 서서히 뻗었다.
“내, 내가 이 연구소의 박사다. 아이를 건들지 마!”
그 순간 아이의 앞을 가로막은 남자가 소리쳤다.
겁을 먹어 사시나무 떨리듯 온몸을 떠는 와중에도 아이를 지키려는 듯 필사적인 아버지.
하지만 언데드인 리치가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 리는 만무하였다.
자신의 행동을 저지하며 등장한 남자의 외침에 잠시 멈칫한 그는 이내 손을 거둬들였다.
[그대가 박사인가.]
“그…… 그렇다!”
남자의 반말에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리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대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네. 그대들과 다른 존재. 인간들이 부르는 소위 몬스터를 연구한다더군.]
“보, 복수라도 하러 온 것이냐!”
[복수? 하하하하하! 그대가 말하는 복수가 행위의 되갚음, 설욕, 보복 뭐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인가?]
남자의 대답이 무엇이 그리 웃긴 것인지. 리치의 턱관절이 움직이며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순한 웃음소리에 불과했지만, 연구소의 인간을 비롯한 언데드마저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서늘함.
[하찮구나. 인간이여. 내가 그대를 찾아온 것은 부탁을 하기 위해서라네.]
“부탁? 내게 말이냐?”
절대 부탁을 하는 태도로는 보이지는 않았으나, 리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뼈밖에 없는 손가락을 펼치자, 그 위로 오래되 보이는 마법서가 소환되었다.
한눈에 봐도 어두운 기운이 가득한 고서(古書)에는 알아보기 힘든 문자들이 가득했다.
[그대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니네. 단지 이 마법서를 해독한 뒤 이것에 적힌 물건을 만들면 되네.]
리치가 이야기하며 손짓하자 공중에 어두운 연기와 함께 떠 있던 마법서가 남자의 앞으로 이동하였다.
“내, 내가 왜 이것을 해야 하지?”
[…….]
잠시 동안의 침묵.
한동안 남자를 바라보던 리치의 시선이 그의 뒤에 숨어 있는 아이에게 옮겨졌다.
이후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연구소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숨죽이며 숨어 있던 연구원들의 목소리였다.
온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살이 썩어가는 그들.
순식간에 연구소에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는 박사와 아이를 제외한 그 누구도 없었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네.]
“어…… 어째서 나한테…… 나 역시도 처음 보는 문자야! 불가능해!”
[그대의 무례함에도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네.]
[두 번째 보름달이 뜨는 날 돌아오겠네.]
자신의 용건을 모두 말한 리치의 몸에 검은 연기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연구실의 모든 언데드 역시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아…… 안 돼!”
드디어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박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자신의 뒤에 조심스럽게 숨어 있는 딸의 몸을 감싸는 연기를 발견한 것이었다.
[딸을 보고 싶다면, 의미 있는 결과를 부탁하네.]
그 순간 검은 연기와 함께 모든 언데드와 아이가 함께 사라졌다.
마치 꿈이라도 꾼 듯 환해진 연구실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 * *
약 두 달이 가까운 기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린 박사.
그 날 이후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자지 못해 완전히 충혈되어버린 빨간 눈, 지저분하게 길어진 머리, 씻지 못해 꼬질꼬질거리는 모습은 더 이상 예전의 젠틀했던 박사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젠장, 내일까지 완성시켜야 하는데. 젠장. 젠장!”
박사가 쉬지도 못하고 만들고 있는 것은 라이프 포스 베슬(Life force vessel).
영혼을 분리해 리치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는 아이템이었다.
리치 아자토스가 찾아온 그 날, 모든 연구원을 잃고 혼자 남은 박사는 절망했다.
하지만 딸, 수민이를 생각하며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필사적으로 연구를 진행.
막막하기만 했던 마법서의 해석을 완료할 수 있었다.
“시간이. 시간이 너무 부족해. X발!”
하지만 해석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마법서에 적힌 라이프 포스 베슬까지 만들어야 하는 박사의 입장에서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하루.
내일 보름달이 떠오르면 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리치를 만나야 한다는 두려움이 공존했다.
“하, 10분…… 아니, 5분만 더…….”
쉬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박사.
아직 완성시키지 못해 초초하게 시계를 번갈아 보며 작업에 열중하였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다. 박사여.]
그 순간 연구소를 다시 메우는 검은 연기.
불이라도 난 듯 순식간에 사방에 피어오른 연기에서 언데드들이 튀어나왔다.
마지막에 느린 걸음으로 등장하는 해골. 리치 아자토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5분, 아니, 3분. 잠깐의 시간을 줘! 이제 완성이 됐어!”
박사의 다급한 외침에 리치는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다만 기다려 주는 것인지 붉은색의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든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완성! 라이프 포스 베슬을 완성했어! 내 딸을 돌려줘!”
[수고했다, 박사여.]
리치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완성된 라이프 포스 베슬과 마법서가 어두운 연기에 빨려 들어갔다.
다시 한번 휘두르자 박사의 딸, 수민이가 어둠 속에서 나왔다.
“아빠, 으어어어어엉~”
“그래, 그래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한걸음에 달려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안긴 아이.
박사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딸을 끌어안았다.
감동적인 아버지와 딸의 재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해골이 입을 열었다.
[약속된 시간을 지키지 못했군. 박사여.]
“뭐…… 뭐?”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박사가 리치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절망적인 행동.
천천히 다가온 리치는 손가락을 살포시 아이의 이마에 가져다 두었다.
“아, 아빠.”
“안 돼……!!!”
영문을 모르는 아이가 박사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이상한 듯 아버지를 부른 수민.
썩어들어 가는 피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완전한 언데드. 구울이 되어 버렸다.
“크르르르!”
감정도 이성도 제어하지 못하는 언데드.
이미 변해 버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박사는 굳어버렸다.
어떠한 조치도 해결도 해줄 수 없는 허탈감.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충격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구울은 눈앞의 인간을 보자 공격하였다.
아무런 저항도 반항도 하지 않는 인간.
이곳저곳을 물어뜯으며 손쉬운 첫 사냥을 완료한 것이었다.
[안타까운 인간이여, 내 그대에게 자비를 베푸노라.]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리치는 싸늘하게 죽어버린 박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갈기갈기 찢어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
리치가 그 시체에 지팡이를 내리쳤다.
쿵.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덩어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만들어진 거대한 육체.
인간의 형태를 한 골렘으로 재탄생 된 것이었다.
[새로운 나의 종이여, 환영한다. 너의 이름은 프랑켄이다.]
* * *
성채로 돌아온 민혁은 곧바로 프랑켄이 머물고 있는 실험실로 들어갔다.
리치 아자토스의 군단 2인자뿐만 아니라 언데드 강화에 관한 연구를 도맡아 하고 있는 박사.
하얀 가운을 걸치고 안경을 쓴 그는 민혁이 들어오자 놀란 듯하던 일을 멈추었다.
“오, 머미와 강시들은 처리한 건가.”
“예. 모두 처리했습니다.”
안경을 추켜올린 그는 민혁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퀘스트-프랑켄의 실험을 완료하였습니다.]
“내 생각보다 더 유능한 언데드였나 보구만. 수고했네.
“예. 감사합니다.”
“그래, 합당한 보상을 내려야지. 잠시만 기다리게.”
자리에서 일어난 프랑켄이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민혁에게 다가왔다.
눈앞의 민혁의 앙상한 해골 몸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올라간 그의 몸.
위협스러운 거대한 손을 해골 위에 얹었다.
민혁의 몸속으로 알 수 없는 어두운 힘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데스 위자드로 승격되었습니다.]
[리치 아자토스의 언데드 오라에 더욱 강한 효과를 받습니다.]
[데스 나이트 소환을 배웠습니다.]
[스켈레톤 위자드 소환을 배웠습니다.]
연속적인 울림에 정신을 차린 민혁이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와는 다른 느낌.
어두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며 뼈만 남은 해골에 스며들며 들기 시작했다.
그리곤 지면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민혁의 몸.
더욱 강력해진 언데드의 힘이 느껴졌다.
“축하하네. 자네한테도 이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구만.”
프랑켄이 괜히 빈말을 한 건은 아니었다.
승격한 민혁의 해골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
미세한 변화였으나 단순한 해골의 용모가 더욱 각이 지고 어두운 분위기가 풍기는 카리스마가 생겨났다.
“돌아오자마자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자네가 가야 할 곳이 있네.”
[퀘스트-진상 조사]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는 리치 아자토스의 군단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언데드를 수용하던 두 번째 성채.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언데드들이 모두 전멸하였다. 성에 가서 진상을 파악하라!]
[난이도-C]
[상관의 명령에 불복할 수 없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두 번째 성채라면…….”
“맞네. 내가 책임자로 있던 곳이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지금까지 보낸 언데드 모두 소식이 끊겨 버렸다네. 자네라면 믿고 보낼 수 있겠지.”
골치 아프다는 듯 안경을 벗으며 이야기하는 프랑켄.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려 하였지만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그의 표정에선 어떠한 것도 읽을 수 없었다.
프랑켄, 그의 과거를 엿보았던 민혁은 의문스러웠다.
시체 흡수를 통해 보았던 마지막 영상의 그와 현재의 프랑켄. 그 둘은 너무나도 달랐던 것.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던 것처럼 보이던 과거의 그와 능글맞은 표정,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을 가진 현재의 그는 아무리 봐도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은 것인가?’
감정이 없는 그의 표정은 어떠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민혁이 좀비와 머미 그리고 키메라의 시체를 흡수해 가면서 본 영상으로 유추하였을 때 그들을 만든 것은 분명 프랑켄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기억을 찾은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단순한 실험의 실패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자토스에 반란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든 현재 민혁의 목적에 걸림돌이 될 수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혹여나 기억을 되찾은 그가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경우.
민혁이 없을 때 반란에 성공해 아자토스를 죽이거나 반란에 실패해 오히려 경계가 더욱 강화되거나.
어느 쪽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육체를 얻기 위한 민혁의 퀘스트 완료와는 결과가 멀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기억에 의하면 리치는 살아 있었으니 일단은 괜찮겠지.’